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는 머리를 다듬으러 미용실에 갔다. 나는 짧은 단발보다도 더 짧은 컷트머리인데, 그래서인지 뒤에 머리가 자라면 영 보기가 싫은 거다. 게다가 한 번 이렇게 짧게 잘라 편한 게 무엇인지 알고나니, 다시 기를 엄두가 안난다. 일단 머리 무게가 가볍고 샴푸할 때도 편해.. 세상 편하다. 그렇지만 제비초리... 자꾸 나를 미용실에 가서 머리 다듬게 해.
어쨌든 이번에도 두 달이 채 안돼 미용실에 다시 갔는데, 이번에는 다듬어달라고 말하면서 '더 짧게 해주세요' 주문을 넣었다. 원장님은 알겠다고 하셨고, 그래서 다 잘라놓고나서는 '길이 괜찮으세요?' 물으셨다. 드라이빨 강하게 먹은 나는 네, 좋아요, 감사합니다, 라고 말하고는 가볍게 미용실 문을 나섰는데,
다음날 출근하기 위해 머리를 감고 말리니...아아..너무 짧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제기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드라이빨 가고나니 머리가........하아........................인생은 참... 쉽지가 않아? 게다가 나는 원장님의 조언-'앞머리 짧으면 옆으로 못넘기고 앞으로만 내려와요'- 에도 앞머리를 짧게 잘라달라했어.
인생은..뭐죠?
드라이빨....대체 뭐죠?
이렇게 짧은데..어떡하죠?
어떡하죠, 내 심장이 고장났나봐... (응?)
그렇지만 뭐, 그렇게 크게 당황하지 않고 나는 쿨하게 마음 먹었다.
'금방 자랄텐데, 뭐'
그런데 오늘!!
뭔가... 어제보다 나은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렇게 스타일 잡히면 멋있는데? ㅋㅋㅋㅋㅋㅋ 멋지다, 근사하다. 나는 무슨 애가 머리가 길어도 멋지고 짧아도 멋지고..그냥 다 멋지냐... 잘했다. 스무살 때 한 번 숏컷 하고서는 이렇게 다시 숏컷으로 돌아오기까지 오래걸린 셈인데, 나는 참...짧은 머리가 잘어울린다. 뒤통수도 예뻐서 그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지금 자기뽕에 취함)
새치가 하나씩 생기고 있고, 그래서 나는 염색을 자꾸 고민했다. 지난번에 미용실 갔을 때는, '다음에 예약잡고 새치염색 하러 올게요' 했던 터다. 원장님은 자연스런 갈색으로 하면 새치가 자라나도 눈에 띄지 않을거라며 자연갈색을 권하셨고, 나는 알겠다고 했었던 거다.
그런데 지금은, 염색과 좀 멀어졌다. 염색이 건강에 나빠서가 아니라, 나를 자꾸 미용실에 가게 만드는 원인을 아예 제공하고 싶지 않아서. 그건 며칠 전에 읽은 책의 영향이 컸다.
몇 년 전 언어학 교수인 친구가 눈썹을 다듬어주는 동네 가게에 학생들과 함께 가기로 약속햇다. 이는 단합을 도모하는 행사였고
학생들은 여자 교수가 함께한다는 것에 기뻐했다. 친구는 모임을 함께하자며 나를 초대했다. 나는 고마웠지만 초대를 거절했다.
˝‘미모관리용‘ 뭔가를 또 늘리고 싶지 않거든.˝ 나는 설명했다. 이후 우리 테이블에서는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학생들이 이
만남을 무척 기대하고 있어. 눈썹 다듬기를 강요하는 게 아니야. 그리고 비싸지도 않아. 겨우 10달러라고.˝ 친구는 말했다.
(중략)
당시
나는 눈썹을 다듬기가 싫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내가 그걸 좋아하게 될까 봐 걱정됐다. 눈썹을 다듬은 후 더
예뻐 보인다고 느낀다면, 그때부터 눈썹 다듬기는 외모를 유지하기 위해 정기적으로 해야 할 일로 추가됐을 것이다. 나는 기존의
‘해야 할 일‘ 목록에 그 어떤 것도 추가하고 싶지 않았다. 여러 방식으로 내 외모를 감시하고 있는 또 다른 나를 부추기고 싶지
않았다. (p.128)
내가 새치 염색을 하기 시작한다면, 그것은 앞으로 꽤 장기간 '해야 할 일'이 될 터였다. 머리는 계속 자라고 그렇다면 나는 자꾸 염색을 해야하겠지. 나는 그 쳇바퀴 안으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시작하면 반복하게 될 그 일을, 나는 그러므로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이러다가 언젠가는 굴복하고 염색을 하게될지도 모르지만, 가급적 뭔가 하나 해야할 일을 더 만드는 것은 지양하고 싶다. 일단 무언가를 하나 더 시작해서 그것이 나를 지금의 외모보다 더 낫게 보이게 만든다면 거기에서 벗어나기는 더 힘들거였다. 그렇게 돈과 에너지와 시간을 '조금 더 젊어보이게' 하기 위해 혹은 '조금 더 예뻐 보이게 하기 위해' 쓰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이것은 지금 나에게 보이는 새치가 고작 한 두개이기 때문에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한두개 보다는 초큼 더 있긴 하지만...그러니 이것은 단순히 지금의 다짐이고, 어쩌면, 지금보다 더 많이 생긴다면, 나도 어쩔수 없이 내 발로 미용실로 찾아가 염색을 시작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러니까 아직은, 그리고 앞으로도, 외모에 관계되어 해야 할 일을 늘리지는 말아야겠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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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