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어떤 작품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일은 그 사람에 대해 편견을 갖게 하는듯 해 매우 조심스럽다. 일례로 내가 《새벽 세시, 바람이 부나요?》를 좋아한다고 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런 불륜소설 왜 좋아해?' 라고 되묻기도 하고, 거기에 내가 《안나 카레니나》를 좋아한다고 하면 '너 불륜에 대한 로망이 있냐' 부터 '너 불륜 좋아하더라' 라는 말까지 듣게 된다. 거기에 대고 내가 '아니, 그게 불륜이라서 좋아하는 게 아니고.. '라는 말을 시작할라치면, '그거 불륜 얘기잖아?' 가 되돌아오고, 불륜 얘기 이기는 하기 때문에 그렇다고 하면 그럼 그렇지... 하는 눈빛을 받아버리는 것이다.


그런 참에 내가 이 영화 《5 to 7》을 좋아한다고 하면 거기에 쐐기를 박는거겠구나 싶었다. 이 영화에서도 여자는 서른 네살의 아이가 둘인 유부녀이고 남자는 스물다섯의 싱글이니까. 한줄로 요약해보라고 하면 '유부녀와 싱글남자가 만나 사랑하는 얘기' 일텐데, 그러면 어김없이 나는 불륜 좋아하는 여자가 되어버려... 후아- 심호흡 한 번 하자. 그렇게 생각하려면 뭐, 그러라지. 내가 뭐 별 수 있나.



이 영화에는 내가 좋아하는 모든 요소들이 등장한다. 아니, 내 몇 년간의 페이퍼를 읽고 쓴건가 싶을만큼 진짜 모든게 다 등장해. 처음부터 좋은데 끝에 가서는 대환장.. 뭐야, 나 하나를 내포관객으로 삼고 만든 영화야? 묻고 싶을만큼 너무너무 좋다. 이쯤에서 노파심에 말하자면, 그러나 당연히, 다른 사람들이 이 영화를 좋아할거라고는 딱히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다시 말하지만, 처음부터 내가 좋아하는 게 다 나왔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걸 다른 사람들도 다 좋아하는 건 아니잖나. 이를테면 뉴욕, 센트럴 파크, 센트럴 파크의 벤치, 구겐하임 미술관... 크- 이만큼만해도 나는 이미 너무 좋았다니까?




남자 '브라이언'은 작가다. 작가라고 말하지만 사실 글을 써서 여기저기 투고를 해도 거절의 답장만 받을 뿐이다. 글을 쓰고 투고를 하고 거절의 답장을 읽고. 그러면서 가끔 산책을 하는 것이 그가 하는 일의 전부다. 아직 그의 이름으로 나온 책도 없을 뿐더러 앞으로도 나올지 어떨지 모른다. 그러니 그가 지금까지 이뤄놓은 성과라고 해야 별 거 없다. 아니 아예 전무한 실정. 그런 그가 산책을 하다가 우연히 한 호텔 앞에서 여자 '아리엘'을 만나게 된다.


브라이언은 아리엘에게 첫 눈에 반해 바깥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던 아리엘에게 다가간다. 한 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그들은 잠깐 말을 섞었고, 아리엘은 브라이언에게 매일 금요일 이시간에 여기에 있다고 얘기해줘서 그 다음 만남을 기약하게 된다. 그 다음만남에서 브라이언은 이토록 그가 반한 여자가 아이가 둘이며 남편도 있는 유부녀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리엘은 자기가 평일 5시부터 7시(혼외 정사의 시간!)에 만날 수 있음을 얘기하지만, 브라이언은 그녀가 유부녀라는 사실 때문에 그녀의 만남 제안에 응하지 않는다. 그렇게 일주가 가고, 이주가 가고, 삼주가 간다.


그러나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이 상황 때문에 자신을 아무리 막으려고 해봤자 안되었다. 결국 브라이언은 아리엘과의 관계를 시작한다. 아리엘은 프랑스 여자고 프랑스에서 살았다. 브라이언과는 달리 그녀는 남편이 있으면서 이런 관계를 시작하는 것에 대해 큰 부담감을 갖지 않았다. 그저 받아들이면 그 뿐이라면서, 자신의 남편 역시 애인이 있다고 말한다.



나는 이 지점에서 아주 많이 슬펐다. 많이, 아주 많이. 왜냐하면 아리엘이 자신의 남편에게도 애인이 있다는 걸 밝힌 것은, 그러니 자신이 하는 일도 그렇게 불편한 건 아니라는 것을 뜻하려 한거겠지만, 그러나 나는 브라이언이 되었으므로, 슬퍼지는 거다. 복수, 라는 생각 때문에. 브라이언은 아리엘에게 묻지 않았지만, 나는 브라이언이 되어서 아리엘에게 이렇게 물었다.



"당신 남편도 다른 여자를 만나니까 당신도 홧김에 나를 만나는 건가요?"



나는 이렇게 묻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내가 상대에게 반한 것과는 상관없이, 상대 역시 나를 온전히 나로 보아주어야 한다고 내가 믿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가져야 할 정당성이며 정의 혹은 윤리 혹은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가 당신을 선택하고 당신이 나를 선택해서 우리의 관계가 맺어지고 시작할 때는, 우리가 서로에게 원하는 것이 '온전한 당신 그 자체' 여야만 하는 것이지, 거기에 '복수' 라든가 '심심풀이'라든가 '쾌락'이라든가 '연민' 이라든가 하는 다른 것들이 끼어들지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나여서 좋아하는 게 아니라, 어차피 바람피워 복수할거였는데 상대가 나인 것은 엄연히 다른 것이니까.



물론 나라고 해서 매번 그렇게 온전히 상대만을 원하는 연애를 했던 것은 아니다. 사실 그렇지 않은 연애에 더 많이 몸을 던졌던 것 같다. 어떤 이는 때로 나를 심심풀이 땅콩이라고 여기는 듯했고, 어떤 이는 내가 그렇게 여겨 만나기도 했다. 상대가 내게 다른 의도로 접근한 적도 있고 나 역시 상대를 다른 의도로 받아들인 적도 있다. 그리고 영화에서 보여주는 브라이언과 아리엘처럼, 상대가 '애인이 다른 남자가 있다'는 말을 한 적도 있다. 나는 이미 상대에게 푹 빠진 상황이었으므로,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신 애인이 바람을 피우기 때문에 당신도 피워야해서 나를 만나는거야?"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내게 그것은 매우 중요했다. 나는 당시에 뭐하나 내세울 게 없는 사람이라고 인생에 있어서 자존감이 바닥을 칠때였지만, 그렇다해도, 내가 아무리 자존감이 바닥을쳐도, 어떤 복수의 수단 같은 것으로 이용되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에게 너무 반해버려서 그가 하자는대로 하고 싶었고 그가 이끄는대로 가고 싶었다. 그를 다시 만나기 위해서라면 뭘 어째야할까 싶었고, 너무 좋아서 그냥 눈물이 줄줄 흐르기도 했다. 그러나 만약 그가 나를 복수의 수단으로 만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면, 나는 기꺼이 돌아섰을 것이다. 아니, 나는 그런 상황에 나를 놓아둘 수 없어, 하고. 그렇게나 반한 상대로부터 돌아섰다는 것에 대해서 몇날을 후회하고 통곡하며 울었을지도 모르지만, 나는 그 수단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상대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더 그랬다. 만약 내가 상대를 딱히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면, 그가 나를 만나는 의도가 무엇이었든 크게 상관없었을 것이다. 나 역시 딱히 온전히 상대를 보고 만나는 게 아니었다면. 그렇다면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러나 내가 상대에게 세컨드가 되어도 괜찮은 것은, 내가 상대를 세컨드로 볼 때여야만 한다. 나에게 상대가 우선순위인데 나는 상대에게 세컨드가 된다? 나는 그런 상황에 놓이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비참해질지언정, 그를 포기할지언정, 나는 그에게 물어야 했던 거다. 혹여 나는 너에게 어떤 수단인거냐고.



그는 당연히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당시에 그에게 그런 의도가 있었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의 만남이 더 이어진거고. 그러나, 그건 말할 수 있다. 그가 만약 자신의 애인과 서로에게 충실한 관계였다면, 그와 내가 만나는 일 자체가 이뤄졌을까?




브라이언은 아리엘에게 나처럼 묻지 않는다. 어쩌면 그는 그 나름의 두려움을 가진건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그는 그래도 상관없었던 걸지도 모른다. 알면서도 어쨌든 다시 여기에 와 그녀 앞에 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를 감당하고 나온 것일테니까.



그들은 그렇게 대화를 하고 섹스를 하고 연애를 한다. 산책을 하고 같이 술을 마신다. 아리엘은 공개적인 곳에서 키스할 순 없다고 말한다. 자신의 남편이 알게 되는 문제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알게 될까봐. 자신은 이미 공식적으로 다른 사람의 아내인데, 비공식적으로 그 역할을 저버리는 걸 들켜서는 안되는, 여기는 미국이니까. 게다가 그녀의 남편은 아주 잘나가는 외교관이다. 사회적 지위도 있고 교양도 있다. 그는 브라이언을 만나서도 아주 다정하고 예의바르게 잘 대해준다. 마치 자신의 식구인것처럼 또다른 일원으로 여겨준다. 브라이언에게는 그간 알지 못했던 세계가 하나 더 열린 셈이다. 브라이언은 자신의 부모에게도 아리엘을 소개시키지만, 브라이언의 아버지는 이 관계가 영 못마땅하다. 왜 아니겠는가. 게다가 브라이언에게 새로운 미래가 다가오려고 한다. 그가 투고한 원고가 뽑혔고 이에 잡지에도 실리며 상금도 받게 된것. 시상식에 그는 가장 사랑하는, 너무 사랑하는 아리엘을 초대하고 싶지만 아리엘은 다섯시부터 일곱시까지만 시간을 낼 수 있다. 바로 여기에 문제가 있는 거다. 내가 나 스스로를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순간, 누구보다 사랑하는 사람의 축하를 받고 싶은 순간, 그 순간에 함께할 수 없다는 것.




브라이언에게는 이제 작가의 길이 열린 듯하다. 아리엘은 그에게 새로운 미래가 열렸음을 축하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관계는 지속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러나 브라이언에게는 욕심이 생긴다. 작가라는 새로운 미래와 더불어, 아리엘이 공식적으로 자신의 옆에 서는 사람이 되어주기를 바라는 것. 사랑이 깊어지면 함께하는 미래를 꿈꾸는 것은 당연한 수순일 것이다. 그러니 브라이언은 이들 사이의 룰을 깨고 그녀에게 청혼한다. 나의 아내가 되어달라고, 그리고 나는 네 아이들의 좋은 부모가 되어주겠다고. 그렇게 그들 사이의 룰을 어긴다.



이건 브라이언이 던진 승부수였다. 브라이언 역시, 자신이 누군가의 세컨드가 될 수는 없는 사람이었다. 세상에는 자신의 첫번째로부터 자신이 세컨드로 취급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내가 상대에게 기대하는 건 내가 상대를 대우하는 만큼 상대가 나를 대우하길 바라는 게 아닌가. 그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고, 그러니 브라이언은 승부수를 던져야했다. 지금의 이 자리로는 난 만족하지 못해, 네 옆에 당당하게 서고 싶어.



아리엘 역시 그의 청혼 앞에 이제 기로에 놓였다. 지금은 동시에 남편이있는 가정과 애인이라는 두 가지를 가져가고 있었지만, 이 반지앞에 예스 혹은 노 를 말함으로써 어느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자, 나는 이제 선택해야 한다. 남편과 아이들이냐 혹은 애인이냐. 이 선택은 그녀에게 매우매우 어려웠다.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사실 사랑을 믿지 않으며 살아온 아리엘이었고, 남편은 매우 좋은 사람이었다. 생활은 만족스러웠고 아이들을 너무 사랑한다. 그녀도, 갑자기 그녀의 인생 이때쯤에 첫 눈에 반하고 사랑하게 될 남자가, 그러니까 한 번도 이렇게까지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남자가 나타날 줄은 몰랐으니까. 그러니 남편에게 룰을 어기고 나는 이제 애인을 선택할게, 라고 말하고도 싶다. 그러나 같이 산 세월이 있는 만큼 그녀는 남편에 대해서도 지켜야할 게 있다는 것을 안다. 그녀는 깊은 고민을 하고 다음날 그에게 반지를 돌려준다. 그리고 이제 다시는 만나지 말자고, 다시는 자신에게 연락하지 말라고 말한다.




브라이언은 그녀의 선택을 존중한다. 다시는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항상 그녀가 서있는 그 호텔 앞을 지나가야 할 일이 생기면 몇 블럭 돌아갔다. 그리고 글을 쓴다. 그는 책을 내는 작가가 된다. 그러나 그에 앞서 자신이 돌려받은 반지를 호텔의 벨보이를 통해 아리엘에게 다시 전달한 터다. 이 반지는 그녀에게 잘 도착했을까?


시간은 흘렀고 그 사이사이 그는 아리엘을 그리워한다. 길을 걷다가 닮은 사람을 보면 가슴이 뛴다. 그러나 닮은 사람이었지, 아리엘은 아니었다.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자, 그리고 영화의 마지막. 나는 그들이 사랑하는 동안에는 그들이 하는 사랑이 다른 사랑보다 더 특별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건 우리 모두의 사랑이 마찬가지다. 남들이 보기에 나라고 뭐 특별한 사랑을 했을까? 사랑은, 바깥에서 보면 다 그저 그런 똑같은 사랑일 뿐이다. 똑같은 연애일 뿐이다. 그러나 그 비극은 면면을 들여다보면 저마다의 이유로 다르듯이, 그 평범한 사랑도 당사자에게는 매우 크고, 특별하고, 소중해진다. 브라이언에게는 아리엘이, 아리엘에게는 브라이언이 그랬다. 그들은 헤어졌고, 다시 만나지 않았고, 각자의 삶을 충실하게 살았지만, 그러나 그것이 그들이 가진 가장 큰, 너무나 큰 사랑이었고 추억이었고 힘이었다.



시간이 흘러 브라이언의 책은 서점에 베스트셀러로 진열된다. 그는 어엿한 작가의 삶을 산다. 시간이 흘러 서점 앞을 지나다가 진열된 브라이언의 책을, 아리엘은 본다. 자신이 결코 잊을 수 없는 연인이 내어놓은 책. 그리고 그 제목에 담긴 그들의 오래전 대화. 그녀가 그 서점 앞에서 그 책을 보며 어떤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어떤 마음이었을까.


시간은 계속 흐르고 브라이언은 결혼을 해 아이도 낳았다. 그는 날씨 좋은 어느 날, 아내와 함께 아이가 탄 유모차를 끌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구겐하임 미술관을 찾는다. 오, 구겐하임! 나 알아, 나 알아, 나 거기 알아!!

그리고 구겐하임 앞에서 갑자기, 예상하지도 못했는데, 아리엘의 가족과 맞닥뜨린다. 오래전에 보았던 아리엘의 아이들은 성장해 있었다. 당연하다. 그들 가족은 서로 마주서서 각자 인사와 안부를 건넨다. 그 사이, 아리엘은 자신이 끼고 있던 장갑을 잠시 벗는다. 아리엘의 손에는 브라이언이 오래전에 돌려준 반지가 껴있다. 브라이언은 그 반지를 본다. 그 반지를 브라이언이 봤다는 것을 안 아리엘은 다시 장갑을 낀다. 그리고 그 가족은 헤어진다. 각자의 가족과 함께.




그 후에 이어지는 브라이언의 독백.




"당신이 나의 어떤 책을 좋아하든

그건 모두

한 독자를 위해

쓰여진 것이다."




나는 내려야할 지하철역에서 내렸고, 이 마지막 장면을 보기 위해 역앞 벤치에 앉았다. 그리고 울었다.


왜 어떤 사랑은 때가 아닌 때에 내리는지, 좋은 비는 때롤 알고 내린다며, 그렇다면 좋은 비가 아닌 건가. 왜 그 때에 그들은 만난걸까. 그 때 거기에서 그런 식으로. 왜 그들에게는 그런 만남이어야 했을까. 그리고 그렇게 서로를 가슴에 품은 채로 산다는 건, 그들에게 어떤 의미일까. 각자가 놓인 환경에서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지만 그러나 마음 속 성소에 품은 한 사람. 브라이언은 오로지 그 사람을 위해 글을 쓴다.


어쩌면 이게 최선이었겠구나. 이게 나았겠구나.

이래야만 했을까? 묻고 이래야만 했겠구나 나 혼자 대답한다.

반지를 받고 어떤 걸 포기하고 둘이 함께하는 삶이 더 아름다울 거라는 보장은 어디있담.

어쩌면 삶은 이런식으로 한 사람에게 계속 살라고 말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이게 나을수도 있겠구나, 어쩌면 이게 최선이겠어.

비극이고 슬프고 애틋하다는 것은 이 이야기의 단면일 뿐인거야.

삶에 있어서 어떤 것들은 놓기가 그렇게나 아쉬워도 놓고 돌아서야 하는건가.



영화 속에서 수시로 보여주는 센트럴 파크 벤치에는 다 저마다의 이야기가 있었다.





















그날

 

 

 

길고양이 같은 표정의 오후를 핀셋으로 담벼락에 꽂아두고 나는 당신의 입술을 당겨왔다. 당신은, 나는 피 흘리는 짐승이었다. 늑대 발톱을 물어뜯으며 한 세기 전의 동굴 속을 달렸다. 티베트 여우의 눈빛 속은 따뜻하고 경이로웠지만 이별은 언제나 눈썹 위에서부터 고이기 시작하지. 당신의 손가락 끝이 조금씩 지워지는 것도 그 때문이란 걸 알았다. 담벼락이 바람에 흔들렸다. 당신의 입술은 분필 가루처럼 공중으로 흩어져 펑펑 꽃이 되거나 퍼렇게 멍들었다. 당신이 떠나던 날 천지에 매화 잎은 다 지고 대숲에 짓던 바람의 집처럼 사소한 일에도 새들은 떠났으며 떠난 자리마다 물 밑이 환했다.






떠난 자리마다 물 밑이 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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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슬비 2019-10-17 2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다락방님 글만으로도 너무 저릿해요~ 😭

다락방 2019-10-18 07:39   좋아요 0 | URL
가을입니다, 보슬비님....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