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없는 이야기, 내 마음에 쏙 드는 이야기, 내가 원하는 이야기를 위해서라면 내가 쓰는 게 정답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원하는 캐릭터를 그간 읽으면서 만나지 못했다면, 그런 캐릭터 역시 내가 만드는 게 답일 것이다. '앤 클리브스'는 그렇게 했다.



"나는 범죄소설 분야에서 강하고 그럴듯한 여주인공이 드물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현실적이고 진짜 살아 움직이는 여성 캐릭터를 원했고 그래서 베라 스탠호프를 만들었습니다" -앤 클리브스




'베라'는 '나이 많고', '덩치 크고', '싱글인', '여자' 형사이다. 게다가 사건이 일어나면 그 안에 숨겨진 사연, 즉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호기심이 뭉글뭉글 피어올라 질문하게 되고 관심있게 듣게 되고 그리고, 그 이야기의 흐름을 추측해서 범인을 찾아내고자 한다. 게다가 먹는 것도 좋아하고 잘 먹는다. 이 책, 《하버 스트리트》에서 시간적 배경이 마침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사건이 끝나고 집에 돌아고 혼자 즐겨야 하지만, 뭐, 익숙한 일이고 괜찮다. 덩치 크고 나이 많고 싱글이면서 잘 먹고 마시는 여자 형사인 거 너무 좋아서 혼자 막 이 캐릭터에 누가 어울릴까 생각해 봤는데 딱히 떠오르는 인물이 없다. 물론 이미 영국에서는 드라마로 만들어졌다지만.



여자 작가가 쓰는 이야기가 좋은 점은 뭐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이 책에서는 성매수 돌려까기도 짚고 넘어갈 수 있겠다. 자신의 성매수 이야기를 고백하던 단역 등장인물이, 이런 고백을 한다.



"난 젊고 서툴렀고, 그녀는 연상이고 경험이 많았으니까요. 친절했어요. 떳떳하지 못한 일이라는 자극도 있었습니다. 난 아무에게도, 전화번호를 알려준 친구에게조차 그 만남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만남이 비밀이라는 게 좋았고, 전날 밤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아무도 모른 채 다음 날 책임감 있는 점잖으 교사로 학교에 나가는 게 좋았습니다." (p.231)



그렇다. 다음 날 책임감 있는 교사로 학교에 돌아오는 남자.. 책임감, 교사, 남자, 그리고 성매수... 예.......



아, 그렇지만 내가 지금 그 얘기를 하려는 건 나이고.



자, 이 책에는 살해당한 여자가 등장한다. 그녀에게는 당연하게도 사람들이 모르는 비밀도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이 알고 있는 사랑 이야기도 있었다. 그녀의 젊은 시절 결혼했다 2년 지나 이혼한 이야기. 그녀가 남편과 단단히 사랑에 빠져 결혼했으나, 남편은 바람펴서 헤어졌고, 그러나 그녀는 평생 그를 기다렸다는...


사랑 뭘까?

기다림 뭘까?




"마가렛 크루코스키. 폴란드 이름인가요?"

"네. 하지만 마가렛은 폴란드계가 아니에요. 동북부 출신, 번듯한 뉴캐슬 집안에서 태어났어요. 아주 어렸을 때 폴란드 선원과 결혼했죠. 부모님은 노발대발했지만, 60년대였고 마가렛 말로는 아주 잘생긴 망명자여서 더욱 낭만적이었다고 했어요."

"그는 어떻게 됐습니까?" 베라는 피해자가, 그녀의 복잡미묘한 성격이 벌써 마음에 들었다. 조는 마가렛이 마들보다 고스포스 주민 같은 분위기였다고 했지만, 폴란드 망명자와 결혼해서 지저분한 셋방 신세가 된 노년. 그런데도 외모를 꾸몄다. 부츠와 빨간 립스틱으로 세련되게. 억만금을 들였을 긴 코트.

"남자는 고작 두어 해 뒤 떠났어요. 마가렛보다 돈이 많은 여자와 눈이 맞았죠. 가슴이 찢어졌지만, 자존심 때뭉네 부모님에게 돌아갈 수는 없었다고 했어요. 그녀는 회계 교육을 받고 이런저런 회사에서 일했어요. 내가 처음 알게 됐을 때는 이미 은퇴한 뒤였죠. 혹은 정리해고를 당했거나." 케이트는 다시 미소지었다. "숫자에 정말 밝아서 덕분에 몇 번이나 세무서를 피할 수 있었죠."

"그런데 남편의 이름을 계속 썼어요?" 그 오랜 세월 동안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튀는 외국 이름, 멋에 대한 동경, 품위와 위엄을 지닌 독신 여성.

"늘 그를 사랑했다고 했어요. 말씀드렸듯, 항상 낭만적인 분이었죠." (p.29-30)




아..... 부모님이 반대한 결혼이였지만 감행했고, 잘생긴 망명자여서 더욱 낭만적이었다고 말했던 여자. 고작 두어해 뒤에, 그것도 다른 여자랑 산다고 떠난 남자이건만, 아아, 마가렛이여... 늘 그를 사랑했습니까. 사랑이 대체 뭐란 말입니까. 어떻게 그래요, 어떻게... 그 어린 시절 그런 결혼을 하고, 그리고 지금 노년이 되어 살해당할 때까지 당신은 결혼하지 않았는데, 남편이 돌아오길 바란겁니까? 돌아오진 않더라도 내내 그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삶을 버텨온 겁니까?




자, 이 슬픈 이야기는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차라리 몰랐다면 모를까. 아아, 형사들이 추적하고 추적해 남편의 소식을 알아낸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리고 그 남편으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된다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그는 크라코프에서 학생과 노동자에게 영국 여행을 주선하는 회사를 운영하고 있어요. 폴란드 여자와 결혼해서 세 아이를 낳고 다섯 손자가 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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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를 해봤어요. 영어를 잘 하더군요. 그는 1970년에 폴란드를 떠났어요. 마가렛이 부자인 줄 알고 결혼했고요. 그녀에게 자기 재산이 없다는 걸 알고 혹시 부모가 누그러들어서 딸 부부를 가족의 품 안으로 맞아줄까 싶어 2년 기다렸는데, 그렇게 되지 않으니까 고향으로 도망갔어요." (p.342)




아아, 마가렛이여, 마가렛이여. 당신의 사랑이란 무엇입니까. 당신은 그를 사랑했는데, 그는 당신의 돈을 보고 결혼한거였어요. 그 돈이 자기 돈이 될 줄 알았던거죠. 그나마 2년간 결혼 생활 유지한 것도, 혹시 모를 돈.. 때문이었습니다 ㅠㅠ



야 이 개새끼야...우리 마가렛 어떡하냐 ㅠㅠ 너를 평생 사랑한 우리 마가렛 어떡해 ㅠㅠㅠㅠㅠㅠㅠㅠ



나는 너무 슬프다. 매우 슬프다.

'늘 그를 사랑해'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것이 나만의 사랑이라는 것이 슬프다. 상대는 돈 많은 줄 알고 나를 택했고, 내가 돈이 없어 보여 나를 떠났다. 만약 내가 돈이 많았다면 그는 내 옆에 잇었을까. 그러나 그렇다면, 그렇게 그를 붙잡아 두는 건 나에게 행복이었을까. 돈 때문에 날 선택한 놈이라면 내 옆에 있지 않는 것이 더 나았겠지만, 그러나 아아, 나는 그를 사랑했는 걸. 마가렛, 마가렛 ㅠㅠ 늘 그를 사랑했지만 그는 다른 여자랑 살면서 아이를 낳고 손주까지 본 할아버지가 되었어, 게다가 나와의 시간을 떠올리며 '돈 많은 줄 알고 결혼했는데 없더라구~~' 이렇게 말해. 아아. 슬픔의 새드니스. 개새끼 오브 개새끼. 나는 사랑인데 너는 돈이라니. 아아, 그런 식으로 내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애초에 돈이 없었던 나는 그렇다면 다행인 것인가.. 돈, 그게 뭐니. 머니가 도대체 머니 그게 뭔데 이리도 사람을 잡니.



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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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인걸~ 사랑인걸~ 지워봐도 사랑인걸 ~ 아무리 비워내도 내 안에는 너만 살아~ ♩♪♬







너는 어떻게 살고 있니. 너도 폴란드 여자랑 결혼해서 아이 셋 낳고 살고 있니... 아아, 마가렛이여.... Orz

그를 사랑했고, 그러나 결혼후 2년뒤에 헤어지고는 만나지도 못한채 평생을 살았는데, 살해당했다. 삶 뭐지... 삶이 과연 아름답기는 한건가. 너무 부질없고 너무 슬픈 거 아닌가... 왜 누군가에겐 이렇게 비극적인 끝맺음이 오는거지? 게다가 그녀는 나름 잘 살아보고자 했던 사람인데. 왜, 왜.... ㅠㅠ









베라 이야기가 최근에 한 편 더 나왔다고 한다.


















이것도 읽어봐야지. 세상에 읽을 책이 너무 많아서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고 막 그렇다.




오늘 아침에는 불닭라볶이를 끓여먹고 왔다. 2인분이라고 되어 있었지만 딱히 2인분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뭐랄까. 그간 부족했던 라면 1인분에, '그동안 부족한 거 다 알아, 조금 더 넣어줄게, 이젠 됐을거야'의 느낌이라고 하면 맞을 것 같다. 그렇다. 다 먹었단 얘기다. 아무튼 아침에 불닭라볶이 2인분(한 봉지가 2인분이라 어쩔 수 없었어요..)을 다 먹고는, 흐음, 아침부터 너무 자극자극 해줬나, 달래주자 싶어서 출근 길에 캬라멜마끼아또를 사왔다. 그것도 다먹었다. 으이쿠, 이런.



그리고 오늘도 장바구니 넣었다 뺐다 놀이..를 해본다. 아니 에르노 신간 나온거 여러분 알고 있었어요? (그렁그렁)


















그녀는 언제나 남을 기쁘게 해주고 싶었다-그녀의 문제 중 하나였다. 로비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는 대신 자기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판단하고 결혼생활을 시작했더라면, 어쩌면 모든 일이 더 잘 풀렸을지도 모른다. - P81

"내가 돌봐주겠다고 했소. 필요한 건 뭐든지." 그는 거의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몇 가지 정리할 문제가 있다고 하더군. 바로잡을 일이. ‘그 문제를 당신이 좀 도와줬으면 해요, 말콤.‘ 이렇게 말했소." 커는 미소지었다. "물론 난 그녀가 아프다는 게 싫었지만, 그녀가 날 다시 자기 인생에 끌어들여 주는 것이 좋았소. 오래가지 않았더라도, 어떤 면에서는 함께한다고 할 수 있으니까." - P1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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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21 13: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19-05-21 13:55   좋아요 0 | URL
오케오케 접수접수 감사요!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