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인 정기구독을 그만둔지 오래인데, 이번에는 노회찬에 대한 기사를 읽어보고 싶어 오랜만에 구입했다. 내가 시사인을 읽을 때면 늘 그랬듯이 뒤에서부터 읽어오다가, 나는 '조영선' 교사가 쓴 <학생에게 배우는 '사람책'>이란 기사를 읽게됐다. 전문을 가져왔다.





나는 국민학교를 거쳐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까지 졸업한지 오래이다. 대학시절 아르바이트를 경험하고 졸업후에는 지금까지 쉼없이 직장생활을 하고 있다. 직장에서는 차장이라는 직급을 가지고 일하고 있고, 나이도 어느정도 있으니, 사실 나는 세상에 별로 무서운 게 없고 무서울 것도 없다. 이제는 누가 물어뜯는다 하면 같이 물어뜯을 마음의 자세가 되어있고 공격한다면 받아칠 준비도 되어있다. 무엇보다 상처를 입으면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고 그렇게 더 단단해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자신한다. 그러나 이렇게 되기까지는 내 기본적 성향도 있었겠지만, 그동안 살아온 '시간'도 쌓였음이 분명하다. 이런 내가 지금 페미니스트일 수밖에 없는 것은, 이 사회가 여성불평등의 구조를 바꾸어야 하기 때문임이 당연하지만, 앞으로 자라날 어린 여자아이들이 더이상은 성적대상화와 차별 그리고 혐오에 노출되지 않았으면 해서이다. 땡볕에 나가 몇 시간씩 앉아있으면서 목이 터져라 불법촬영을 해서는 안되고 편파수사를 해서도 안된다고 규탄하는 것은, 그런 사회 구조를 바꾸고자 함이지만, 어린 여자아이들이 그 드러운 꼴을 보지 않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라서이다.



그런데 오늘 시사인에서 이 기사를 읽으니, 아, 아이들은 저절로 자란다는 말이 사실이구나 싶었다.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저들이 깨닫는구나. 자기들이 깨닫고 무엇이 잘못됐는지, 그래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스스로 알고 행동하는구나. 그 점이 몹시 고마웠다. '해나 개즈비'가 백인 남성들에게 '백인 남성들이여 분발하세요!' 말했던 것처럼, 남성들이 분발해야 겠구나. 지금을 사는 학생들은 다 알고 있구나. 다 알고 있다. 다 알고 있어. 


'학교가 준비되지 않아도 학생들은 밀려'오는 구나.



나는 이 학생들에게 고마웠다. 


아직 초등학생인 내 조카가 자랄 세상이 너무 끔찍했는데, 이 세상 속에서 이 아이가 무엇을 보고 자랄지, 아무리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러도 바뀌지 않아서, 땡볕에 여자들 몇만명이 모여서 소리를 질러대도 안희정은 무죄라서, 일베에 여자친구 누드사진을 올려도 풀려나서, 그래서 미칠 것 같은 기분이 되어 순대국이 들어있던 뚝배기를 옆테이블에서 안희정의 편을 대며 낄낄대던 남자들의 면상에 던져버리고 싶었는데, 


학생들은 알고 있고, 그래서 밀려오고 있었다.



학교가 준비되어 있지 않아도 학생들이 밀려오고 있다면, 내가, 어른들이 준비되지 않아도 그럴 것이다. 나는 좀 더 강해져야겠다고 새삼 마음먹었다. 내 조카가 지금보다 더 자라서 이 모든 것들을 스스로 깨닫고, 친구들과 이야기하고, 그래서 자신도 무엇을 해보고자 하고, 그런데 적당한 언어를 찾지 못해 답답해하고 발을 구를 때, 그럴 때 내게 혹여라도 묻는다면, 나는 조카가 묻는 말에 성심껏 대답해주는 이모가 되고 싶다. 그럴 땐 우리가 이렇게 하면 어떻겠니, 그건 이렇게 하면 어떨까. 어린 조카와 조카의 친구들이 찾지 못한 언어가 있다면, 그 언어를 찾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내가 더 강해지고 더 똑똑해져야 겠다. 내가 더 많이 알고 준비를 해둬야겠다. 준비해두지 않아 조카와 친구들을 비롯한 학생들이 밀려올 때 어버버 하며 뒷걸음 치지 않을 수 있도록, 나는 준비된 어른이 되기로 했다. 준비된 어른이 되어야지. 



조카야, 나는 니가 밀려올 때를 대비해 준비해둘게. 

이모가, 그리고 이모의 친구들은 열심히 준비해둘게. 

혹여라도 너와 너의 친구들이 길을 제대로 찾지 못할 때, 언어를 찾지 못할 때, 그럴 때 돌아보면 이모가 답을 , 방향을 말해줄 수 있도록 준비해둘게. 

네가 자랄 때 그리고 네가 어른이 되었을 때 이 세상이 지금보다 훨씬 나은 상황이 되기를 바라지만, 혹여라도 여전히 이모양 이꼴이라면, 그 때 너 외롭지 않게 이모가 준비해둘게. 열심히 열심히 준비할게. 강한 신체와 강한 정신으로 무장하고 너를 기다릴게. 그리고 너의 옆에 있을게.


너와 너의 친구들이 밀려올 때, 이모는 준비되어 있도록 할게.



해나 개즈비가 백인 남성들에게 분발하라고 말했지만, 나는 그 말은 지구의 모든 남성들에게 해줄 말이라 생각한다.

남자들이여, 분발하라. 




그나저나,

시사인 .. 다시 정기구독 해야할까?

오랜만에 읽으니 좋으네? 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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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avis 2018-08-16 00:3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 때 너 외롭지 않게 이모가 준비해둘게..저도 그럴게요. 지금 여기에서요.

단발머리 2018-08-16 1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도 그 옆에 있을거라고
타미에게 말해줘요.
용감한 이모 옆에
사람 더 있다고
사람들 많이 있다고
전해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