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말하면, 요즘 나는 자신에게 놀라고 있다. 폭력에 의한 죽음을 매일같이 목격한다. 여자가 남자에게 살해되어 강에, 숲에, 쓰레기장에 버려진다. 아이의 부러진 뼈가 상자 속에서, 배수구에서, 비닐봉지에서 발견된다. 날마다 나는 그것을 깨끗이 세정하고 검사하고 감정한다. 보고서를 작성한다. 법정에서 증언한다. 때로는 아무런 느낌도 없다. 프로의 초연함. 부검 현장에서의 무관심. 죽음을 가까이에서 너무 자주 보고 있기 때문에 죽음이 갖는 의미를 놓쳐 버릴까 두렵다. 부검용 사체 하나하나가 전에는 인간이었음에도 그 인간을 위해 슬퍼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감정의 저수지가 바닥을 드러낼 것이 분명했다. 이 일을 해나가려면 프로로서의 냉정함도 어느 정도 필요하겠지만, 감정을 모두 잃어버리는 단계까지 이르러서는 안 된다.
이번 여자들의 죽음이 내 안의 뭔가를 흔들어놓았다. 그녀들의 공포, 고통, 광기에 직면했을 때의 무력함에 가슴이 아팠다. 분노와 증오심을 느꼈고, 학살을 저지른 짐승 같은 놈들을 말살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피해자들의 죽음에 대한 그런 반응은 내 감정에게, 인간성에게, 인생에게 생명줄 같았다. 내 가슴에 인간다운 감정이 싹트면 그 감정에 감사했다.
개인적이라는 것은 그런 의미였다. 그래서 손을 떼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수도원 부지, 숲, 메인의 술집과 뒷골목을 헤맸던 것이다. 라이언을 설득해 추적 조사를 하도록 하자. 줄리의 손님의 정체를 밝혀내야지. 가비를 찾아내자. 관련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상관없다. 어느 쪽이 맞든, 여자의 피를 노리는 이 극악무도한 놈을 쫓아 파멸시킬 거야. 영원히. (p.441-442)
이 책의 주인공인 '브레넌'은 법인류학자이며 법의관이다. 발굴물과 뼈에 관련된 사건을 담당한다. 최근에 발견된 뼈가 고고학으로 가야할 것인지 법의학으로 와야할 것인지 현장에 나갔다가 그녀는 그것이 살인사건임을 알게 된다. 그 뼈를 맡아 부검하면서 연쇄살인의 가능성을 형사들에게 얘기해보지만 형사들은 그녀의 의견을 무시한다. 그녀는 홀로 수사를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당연히 형사들로부터 좋지 못한 대우를 받게 되는데, 막상 또다른 시체를 힘겹게 발견했을 때조차도 자신이 잘못 본건 아닐지, 괜히 경찰들을 부른 건 아닐지 스스로를 의심한다. 능력있고 그 분야에서는 신뢰가 강한 법의학자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혹시 이것이 실수는 아닐지 걱정해야 한다.
네가 할 일은 뼈를 들여다보는 일이지 수사가 아니라고 형사들로부터 야유를 받고 또 거친 대우도 받지만 결국 그녀가 제기한 가능성은 사실로 드러났다. 그녀를 유독 거칠게 대하던 형사 조차도 이제는 그녀 앞에서 시선을 내리깐다. 그녀는 이 연쇄살인범을 잡고 싶다. 강하게 잡고 싶다. 꼭 잡아야 한다. 휴일에도 나가서 일을 하면서, 밤에 잠을 못자고 일을 하면서 그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 잡혀있다. 그 과정에서 힘들어서 술을 마시고 싶기도 하지만, 알콜중독에서 빠져나온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런 스스로를 자꾸 타일러야 한다. 삼십대 후반에서 사십대 초반 정도의 브레넌은 알콜중독자였고, 남편과 별거중이며, 열아홉에 결혼해 딸을 하나 두고 있고, 그 딸의 나이가 지금 열아홉이다.
내가 놓친 것은 무엇일까, 자신이 부검한 뼈와 그 뼈의 특징들을 생각하고 고민하면서 공통점은 무엇인지,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끊임없이 생각한다. 자신의 친구들에게 의견을 듣기도 하면서 범인을 잡기 위해 노력하는 그녀는 자신이 유독 이 일에 왜그리도 열심인지에 대해 생각한다. 그녀는 그것을 자신의 인간다움, 인간성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위의 인용된 페이지를 읽으면서 이것은 연대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피해자들에게 연대하고 있었다. 피해 앞에서 무력했을 피해자들의 마음을 공감하며 그래서 이 일을 해결하고 싶어했다. 자신이 일하고 있는 분야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로 끌어모아 애쓰면서 그녀는 연대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녀는 그렇게나 열심히 일하면서 그 과정에서 혹시라도 자신이 선을 넘은건 아닌지, 자신 때문에 다른 사람이 피해를 보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해서도 계속 고민한다. 이런 과정들을 지켜보며 나는 얼마전에 본 드라마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떠올렸다. 강간 피해자에게 '네가 한 행동에 대해 변명할 필요 없다'고 말했던 장면과 어떻게든 그 놈들을 잡고 싶어하던 여자 형사들의 모습. 여자가 죽어나가는 사건 앞에서 여자 형사들도 그렇고 여자 법의학자도 그것을 그저 사건으로만 대할 수는 없었던 것 같다. 피해자들에 대한 연대, 바로 그게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결국 연쇄 살인범을 잡아내고 믿을 수 없는 이야기에서는 연쇄강간범을 잡아낸다. 그 놈들을 반드시 잡아내야 한다, 그런 피해를 더이상은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 는 것이 그녀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것이었다. 그것은 연대였다.
이 책은 시리즈이며 현재 절판이다. 2007년에 나온 책인데, 이 책이 그 당시에 얼마나 인기 있었던 책이었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겠지만, 지금 개정판으로 다시 나온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특히 여성들이 죽는 범죄에 대해 연대의 감정을 보인 주인공 브레넌 박사에 대해 읽는 것이 좋았지만, 이런 문장들도 있기 때문이다.
나는 머리를 낮추고 평소의 예의는 내팽개친 채 인파를 밀어 헤치며 생 자크가 사라진 쪽으로 힘차게 나아갔다. 내 거친 행동을 변명해줄 경찰 배지가 없었기 때문에, 주위와 시선을 맞추는 것을 피하고 오직 인파를 헤쳐나가는 것에 전념했다. 밀다시피 해도 대부분의 사람은 기분 좋게 지나가도록 해주었지만, 멈춰서서 내 등에 욕설을 퍼붓는 사람도 있었다. 욕설의 대다수는 여자라는 성을 매도하는 것이었다. (p.145)
캐나다라면 살기 좋은 곳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에게는 성을 매도하는 욕을 쓰고 있다니, 세상은 대체 언제부터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2007년에 나온 책이고 이 책의 배경은 그보다도 좀 더 전이지만, 그렇다고 뭔들 달라졌을까. 왜 부유한 나라도 땅덩이가 넓은 나라도 그렇게나 여셩혐오가 만연할까. 주인공 브레넌이 그런 것처럼 왜 여자들은 자꾸 자기를 의심하고 검열해야 할까. 왜 부유한 나라도 땅덩이가 넓은 나라도 그렇게 연쇄살인범이 판을 칠까. 세상은 어떤 식으로 구성되어지는걸까. 이런 일에 대해 분석한 책이 있다면 읽고 싶다. 가난한 나라도 부유한 나라도 어디서나 여성혐오가 벌어지는 이유에 대해서, 연쇄 살인이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서, 미성년자 성매매가 일어나는 이유에 대해서. 그런 걸 다룬 책은 없을까.
법의학자 브레넌은 형사가 아니지만 어떻게든 이 수사에 참여하고 있으므로 또 연쇄살인범의 목표물이 되기도 했으므로 형사들과 자주 함께 마주치고 대화를 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라이언 형사가 함께 식사를 하자고 한다. 라이언 형사는 매력적인 남성이지만, 그녀는 너무나 그걸 원하지만, 이 식사 제안을 거절한다. 혹여라도 자기를 눈엣가시로 여기고 있는 다른 형사에게 행실 나쁜 여자로 비춰질까봐, 아직 수사가 끝나지도 않았고 범인도 잡히지 않았는데 내가 그래도 될까. 그러나 그는 재차 '당신도 밥은 먹어야죠' 라며 제안하고 결국 '이번 건에 대해 얘기하자'는 말에 브레넌은 응한다. 이것은 비즈니스 미팅이네요, 라면서.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아 너무 웃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귀여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오늘은 내가 내겠소. 다음번에 사요."
그는 손을 뻗어 내 윗입술에 대는 것으로 내 항의를 막았다. 천천히 집게손가락을 입가까지 미끄러뜨린 다음, 내게 보이도록 그 손가락을 치켜올렸다.
"염소 치즈가 묻었어요."
불개미에게 물렸다고 해도 내 얼굴은 이렇게까지 빨개지지 않았을 것이다. (p.399)
아 삶은 계속되는구나. 삶은 계속되는 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되는 거야. 그래,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는구나, 라고 이 장면을 보면서 삶에 대해 다시 생각했다. 열심히 일하고 범인을 잡고 싶고 그래서 끈질기게 일,일에 대해 생각하고 또 두려워하면서도 이렇게 누군가에 대한 호감이 싹트고 그 호감으로 인해 다른 감정들을 불러들이면서 우리는 살아가는구나. 이렇게 삶이 계속되는거야.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된다고 말하는 것 같은 이 장면이 참 좋았다.
때아닌 하오체는 어색하지만 ㅋㅋㅋ 뭐랄까, 오늘 내가 사니까 다음에 네가 사, 하면서 다음을 기약하는 거 너무 좋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역시 썸타는 남녀는 귀엽기 마련인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제 친구들을 만나기까지 이 책을 읽다가 뒤에 몇장을 남겨두고 약속장소로 나가야 했다. 으윽, 너무 읽고싶다, 이제 곧 범인을 잡을텐데 어쩌지, 다 읽고 늦게갈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런 나를 다독이고 약속장소로 나갔다. 친구들과 즐겁에 이야기를 나누고 이 책에 대한 이야기도 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 술에 취한 채로 책을 읽으면 다음날 내용이 생각나지 않을텐데... 하면서도 너무 궁금해 이 책을 펼쳐 읽었다. 범인을 잡는 걸 꼭 보고 싶었던 까닭이다. 술을 마신 탓일까, 나는 지하철에서 이 책을 읽다가 울고말았다. ㅠㅠ 손을 들어 눈물을 닦아야 했어. ㅠㅠ 주인공이 범인을 맞닥뜨리는 과정에서 혼자여서 울었다. 얼마나 무서울까. 또한 그녀가 그 와중에도 딸에 대해 걱정을 하기 때문에 울었다. 얼마나 외롭고 무서웠을까. 그러면서도 부지런히 이놈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해야 하고. 나는 이런 외로움이 너무 힘들다. 결국 내 앞의 문제는 내가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이건 그런식으로 말하기에 지나치게 크고 무서운 거니까. 그런 상황에서 혼자라니 그녀가 느꼈을 그 숱한 감정들이 손에 잡힐듯 해 울었다. 누군가 그녀를 도와주면 좋을텐데, 그러나 그녀는 지금 혼자이다. 그녀는 스스로에게 피해자가 되지말고 도망치자고 하지만, 그러나 그런 일이 마음 먹은대로 되는 것이던가. 공포와 절망이 그녀를 가로채서 울었다. 공포와 절망 그리고 외로움. 공포와 절망 속에서도 그녀는 피해자들에 대한 복수도 생각한다. 살아야 하고 그리고 이놈을 응징해야 한다. 그리고 딸을 걱정한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이 책을 다 읽고 참 좋아서 이 다음 시리즈를 보려는데 시리즈 역시도 절판이었다. 대체 왜 절판입니까. 개정판 내주십쇼. 다행스럽게도 알라딘중고로 있더라. 나는 오늘 잽싸게 주문을 넣었다.
상태는 <최상>이라고 되어있던데 최상의 상품이 올까? 얼마전에 최상의 중고를 샀는데도 표지가 엉망인 게 왔었는데... 그래도 하는수없지, 절판인걸 어떡해. 중고 하나만 주문할 순 없으니까 읽고 싶은 신간도 얼른 장바구니에 넣었다. 게다가 시사인 올해의 책꽂이도 읽어야 했다.
남동생이랑 같이 읽으려고 가끔 추리,미스테리 소설을 사는데 이번에도 역시 한 권 넣었고, 그러다보니 5만원 구매시 2천점 마일리지를 조금만 더하면 얻을 수 있겠구나 싶어서 에밀 졸라의 책도 샀다. (네?) 결국 52,900 원어처의 책을 사버렸어..
갑자기 이렇게 책을 사버려도 되는걸까, 망설였지만, 뭐, 크리스마스니까... 괜찮지 않나. 아하ㅏ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갑분책지름.....
원래 1월달에 월급 타면 한바탕 질러줄라고 했는데, 그건 그 때 되면 계획대로 지르고 이건 그냥 충동구매로 하자. 인생은 원래 충동구매... 킁킁.
몬트리올에 여름이 찾아오면 거리는 마치 룸파 댄서처럼 들뜬다. 어디를 보아도 프릴 달린 호사한 코튼과 윤기 나는 허벅지와 땀에 젖은 피부뿐, 그것은 6월에 시작되어 9월까지 계속되는 난잡한 축제이다. 사람들은 이 계절을 껴안고 애지중지한다. 삶은 집 밖으로 옮겨진다. 길고 추운 겨울이 지나면 옥외 카페가 영업을 재개하고, 자전거와 롤러블레이드 타는 사람들이 자전거 도로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며, 거리에서는 잇달아 축제가 열려 보도를 인파가 가득 메운다. - P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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