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르게이 폴루닌'은 우크라이나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부터 체조를 배웠는데, 이 아이의 장래를 위해 어떤 선택을 하면 좋을까 고민하던 엄마는 세르게이를 발레 학교에 보낸다. 키예프 발레학교는 등록금이 너무 비싸 이 가난한 부모는 아이 학비 마련을 위해 떨어져 살게 된다. 아버지는 포르투갈에 가 돈을 벌고 할머니는 그리스로 가 돈을 번다.


키예프에서도 실력이 다른 누구보다 앞서는 세르게이인지라 세르게이의 엄마는 여기도 작다, 런던으로 가자, 하고는 십대의 아이를 데리고 런던 로열발레단으로 가 오디션을 본다. 오디션에 합격하고 로열발레단에 아이를 입학시키지만, 엄마에게는 비자 문제가 있어 아이와 함께할 수 없다. 결국 아이를 그곳에 남겨둔 채 엄마는 우크라이나로 돌아오고 그렇게 아이는 런던에, 엄마는 우크라이나에, 아빠는 포르투갈에, 할머니는 그리스에 있는 삶이 시작되는 거다.



아이의 엄마도 아빠도 발레를 했던 사람들이 아닌데 어떻게 아이의 발레애 대한 재능을 알아보았을까. 그리고 어떻게 더 큰 곳, 더 재능을 펼칠 수 있는 곳이 어디인지 알 수 있었을까. 엄마의 세르게이에 대한 교육열은 정말 대단한 것이면서 동시에 엄마의 능력이기도 했다. 만약 내가 재능이 있었다한들 우리 부모님이 '이것은 이 아이의 어마어마한 재능이다' 라는 걸 알 수 있었을까? 알 수 있었다해도 '이 아이의 앞날을 위해서 더 큰 곳으로 가야한다, 그곳은 여기다' 를 알 수 있었을까? 아마 많은 사람들이 재능이 있다해도 발견되지 못한채 그저 평범하게 지내게 되지 않을까? 그것이 재능인줄 모르는 주변 어른들과 설사 알았다해도 그 다음을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는 어른들만 가득해서 더 크게 되지 못하는 건 아닐까.



엄마의 눈은 적확했다. 아이는 로열발레단에 들어가서도 두 번이나 월반을 하고 최연소로 수석 발레리노가 된다. 어떻게 이 모든 것들을 엄마는 아이가 어릴적부터 알아차릴 수 있었을까. 그토록이나 작은 시골 마을에서 가난하게 살았으면서도 어떻게나 그렇게 큰 미래를 볼 수 있었을까? 어쩌면 이것이 세르게이의 운명이기 때문이었을까? 운명이 착실하게 그 수순을 밟도록 한걸까?



세르게이는 그렇게 자꾸만 더 크게, 더 크게 된다. 종국에는 세르게이의 발레를 보기 위해 2년 전부터 티켓팅을 해야하는 일이 벌어지고 만다. 세르게이는 아주아주 큰, 아주아주 유명한 일류의 발레리노가 된다. 그러나,



세르게이를 그렇게 어마어마한 발레리노로 만든 가족들은 세르게이의 공연을 볼 수 없었다. 세르게이는 자신의 가족이 자신의 공연을 보기를 원하지 않았다. 엄마에게도 오지말라고 말할 뿐이었다.


어린 세르게이가 열심히 발레를 했던 건, 자신이 열심히 발레를 하는 것만이 뿔뿔이 흩어진 가족들과 얼른 합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로열발레단에 들어간지 얼마 안돼 엄마와 아빠는 이혼했고, 어릴 적부터 그렇게나 함께 살고 싶어했던 가족들과 함께 살 수 없다는 걸 알게된 세르게이는 몹시 상처를 받았다. '내가 발레하는 걸 가족에게는 보여주지 않겠어'라고 화가난 채로 마음을 먹는다. 결국 그토록 훌륭한 발레리노로 만들기 위해 시간과 에너지를 쏟았던 가족들은 볼 수 없게 된거다. 세르게이는 가족들과 헤어져 산 것이 몹시 슬펐고 아팠고 힘들었다고 했다.



무엇이 나은 것이었을까.

세계 제일의 발레리노가 된다는 건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일이 아닌데, 이토록이나 훌륭한 발레리노가 되도록 했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어린시절을 보낼 수 있었던 것을 잘한 선택이라 해야할까.

그러나 세르게이가 원했던 것 '가족들과 다함께 사는 것' 이었으니, 발레리노라는 미래 보다는 어린 시절을 행복하게 함께 있도록 선택했어야 하는걸까?



세르게이는 발레학교에 입학해 자신을 엄하게 대하는 엄마가 야속했고 떨어져 사는 아버지가 그리웠다.

엄마는 세르게이가 발레 연습이 끝나도록 밖에서 기다린 것이 집에 돌아갈 차비조차도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엄마의 고생은 무엇을 의미하는걸까. 그것은 결국 세르게이를 그토록 어마어마한 발레리노가 되게 만들었지만, 그러나 세르게이에게 어린 시절은 힘들고 상처 받았던 기억들이었다.

엄마와 아빠와 할머니, 이 가족들의 희생은 세르게이를 세계 제일의 발레리노로 만들었지만, 그러나 그것은 세르게이가 원하는 것이었나. 세르게이가 '나는 세계 제일의 발레리노가 되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어!'라는 목표를 가진 적이 있었나.


물론 지금의 세르게이는 춤을 하루라도 추지 않으면 오히려 몸이 아픈 그런 댄서가 되어 있었다. 춤을 사랑한다는 것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어린 시절 가족이 떨어져 살았던 것에 대한 상처 역시 그대로 가지고 있다.

엄마는 하나의 선택을 하면 그에 따른 책임을 반드시 지어야 하는 거라 말했다. 그렇다면 세르게이가 세계 제일의 발레리노가 되기 위해서 반드시 가족과 떨어져 사는 외로움을 지고 가야 하는 것이었을까? 그것이, 가족들과 함께 가난하게 사는 걸 택하고 발레리노가 되지 않는 걸 지고 사는 것이면 안되는 거였을까?




나는 뜬금없이 '다니엘 글라타우어'의 소설 《일곱 번째 파도》생각이 났다. 소설 속에서 레오는 에미이게 말한다. '너를 위해 선택한것이었는데, 그것이 너에게 좋은 게 아니었다' 고.






나는 당신에게 가장 좋은 길을 택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안타깝게도 나 자신이 당신에게 가장 좋은 길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미처 못 했어요. 유감이고 불행이에요. 기회를 놓쳤어요.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p.242)











세르게이의 엄마가 세르게이에게 '그 때 내가 한 선택이 잘못된 것이었을까?'를 말했다면 좋았을 거라 생각했지만, 엄마는 그저 '책임이 뒤따르는 법'이라고 얘기한다. 그렇지만 그 책임은 아이 스스로 선택한 게 아니었는데. 결과적으로 세계 일류 발레리노가 되었으니, '결과가 좋으니 다 좋은 거야' 할 수 있는걸까?


행복이란 저마다의 것이니 누가 뭐랄 순 없는 거지만, 어쩌면 세르게이에게 가장 좋은 길은 가족들이 한 집에서 사는 건 아니었을까. 물론, 세르게이의 춤을 보는 내내 나는 너무나 좋았지만, 와, 이런 발레리노가 세상에 드러나지 않았다면 얼마나 아까웠을까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지만, 마지막 <take me to church>를 볼 때는 진짜 너무 좋아서 '여긴 계속 돌려봐야지' 싶었지만, 그렇지만, 결과가 좋으므로 다 좋은걸까. 결과가 좋다는 것은 누구에게 좋다는 것일까. 자꾸만 자꾸만 생각해보게 되는 것이다. 가보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야 늘 남는 법, 가족들과 있는 걸 선택했다면, '그때 내가 발레를 계속 했다면 지금쯤 어떻게 됐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레오는 위의 문장에서처럼, '에미를 위해 뭐가 좋을까'를 선택하다가 나중에야 '내가 가장 좋은 답이 될 수도 있었는데'를 깨닫게 되는데, 이 남자는 항상 이런 식이다. 파멜라를 위해서도 '파멜라가 행복해하는 걸' 택하려고 노력하는 거다. 이때 에미는 '너 자신의 행복은?' 이라고 묻는데, 선택은 항상 '나는 어떤가', '나는 어떤 선택을 해야 행복한가'를 물어야 하는 것 같다.



어쩌면 이 모든 것들이 두가지를 동시에 선택할 수 없기에 오는 문제이기도 하고 또 타이밍의 문제이기도 하다. 얼마전에 읽은 '리안 모리아티'의 《당신이 내게 최면을 걸었나요?》에는 이런 구절이 나온다.




존과는 4년을 함께 살았지만, 그의 입에서 ‘결혼‘이라는 말이 나온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엘런은 존이 결혼이라는 제도를 믿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엘런한테 결혼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볼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 보니 존은 엘런하고는 결혼할 생각이 전혀 없었던 거였다.
엘런은 정말로 상처를 입었다. 도자기 컵 여러 개가 한꺼번에 박살나는 것처럼 감정이 산산이 부서지는 것 같은 아픔이 느껴졌다. 예리한 통증이 파편이 되어 온몸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콧구멍 속을 따끔거리게 만든 고통들이 커다란 통증이 되어 쐐기처럼 가슴 깊이 박혔다.- P192








엘런과 헤어진 연인 '존'이 다른 여자랑 사귀고 결혼까지 하게될 거란 소식을 들은 엘런은 몹시 상처 받는다. 자신과 지낸 4년동안 자신에게 결혼에 대한 얘기를 한 적도 없는데, 그런데 결혼을 한다니. 자신은 뭐였을까, 자신과 함께한 시간은 대체 뭐였나. 엘런은 상처받으면서, 그런 생각을 하는 거다. 아, 결혼을 하고싶어하지 않은 게 아니라, '나랑' 결혼을 하고싶었던 게 아니구나.


이 뒤늦은 깨달음은, 비록 그들이 헤어진 뒤라도 그녀에게 몹시 상처를 남긴다. 예리한 통증.



나도 정확히 저런 감정을 느껴본 적이 있기 때문에 그 예리한 통증이 어떻게 엘런을 아프게 했을지 너무나 잘 안다. 그러나, 엘런이 깨달은 것이 반드시 사실은 아니라는 얘기를 꼭 엘런에게 해주고 싶다. 존은, 정말로, 어쩌면, 그간 결혼에 대해 생각이 없고 하고 싶지 않았었던 걸지도 모른다. '엘런이라서' 하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라, 정말로 '결혼은 관심없어'라는 태도로 살아왔던 걸지도 모른다. 그러나 시간이 좀 지났고, 지금 다른 여자랑 사귀면서는, 자연스레 '아, 이제 나도 결혼을 해야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을 것이다. 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는 것이다. 엘런이 그렇게 아파하지 않아도 될만큼, 그것은 어쩌면 그저 '타이밍'의 문제였을 수 있다는 것. 물론, 이렇게 말해봤자 그 예리한 통증이 금세 사라지는 건 아니겠지만.




이 책에서 엘런의 아버지는 ˝뒤늦은 깨달음이라. 항상 문제가 생겨야 알게 된다는 거구나.˝(p.585)라는 얘기를 하는데, 그 전에 알아챌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레오는 에미를 위한 선택이 잘못된 것이라는 걸 뒤늦게 깨닫는다. 세르게이는 그토록 훌륭한 발레 공연을 연달아 하면서도 어린 시절의 상처로 인해 가족들을 위한 자리를 내어주지는 않는다. 생애 얼마만큼의 시간을 꼭 아들을 위해 모든 걸 쏟아부었건만, 정작 그 아들의 성취를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엄마와 다른 가족들의 마음은 대체 어떤 것이었을까.아프고 아프고 또 아프지 않았을까. 그간의 시간들이 도무지 잡히지 않아 안타깝지 않았을까. 우리가 그러면 안되는 거였을까, 생각하고 또 생각하지 않았을까.





레오, 왜 "당신이랑 ( …… ) 하고 싶어", 이렇게 말하지 않고 "우리 ( …… ) 할까요?", 이렇게 물어요? 당신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원하지 않는지 몰라요? 아니면 내가 원하지 않을 경우에 대비해 당신도 원하지 않을 여지를 남겨두는 건가요? (일곱 번째 파도, p.280-281)




이제와 '그랬어야 하는 건 아닐까'는 어쩌면 부질없는지 모른다. 세계 일류의 발레리노가 되었으니 '사실은 어릴 적에 가족이 함께 있고 싶었어' 라는 말을 뒤늦게 할 수 있는 걸지도 모른다. 그만큼 그 자리는 너무도 크고 높으니까. 그렇지만 선택에 있어서 중심은 '너'가 아니라 '나'가 되는 게 맞는 것 같다. '너에게 가장 좋은 게 무얼까' 가 아니라 '나에게 가장 좋은 게 무얼까' 가 되어야 할 것 같다. 물론, 세르게이가 어린 시절이었으므로 저런 가족들의 선택이 아니었다면 지금이 없었을 지 모르지만, 그런데 지금은 꼭 지금이어야 했던걸까. 잘 모르겠다.




마지막 하와이에서의 촬영이 진짜 눈이 부셔서, 와, 어떻게 저런 장소를 잘도 찾아냈다 싶었다. 이 영상은 어마어마한 조회수를 기록했다 한다.










그나저나 인용문 찾는다고 일곱 번째 파도 펼쳤다가 또 흠뻑 빠져들어서 끝까지 다 읽을 뻔 했다. 하핫, 나란 여자는 정말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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얄라알라 2019-04-05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상 고맙습니다^^

다락방 2019-04-08 15:13   좋아요 0 | URL
천만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