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코페미니즘]은 '마리아 미스'와 '반다나 시바' 의 공저이다. 저자들이 돌아가며 한 장씩을 맡아 이야기하고 있는데, <2장 환원주의와 재생:과학의 위기>는 반다나 시바의 글이다.
보통 책을 읽다가 어려운 단어나 모르는 단어가 나온다고 해서 그때마다 번번이 다 사전을 찾아보거나 하지는 않는다. 주석을 읽는 것도 마찬가지, 언제나 주석을 읽지는 않는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중간에 그 흐름이 끊기는게 싫고, 모르는 단어라고 해도 문맥상 대략적으로 뜻 짐작이 가능할 때도 있어 대체적으로는 흐름을 끊지 않고 페이지를 넘기는 편이다. 꼭 찾아봐야 할 때는 그 단어를 모르고서 도무지 책의 내용이 파악도 이해도 되지 않을 때인데, 반다나 시바가 말한 '환원주의'가 바로 그런 경우에 해당한다. 환원주의, 를 이 책에서 반다나 시바의 말로 처음 접하고서는 대충 넘어가려고 했다. 명확히 설명할 수 없으면 제대로 아는것도 아닌데도 나는 환원주의는 뭐 환원주의겠지, 하고 그냥 넘기려 했던 거다. 그러나 환원주의는 계속 등장하고 나는 이걸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는채로 이 장을 이어나가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환원, 이라고 하면 원상태로 돌린다는 걸 의미하는게 아닌가? 환원주의는 원상태로 돌리는 걸 의미하는 거 아냐? 그런데 이런 식으로만 짐작했다가 책 내용이 영 파악이 안되는거다. 나는 우선, 내가 아는 환원이 그 환원이 맞는지 검색해 보았다. 네이버 어학사전에서는 '본디의 상태로 다시 돌아감'이라고 되어있다. 그러니 내가 환원에 대해 알고 있는 뜻은 틀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대체 환원주의가 뭔가, 왜 환원이란 단어의 뜻을 아는데 환원주의는 이해할 수가 없는 것인가. 나는 환원주의를 넣고 검색해본다.
[ reductionism , 還元主義 ]복잡하고 추상적인 사상(事象)이나 개념을 단일 레벨의 더 기본적인 요소로부터 설명하려는 입장. [네이버 지식백과] 환원주의 [reductionism, 還元主義] (두산백과)
환원주의에 대한 네이버 지식백과의 '요약'은 위와 같다. 요약만 읽으면 알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런데도 모르겠네? 나는 요약 밑의 상세설명을 읽기 시작한다.
특히 과학철학에서는 관찰이 불가능한 이론적 개념이나 법칙을 직접적으로 관찰이 가능한 경험명제(經驗命題)의 집합으로 바꾸어 놓으려는 실증주의적(實證主義的) 경향을 가리킨다. E.마하와 R.아베나리우스 등의 경험비판론, M.슐리크와 R.카르나프 등의 논리실증주의가 그 전형(典型)이다.
전자가 감각적 경험에 대한 ‘사실적 환원’을 지향한 데 반하여 후자는 관찰명제(觀察命題)에 대한 ‘언어적 환원’을 지향한다는 차이는 있으나, 다같이 반형이상학(反形而上學)의 입장에서는 노선을 같이한다. 후자는 다시 관찰명제의 기술(記述)에 감각여건언어(sense-datum language)를 취하느냐 사물언어(thing language)를 취하느냐에 따라서 현상주의(現象主義)와 물리주의(物理主義)로 갈라진다.
또 생물학에서는 생명현상이 물리학 및 화학의 이론이나 법칙에 의하여 해명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내세워 생기론(生氣論)에 대립한다. 환원주의는 심리학상의 행동주의나 사회과학상의 방법론적 개체주의(個體主義)를 가지고 통일과학의 이상을 추구했으나, 그 주장에는 여러 가지 곤란한 점이 지적되어 실현에까지는 이르지 못하였다.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환원주의 [reductionism, 還元主義] (두산백과)
...............네?.................뭐라고요?...................아니 어째 사전을 읽을수록 더 미궁에 빠지는가, 나여.
환원주의를 알기 위해서 나는 실증주의를 알아야 하는 것인가. 알지 못하는 단어를 찾기 위해 사전을 펼쳤는데 그 단어의 설명을 위해 알지 못하는 단어가 수두룩 빽빽하게 나오면 그 때는 대체 어쩌란 말인가.
오만년전에 '홍정욱'의 [7막 7장]을 읽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중학생때 미국으로 공부하러 갈 때 홍정욱이 가져간 건 영영사전 한권 뿐이라고 했다. 영한사전이 아니라 영영사전. 모르는 영어 단어를 찾아보면 영어로 써있어서 그 문장을 이해하기 위해 다시 사전을 뒤적여야 하고 역시 또다시 사전을 펼쳐야 하는 반복의 연속이었다고. 이 과정을 거친 사람이라 그는 하버드를 졸업할 수 있었던 것 같고, 나는 환원주의 찾다가 실증주의 나오고 개체주의 행동주의 통일과학.... 해버리는 바람에 더이상 찾기를 포기하기 때문에 대학원을 갈 수 없는 사람이구나. 나는 환원주의에 대해서는 이해를 포기한 채로 이 책을 읽어야 하겠구나, 아 어이없어, 반다나 시바 너무 박사님이라서 다른 사람들이 환원주의 모를 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 미처 인지하지 못한것일까. 환원주의가 이 책의 초반부터 나 너무 괴롭히네, 엉엉 울고 싶다, 다시 책으로 돌아가자, 하였는데, 아아, 아니다, 환원주의는 내가 더이상의 뜻을 찾기를 포기하고 다시 책으로 돌아갔을 때, 그 책안에서 다 설명되어지고 있었다. 흑흑. 자, 우리, 환원주의에 대해 이해해보도록 하자. 여러분 이해 준비 완료?
개별 기업과 경제의 분화된 부문들은 사적 소유이든 국가소유이든 자체의 효율성과 이익만을 생각하며, 모든 기업과 모든 부문은 사회적ㆍ환경적 비용이 극대화되는 현실에는 눈감은 채 이윤의 극대화라는 척도로만 효율성을 측정한다. 이 효율성의 논리를 제공해온 것이 환원주의이다. 착취와 수탈을 통해 이윤을 발생시키는 자원체계의 특성만이 고려되며, 생태계의 과정을 안정시키지만 상업적 이윤을 낳지 않는 특성은 무시되고 결국 파괴된다.
상업적인 자본주의는 전문화된 상품생산에 기반을 두며, 따라서 생산의 획일성과 자연자원의 단일기능적 활용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환원주의는 복잡한 생태계를 단일 구성요소로, 단일 구성요소를 단일 기능으로 환원한다. 나아가 이것은 단일 기능, 단일 구성요소의 착취를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생태계를 조작하도록 한다. 환원주의적 패러다임에서 숲은 상업적인 목재로, 목재는 펄프와 제지업을 위한 섬유소로 환원된다. 그리하여 숲, 토지와 유전(遺傳)자원들은 펄프의 생산을 증가시키도록 조작되는 것이다. 이러한 왜곡은 전체적인 생산성만 증가시킨다면 그것이 숲의 수분 보유량을 줄이건 숲공동체를 이루는 생명체의 다양성을 파괴하건 상관없이 과학적으로 합법화된다. 그렇게 해서 '과학적인' 산림관리와 산림 '개발'은 살아 있는 다양한 생태계를 파괴한다. 이와같은 방식으로 자연의 유기적 과정과 리듬과 재생력을 파괴하는 변형을 수반하기 때문에 환원주의 과학은 점증하는 환경재난의 뿌리가 된다. -p.83-84
숲은 상업적인 목재로, 목재는 펄프와 제지업을 위한 섬유소로 환원되고 그리하여 자연이 인공적 생산을 증가시키도록 조작되는 것. 이렇게 예를 들어주니 오오 이해가 되지 않습니까, 여러분...
그나저나 여성학 책 읽을 때도 그렇고 무슨 ~주의 이런거 너무 많아서 읽기 너무 힘들다. 세상에 수많은 그 주의들을 다 알 수도 없고 이럴 때마다 사전 찾아야하니 책읽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구나 싶다. 어휴... 아무튼 환원주의 때문에 80쪽쯤에서 머리 터지게 고민했는데, 이 책이 총 524페이지의 책이고, 나는 고작 이십프로 읽고 머리가 터질 것 같았는데 앞으로 남은 부분에서는 어떤 용어들이 나를 또 후려칠까.... 그래도 읽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현재 125 페이지까지 읽었다.
감사하게도 아직 일요일 오후가 남아있고 아쉽게도 고작 일요일 오후밖에 남아 있질 않다. 나는 오늘 이 책을 얼마나 더 읽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뭔가 로맨스 소설 읽고 싶어졌는데 집에 가진 로맨스 소설이 없는 것 같아..주군의 여인 읽을까...낯선살냄새를 다시.....?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가 지금 책장에 없어. 회사에 있다 ㅠㅠ 안읽은 책 책장에 이렇게나 많은데 지금 딱히 읽고 싶은 책이 없어서...책 또사야 하나? 아, 지난주에도 책이 왔다.
아무튼 책장 앞으로 가서 뭔가 다른 책을 골라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