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는 제주도에 다녀왔다. 토요일에 비행기에 타서는 전자책으로 '도리스 레싱'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을 읽던 친구들이 다들 '네가 꼭 읽어봐' 하기에, 사서 읽으려고 했더니, 내가 이미 산 책인것이야? 역시 나다..언제나 읽을 준비가 완료되어있게끔 미리 다 사두는 나여..준비성 철저한 수학적 뇌를 가진 나여...
아무튼 첫번째 단편 읽다가 와- 너무 딥빡이 와서 ㅋㅋㅋ 물론 그 남자의 찌질함에 대해 이미 다른 친구들로 부터 들어 각오하긴 했지만, 와, 세상 찌질한 남자가 여기있다. 오십 넘게 처멱고 아내도 있으면서 굳이 요즘 잘나가는 삼십대 여자와 꼭 한 번 자야겠다고 마음 먹는 남자. 그런데 그게 그 여자가 자신에게 너무 매력을 어필해서가 아니라, 그냥 그 여자랑 자야겠고, 그걸 다른 사람들에게 으쓱하며 알리고 싶어하는 거다. 그런데 여자는 당연히 이 남자랑 자기가 싫어? 그러나 여자가 혼자 있는 집에서 남자는 강제로 그녀에게 입을 맞추고 꼭 끌어안고 '너랑 잘거야' 이딴 소리를 해대는 거다. 여자를 흥분시키고 자기를 원하게 만들기 위해 그 남자가 키스와 애무를 다시 시작하려고 하자, 여자는 '그걸 처음부터 겪느니 그냥 자줄게'라고 하는데, 거기에서 남자는 이 여자로부터 분노를 느끼고 그러면서 꼿꼿했던 고추도 풀죽어버리고...
이래놓고서는 '너랑 제대로 잘거야' 이러고 다짐하지만 곯아떨어져 버리는 것이다. 그래놓고 그여자의 회사에 굳이 데려가서 여자의 남자동료들 앞에서 '어제 이 여자 나랑 있었지' 이걸 꼭 보이고 싶어한다. 그리고 여자는 '너 그러고 싶은 거구나 참나원' 이러면서 다 알아채고. 그래서 굳이 여자를 데려다주겠대. 아이고 세상 머저리...세상 꼴통....아우 너무 찌질해서 ...
두번째 단편에서도 찌질한 삼십대 남자가 나온다. 자기가 아무리 추파를 보내도 여자로부터 응답이 없자 그 여자를 창녀라 욕하고 분노하는 남자... 세상에는 내가 유혹한다고 해서 내 유혹에 넘어오는 사람들은 사실 별로 없다. 운좋게 나의 호감에 상대도 호감으로 응답하는 경우가 생길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더 많이 일어나. 그러나 상대가 나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으로 상대에 대해 분노하고 욕을 하고 화를 낼 일인가.. 너무 못나지 않았냐....
도리스 레싱은 이 단편집에서 아주 '사실적으로' 찌질한 남자들을 그려내고 있다. 세상 찌질한 못난이들...못났다 진짜..... 그런데 이런 남자들 .... 이게 허구의 인물만은 아닌 것이야. 정말이지, 사실적이다. 사실적이야...
돌아오는 비행기 안. 친구와 나란히 앉아서 각자 크레마를 꺼냈다. 너는 뭐 읽어? 나는 이거 읽는데, 이러면서 서로 크레마를 꺼내서 보여주는데, 그러다가 우리 둘다 '기본글꼴'이 아닌 걸 알게 됐다. 어, 너도 설정 바꾸네? 응. 나는 볼드체도 했어. 나도! 난 글씨도 키웠어. 몇 프로야? 110 프로, 근데 니가 더 크네. 나는 115 프로. 노안이 와서 키우고 진하게 만들어야 돼 ㅋㅋㅋㅋㅋㅋㅋ 이러면서 깔깔대고는 너무 좋아했다.
야..같이 여행 다니는 친구가 같이 크레마도 들고 다니고 그러면서 어떤 책을 읽는지 얘기하고, 크레마 포인트 크기나 서체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니... 진짜 너무 대단한 축!복! 아닌가. 나에게 이런 친구가 있다니, 너무 좋으네, 하면서 히죽히죽 웃고 크레마 얘기 실컷 하다가 둘다 각자의 크레마로 책을 읽기 시작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자고 있었어? 헐..나 언제부터 잤지? 하고 옆의 친구를 보니 친구도 자고 있다.....
아 너무 웃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크레마 이북 얘기 실컷 하다가 자버린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크레마 가지고 왔다고 책 읽는다고 하고서 둘다 자버렸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인생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서 뭐지요?
크레마 뭐지?
인생은 뭘까.........
제주도에서 귤을 한 박스 사가지고 무겁게 들고 왔는데, 집에 오니 아파트 엘리베이터가 공사중...이어서 낑낑대고 계단으로 걸어왔어.
인생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