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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븐 블랙 ㅣ 블랙 캣(Black Cat) 14
앤 클리브스 지음, 이주혜 옮김 / 영림카디널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작년 여름 글입니다)
-몇 주 전 한동안, 두꺼운 추리소설에 코를 박고 정신없이 읽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힌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사들였지만 [잔학기]는 너무 얇았고, [벤슨 살인사건]은 좀 방향이 달랐고, [검은 집]은 가벼웠고 [I, Claudius]는...추리소설이 아니잖아요. 그리하여 또 Black Cat시리즈로 돌아왔고 소재로 보나 뭘로 보나 야한 센세이셔널리즘으로 가득할 듯한 이 책을 집어들었지요. [프렌즈]에 나오듯이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변태라고 선언...아니, 야한 센세이셔널리즘을 미치도록 좋아한다고 선언까지 했습니다만 이번에 저는 완전히 헛짚었습니다. 이 [레이븐 블랙]의 배경이 셰틀랜드Shetland만 아니었어도 대강 맞았을 지도 모르는데...다 읽고 나서 아득한 기분으로 셰틀랜드가 어딘지 찾아봤습니다.
(지도 출처 : Wikipedia)
...이래서야 발란더가 사는 스코네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납득. 실제로 한발짝만 더 가면 노르웨이잖아요!
이 소설의 인물 설정은 정말 탁월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데, 특히 바이킹 왕자(...) 금발 거구 청년과 살해당한 소녀, 표현력 떨어지는 헨리 다거(...)쯤 되는 village idiot의 캐릭터는 비명이 나올 정도로 그럴듯합니다. 물론 가장 골때리는 것은 형사의 라스트 네임이지만요.
이쯤에서 해명을 하자면, 이 책에서 제가 좋아하는 야한 센세이셔널리즘에 해당하는 것은 '미소녀의 시체가 눈밭에서 발견되었다' 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앞뒤에 붙을 가능성이 있는 문장인 '사람들이 비밀 없이 서로 모든 것을 알고 지내는 작은 마을에서' 지요. :] 제가 가장 몸서리치는 상황이면서 또 가장 좋아하는 소재들 중 하나입니다. 프랑스 까르띠니의 노래가사에서 말하듯이, '새장 속에 갇힌 새처럼/놀라움도, 비밀도 없이/그녀는 흘러가는 시간을 바라봅니다.' 소름끼칩니다. 그리고 좋아요.
결국 이 이야기는 비밀 속의 비밀, 혹은 '우리는 모두 이방인이다' 같은 주제를 가질 수밖에 없는 겁니다. 타인의 마음의 수면을 흔들어 그 아래 무엇이 있는가를 들여다보는 행동의 위험성에 대한 경고도 포함해서. 양파도 인간도 언젠가는 마지막이 보이겠지만 함부로 까려 들면 안 되지요. 네, 재미있는 소설이었어요. 황량한 배경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면이 헤닝 만켈의 발란더 시리즈랑 상당히 닮아 있네요.
Trivia
1. 업 헬리 아Up Helly Aa 축제라는 건 이런 느낌이로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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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븐 블랙]에도 등장했던, 배를 불태우는 광경인데 나름 장관이네요. 한번쯤 보고 싶기도...나머지 사진들도 Wikipedia에 있습니다.
2. 종종 언급되는 페어 섬 뜨개질 문양이라는 건 이렇게(링크 : Shetland Museum and Archives) 생겼습니다.
3. 작중에서 언급되는 이방인들의 행태 : A) 이 동네가 너무 싫어서 외투를 잔뜩 뒤집어쓴 채 본토로 돌아갈 날만 꿈꾼다. B) 페어 섬 문양으로 스웨터 떠 입고 이 동네 방언 배워 떠들고 모여서 민요 부른다. 원래 살던 사람들 입장에서 정녕 더 꼴보기 싫은 건 과연 어느 쪽일까 잠깐 의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