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엔 평소보다 조금 늦게 나왔다. 4분을 기다려 버스를 타면서 평소에 타던 지하철을 놓칠거란 생각을 했다. 아마 다음 열차를 타야 하리라. 그런데 내가 탄 버스가 신호도 안걸리고 슝슝 가는 게 아닌가! 덕분에 굉장히 안정적으로 지하철역에 도착할 수 있었고, 그래서 너무나 안정적으로, 뛰지도 않고! 평소에 타던 지하철을 탈 수 있었다. 훗. 역시 알 수가 없군, 직딩의 출근길이란. 예측불허야! 늦었다 생각해도 제 시간에 가고 빨랐다 생각해도 늦을 수 있지. 이것이 직딩의 인생이야... 같은 생각을 하면서 유튭에서 노래 한 곡을 찾아 들었다.
비도 오고 그래서 칠봉이 생각이 났다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칠봉이 생각은 비가 오든 안오든 해가 쨍쨍하든 아니든 그냥 하는 거니까. 인생에 있어서 내가 가지고 가야할 몫이니까...
같은 얘기를 하려던 게 아니고,
지하철을 타서는 책을 펼쳤다.
처음엔 저택에 대한 묘사가 너무 장황해서 으음...하고 '지루하려나' 싶었는데, 웬걸, 그 부분을 지나자마자 놀랍게 나를 쑥- 빨아들이는거다. 어엇 뭐지, 하고 정신을 차려보니 열차는 벌써 내가 내리기 바로 전역에 도착해 있는 거다. 안돼, 그만읽어, 내려야 돼, 이러다 놓쳐, 싶어서 머릿속에 '이제 내려야한다' 넣어두고 책을 가방에 넣었다. 그러면서 '이 작가 뭐지?' 싶었다. '대프니 듀 모리에' 라고 작가 이름을 한 번 다시 떠올려보고, 내가 이 작가 책을 읽은 적이 있던가? 떠올려봐도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아...없나보구나. 얼마전에도 알라딘 페이퍼에서 어느 알라디너가 '대프니 듀 모리에 작품이라면 다 갖고 있다'고 쓴 걸 본 기억이 나는데, 와, 놀랍게 쑥쑥 빨아들이는 작품이다!!
물론 계속 재미있을지는 모른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 이렇게 감탄하고 얘기하는 건 고작 46페이지까지 읽은 뒤에 하는 말이라... 46페이지까지 읽었는데 지금 미치겠다. 회사 때려치고 또 뛰쳐나가서 책 읽고 싶어. 아아 어제의 나여. 잘했다. 책장 앞에 서서 무얼 읽을까, 하고 신간을 실컷 만지작 거리다가 사둔 지 좀 된(물론 언제인지는 모름...) 이 책을 골라집길 잘했다. 잘했어. 이야... 집에 가고 싶으네?
이 책을 읽어낼 생각에 너무 씐나가지고 나는 어쨌든 양재역에 내렸는데, 그렇게 마을버스를 타고는 사이렌 오더로 스벅에 에스프레서 샷세개를 주문해두었다. 평소에는 버스에서 내려서 주문 버튼을 누르는데, 오늘은 어쩐 일인지 버스에서 내리기 전에 눌러서, 내가 스벅에 도착했을 때에는 시간이 좀 지나 있었다. 그렇게 도착해서 텀블러를 내밀었는데, 직원분이 내려진 커피를 버리시면서
"다시 내려드릴게요."
하는 거다. 나는 '괜찮은데요!' 했더니 직원분도 웃으시며 '괜찮아요!' 하시는 거다.
아이고 아까워라, 나는 괜찮은데, 그냥 줘도 되는데... 싶어서, 잠시후 커피가 다 내려지고 내 텀블러를 다시 돌려주었을 때, 나는 직원분께 말했다.
"저 사무실 가면 뜨거운 물 부어서 마시거든요. 그러니까 식은 거 주셔도 괜찮아요."
그러자 직원분도 이에 질세라 이렇게 ..
"아니에요. 그래도 갓 내려진 커피 드세요."
아이고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네 고맙습니다 ㅠㅠㅠㅠㅠㅠㅠ 친절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다정해 ㅠㅠㅠㅠㅠㅠㅠㅠㅠ날 사랑하나봐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나도 사랑해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위 아 더 월드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피쓰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나한테 왜이렇게 잘해줘요?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내가 좋아요?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아아 다정에 취해버린 나는, 아아 너무 다정한 직원이다, 역시 다정이 좋아, 재이슨 스태덤이 메갈로돈에서 틱틱거리며 애정 나누는 거 좋았지만, 나도 그런거 재미있어라 하지만, 그래도 그건 젊을 때나 그래야지, 이제는 무조건 다정한게 좋아, 우쭈쭈 오구오구 하는 게 좋아, 역시 다정이 최고다, 다정한 건 사람을 이렇게나 기분 좋게 한다, 세상 사람들 나한테 왜이렇게 잘해주지, 세상은 사랑으로 똘똘 뭉쳐져 있다, 스벅 직원의 이 친절함과 다정함이라니, 나를 좋아해, 나도 좋아해, 우린 서로를 좋아해, 러브 이즈 올 어라운드....같은 생각을 하면서 사무실을 향해 걷다가, 아뿔싸 ㅠㅠ
스벅에서 우리 사무실을 향해 쭉쭉 걷다보면 골목이 두 개 있는데, 나는 1번 골목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런데 내가 저렇게 다른 생각하다가 한참 후에야 1번 골목을 훅 지나쳐 왔다는 걸 깨달은 것.
헐.
나는 가만 멈춰서서 생각해 보았다. 이대로 조금 더 가서 2번 골목으로 들어가면 걷다가 뒤로 다시 돌아가야해..그렇다면 다시 1번골목을 향해 뒤를 돌면...뭐 그거나 그거나 시간 걸리는 건 똑같겠구나.....걍 2번으로 가자....이렇게 된 것. 아니, 버스가 슝슝 달려 안정적으로 지하철 탔다고 좋아하던 나여..왜 엉뚱한 데서 시간 까먹어. 이 길 한 두번 걸어? 매일 가던 회사인데 왜 골목 그냥 지나치지요? 아아 ㅠㅠ 너무 스벅 직원 생각에 집중했어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집중하면 지하철에서 내릴 역도 지나치고 집중하면 꺽어야 할 골목도 지나쳐버려. 아아 나여 ㅠ 집중하지마 ㅠㅠㅠ 나는 왜 동시에 두가지를 못할까 ㅠㅠ 스벅 직원 생각도 하면서 제대로 갈 길을 가는 건 왜 안될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내가 미워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얼마전 생일에 한 알라디너로부터 스벅카드를 선물 받았다. 가끔 올려주는 스벅에 들른 나의 얘기를 읽는 게 좋다며, 계속 스벅에 가서 커피 사마시라고 보내는 거라 했다. 우와- 세상엔 정말... 너무 신기하고 고마운 좋은 사람들이 많아. 별 거 아닌 얘기들이었는데 그거 좋다고 커피 계속 사마시라고 카드를 보내줘 ㅠㅠ
그러고보니 나 역시 재이슨 스태덤이 해양생물학 박사에게 '너가 살아있는 편이 기쁘다' 고 말한 것 같은 말도 들은게, 다른 알라디너가 생일에 읽고 싶은 책 얘기해달라, 사주겠다, 고 한거다. 나는 이번에 선물 많이 받아서 괜찮다, 고맙다, 고 사양했는데, 그러자 그 알라디너는 '니가 태어난 게 내가 좋아서 그래' 라며 책을 선물해주셨어. 인생 ㅠㅠ 뭐지 ㅠㅠ 사람들은 왜이렇게 다정하고 친절한가요? ㅜㅜ 곳곳에 다정하고 친절한 사람들이 가득하다 ㅠㅠㅠ
결론은,
출근길이란 알 수 없다는 것....
이럴 줄 알았더니 저렇게 되고 저럴 줄 알았더니 이렇게 되고....
뉴욕에 가고 싶다.
얼마전에 언급했던 그 셰프의...뭐더라, 아무튼 그 다큐에서 주인공 크리스티나 토시가 베이글 집에 가서 베이글 시켜먹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냥 지나가는 장면이라 해야할까, 아무튼 그런 장면인데, 거기에서 씨앗베이글에 무슨 크림치즈를 선택하고 안에 들어가는 내용물은 베이컨과 토마토를 선택하는 거다. 그런데 크림치즈 두께를 무슨 2센치 발라주는 것 같고, 그것만으로도 우앙- 했는데, 베이컨을 한 주먹이나 집어서 넣어주는거야!! 와. 미치겠다. 저거 당장 내가 베어물고 싶다! 너무 미칠 것 같아서 다시 돌려보기 해서 베이글집 이름 메모해두고 크리스티나 토시가 주문한 거 그대로 받아 적었다. 나도 뉴욕가서 저거 사먹어야지, 저대로 시켜 먹어야지!! 하고. 그리고 검색해보니 그 베이글집이 이미 엄청나게 유명한 집이고 시그니처는 연어 베이글이었어. 그러니까 안에 연어 넣어주는 게 가장 유명하고 맛있다는 거다. 오오. 그렇다면 친구랑 둘이 가자. 둘이 가서 연어 하나 베이컨 하나 시켜서 반씩 나눠 먹자. 그러면 나는 천국을 만나겠지! 그런데 친구가 못간다고 하면 혼자 가자. 혼자 가서 일단 베이컨만 하나 먹고, 다음날 가서 연어 먹으면 돼. 문제없다!!
베이컨 가득 얹어진 베이글 보여드리고 싶지만 캡쳐가 안되더라는 슬픈 이야기... ㅠㅠ
아무튼 뉴욕에 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