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는 창원에 친구들을 만나러 다녀왔다. KTX 를 세시간가량 탈 예정이니 8월의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도서인 허랜드를 가져가자! 다짐했는데, 얼라리여, 집에서 나갈 시간인데 이 책이 어디있는지를 모르겠다. 아, 어딨지 어딨지 하며 이 책장 저 책장 둘러보고 지저분한 책상 위도 보고, 침대 헤드도 보았지만 보이지가 않아. 안되겠다, 다른 책 가져가자, 하고는 챙겼다가, 나가기전에 그래도 다시 한 번, 서두르지 말고 차분하게 ... 하면서 둘러보고, 찾았다! 여기있다! 그렇게 허랜드를 들고 나는 슝- 나가서 지하철을 탔다. 그리고 책장을 열어, 언제나 그랬듯이, 책날개의 작가소개를 가장 먼저 읽었다.



그리고...





1860 년에 태어난 작가라는 걸 몰랐다. 오래전에 태어난 사람이구나. 오래전이라면 지금보다 여성에게 여성성 강요가 더 심했을 때인데, 그 때도 이런 상상력과 이런 필력으로 글을 써냈다니. 친구들을 만나서도 얘기했지만, 언제나 여자들은 잘못된 걸 인지하고 그걸 바꾸려고 목소리를 높이곤 했다. 다만 그 목소리를 억누르는 목소리들이 더 크고 강했을 뿐.


철학자에, 의사에, 교수에, 판사에, 경찰에... 예부터 왜 남자들이 훨씬 더 많았을까. 나는 공부를 하는 능력, 지식을 습득하는 능력, 그것을 발휘하는 능력이, 동등한 조건에서라면 여자나 남자나 크게 차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한다. 동등한 조건에서라면 여자나 남자나 절반의 비율로 그 직업들을 차지할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여성들은 억압당하고 또 억압당해서 그 자리에 서기가 힘들었고, 설사 그 자리를 보란듯이 차지했다해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직업을, 어느 위치에 있는 여자, 라는 것을 보이지 않기 위해 그 여자의 다른 면을 드러내기.


기차 안에서 친구는 자신이 본 영화 <밤쉘>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계속 연구하는 사람이었지만, 예쁜 배우로만 알려진 사람.



'샬롯 퍼킨스 길먼'의 작가소개를 보자. 아니 이게 무슨 말이야. 강요된 성역할과 산후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으러 갔는데, 어떻게 닥터가 내린 처방이 '육아와 가사에만 전념하고 지적활동을 하지말라'는 것일 수 있나. 어떻게 이런 처방을 내려, 어떻게. 지적인 사람이 지적활동을 하지 말라는 처방을 듣고 더 아파질 수밖에 없는 건 너무나 당연하지 않나. 샬롯 퍼킨스 길먼은 그 처방으로 인해 '더' 아팠고, 결국 아내의 역할도 어머니의 역할도 내려놓기를 결심한다.



닥터의 처방이 '지적 활동을 하지말라'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그 당시에 '경제적 독립만이 여성에게 참된 자유를 가져다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고 한다. 아, 이 얼마나 용기 있고 지적인 여성인가.



창원에서 친구들과 대화 도중, 나는 이런 샬럿 퍼킨스 길먼에 대해 얘기했다. 전통적 성역할 강조, 지적활동을 하지 말라는 의사의 처방...그중 한 친구가 얘기했다. 지금은 인연을 끊었지만, 자신과 알고 지내던 남자중에 한 명이 '가장 싫은 여자가 책 읽는 여자'라고 했다고. 그 때 너무 기겁했다는 얘기를 전해줬다. 나는 이런 이야기가 매우 놀랍다. 이런 남자가 존재한다는 것에 놀랍다는 게 아니라, 지적활동하는 여자를 싫어할 수 있다는 게 놀라워. 저런 남자라면 나도 이십대 중반이 이미 경험해본 적이 있다. 무려 나의 남자친구였는데, 그는 나에게 '너 책도 그만 읽고 신문도 그만 읽어'라고 말했다. 그걸 반드시 강요했다기 보다는 그 당시에 그는 나에게 웃으며 말하긴 했는데, 그가 그렇게 말한 동기는 내가 그에게 너무 말대꾸를 한다는 거였다. '너는 왜 지지를 않아?' 라면서. 지금 생각하면 어이없는데 그 때는 그 남자 좋다고 사귀었다. 게다가 헤어지고 나서 한동안 잊지도 못했지.. 아아 나여.. 부끄러운 나의 과거는 웁니다.. 미안해, 과거의 나여.....

그 뿐만이 아니다. 우리 회사 남자 임원도 내게 '넌 늘 책을 들고 다닌다' 면서 '책 읽는 여자는 아주 싫어'라고 내 앞에서 대놓고 말했다. 어쩌라고...


나는 내 친구들도 그리고 애인도 똑똑하기를 원한다. 그들이 지적활동을 활발히 하기를 원한다. 경제적 활동 역시 할 수 있기를 원하면서 동시에 지적활동도 놓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누구나 다 내가 친하게 지내는 상대, 내가 사랑하는 상대가 똑똑하기를 원할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게 너무 신기하다. 나는 '책읽는 남자가 제일 싫어'라는 말을 할 수 없을 것 같은데, 내가 사귀는 남자가 책을 읽었으면 좋겠는데.. 물론, 책 읽는 남자라고 반드시 지적인 남자라거나 열린 사고의 소유자라거나, 언행이 일치되는 사람이라는 보장은 없다. 절대로, 결코, 활발한 독서활동이 그가 더 나은 인간임을 보장하진 않아. 그렇지만, 지적활동을 하란 말이야, 지적활동을 해야 대화가 되는 거잖아. 아니, 연애상대에게 지적활동 하기를 거부하는 것, 심지어 연애상대가 아닌 이성에게 지적활동을 하지 말기를 원하는 것은, '너는 나의 대화 상대는 아니야'를 전제하는 거 아닌가. 그건 상대가 대화가 아닌 다른 상대이길 원하는 거잖아. 자신이 상대보다 더 똑똑하다는 걸 드러내야 하고, 그러고 싶고, 상대는 그런 나에게 속하기만 해야 하는, 그저 성적 대상이기만을 원하는 거잖아. 어떻게 지적활동 하는 여자를 싫다고 말할 수 있지? 그 멍청함에 너무 부끄럽다. 왜 부끄러움은 나의 몫인가...



얼마전에 썼던 페이퍼에서 내가 3년전 뉴욕에서 만났던 그 남자사람 생각이 난다. 책 많이 읽는 여자, 생각 많은 여자는 남자들이 싫어한다던... 그런 남자는 여자들도 싫어합니다...... 어우, 끔찍해..



샬롯 퍼킨스 길먼은, 결혼한 후에 힘들었으면서 치료도 받았으면서, 아내와 어머니의 자리를 포기했으면서, 그런데 왜 '또' 결혼을 한걸까. 아마도 두번째 남편은 첫번째 남편과는 다른 사람이라는 확신 때문에 결혼했겠지만, 이미 결혼이란 제도 안에서 어떻게 굴러가는지 경험해본 사람이 어떻게 그 제도 속으로 또 들어갈 생각을 했을까. 시대적 배경 자체가 1900년이어서 '결혼하지 않고 혼자서' 사는 것 자체에 대해 자유롭게 생각할 수 없었던 걸 수도 있겠지만, 결혼해서 빡쳐서 이혼했는데 또 결혼으로 간 것은 .. 글쎄, 잘 모르겠다.




주말동안 친구들과 좋은 시간을 보냈다. 한정식 집에 가 코스요리를 시켜먹고, 친구의 집에 가서는 2차로 와인과 과일을 먹었다. 이 모든 일에는 돈이 필요했다. 우리는 돈이 좋구나, 얘기했다. 우리 네 명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나름의 스트레스를 견뎌가며 돈을 벌고 있었다. 우리 계속 돈 벌자, 돈 벌고 살면서 이렇게 좋은 시간을 계속해서 갖도록 하자, 고 반복해 얘기했다.

너무 소중한 시간이었다. 서로 다정한 사람들이, 서로에게 더 다정해지고 있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서 맛있는 걸 먹고, 함께 오래된 노래를 듣고, 수다를 떠는 것. 이런 시간을 오래오래 가지고 싶다. 그러려면 우리는 건강해야 하고, 지적활동을 멈추지 말아야 하고, 경제적으로도 계속 탄탄해야 한다.





허랜드를 오늘 아침 출근길에도 읽었다. 남자 세명이서 '여자들만 모여산다는 나라'에 도착했다. 그중 남자 하나는 그곳에 젊고 예쁜 여자들이 가득할거란 환상에 부풀어 있다. 그가 생각하는 '여자'란 그저 젊고 예뻐야 한다. 성적대상이 될 수 있어야 비로소 그에게는 '여자'인 것.




그가 목소리를 낮춰 투덜댔다. "젊은 여자들이었다면 좋았을텐데. 늙은 대령들 집단한테 도대체 무슨 말을 하냔 말이야."

우리는 이곳에 대한 논의나 추측을 할 때마다 늘 무의식적으로 젊은 여자들을 떠올렸었다. 남자들이라면 대부분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p.42)



그렇다면, 젊은 여자들에게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했을까? 젊은 여자들에게는 할 수 있지만 늙은 여자들한테는 할 수 없는 말이란 무엇일까? 왜 여자들만 사는 나라에 가면서 젊은 여자들에게만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걸까? 이게 다, 지적활동이 부족한 때문 아닌가?


이런 걸 지적하다니, 정말이지 샬롯 퍼킨스 길먼도 너무나 똑똑하지 않습니까. 이게 다 지적활동이 활발한 때문입니다..




추상적으로 '여자' 하면 젊고 매력적일 거라 상상한다. 여자들이 점차 나이가 들어 그런 시기를 지나가면 대부분의 여자들은 한 남자에게 소속되거나 아예 우리의 관심 밖으로 밀려난다. 그런데 이 건강한 여자들은 나이 든 사람들 같은데도 아주 팔팔했다. (p.42)


이 부분에 대해서라면, 이미 얼마전에 읽었던 책, 《탈코르셋 선언》에도 언급되지 않던가.



‘늘 젊고 아름답고 매력적인 여성‘이란 처절한 꾸밈노동의 산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은 그러한 여성을 그 자체로 아름답게 태어난 존재로 신비화함으로써 인위적 꾸밈노동의 모든 노력들-아름다운 젊음을 유지하기 위한 각종 화장술과 시술, 지속적 운동과 고강도 식이요법-과 사회적 압력들을 단번에 비가시화해 버립니다.이는 마르크스가 거론한 ‘상품의 물신화‘ 현상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상품의 물신화 현상은 일종의 착시 현상입니다. 인간 노동의 산물인 상품이 마치 그러한 노력의 과정과는 아무런 상관없이 상품 자체가 가진 자연적·본질적 속성으로 인해 교환가치를 발생시키는 독자적·독보적 존재물처럼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P35








허랜드의 이 뒷부분의 이야기들이 궁금하다. 나는 책읽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나는 계속해서 지적활동을 할것이다. 책읽는 내가 싫다면 싫어하라, 지적활동 하는 여자가 싫다면 싫어하라. 나는 그 따위 놈들에게 관심이 없다. 전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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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요정 2019-08-26 15: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리스 비앙의 ‘세월의 거품‘ 앞부분에 지나가는 듯이 나오긴 하지만 제가 좀 충격을 받았던 장면이 있어요. 주인공이 길을 걷다가 옷을 잘 입은 여자를 보고 얼굴이 보고 싶어 빨리 걸어 그 여자를 봤는데 나이가 오십은 더 된 것 같아 울었다 뭐 이런 장면이요. 진짜 어이없어서 웃었는데.. 웃고 있는 저 자신한테 충격 받았어요. 여자는 젊고 예뻐야 한다고 세뇌되었나봐요 ㅠㅠ 세월의 거품 영화랑 책 정말 좋아하는데, 저 장면은 아직도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네요. 여자의 존재가 저랬다는 걸 이해는 하지만, 그 땐 그랬더라도 지금은 그러면 안 돼.. 이 정도까지는 했어야 했는데...

다락방님이 소개해주셔서 저도 이 책 샀어요 ㅎㅎ 곧 읽을 거에요^^

다락방 2019-08-27 08:00   좋아요 1 | URL
꼬마요정님.. 크-
이런 경험이 저라고 없겠습니까.
게다가 저는 책을 읽다 그런 경험을 한 게 아니라 현실에서 그러기도 했는데요. 아니, 나이가 많은데 왜 저렇게 옷을 입었지? 나이가 많은데 왜 머리를 길게 늘어뜨렸지? 등등요.. 하아-
저 역시 여자는 젊은 거에 세팅해두고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꼬마요정 님이 샀다는 책은 어떤 책일까요? 탈코르셋 선언 일까요, 허랜드일까요? 무엇이 됐든 파바바박 깨어나는 독서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빠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