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있는 저 남자 분은 여성은 마차에 탈 때 도움을 받아야 하며 구덩이에서 나올 때도 남자가 들어 올려 주어야 하고 모든 곳에서 가장 좋은 곳을 차지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렇지만 아무도 내가 마차를 타거나 진창을 지나야 할 때 도와주지 않으며 아무도 내게 가장 좋은 곳을 내어주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여성이 아니란 말입니까? 나를 보십시오! 이 팔을 보십시오! 나는 어느 남자보다도 더 많이 쟁기를 끌었고 씨를 뿌렸으며 곡물을 거두어 곳간에 넣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여성이 아니란 말입니까? 나는 남성과 똑같이 일할 수 있고, 충분한 음식이 있다면 남자만큼이나 많이 먹고, 채찍질을 견딜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여성이 아니란 말입니까? 나는 열세 명의 아이를 낳았으며 이 아이들 모두가 노예로 팔려나가는 것을 보아야 했습니다. 내가 어머니로서 슬픔에 겨워 울 때 주님 말고는 아무도 제 슬픈 울음소리를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나는 여성이 아니란 말입니까?(Loewenberg and Bogin 1976, 253) -p.44




시험 점수를 잘 받는 것은 딱히 머리가 좋지 않아도 가능하다. 물론, 머리가 좋으면 더 잘받겠지만. 외우라는 부분을 달달달 외워서 정답이 무어냐, 물어보면 정답에 동그라미 치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쉽진 않더라도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더 많은 정답을 맞힌 사람은 시험 점수가 높고, 그 사람은 '공부를 잘 하는 사람'이라고 알려지게 되고, 그리고 좋은 학교에 진학하게 된다.

대학에 진학하면서 전공을 선택하고, 역시나 교수님의 설명을 잘 듣고 교과서를 달달 외워서 높은 학점을 받고 졸업해서 보란듯이 사회의 좋은 위치를 차지할 수도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 공부를 잘했던 학생은 명문대를 나온 엘리트가 되어 높은 연봉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 사회는, 그렇게 살아도 되게끔, 아니 그렇게 살아야 잘 살게끔 설계되어 있다.


얼마전 읽었던 '마야 뒤센베리'의 [의사는 왜 여자의 말을 믿지 않는가?]에서는 의사들이 여성환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많은 사례들이 나온다. 그들이 호소하는 고통과 증상은 의사들이 그동안 알고 있던 것과 달랐기 때문에, 여성환자들은 '머릿속으로 아픈' 사람이 되어서 돌려보내진다. 그 의사들,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직업을 가진 의사들이, 교과서에 실려 있지 않은 여성환자들의 증상에 대해 몰랐기 때문이다. 아마 대부분의 평범한 의사들이 같은 반응을 보일것이다. 그러니 여성환자들은 첫번째 의사를 찾아갔다 돌아오고 두번째 의사를 찾아갔다 돌아오고 세번째 의사를 찾아갔다 돌아오고...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일테다.


이럴 때 의사에게 필요한 건 '이건 무얼까'일것이다. 어? 내가 알던 것과 다른데 어디에서 뭐가 다른걸까, 그렇다면 알려지지 않은 무엇이 있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이 사람은 아픈것일까, 하는 '기존에 내가 알고 있던 것'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려는 사고다. 그게 있었다면 많은 여성환자들은 더 많이 생존했을 것이다.


얼마전에는 SNS에서 누군가의 비판의 말에 '나 사회학 전공했고 석사과정이다' 라면서 자신의 말이 틀릴 리가 없다는 증거로 자신의 학력을 가져오는 것을 보았다. '사회학을 전공했고 석사과정을 밟고 있는 남자'는, 여성으로 태어나 여성으로 살아온 사람보다 과연 여성에 대해 더 잘 이해하고 있는가? 페미니즘에 대해 '사회학 석사과정을 밟고 있기' 때문에, 더 잘 아는가? 교과서를 달달 외우고 교과서에 있는 것만이 진실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석사가 되고 박사가 되는데 도움은 될지언정, '깨어있는' '열린' 사람이 되는 걸 보장하지는 못한다.



위의 인용에서 '남자들은 여자들을 대우해줘야 한다고 하는데 흑인인 나는 대우받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여자가 아니냐'라는 당연한 물음을 던지는 사람은 '읽고 쓰는 법을 결코 배운 적이 없는 노예'이다. 나는 이 지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에서 일어나는 현상에 의문을 갖고 원인을 파악하려고 하고 질문을 던지는 것. 이걸 하는 사람이 깨어있는 사람이고 열린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이 결국 사회가 바뀌는데 하나라도 더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읽고 쓰는 법을 결코 배운 적이 없는 이 노예신분의 흑인여성이 '니네가 말한 대로라면, 나는 여성이 아닌거잖아?'라고 의문을 갖고 던지는 데에서 너무 짜릿했다. 그러면서 안타까웠다. 이렇게 모두가 자연스레 받아들이고 의문도 품지 않고 살아가는 사회의 명제에 대해서 교육을 받지 않았으나 스스로 깨달아 질문할 수 있는 사람이, 그런데 만약 교육을 받는다면 어떻게 될까. 나는 여자가 아니란 말이냐, 라는 질문을 던지는 이 사람의 세계는 이미 확장되어 있고 또 이미 섬세하고 날카로운 시선을 가지고 있지만, 만약 읽고 쓰기를 배운다면, 교육받는다면, 그렇다면 이 사람의 세계는 대체 얼마만큼이나 확장될까. 너무 기대가 되지 않는가. 그렇게 넓어질 세계가, 갖게될 의문이, 그래서 저항하게 될 그 잠재력이 무서워서, 남성중심 사회는 그리고 백인중심 사회는, 흑인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를 허락하지 않았던 모양이다. 인종분리정책으로 흑인 여성도 교육을 아예 받지 못하는 건 아니었으나, 백인들이 받는 교육과는 달랐다. 이들이 유모로 규정되어지고 노예로 살아가는 대신 백인 남성과 같은 교육을 받았다면 세상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스스로 보고 의문을 가지는 눈을 가진 사람이 교육을 받는다면 대체 이 세상은 얼마나 휘청거릴까.



주어진대로의 세상을 사는 것보다, 그 안에 존재하는 부조리를 짚어내고 지적하고 질문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매력을 느낀다. 결국은 그 사람들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흑인여성은 명백하게 타자화 되어 대표성을 갖는다. '유모', '복지수당 어머니'가 흑인 여성에게 부여된 이미지였다면, '흑인 숙녀' 역시 마찬가지. 흑인 여성들이 교육 받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기존과 다른 신분에 놓이게 된다. 그리고 역시나 그런 여성들은 후려쳐진다. 세상은 밑바닥에서 주는 거나 받아 먹으며 굽신거려야 된다고 생각하는 약자가 꿈틀거리는 것을 어떻게든 막고자 한다.



흑인숙녀 이미지는 또한 가모장 명제의 여러 측면과 닮아있다. 즉, 흑인숙녀는 모든 에너지를 소진시키는 직종에서 일을 하느라 남자를 만나거나 돌볼 시간이 없거나 남성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잊어버린 여성이다. 그녀는 너무나 일상적으로 남성들과 경쟁하면서 이러한 경쟁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때문에 여자답지 못하다고 여겨진다. 고등교육을 받은 흑인숙녀는 자기주장을 너무 강하게 펼친다는 것이다. 또한, 그녀들과 결혼하려는 남성이 없다고들 한다. (P.149)




메갈을 메퇘지라고 칭하는 것도, 페미니스트들은 남성에게 사랑 받지 못하는 못생긴 여자들이라는 것도, 흑인숙녀에 덧씌워진 이미지와 맥을 같이한다. 세상이 여성을 외모로 평가하는데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여성의 최고가치는 외모가 되었다. 거기에 휩쓸리느라 굶어가며 다이어트를 하고 화장하는데 시간을 쏟는다. 남성에게 예쁘게, 섹시하게 보이는 것이 최고 가치인 것처럼 한목소리로 외쳐왔다. 그래서, 그렇지 않은 여자들에 대해서는 그 가치를 폄하하려고 애를 쓴다. 자기 주장을 하는 여자들에 대해서 못생겨서, 뚱뚱해서, 남자에게 사랑받지 못해서, 라고 공격한다. 하하하하하하하하. 물론, 어쩌면, 아직도, 저런 공격에 휘청거리며 더 예쁘기 위해서, 더 사랑받기 위해서 노력하는 여성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혼하려는 남성이 없다'는 것은, 여성들에게 더이상 공격이 될 수 없다. 그것은 치명적인 약점이 아니다. 여성들은 남성과 연애하지 않아도, 남성에게 예쁘게 보이지 않아도, 남성과 결.혼.하.지.않.아.도. 충분히 즐겁고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오히려 그 편이 더 행복할 확률이 높기도 하고.



이 책은 1990년에 초판이 나오고 2000년에 개정판이 나왔다. 이 책에는 그래서 초판과 개정판의 서문이 다 실려있는데, 저런 공격, 그러니까 '너 그렇게 자기 주장 강하면 남자들이 너랑 결혼 안해줘'라는 걸로 공격하는게 너무 웃겼다. 그렇다고 다 옛날일이라고 할 수도 없는게, 일전에도 내가 뉴욕에 이민간 남자로부터 '너 그렇게 생각 많이 하면 시집 못가'라는 말을 직접 듣지 않았는가.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불과 몇 년전의 일이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니, 시집 못간다고 협박하면 내가


'아이쿠 이런. 큰일났네. 내가 시집을 못간다니. 이를 어쩌면 좋아. 아 죽고싶다. 어떻게 해야 시집가지? 나는 머저리야, 빨리 시집갈 수 있는 여성으로 탈바꿈하자.'


뭐 이럴 줄 알았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너 그렇게 공부 많이 하면, 책 많이 읽으면, 생각 많이 하면, 똑똑하면' 시집 못가, 를 협박으로 쓰는 새끼도 웃기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그런 여자랑 연애도 결혼도 안하겠다는 남자는 너무 진짜... 부끄럽다. 쪽팔린 줄 알아야 돼.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 쪽팔리지 않게 사는게 가장 중요하다. 아니 세상에 교육받은 여자랑 결혼 안해, 자기 주장 강한 여자랑 연애 안해, 이러는 건 지가 등신이라고 인증하는 거 아닌가. 나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내가 어떤 사람과 만나는지로도 보여지는 것이다.




아무튼 여자들이 계속 계속 더 공부하고 더 생각했으면 좋겠다. 남자랑 결혼 안해도 삶에 있어서 아무 지장 없으니께롱.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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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5-19 09: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 그렇게 공부 많이 하면, 책 많이 읽으면, 생각 많이 하면, 똑똑하면‘ 시집 못가, 를 협박으로 쓰는 새끼도 웃기고.... ㅠㅠ 아 이 아침 막 화나네요, 이 생각 저 생각 들어서. ㅜ

예전엔 정말 이런 말 하는 사람 많았죠. 사실 지금도 제 친구가 딸 대학 갈 때가 되니 시어머니가 여자애를 뭘 대학을 보내냐고 해서 거의 거품물고 쓰러질 뻔 한 일이 있었던 걸 보면... 여전히 많이 배운 여성에 대한 편견은 남아 있는 듯. 그래서 더 공부하고 더 생각하고 더 대화하고 그래야 한다고 봅니다, 진심.

여성의 최종 목적은 ‘시집‘ (전 이 단어도 무지하게 싫어하는데..ㅜ) 이라고 생각하는 것. 좋은 남자 만나 애 낳고 가사일 하며 가정을 잘 돌보는 것‘만‘이 진정한 여자의 인생이라고 생각하는 것. 이게 중요하지 않다는 게 아니라, 여성에게 이런 한계를 ‘지맘대로들‘ 짓고는 평가해대는 사람들에게 분노가 치밀어요.


다락방 2020-05-19 09:15   좋아요 1 | URL
네, 제가 직접 들었다니까요. 그것도 동갑의 남자로부터. ‘너 그렇게 생각 많이 하면 시집 못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어처구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안간다 새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너같은 놈 만날까봐 안간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시집 못가는 게 뭐 큰일이라고 그걸 협박으로 쓰는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오히려 여성들이 나서서 더 비혼을 주장하고 더 배워야 하는 것 같아요. 그딴 거 협박으로 쓰지 못하게.

다락방 2020-05-19 10:43   좋아요 1 | URL
아, 비연님. 그리고 저도 ‘시집가다‘는 표현 진짜 싫어요 ㅋㅋ 너무 모욕적이에요. 기분 나빠 -.-

블랙겟타 2020-07-11 21: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주류 경제학에서도 교육을 많이 받아 기술능력이 높은 사람이 임금을 많이 받아야한다는 논리는 예전부터 상식처럼 통용되는 이론인데요.
그런데 성별로 나누어 살펴보면 꼭 학력만이 작용되는 건 아닌 거 같더라구요.. 교육을 많이 받은 양성 간에도 차이가 있으니깐요. 미국의 경우는 학력이 비슷함에도 인종이 또다른 벽으로 작용될 것이라 보구요. 게다가 이 책은 흑인이면서 여성에 대해 쓴 책이니..

학문을 공부한 사람들은 그 지식에 대해 겸손해야지 그 지식을 과시하거나 맹목적으로 믿으면 안된다고 생각이 들어요.
저만 보더라도 경제학 아직도 잘 모르잖아요.. (음... 이건 겸손이 아니라 진짜 모르는 거긴 한데요...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