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저 표지는, 썸네일만큼 귀엽지 않습니다. 믿으세요. 썸네일의 표지가 상당히 귀여워 보인다고 생각했는데 축소빨입니다. 실제 크기의 표지는 상당히 역겨운 디테일이 많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의도가 그 방향이었다면 상당히 성공적입니다. 판다 싫어하는 사람이 그린 표지인가 생각했었어요. 귀여움과 역겨움은 한 장 차이라고 하고, 저한테는 참 역겨웠던 것이 귀엽다고 받아들여지는 경우를 왕왕 봤으니까 확신은 못 하겠습니다만...
소설 내용의 퀄리티를 논하기 전에 먼저 지적해야 할 것은 책의 외형입니다. 늘 책띠 스포일러에 대해 투덜거려 왔습니다만 이 책에 비하면 지금까지 제가 투덜거린 모든 책들이 다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 겁니다. 어쨌든 미스터리라는 이름을 달고 나온 이 책의 뒤쪽 책날개에는, 소설 내용을 한큐에 꿰뚫는 스포일러가 씌어 있습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소설 후반부에, 나름 긴장감을 가지고 지금까지 끌고 온 이야기의 진위가 밝혀지는 첫 번째 클라이막스 부분이 있습니다. 이 책 뒷표지에는 이 대목의 인용이 들어가 있습니다. 요약이 아닙니다. 인용입니다. 반복합니다, 인용입니다.
본문 인용이라 해도 물론, 적당히 잘 잘랐으면 문제가 안 됩니다. 당연하게도 그러지 못했으니까 문제가 됩니다. 더 큰 문제는 제대로 못 해놓고서 잘 했다고 뿌듯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왜 이런 느낌을 받게 되었느냐...그 인용문을 보면 모든 것이 확실해질 겁니다. 스포일러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이야기니까 일단 내용 얘기부터 하지요. 완벽한 스포일러니까 접겠습니다.
내용 보기 (주의 : 스포일러)
이것은 결국 또 사람 먹는 이야기입 니다. 평소 이 장르는 [특별 요리] 에서 시작되고 끝났다고 늘 말하고 다녔는데 반쯤은 농담이고, 뛰어난 변주는 언제나 나타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금단의 팬더]는 그냥 완벽하게 이 범위 안입니다. 사람 먹는 금기 외에 또 뭔가가 있느냐? 없습니다. 요리 묘사도 그렇게까지 흥미로운 줄은 모르겠고, 페이지가 마구 넘어가는 속도감도 없으며, 캐릭터의 매력도 그냥 그렇습니다. 딱 한번 흥미로웠던 광경은 두 파트의 등장인물들이 처음으로 교차하며 다른 캐릭터의 눈으로 아오야마를 보았을 때 어떻게 보이는가를 확인한 순간이었는데, 그 부분은 썩 좋았습니다.
딱히 다른 매력이 없다면 최소한 사람 먹는 얘기의 기밀성만은 지켜져야 할 겁니다. 그런데 알라딘 상품페이지의 책 소개를 비롯해 이 책에 대한 홍보문구는 엉망입니다. 아니, 저런 얘기를 써 놓고서 냉장고 속에 들어 있는 게 대체 사람말고 뭐라고 생각하라는 겁니까. 제목이 [금단의 팬더]라서 팬더라고요? 게다가, 위에서 언급했던 책날개의 인용문은 긴장감이 한껏 고조된 대목을 인용하며 냉장고 속의 내용물 중, 수상쩍은 페이스트가 든 용기의 레이블이 'pate de personne'이라는 데 이르고 있습니다. 다음 문장에서 등장인물 중 한 명이 사전을 찾고, 저 이름을 일본어(그리고 번역본에서는, 한국어)로 말해 줍니다만...
...이래도 제 분개가 정당하지 않은 겁니까? 애초에 프렌치 쉐프가 저 정도의 단어를 몰라서 사전을 찾아봤다는 것부터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만, 프랑스어가 영어에 비해 입지가 좁기는 합니다만, 그래도 이런 짓은 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요? 기획자, 편집자, 홍보 담당자 중 누가 범인인지는 모르겠지만 자기네 출판사 책을 일부러 '내용을 다 알고 봐도 재미있나 없나' 하는 고전의 반열에 드는 시험에 노출시키고 싶었던 게 아니라면 전혀 이해가 안 가는 선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