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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페미니즘 선언
낸시 프레이저.친지아 아루짜.티티 바타차리야 지음, 박지니 옮김 / 움직씨 / 2020년 3월
평점 :
페미니즘 '선언'이라는 제목에 걸맞게 책은 결의에 가득 차있다. 페미니즘이 뭔지 내가 한 번 공부해보겠다, 그리고 실천해보겠다! 하는 의지를 가진 사람에게 적합한 입문서가 될 듯.
처음 페미니즘에 대해 관심을 갖고 이거 대체 뭘까, 세상은 왜 기울어졌을까, 어떻게 평등하게 만들 수 있나, 무엇이 문제인가 들여다보다 보면 숱하게 많은 문제들을 마주치게 된다. 거대한 자본주의와 가부장제 테두리 안에서 여성들의 가사노동, 돌봄노동, 재생산 노동은 그간 보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에 따른 임금 역시 후려쳐졌다는 것도 알게 된다. 자본주의에서 자본을 가진 권력자들이 대부분 남성인 탓에 여성들은 진급도 힘들고 동일노동에 동일임금도 받지 못하고, 게다가 성적으로도 이용당한다. 성을 판매하는 고통에 놓이는 것도 여자고, 성을 구매하는 놈들도 판매하는 여자를 욕한다. 게다가 포르노는 어떻고. 포르노의 수위는 점점 더 강화되어 여성의 실생활 곳곳에서 툭툭 튀어나온다. 여성은 성적 대상화 되어 매스컴에 등장하고, 여성의 미의 기준 역시 그렇게 만들어지고 강제되며, 여성들은 돈으로 다시 또 세상이 원하는 미를 만들어내야 한다. 권력을 쥐고 있는 남자들은 여성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긁어먹는다. 이건 뭔가 아닌데, 하고 들어갔다가 분노에 분노를 만나게된다. 내가 예상했던 분노가 거기 있고 내가 예상하지 못했던 분노도 거기 있다.
그렇게 여러갈래로 쭉 뻗어나간 분노를 종합해놓은 책이 이 책이라 봐도 틀리지 않다. 그동안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에, 보이지 않는 노동에, 페미사이드에 분노하고 있었다면 그 모든 것들을 아우르고 종합해주는 책이랄까. 세분화해서 공부하고 분노했다가 이쯤에서 한 번 토탈 정리를 해줄까, 할 때 이 책은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보다는 위에 언급했던 것처럼 입문자에게 더 적합하고. 자, 어떻게 돌아가나 보자, 뭐가 문제인가 보자, 하는 사람이 읽을 때 더 도움을 많이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낯선 용어에 대한 설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장이 매끄럽지 않다. 많은 문장을 두 번씩 읽어야 했다. 분량도 얇고 글자도 매우 큰데-정말 크다-, 게다가 내가 페미니즘 책을 적게 읽은 것도 아닌데, 이 얇은 책 한 권을 읽어내기 위해서 미간에 주름을 뽝 잡아야 했다. 나랑 결이 다른 부분들이 수시로 나오지만, 어차피 모든 것에서 의견을 같이할 수는 없을 터. 그런 결이 다른 부분들보다는 매끄럽지 못한 문장이 가장 아쉬운 부분이었다.
개인의 출세에 대한 열광은 페미니즘을 개별 여성의 오르막과 혼동하는 소셜 미디어 유명인social-media celebrity들의 세계에도 똑같이 스며둘었다. 그 속에서 페미니즘은 실시간 인기 해시태그이자 자기 홍보 수단이 되고, 다수를 해방시키기보다는 소수의 지위를 올리는 데 쓰인다. - P47
‘망설임 없이 뛰어들라‘는 페미니즘에 대한 우리의 응답은 ‘내려놓는kick-back‘ 페미니즘이다. 우리는 유리 천장을 부수고, 그래서 대다수가 바닥에 쏟아진 유리 조각들을 치우게끔 만드는 일에 관심이 없다. 전망 좋은 사무실을 차지한 여성 CEO 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게 아니라 CEO와 전망 좋은 사무실이란 것을 없애 버리길 원한다. - P48
가족 밖에서도 마찬가지로 성적 해방이라 통하는 것들은 종종 자본주의적 가치를 재활용한다. ‘훅 없hook-up‘과 온라인 데이팅에 기반을 둔 새로운 이성애 문화는 젊은 여성들이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소유own‘하게 하지만 남성에 의해 정의된 기준으로 외모를 평가하게 만드는 것은 여전하다. 신자유주의 담론은 ‘자기 소유권self-ownership‘을 촉구하는 한편, 남성의 성적 이기주의를 어쩔 수 없는 자본주의적인 세태로 허가하면서 여성이 남성을 즐겁게 해 주도록 압력을 가한다. - P114
마르크스의 [자본론Capital]을 읽은 독자는 착취를, 자본이 생산 시점에 임금 노동자에게 가하는 불의를 안다. 그런 환경에서 노동자들은 생활비를 겨우 감당할 정도의 임금을 받도록 되어 있지만, 실상 더 많이 생산한다. 요악하면 상관들은 우리에게 우리 자신과 가족, 사회 기반 시설을 재생산하는 데 필요한 시간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하도록 요구하며, 우리가 생산한 잉여를 소유주와 주주를 위한 이윤의 형태로 도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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