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겐 공부 총량의 법칙이라는 게 있는가보다. 학창시절 공부를 그렇게나 안했더니, 이제와 공부할 것들이 너무 많아 힘들다. 어릴 때 철학 공부며 경제 공부..그러니까 뭐든 공부를 한 적이 없어서 내가 지금 고생이 많다.
6월 시작하면서 《성의 변증법》읽기 시작했는데, 너무 어려워서 진도가 안나가는 거다. 그래서 어제는 '처음부터 다시 읽자' 하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일단 변증법.. 이 무엇인지부터 알아야하는 게 아닌가 싶어지는 거다. 그래서 네이버에 변증법 넣고 검색해봤다.
읽어보니 대략적으로 뭔지 알겠지만, 그래도 '헤겔'을 읽어보면 더 낫지 않을까 싶어, 부랴부랴 도서관으로 향했다. 헤겔, 헤겔을 읽자. 검색해봐도 입문서가 뭔지 모르겠어서 만화로 된 헤겔을 보자 싶었다. 만화면 아무래도 좀 더 쉽게 이해되지 않을까. 그렇게 헤겔을 빌리려고 도서관에 가 검색하고 책을 꺼내러 갔는데 그 옆에 시리즈로 다른 철학자들까지 좌르륵 있는 게 아닌가... 나는 '만화책이니까 뭐 한 시간에 한 권씩 끝내겠지' 하고는 세 권이나 빌렸다. 비트겐슈타인과 하이데거 까지..
네?
집에 돌아와 성의 변증법을 저만치 치워두고, 나는 헤겔을 꺼내 들었다. 이거 한 시간에 뽝- 끝내고 성의 변증법을 돌파하자! 이렇게 되었는데, 와...무슨 만화책 진도가 이렇게 안나가죠? 읽는데 막 어렵거나 한 건 아니라서 이해에 딱히 무리는 없었다. 그런데 책장 왜 안넘어가지? 한시간 안에 끝내겠다는 나의 다짐이 무색하게 정신 차려보면 얼마만큼의 시간이 지났는지도 모르겠고 양미간에 주름이 뽝- 잡혀 있는 거다. 집중하느라고. 하아...손가락으로 양미간 살살 문질러주고 천장 한 번 봤다가, 어째서 만화책이 진도가 안나가는가 한숨 쉬었다가 다시 돌아가기를 수차례.... 책의 삼분의일쯤 읽었나, 머리를 너무 많이 썼나보다. 잠이 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만화 헤겔 역사철학강의》를 삼분의 일 읽다가 두 시간동안 낮잠을 잤다. 침대에 머리 대니 곯아떨어져버림...
독서 무엇..
인생 무엇..
철학 무엇..
헤겔 무엇..
두 시간 꿀잠자고 일어나 각종나물에 열무김치, 고추장 넣고 밥을 슥슥 비벼 먹은 뒤에, 다시 자리잡고 앉아 이번에는 성의 변증법을 펼쳐 들었다. 헤겔 다 읽고 읽으려면 6월 안에 시작을 못할 것 같아서, 일단 헤겔 보류, 파이어스톤 퐈이야!!!
아아..너무 어려워. 그리고 변증법... 얘기에 헤겔이 아니라 마르크스가 나오네요. 마르크스여... 마르크스.... 당신은 누구십니까. 왜 뭐 읽으려고 할 때마다 튀어나와요? 변증법적 유물론 역시 들어본 적 있지만, 무엇인지 모르는 나여... 아, 지친다 지쳐 진짜 지친다...
철학에 대해 1도 모르는 나는, 변증법에 대해 1도 모르는 나는, 그래서 철학을 잘 아는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친구야, 내가 마르크스의 변증법적 유물론을 알고 싶은데, 어떤 책을 읽어야 해?
친구는 내게 원숭이가 있잖아! 얘기해줬다. 원숭이 삼종셋트.
-그거면 돼?
-응, 그거면 돼!
나는 주섬주섬, 그 야심한 밤에 원숭이...를 장바구니에 넣었다. 자본론은 있으니까 공산당선언과 철학...
아...진짜 내가 고생이 많다... 휴.....
이럴줄 알았으면 어릴 때 공부 좀 열심히 해둘걸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젊은이 여러분.
공부하세요. 안하면 나중에 저처럼 몰아서 하느라 고생합니다.
나이 들어 공부하면 머리가 파바바박 안돌아가서 양미간에 힘 뽝주고 집중해야 하고 그러느라 기운 빠져 낮잠으로 체력 보충도 해줘야 해요. 어휴..
성의 변증법 책장을 넘기면서, 아아, 나는 어쩌자고 6월 도서로 성의 변증법을 골랐는가, 나 자신을 지독하게 원망했다. 눈물이 날 지경이었어. 책 집어던질까. 내가 왜그랬을까. 여성주의 책 같이읽기 시작한 후로, 처음으로 완독하지 못하는 도서가 생길 것 같아. (눈물이 그렁그렁)
내가 하자고 바람 잡고 있는데, 내가 포기하면 어떡해. 읽자 읽자 읽어버리자...
이해 안되는 거 붙잡고 늘어지지 말고, 일단 읽어나가자. 집중 또 뽝- 하고 읽어가다가 모르면 모르는채로 그냥 넘어가고, 그리고 나중에 다시 읽어보자. 그리고 원숭이 주문해서 읽자. 마르크스.. 속썩이는 시키...
그리고 파이어스톤...은 어떻게 스물다섯에 이런 책을 썼지요? 내가 지금 읽으면서도 어려워 쩔쩔매는 책을 어떻게 스물다섯에 썼지요?
아, 진짜 느즈막히 공부하느라 고생이 많다.
점심에는 쌀국수 먹고 원숭이도 질러야겠다. 빠샤!!
아니 그나저나, 헤겔도 다 못읽었는데 나는 어쩌자고 비트겐슈타인과 하이데거까지 빌렸는가.. 욕심이 똥구멍까지 차가지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눈물이 주룩주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