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출근길에는 이 책의 제일 처음 단편, '김혜진'의 <3구역, 1구역>을 읽었다. 재개발을 앞둔 곳에 사는 '나' 가 길고양이에게 밥을 챙겨주다가 '너'를 만나는 걸로 시작한다. 길고양이의 밥을 챙기고 구조를 하는등의 따뜻한 행동을 보며 '나'는 '너'에게 조금 호감을 품지만, 낡은 곳은 어서 빨리 재개발 해야 한다, 재개발 될 곳을 찾아 수익을 챙겨야한다고 말하는 '너'에게 낯선 감정이 생기기도 한다.


'나'가 놀란 만큼 독자인 나도 놀랐다. 길고양이의 밥을 챙겨주고 병원에 데려다주는 일들은 쉽게 말해 '선한'일일텐데, 그런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이사를 가지 않고 버티려는 재개발구역의 사람들을 어리석게 생각하고 '나'에게도 재개발 될 곳을 물색해 차익을 많이 남기라고 말하다니, 이것이 잘 어울리지 않는 느낌인거다. 그러나 '너'는 그런 사람이었다. 아픈 고양이들을 구출해 쉼터를 만들어주면서, 빈집에 혹여라도 고양이가 숨어들어있지 않을까 인기척을 내면서, 그러나 재개발 구역을 쫓아다니는 사람. 나는 이 부분을 읽다가 독자인 나에게도 궁금해졌다. 이것이 왜 한사람이 모두 갖춘 면이라는 걸 받아들이기가 힘든걸까?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사람은 아파트를 팔아 수익을 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는 이 안의 내 심리는 무엇인가. 이것이 왜 모순됐다고 생각하는가. 돈을 더 많이 갖고 싶어하면서 그러나 길고양이에게 밥을 챙겨주는 것은, 사실은 한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성질들이 아닌가. 이것이 한 인간에게 모두 있다고 해서 그것이 대체 왜 낯선것인가.


'나'역시 혼란을 느낀다. 호감을 느끼면서 동시에 '어?'하는 마음도 느낀다. 이 사람은 나랑은 좀 다른 사람이야, 라고 생각하면서 어쩌면 그런 면에 끌리는 걸지도 모르겠다. 거기엔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마음을 품는다는 생각이 있으면서 동시에, '나'가 '너'보다 일곱살이나 많은데도 '너'보다 돈이 훨씬 적다는, 재개발 되기전에 집을 빼 다른 집을 알아 봐야 한다는 열등감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 내가 너보다 더 오래 살았는데 그런데 왜 나는 이렇게 가난하고 너는 그렇게 (재개발 수익으로) 가진 자가 된것일까. 너에게 느끼는 나의 이 감정은 무엇일까. '나'는 나와 다른 모습의 '너'에게 이질감을 느끼지만 그러나 또 호감과 관심도 있다. 자주 만나면서 이 사이가 더 깊어질 것이 두렵고 그래서 이제 그만 만나야지 마음먹지만 매번 부름에 응답하고야 만다. '나'는 그것이 '너'에 대한 이끌림이라고 생각한다. 이끌림이란 게 그렇다. 상대가 선하다고 이끌리는 것도 아니고 상대가 못됐다고 생각해서 훌쩍 돌아서게 되는 것도 아니다. 이건 아닌 것 같은데 하면서도 뒤로 물러나려다가 어느틈에 다시 한걸음 내딛고 있는, 왜이럴까, 내가 왜 이럴까 하는 것. 그리고 '나'는 그렇게 이끌리고 싶지 않다. '너'와 친근한 사이가 되고 싶지 않다. 이쯤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깊어지는 관계는 결국 힘들게 되니까. 그걸 아니까.




지금은 사라지고 없는 어떤 것들을 네가 똑같이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상하면서도 반가웠다. 우리가 이 동네에서 한 번쯤은 마주쳤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오며 가며 틀림없이 한 번은 만났을 거라는 짐작. 그렇게 생각하면 네가 조금 더 친근하게 느껴졌고 가깝게 여겨졌으므로 나는 그런 생각들을 하지 않으려고 애써야 했다. 어떤 식으로든 마음이라고 할 만한 게 한번 생겨나면 좀처럼 없애기 힘들다는 것을 나는 모르지 않는 나이였다. -<3구역, 1구역>, p.25




오늘 이 단편을 읽는데 '구스 반 산트' 감독의 <마레 지구>라는 아주 짧은 단편 영화가 떠올랐다. 《사랑해, 파리》라는 옴니버스 영화에 등장하는 단편. 그 영화속에 단편이 여러편이지만, 나는 유독 이 단편의 제목만을 기억한다.

















마레 지구.


아마 기존에 구스 반 산트 감독의 작품들을 좋아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제목을 보는 순간부터, 마레 지구, 라는 이 단순한 제목을 보는 순간부터 가슴이 벅차올랐다. 구스 반 산트가 대체 마레 지구로 무슨 말을 할까.


소년과 소년이 우연히 한 가게에서 만난다. 나는 가구를 파는 가게로 기억하는데, 그들은 어쨌든 거기서 처음 만난다. 그리고 호감을 품는다. 한쪽이 유독 호감을 표하고 그러나 다른 한쪽도 마찬가지여서 다른 사람들이 잠깐 자리를 비운 틈을 타, 그렇게 둘만있는 그 잠깐동안의 시간에 몇마디 말을 나누고, 그러다 손님으로 온 쪽이 짐을 챙겨 가게를 나가고, 뒤늦게 가게에 남아 있던 소년은 문 밖으로 뛰어나가면서 영화가 끝나는 거다. 나는 이 단편을 그렇게나 좋아했다. 마레 지구, 라고 떠올릴 때면 이 풋풋함과 설레임, 그리고 처음 만나는 것에 대한 모든 감정들이 쏟아져 들어오는 것만 같았다. 이 단편이 그렇게나 좋았더랬다. 그 영화속의 다른 단편들보다 더.



가게 안의 소년은 달려나가 가게 밖의 소년을 마주치게 될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마주치게 되고 서로의 감정을 확인하고 데이트를 시작한다고 해서 그들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라는 결론에 닿을 확률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간 살아오면서 내가 깨달은게 있다면 '오래오래 행복하게 함께 살았다'는건  '처음 만난 순간부터 홀딱 반하는 일'이 하는 게 아니라는 거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함께 살았다'는 건, 그보다는 '마음먹음', '작정'이 하는 일이라는 거다.


소년과 소년은 젊다. 찬란한 일들이 그들 앞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마주보고 웃고 설레이는 일들이 그들에게 분명히 있었고 또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당분간' 일 것이다. 내가 비극적인 사람이어서가 아니라, '반함'이 하는 일이 거기까지기 때문이다.


그 끝이 어떨지 몰라도, 그러니까 끝이 있다는 것을 알아도, 그 첫만남의 강렬함은 매우 축복할만한 일이다.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우연히 만나, 그 우연한 만남에서 서로에게 호감을 가질 수 있다는 것, 끌릴 수 있다는 것은,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살면서 한 번도 오지 않을, 그런 일이다. 이 사람 뭐지, 왜 더 얘기해보고 싶지, 이렇게 무작정 끌려가도 좋은 것인가, 이 사람 더 알고싶다, 하는 생각들이 우수수 쏟아지는 그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그리고, 나이들수록 더 적어진다. 나이들수록 경험치도 쌓이고 무수히 많은 인간들을 만나보기 때문에, 첫눈에 반하는 일? 거의 없다. 한 사람 안에 무수히 많은 면들이 담겨져있고, 굳이 드러내지 않는 면도 밖에서 보이기도 하거든. 인간에 대한 기대 자체가 옅어진다고 해야 하나. 그러니 우연히 마주쳐 그 첫만남에 서로에게 끌렸다면, 전화번호를 건넸다면, 그렇다면 마레 지구의 소년처럼 문밖으로 뛰어나가야 함이 옳다. 그런 경험은 살면서 그 때가 마지막일지도 모르니까.



김혜진의 <3구역, 1구역>은 사실 딱히 봄의 느낌이 아닌데, 이 봄의 느낌이 아닌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너무나 봄같은, 아니지, 찬란한 여름으로 막 넘어가는 듯한 마레 지구를 떠올렸다. 김혜진은 일전에 《딸에 대하여》를 읽어보았더랬는데, 이 책, 《소설 보다 봄 2020》에서 가장 처음의 단편이 김혜진이어서 반가웠다. 사실 이 책에서는 나는 김혜진만 기대하긴 했다. 그리고 아직 김혜진만 읽었고.


출근길에 마레 지구를 떠올린 일이 너무 좋았는데, 너무 오래전이라 내가 제대로 기억하는지 자신이 없었고 또 다시 보고 싶기도 했다. 짧은 단편이니 어쩌면 유튜브에 있지 않을까, 하고 검색해보았더니, 오! 있었다. 6분의 영상이었다.


기억은 역시나 왜곡되어 있었다. '소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오늘 아침 다시 보니 소년 보다는 '청년'에 가까운 것 같다. '가게'라고 생각했는데 '작업실'에서 일어난 일이었다. 한쪽은 끊임없이 말을 걸고 호감을 표시하는데 다른 한쪽은 이렇다할 반응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렇다할 반응을 하지 않았던 청년에게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어쨌든 그는 상대의 전화번호를 받고, 그리고, 뛰어나간다. 그게, 마레 지구였다.






'나'가 매번 확인하게 되는 '너'라는 사람은, '나'와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고, 어울릴 수 없는 사람이며, 결코 '나'가 다 알 수 없는 사람이지만,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너'라는 사람에게 '나'는 점점 더 속수무책이 되는 거라고, 저는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김혜진, p.46)



같아서, 어쩌면 달라서, 우리는 때로 속수무책이 된다. 나를 사로잡았던 그 때 그 순간은, 우리의 다름 때문에 생겨난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숱하게 많이 우리가 이렇게나 다르구나 생각했고, 우리가 너무 달라서 결코 어울릴 수 없다고 생각한 날들이 수두룩하다. 낮에도 그리고 밤에도 나는 우리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그토록이나 자주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내일을 기대하고 기다리는 것이야말로 내가 속수무책이 되었음에 다름아니다.




4월이 다 가고 있다.

한 사람 안에는 다양한 모습이 있고, 거기엔 모순되거나 충돌하는 지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말해도 좋다면 모든 사람 안에는 자신이 상상하기 힘든 모습들이 잠재되어 있는 셈일 텐데요. 물론 제 안에도 저 스스로 이해할 수 없고, 감당하기 힘든 면이 있습니다. 거기에 대해서라면 원래 사람이란 그런 존재가 아닌가 좀 당연하게 받아들여왔던 것 같습니다. 당연하다고 말은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해선 늘 얼마간은 체념하게 되는 것도 같고요.
그리고 한 사람의 모순적인 면면 혹은 이중적인 모습들이 드러나는 순간은 개인의 선택이나 의지의 문제만으로는 해명하기 힘들다는 생각도 합니다. 시기와 상황, 처지와 형편에 따라 사람은 얼마든지 이전과 다른 선택과 판단을 내릴 수 있고, 그에 따른 결과나 책임의 양상도 달라질 테고요. 또 그걸 보는 사람들의 입장도 각자의 사정에 따라 차이가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김혜진)- P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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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20-04-24 0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저 단편 보고 김헤진 작가님 책 더 보고 싶더라고요. 인상적인 작품이었어요 ㅎㅎ

다락방 2020-04-24 09:05   좋아요 0 | URL
제가 가난과 선함을 함께 놓고 가는것 같단 생각을 이 작품 보면서 하게 되더라고요. 웽님, <딸에 대하여>도 봤어요? 그것도 괜찮거든요. 아직 다른 단편들 보기 전인데 이 단편 좋았어요. 사실, ‘나‘의 ‘너‘에 대한 이끌림에 크게 공감하진 못하겠지만요. ‘너‘가 저에게는 호감형 인간이 아닌지라 ㅎㅎ 아무튼 좋은 독서의 시간이었습니다.

잠자냥 2020-04-24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길고양이 밥을 가끔 챙겨주는 저로서도 길고양이 밥주는 분들 ‘이미지‘에 약간의 클리셰랄까 편견이랄까 이런 게 머릿속에 있는 거 같아요. 그래서 저의 그 편견을 깨는 분들을 만나면 좀 당황스러운 것도 사실입니다. ㅎㅎㅎ암튼 흥미로운 단편이군요.

그나저나 마레 지구 저도 엄청 좋아했는데, 정말 오랜만에 다시 보네요. 구스 반 산트는 어디서 늘 저렇게 예쁘장한 청년과 소년들을 발굴하는지 원 ㅎㅎㅎ 덕분에 잘 봤어요. 집에 가서 또 봐야지. =33

다락방 2020-04-24 09:43   좋아요 0 | URL
맞아요, 잠자냥 님. 저도 저라는 인간 자체가 다른 인간들과 마찬가지로 모순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이렇게 맞닥뜨릴때면 당황스러워요. 게다가 제 안에 자리한 이 편견.. 잠자냥 님 표현대로 클리셰, 편견 이 적합한 표현인 것 같아요. 저는 왜 길고양이 밥 챙겨주는 사람이 부동산 투기와는 거리가 멀거라고 당연히 생각할까요? 당황스러웠어요.

잠자냥 님도 마레 지구를 좋아하신다니. 우앗. 너무나 반가워요 흑흑 ㅠㅠ
저 오랜만에 다시 보는데 오늘 아침 출근길이 얼마나 신나던지요! 물론 출근하고 나서는 똥같은 기분이 되었지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레 지구 좋아요! 막 마음이 살랑거려요. 후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