이 책은 두 번 이상씩 읽어야 하는 문장들이 많다. 무슨 말인지를 이해하기 위해 다시 한 번 들여다 보아야 한다. 다시 한 번 들여다본다고 해서 '아 이런 뜻이구나' 라고 명쾌히 이해되는것도 아니다. 그것은 아마도 나의 앎이 부족해서인가보다 싶다. 오늘 출근길 지하철에서 이 책을 읽는데 대체 이 책 왜 어려울까, 하다가 이 문장을 읽고 왜 어려운지를 이해하게 된다.




우리가 여성은 억압과 전유의 대상이라는 것을 발견했을 때 바로 그 순간에 우리는 추상화의 작동을 통해 인식할 수 있는 주체라는 의미에서 주체가 된다. (p.72)



한 문장안에 개념어가 여러개 들어있는거다. 저 문장 자체가 지나치게 학술적이라고 해야하나. 나와 회사 동료들이, 나와 친구들이, 나와 가족들이 나누는 대화 같은 그런 문장들이 아닌거다. 나는 지금 이렇게 저 문장을 인용하느라 다시 썼음에도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다. 지금 또 읽어봐도 무슨 말인지를 모르겠다. 모니크 위티그는 자신 안에 많은 생각을 갖고 있고 어떤 것이 문제인지 파악하는 것에 능한 사람이나, 그걸 알기 쉽게 표현하는데에는 영 재주가 없는 사람인 것 같다. 어쩌면 모니크 위티그의 타겟은 일반 독자가 아니어서일까. '이성애 제도에 대한 전복적 시선'이라고 한다면, 사실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해야 하는게 아닌가. 머리통이 터져버릴 것 같다. 우리가 여성은 억압과 전유의 대상이라는 것을 발견했을 때 바로 그 순간에 우리는 추상화의 작동을 통해 인식할 수 있는 주체라는 의미에서 주체가 된다는게 무슨 말이여 대체.....



저렇게 어렵고 난해한 문장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왜 흑인 페미니즘을 재미있게 읽었는지를, 에코 페미니즘은 왜 좋았는지를 떠올려보게 됐다. 그 책들은 '쉬웠'는가? 그 책들도 결코 쉬운 책들이 아니다. 그러나 그 책들은 저런 개념어가 난무하진 않았다. 에코 페미니즘은 좀 많이 나왔지만.... 뭐랄까, 그럴 경우에도 예를 들어 설명해주기 때문에 앗 뭐여 어렵잖아, 하다가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모니크 위티그는 얄짤없다. 저 문장에 대해 뭐 구체적 사례를 보여준다거나 저 문장을 풀어 써준다던가 하는 일은 하질 않아. 얄짤없어. 그래서 이 책은 얇지만 어렵다.

유물론적 여성, 유물론적 페미니즘... 이러는데 학창 시절 내가 공부를 잘했다면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게 명징하게 다가왔을까? 골치가 아픈 것이다.



사람은 결국 자기가 좋아하는 걸 읽게 되고 그로부터 영향받아 좋아하는 걸 쓰게 된다. '영향을 받는다'는 건 그런것이다. 시를 좋아하는 사람은 시적인 문장을 적어내려가게 되는 것처럼, 유머를 좋아하는 사람은 유머 있는 글을 쓰려고 노력하게 되는것처럼, 내가 보고 익혀온 것, 익숙한 것들이 나를 구성하게 되는거다. 모니크 위티그가 저런 개념어들이 우수수 쏟아지는 문장을 구성하는 건, 그녀가 읽은 책들 때문이로구나, 라고 나는 생각했다.



언어의 과학은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 라캉의 정신분석학 그리고 구조주의 토대로부터 발전한 모든 분과학문 같은 다른 과학을 침공했다.

롤랑 바르트의 초기 기호학은 언어학의 지배로부터 거의 벗어났다. (p.80)



위의 두 문장에 레비스트로스, 라캉, 롤랑 바르트 나온다. 인류학, 정신분석학, 구조주의, 기호학, 언어학...관련 책들을 읽으니 우리가 여성은 억압과 전유의 대상이라는 것을 발견했을 때 바로 그 순간에 우리는 추상화의 작동을 통해 인식할 수 있는 주체라는 의미에서 주체가 된다 같은 문장을 쓰는 거 아녀... 하아. 내가 젊은 시절에, 지금보다 머리가 더 빠릿빠릿하게 돌아가던 시절에 레비스트로스와 라캉과 롤랑 바르트를 읽었다면 스트레이트 마인드는 나에게 껌씹기 처럼 쉬웠을까? 그녀의 사상은 전복적이라고 해도, 세상의 불평등을 파악하는 시선은 날카로웠다고 해도, 우리가 여성은 억압과 전유의 대상이라는 것을 발견했을 때 바로 그 순간에 우리는 추상화의 작동을 통해 인식할 수 있는 주체라는 의미에서 주체가 된다 같은 문장을 쓰면 도대체 일반인들에게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인가. 하아- 답답하다....



저런 어려운 문장들 때문에 읽기가 매우 더디고 무슨 말이야 씨부럴...같은 중얼거림을 몇 번 삼키긴 해도, 읽을수록 이 책은 재미있다. 이성애 깨부수자고 얘기하는 게 너무 짜릿하다. 모니크 위티그가 1935년에 태어나 2003년에 사망했는데, 1981년에 막 이성애를 파괴하자고 했으니, 아아, 그 당시 사람들은 그런 주장에 어떤 생각을 했을까.




여성을 만드는 것은 남성에 대한 특정한 사회적 관계, 우리가 이전에 노예 상태라고 불렸던 관계, 경제적 의무뿐만 아니라 개인적이고 물리적 의무를 의미하는 관계("강요된 거주지", 가내 강제 노역, 부부 관계의 의무, 제한 없는 아이의 생산 등), 레즈비언들이 이성애자가 되거나 이성애자로 남는 것을 거부함으로써 탈출한 관계다. 우리는 미국의 도망 노예들이 노예제도를 탈출해서 자유롭게 된 것과 같은 방식으로, 우리 계급으로부터 탈출한 자들이다. 우리에게는 이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리의 생존을 위해 우리의 모든 힘을 남성이 여성을 전유하는 여성 계급의 파괴에 기여해야 한다. 이것은 남성에 의한 여성 억압의 토대가 되고, 성별 사이에서 차이의 독트린을 생산하는 사회적 제도인 이성애를 파괴함으로써만 완수될 수 있다. (p.75)




여성 차별이 눈에 보이고 여성혐오를 인지하는 순간, 어쩔 수없이 당연하게도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있다. 여성의 외모를 '여성답게' 꾸미는 것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 만연한 포르노 이미지를 없애야 한다는 것. 이건 공통적으로 깨달을 수밖에 없는 것들인데, 모니크 위티그도 역시 언급한다.




계급과 계급의식 없이는, 진짜 주체는 없다. 소외된 개인들만이 있을 뿐이다. 여성이 유물론적 용어로 개별 주체에 대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첫 번째로 할 일은 레즈비언들과 페미니스트들이 한 것처럼 '주체적인', '개별적인', '사적인' 문제가 실제로는 사회적인 문제, 계급 문제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섹슈얼리티는 여성 개인이나 주체의 표현을 위한 것이 아니라 폭력의 사회적 제도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p.74)



섹슈얼리티는 폭력의 사회적 제도라는 것을 이해했어요, 여러분?



적어도 여성이 남성이 되기를 원하는 것은 자신의 최초의 프로그래밍으로부터 탈출했음을 증명한다. 그러나 온 힘을 다해 원하더라도, 그녀는 남성이 될 수 없다. 남성이 되기 위해 여성은 남성의 외양뿐 아니라 남성의 의식, 즉 그의 생애 주기 동안 적어도 두 '자연적' 노예를 처분할 권리를 가졌다는 의식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불가능하다. 레즈비언 억압 형상은, 여성은 남성에 속하기 때문에 여성은 여성에게 접근할 수 없다는 식으로 형성된다. 그러므로 레즈비언은 무언가 다른 것이, 비여성, 비남성, 사회의 산물이 아닌 것, 자연의 산물이 아닌 것이 되어야만 한다. (p.63)



여성이 남성에게 속하는 것이 세상의 자연스런 흐름이고 그동안 만들어둔 사회적 룰인데, 그걸 거부하는 레즈비언에 대해서 억압 현상이 일어난다. 이 구절을 읽으면서 나는 우리 사회에 실제로 존재했던 사건이 생각났다. 레즈비언을 교정해주겠다고 성폭행했던 군대의 남자.



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586&aid=0000000955&sid1=001




모니크 위티그는 역시 포르노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아아, 나는 정말이지 여자들이 너무 좋다. 이렇게나 똑똑한 여자들이.




포르노그래피적인 이미지, 영화, 잡지 사진, 도시의 벽에 붙어 있는 포스터들은 담론을 구성한다. 그리고 이 담론은 우리 세계를 기호로 덮고, 의미를 갖는다. 이것은 여성은 지배받고 있다는 것을 상징한다. 기호학자들은 담론의 체계를 해석하고 그 배치를 기술할 수 있다. 그들이 담론에서 읽는 것은 그 기능이 의미화되지 않는 기호들과 특정한 시스템 혹은 배치 요소를 제외하고는 존재의 이유가 없는 기호들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이 담론은 기호학자들에게서처럼 분리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의 억압(정치,경제적으로)인 사회 현실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할 뿐 아니라 억압의 한 측면이고, 우리에게 특정한 힘도 행사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 자체로 실질적이다.

포르노그래피 담론은 우리에게 실험되고 있는 폭력 전략이다. 포르노그래피는 우리를 모욕하고, 우리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우리의 '인간성'에 대한 범죄다. (p.85-86)



자연에서뿐 아니라 문화에서도 불가항력적인 그 관계는 바로 이성애 관계다. 나는 이것을 '남성'과 '여성' 사이의 의무적 사회관계라고 부를 것이다. (p.87)




다 읽고 팔 수도 있을 것 같아 깨끗하게 보다가 밑줄 그을 문장들이 자꾸 보여서 마음 놓고 '내 책'으로 만들기로 했다.

그렇게 87쪽까지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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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7-03 12: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 시작 못했는데... 이제 해야 하나.
진지하기 볼만한 책인 듯 싶네요~ 얇다고 미뤄뒀다가는 안 될 듯.

다락방 2020-07-03 16:57   좋아요 0 | URL
저는 얇아서 몇시간만 투자해 뚝딱 읽어내자~ 할랬는데 이게 너무 어렵네요, 비연님 ㅠㅠ

수이 2020-07-03 15: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방님 많이 읽으셨는데요. 전 115쪽. 근데 어려워서 재독해야할듯 해요. 빨리 읽는다 해도.

다락방 2020-07-03 16:57   좋아요 0 | URL
네, 이 책이 쉬이 읽히질 않네요. 저에게는 개념어가 너무 많아요. ㅠㅠ
힘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