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 이래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가 물었다.

엄마와 당신이 만났으면 해요.

그분은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예요. 그건 당신도 알고 있잖아요. 어떻게 좋아할 수 있겠어요?

그건 그래요. 하지만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걸 엄마가 알았으면 좋겠어요.

당신이 원한다면 그럽시다. (p.215)



30대의 에일린은 학교 교사이다. 그녀는 교사들이 참석하는 행사에서 인근 다른 학교의 40대 교장을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그는 아내와 딸이 있는 유부남이었다. 그러지 않았으면 좋았겠지만 그러나 그들은 서로 좋다고 만나게 됐고, 그 만남이 지속되자 에일린은 그를 자신의 엄마에게 소개하고 싶어한다. 자신이 외롭지 않다는 걸, 혼자가 아니라는 걸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은 거다. 교장은 당연히 꺼려한다. 자신은 유부남이니까. 세상 어느 엄마가 자기 딸이 유부남 만나는 걸 반겨할까. 그리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지만, 그녀가 원하기에 그러자고 대답한다.



고등학교 교장 선생님이시라고 들었어요. 윌라가 말했다.

네, 그렇습니다.

어느 학교죠?

여기서 북쪽에 있습니다. 프런트레인지에 있는 조그만 마을이죠.

학교 이름을 말씀하시지 않는군요.

말씀드릴 수도 있지만 별로 중요한 사항이 아니어서요. 그가 대답했다.

나한테요, 아니면 선생한테요?

부인께 중요한 사항이 아닐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또 저한테는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일이고요.

그건 선생이 기혼자이기 때문이죠.


(중략)



선생의 부인은 물론 모르실 테고요.

네, 그 사람은 모릅니다. 그 사람이 알았다면 제가 이 자리에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자녀도 있나요?

네, 딸이 둘 있습니다.

따님들 나이가 몇 살인가요?

열 살과 여덟 살입니다.

어린 소녀들이로군요.


(중략)


아내를 떠날 생각이에요? 윌라가 물었다.

그가 롤빵을 내려놓았다. 아직 그런 결정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언제 결정할 건가요?

엄마,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 거예요?

네게 답이 필요한 질문을 하는 중이지.

우리 일에 관해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내가 모른다고?

그래요. 그러니 제발 그만두세요. (p.216-219)



가족이라 해서 나의 모든 일에 관여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내가 만나는 사람을 일일이 간섭해서도 안된다. 그러나 내 딸이 유부남을 만난다는 걸 알게된 엄마가 걱정하고 그걸 싫어하는 건 너무나 당연한 거 아닐까. 나는 내가 행복하다는 거, 외롭지 않다는 걸 엄마에게 알리고 싶었던 에일린의 마음이 뭔지 너무나 잘 안다. 나 역시 내가 너무 행복했을 때 그리고 기뻤을 때 엄마에게 말하고 싶었다. 마찬가지로 내가 좋은 남자랑 사랑에 빠졌다고 생각했을 때 엄마에게 말하고 싶었다. 엄마, 내가 사랑하는 남자가 얼마나 근사하냐면~ 하고 조잘조잘 떠들고, 이 남자가 내게 행복을 가져다준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렇게 실제로 나는 아주 많은 것들을 엄마에게 말했다. 내가 기뻐하면 엄마가 기뻐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아니나다를까, 내가 그와의 사랑에서 멀어지자 엄마는 내게 말했었다.


"너 되게 행복해 보였는데."


엄마는 내 행복을 그 누구보다 바라는 사람이었다. 내가 이별 후에 힘들어하자 엄마는, '앞뒤 보지말고 여기 사정 생각하지말고 무조건 그 사람 찾아가서 잡아. 돈 없으면 엄마가 줄게.' 라고. 물론 엄마는 내가 만나는 어떤 남자에 대해서는 반대를 하기도 했지만, 그러나 어떤 남자에 대해서는 '그 남자 덕분에 너가 정말 행복해 보인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경우, 어떤 연애나 어떤 남자들 혹은 어떤 일에 대해서는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다. 말하지 않은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을 것이다. 연애를 일일이 엄마한테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으며, 내심 '관둘거니까' 라는 생각도 있었을 테다. 내 사적인 관계에 대해 다 말할 필요가 무어람. 그러나 그중 어떤 것들은 '엄마가 알면 안되는' 관계여서 그런것이기도 했다. 이건 엄마가 알면 안된다, 엄마가 알면 아마 내 선택에 마음이 너무 아플것이다, 엄마 모르게 끝내면 된다, 라고 생각한 적도 물론, 있었다.



에일린이 엄마에게 자신이 만나는 남자, 자신이 요즘 사랑하는 남자를 보여주고 싶어했던 그 마음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안다. 내가 행복하고 지금 사랑에 빠졌다는 것을 엄마에게 보이고 싶은 그 마음 왜 모르겠는가. 그러나 지금 만나는 남자가 유부남이고, 심지어 '아내와 이혼하고 너에게 오겠다'고 한 것도 아닌 상황에서 엄마에게 소개를 하다니, 나는 .. 그건 하지 말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 사랑은, 그러니까 그녀에게는 그게 사랑이니까, 내가 거기에 도덕적 가치를 부여하고 싶진 않다. 그러나, 유부남과 만난다는 것, 애인이 있는 사람과 만난다는 것은, 에일린이 그에게 결코 '1순위'는 아님을 의미한다. 에일린은 싱글이고 지금 사랑하는 남자가 교장이니, 그녀에게 교장은 1순위의 사람이다. 그러나 교장에게는 아내 다음, 자식 다음이 에일린이 되는 것이다. 세상 가장 소중한 사람으로 생각해주지 못하는 관계에 내 딸이 들어가 있다니, 엄마로서 가슴칠 노릇이 아닌가.



에일린이 내 친구였다면, 나는 에일린을 쫓아다니며 말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누구나 어떤 상대에게 매력을 느낄 수도 있고  잘못인 줄 알면서도 뚜벅뚜벅 걸어갈 수도 있고, 인생에 있어서 선택을 잘못하는 경우도 생길 수 있고, 특히나 사랑이라면, 저마다의 것이기도 하니까. 만약 에일린이 이 사랑이 그간 만나온 사랑중에 가장 크고도 깊은 사랑이라고 하면, 나는 친구로서 그저 에일린의 말을 들어주고 또 에일린의 서운함에 같이 안타까워했을 것이다. 그런 한편 '그러나 내 친구가 왜 자신을 가장 소중히 여기지 않는 사람과 사랑하는가'하는 것 때문에 속상했을 것이다.


내 가족이면 더했을 것이다. 내 가족이 그런 사랑에 빠졌다면, '너는 너무 소중한데, 너를 가장 우선순위로 생각하고 최선을 다해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야지' 라고, 나도 어쩔 수 없이 끼어들기를 했을 것이다.



윌라가, 에일린의 사랑에 끼어들기를 한 것. 유부남인 걸 알고 만남의 장소에서 결코 다정하지 않게 대한 것이, 윌라의 잘못일까? 나라면 다르게 대할 수 있었을까? 다른 평범한 커플 친구를 만날 때처럼 일상적인 질문들을 할 수 있었을까? 내가 그 유부남에 대고 '에일린 어디가 제일 좋아요?' , '어느 점에 반했어요?' 같은 질문을, 유부남인 교장에게 할 수 있을까? 게다가 '다 버리고 너에게로 온다'는 말도 일절 없는 남자인데, 나는 대체 그를 왜 만나서 그로부터 무엇을 들어야 하는가...



현재 에일린은 60대이다. 그러니 교장과 사랑에 빠졌던 것은 오래전의 일. 그 사랑은 오래 가지 못했다. 교장의 아내도 알게됐고, 그녀는 교장의 아내로부터 뺨을 맞는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꿋꿋이 자신의 일을 해낸다. 그리고 그 뒤로 다시는 사랑에 빠지지 못했다. 게다가 이제는 사랑에 빠질 일도 없을 정도로 나이 들어버렸다고 생각한다. 그 후로 쭉 혼자였고 아마 앞으로도 그럴테지, 라는 생각으로 때로 지나온 시간을 후회한다. 그걸 보는 윌라는 마음이 아프다.



저는 종종 새각해보곤 했답니다. 이 오랜 세월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보내고 나중에 그때를 떠올리고 비교하면서 상실감을 느끼는 편이 좋은 걸까요. 그녀는 에일린 쪽을 흘긋 바라보았다. 아니면 아예 처음부터 그런 사람을 만들지 않는 편이 더 좋은 걸까요. 그러면 예전이 어땠는지를 기억할 필요도 없을 테니까요.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던 편이 분명 더 나을 거라고 말씀드려야겠군요. 라일이 말했다. (p.343)



내가 너무 사랑을 해서, 너무 깊이 사랑을 해서, 그래서 그와 연인이 되는 일은 가급적 피하려고 했다. 내게 연애란 반드시 끝을 가져오는 일이었으니까. 그러니 그저 친구가 되는 쪽이 손을 잡고 나란히 오래 갈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해보지도 않고 왜 겁을 먹냐고 내게 말했고, 그래서 나는 인생 그 어느 때보다 더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별후에 얼마나 아프던지, '거봐 내가 안한다고 했잖아' 하면서 혼자 엉엉 울었다. 안한다니까 왜 하자고 해서 나를 이지경을 만들어, 역시 안하는 게 답이었는데, 하면서 한 달 내내 울었다. 그렇지만 그렇게 울면서도, 하지 않는 게 그를 놓지 않는 거라고 생각했으면서도, 그와 사랑한 시간을 선택한 건 정말이지 좋았다고 생각했다.


한 번도 사랑한 적 없는 것보다 사랑을 잃고 아파해본 것이 낫다고, 미국의 오래된 격언에 있다는데, 나는 그 말이 참이라고 생각한다. 아팠지만, 너무 아팠지만, 나는 그 편이 나았던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불쑥불쑥, '그러지 않았다면 잃지 않았을텐데'라고 생각해서, 그를 잃은 게 너무 마음이 아파서 그런 생각을 하루에도 오천번씩 떠올려 보지만, 그러나 그와 함께 보냈던 시간들이 인생 가장 찬란한 시간이었음을 부정할 수가 없다.



윌라는 남편과 사이도 좋았고 오래 함께 살았다. 그들 사이에 딸 에일린이 있었고. 사이좋고 오래 함께 산 남편이 죽고나니 그 상실감이 그녀에게 너무도 컸다. 사랑하고 함께했던 사람이 가버린 뒤의 상실감이 나을까, 아예 이런 걸 모르고 사는 게 나을까, 라고 물었을 때 동네 목사인 '라일'이 한 답이,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던 편이 더 나을거라고 한 답이, 내 답과 같다. 그래, 그걸 아예 모르고 사는 삶 보다는, 사랑을 잃고 아파한 적이 있던 게 낫다. 왜 나을까?



그건 몰라..

모르지롱...




작은 마을이다. 암 판정을 받고 죽어가는 나이 든 남자 노인과 평생을 그의 옆에서 다정하게 함께 살았던 여자가 나온다. 그들의 딸은 50대. 마을에 등장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 동네에서 오래 살아온 나이 든 사람들. 로레인의 옆집에는 엄마를 잃고 아빠마저도 없는 8살 소녀 앨리스가 자기 할머니랑 같이 살기 위해 온다. 50대의 로레인이, 60대의 에일린이, 80대의 윌라가 모두 앨리스에게 따뜻한 마음을 품고 모두 그 아이에게 잘해주려고 한다. 앨리스의 할머니를 찾아가 '내가 아이랑 오늘 밥을 먹어도 될까요?' 를 물으면 앨리스의 할머니는 앨리스에게 '너의 생각은 어떠니?' 묻는다. 그렇게 앨리스는 이 마을 할머니들과 함께 밥을 먹고, 수영을 하고, 옷을 사고, 자전거 타기도 배운다. 너무 좋은 얘기다. 너무 따뜻한 얘기다. 마을 할머니들이 하나가 되어서 이 아이를 조금이라도 더 행복하게 만들어주고자 한다. 무표정한 아이가 자전거를 처음 배우면서 반짝거린다. 내가 너무 너무 좋아하는 이야기다. 아이에게 잘하는 어른들을 보는 것은 너무 좋다. 요란 떨지 않고 그들 모두가 이 작은 소녀 앨리스에게 마음을 전한다. 좋은 얘기다.



나는 이 작은 소녀 앨리스에게 진심어린 축복을 전한다.



나는 사람들이 사랑에 빠질 때, 자신을 함부로 대하지 않는 사람과 사랑에 빠질 수 있기를 바란다. 내가 상대에게 그러하듯이, 상대 역시 나를 우선순위로 놓을 수 있는 사람과 사랑에 빠질 수 있기를 바란다. 사랑에 빠지는 그 감정이란 것이, 그게 그렇게 내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라서, 빠지고나니 나를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기도 하고, 빠지고나니 나를 뒷전으로 미뤄두는 사람일 수도 있고, 그걸 내가 어떻게 할 순 없겠지만, 내 자신이 소중한만큼 또 내가 상대를 소중히 생각하는 만큼, 나를 소중히 생각하는 사람과 사랑할 수 있다면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별은 닥쳐오겠지만, 이별이 아무리 아파도 사랑할 때는 좋은 상대와 하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도 그 사랑을 위해서도 나으니까. 내 말에 귀를 기울여주고 나 역시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여주는 사람과 사랑하는 것이 좋다. 내 슬픔에 같이 안타까워 해주고, 내 기쁨에 같이 기뻐해주는 사람과 사랑해야 한다. 특별한 이벤트로 서로를 만나는 게 아니라 그저 일상 속 모습으로 만나도 서로에게 다정할 수 있는 사람과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에일린은 이제 자기 인생에 사랑도 섹스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고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지만, 혹여라도 그녀가 사랑을 '다시' 하게 된다면, 이번에는 에일린이 최선의 상대임을 알아채주는 사람과 사랑에 빠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랑을 '잘'하기 위해서는, 일단 자기 자신에 대해 잘 아는 게 중요하다. 내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내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를 그 누구보다 내가 더 집중해서 들여다봐야 좋은 사람, 좋은 사랑을 만날 수 있다.

동네 할머니들의 관심과 애정과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앨리스에게 축복을 전한다.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어린 소녀들에게 축복을 전한다. 어린 소녀들이 아프지 않게 세상을 살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혹여라도 어쩔 수 없이 아프고 상처 받는다면, 그걸 극복할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해나가길 바란다. 책 속에서 마을 할머니들이 저마다 앨리스에게 따뜻해서 나는 너무 좋다. 이 책에 아픈 이야기도, 상처 받은 이야기도, 잘못에 대한 이야기도 나오지만, 나는 이 어린 소녀에게 보내지는 따뜻한 애정이 너무 좋아서, 자꾸만 어린 소녀에 대해 생각한다. 너희들은 기꺼이 축복받아야 하는 존재란다. 당연히, 언제나, 늘.




오늘이 금요일인줄 알았는데 목요일이라서 너무 슬프다 ㅜㅜ

그렇지만 내일 금요일이 오니까 기뻐해야지.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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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18-11-22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목요일이라 슬픔.... ㅜ

다락방 2018-11-22 11:49   좋아요 0 | URL
오늘은 왜 금요일이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