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즌 빈스 블랙 캣(Black Cat) 12
제스 월터 지음, 이선혜 옮김 / 영림카디널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 작년 4월 글입니다. 이제 와서 이 소설의 내용을 생각하면 정말로 우울해집니다. 이제는 그들이 갖고 있고 우리가 갖지 못한 것을 머리에서 지울 수가 없어요. )

 그야말로 핥듯이 탐독. 블랙 캣 시리즈가 저를 실망시킨 적이 있던가요? 말장난 같지만, 썩 마음에 안 들었던 [돌 속의 거미] 조차도 실망시키지는 않았어요-아무 기대 없이 집은 책이니까. [윈터 앤 나이트]며 [폭스 이블], 그리고 무엇보다 [부활하는 남자들]...저 쯤 되면 굉장한 적중률입니다. 그 결정판이 [시티즌 빈스].  

 주인공의 일상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다소 건조하고 (곧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이) 불길한 문장을 읽다 보면 그 페이지 중반쯤에 풉-하고 입 안에 든 것을 뿜으면서 데굴거리게 됩니다. 흠, [유리가면]에서 츠키카게 선생님이 말했던 긴장과 완화가 바로 이것이로군...하고 읽다 보면 숨돌릴 틈 없이 벌어지는 사건(이랄까). 

 ...사실은 이 소설 전편을 통틀어 별 사건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도넛 가게에서 일하던 빈스 캠든이 잠시 '고향' 에 갔다가 돌아온다, 그뿐이에요. 물론 그 기간 동안 우리 세상에서 가장 큰 이벤트 중 하나인 미국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고 있긴 하지요. :]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저는 제 기억이 맞나 궁금해져서 1980년의 미국 대선 결과를 찾아봤습니다.

 흐음. :(

 다시금 이 소설 내의 애절하게 순진한 시각에 가슴이 미어집니다. 그 때와 지금, 1980년과 2004년. 만약을 말하는 것은 덧없는 일이며 이 책에 나오는 가끔 꼰대같은 문장을 인용하자면 "역사는 우리가 아직 갖지 못한 기억" 이지요. 우리가 왜 늘 똑같은 일을 되풀이하는지도 알 수 없고-개인으로건 집단으로건-일이 벌어진 후에야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거지요. 그래서 어쨌든 지금은 할 수 있는 일을 합니다. 아프네요.

 그러나 어쨌든 이 소설은 굉장히 재미있습니다! 인물 묘사나 뭐나 하나도 빠질 게 없어요. 처음에는 뭔가 공허하고 불안하고 제정신이 아닌 것 같던 빈스의 묘사도 읽다 보면 그 타당성을 찾게 되고요. 캐릭터들도 하나같이 흥미롭게 잘 세워져 있고, 특히...음...프란시스 포드 코폴라가 [대부] 시리즈를 통해 마피아를 미화했다는 비판을 받는다면 이 소설도 그런 소리를 들어 마땅할 것 같습니다만...  

 진지하게 읽다가 처음 뿜었던 구절은 이렇습니다 : 

   
   빈스는 고개를 끄덕여 보였지만 이 세상은 마리화나를 피우는 경찰관, 십일조를 내는 도둑, 스타킹 고정용 벨트를 사용하는 상류사회 여성, 곰 인형을 안고 자는 부랑자, 도넛을 만드는 범죄자, 부동산업을 하는 매춘부 같은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고 생각했다.  
   

 정치가에게는 이런 야유를 할 수 있습니다 :   

   
  "당신이 하는 말은 다 포츈쿠키에 씌어 있는 말 같아요. "   
   

 시골로 떨려난 이탈리아계 마피아는 이런 자랑을 할 수 있습니다 :   

   
   "난 이제 두꺼운 피자도 먹을 수 있어! "  
   

 사람들이 대통령에게 첫 번째로 원하는 것은 용기이고-그래서 카터는 안 된답니다. 두 번째로 원하는 것은 머리카락이랍니다-그래서 다마토는 대통령이 될 수 없답니다. 과연...미국은 그렇군요. (한국은...음... ......) 

 그럭저럭 걸릴 데 없는 번역이었는데 번역자가 마피아 영화 한 편도 안 봤는지 '파밀리아famiglia' 를 '파미글리아' 라고 쓰고 있더군요.  이런 소리를 했더니 마피아 광인 친구가 마피아 영화 자막들에도 파미글리아라고 나온다고...이런.  

 어쨌든 읽으세요. 이것은 굉장히 훌륭한 소설입니다. 빈스는 일종의 '정원사 챈스' 입니다만, 그렇게까지 명백한 의도가 읽히지는 않고, 상황도 우화라기보다는 현실적이에요. 저의 극추천과 블랙 캣 시리즈의 셀렉션을 믿지 않으신다면 이것이 2006년 에드가상 장편부문 수상작이라는 사실도 살짝 언급하겠습니다. :] 영화화하기에 참 좋은 소설이라고 생각했더니, 작가는 실제로 영화 시나리오를 염두에 뒀고 영화화 판권이 최근 팔렸다고 합니다. 혹시 영화화된다면 빈스가 브래드 피트만 아니면 보러 갈 생각이에요.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08-12-27 1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저 위에 조너선 캐럴의 책도 방금 리뷰읽고 보관함에 넣었는데 이 책도 넣어야 겠군요. 그런데 우리도 대통령에게 원하는게...머리카락.....이어야 했던걸까요?

eppie 2008-12-29 12:15   좋아요 0 | URL
영 딴 소리지만 클린턴도 몇 년 사이 확 늙었더군요. 슬퍼요...;ㅁ;
그리고 생각해 보니 대머리는 애초에 투표를 통해 대통령이 된 것도 아니었죠. ㅠ_ㅠ 소용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