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2008.03.06 「노무현씨, 나와 주세요」에서 발췌)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스스로 약속했다고 한다. 대한민국에서 꼭 두 사람, 검찰총장과 한국방송공사(KBS) 사장에게는 전화를 걸지 않겠다고. 외압으로 비칠까봐 그랬다는데 그는 그 약속을 지켰다고 한다. 이 말을 듣는 자리에서 한 사람은 감동을 했지만 한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 무능한 사람이라고 혀를 찼다. 권력이 있지만 권력을 사용하지 않았던 대통령을 우리 국민은 가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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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2008.03.08 「포퓰리즘은 민주주의 위기 먹고 사는 선동정치」고명섭 기자, 임의 편집)

- 포퓰리즘은, 인민주의ㆍ민중주의ㆍ대중주의ㆍ인기주의ㆍ인기영합주의로 옮길 수도 있다.
- 정치적 욕설에 가깝게 사용된 포퓰리즘이란 말의 개념을 명료하게 한정해야 한다.
- 포퓰리즘에 대한 학계의 합의는 없는 상태

- 고전적 포퓰리즘: 19세기 러시아 브나로드 운동, 19세기 미국 인민당 운동
- 현대 포퓰리즘: 아르헨티나 페론, 베네수엘라 차베스, 프랑스 르펜, 오스트리아 하이더, 이탈리아 베를루스코니, 등

- 포퓰리즘의 핵심 요소: 인민 주권의 회복 약속, 감성 자극적 단순 정치
- 포률리즘은 인민 주권을 말로만 내세우는(지도자의 권력 쟁취를 위해 인민 주권을 앞세우는), 위에서 아래를 향한 정치운동으로서 대체로 실패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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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성한용 칼럼)

좀 치사해 보이지만 말꼬리를 잡기로 하자. 이명박 당선인은 한반도 운하에 대해 “총선을 앞두고 정치적으로 쟁점화하는 것은 반대”라고 했다. 영어 공교육 강화 방안에 대해서도 “정치 쟁점화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평소 그가 말하는 ‘여의도 정치’는 소모적인 정쟁을 의미한다.

그의 머릿속에는 ‘경제는 좋은 것, 정치는 나쁜 것’이라는 공식이 들어 있는 것 같다. 정치 혐오증이다. 하긴 이명박 당선인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정치는 정말 나쁜 것일까? 아니, 그런지 아닌지 따지기 전에, 그런 생각은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정치를 오래 한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답을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정치 혐오증은 대체로 ‘박통’(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에 만들어졌다.

그때 그 시절, ‘백성’들이 먹고사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은 대체로 대통령의 몫이었다. 경제성장, 물가안정, 차관조달 등 큰 정책은 기본이고, 도로 건설, 지붕 개량, 보건소 설립, 마을 소독, 밀가루 배급 등 구체적인 민생 현안도 대통령이 직접 살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직접 살피는 것으로 국민들에게 비쳤다. 반면, 정치인은 국회에서 싸움질이나 하고, 정권을 잡으려고 혈안이 된 사람들로 묘사됐다. 정당은 정치 모리배들의 집합소로 여겨졌다. 이런 상징 조작의 배후에는 정보기관의 공작이 있었다.

대통령과 관료들이 행정부를 중심으로 하는 ‘통치’나 ‘경제’는 좋은 것, 정치인들이 정당과 국회에서 하는 ‘정치’는 나쁜 것이라는, ‘통치자 프레임’은 그렇게 만들어졌다. 박통이 사라진 뒤에도 전두환·노태우 대통령은 그 틀을 활용했다. 군 출신들로서 다른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었을 것이다.

문제는, 박통과 맞서 싸운 김영삼·김대중 대통령도 그 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이다. 잘 몰랐던 것일까? 대통령이 되고 난 뒤에 생각이 바뀐 것일까? 국민들에게 생색을 낼 수 있는 구체적인 정책은 자신들의 이름으로 입안하고 집행했다. 금융실명제, 하나회 청산, 기초생활보장제, 의약분업, 공무원 임금 인상 등이 그렇게 추진됐다. 국회와 정당은 여전히 ‘거수기’에 불과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무소속 의원 영입,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새천년민주당 창당도 그런 생각의 연장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
그나마 노무현 대통령이 ‘통치자 프레임’에서 벗어나 보려고 몸부림을 좀 쳤다. 당정 분리가 그 흔적이다. 하지만 역부족이었다. 노무현 대통령도, 열린우리당도, 국민들도 깊은 이해와 준비가 부족했다.

‘통치자 프레임’의 폐해는 심각하다. 정책은 여전히 대통령과 관료들의 몫으로 남아 있다. 국회와 정당은 국민들의 구체적인 삶에서 멀어졌다. 그렇다고 대통령들이 덕을 보는 것도 아니다. ‘통치자 프레임’은 장기집권의 경우에 유효하다. 지금까지 대통령들이 박통을 넘어서지 못하는 이유는 장기집권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국 현대 정치의 이런 비극을 대통령 중심제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단견이다. 

정치에 대한 인식을 정상화시켜야 한다. 국회와 정당을 정책의 중심축으로 밀어넣어야 한다. 그래야 정당이 제자리를 잡고 민주주의가 발전한다. 대통령이 정책을 ‘독식’해선 안 된다.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다. 대통령은 정치인이다. 정치의 가장 중요한 내용물은 정책이다. 그중에서 경제가 으뜸이다. 경제는 곧 정치다. 가장 중요한 정치인이, 가장 중요한 정치행위를 하면서, 정치를 혐오하는 것은 명백한 자기부정이다.

성한용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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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창조한국당(공동대표 문국현·이용경·이경자)이 난파 위기에 봉착했다.
50명 규모이던 당직자 중 김갑수 대변인 등 15~20명 정도가 지난 주말과 이번 주초 당을 떠났고, 유일한 현역인 김영춘 의원과 지난 대선 때 선대본부장을 지낸 정범구 전 의원도 당에 잔류할 것인지를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지난 대선 때 정무특보를 지낸 김헌태 전 한국사회여론연구소장은 사실상 발길을 끊었고, 고원 전 전략기획단장도 2월 말까지 휴가를 내고 지방에 내려가 있다.

김영춘 의원은 23일 <한겨레>와 통화에서 “1월 말까지 최대한 토론해 볼 생각이지만, 어떻게 해야 할지…”라며 여운을 남겼다. 정범구 전 의원도 “내부에서 최대한 쟁점화해보려고 한다”면서도 “결국은 당의 노선과 진로가 핵심인데, 유의미한 토론이 안된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전·현 당직자들의 말을 종합해 보면, 난관의 중심에는 문국현 대표가 있다. 그는 지난 대선 때 쓴 선거자금 중 44억원을 당에 차입금으로 회계처리했다. 당이 채무자, 문 대표가 채권자가 된 것이다.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는 한 당직자는 “돈 나올 데가 전혀 없는 당에 빚을 얹어 놓으면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는데, 문 대표의 최측근인 전재경 최고위원은 “문 대표가 모르는 사이 어떤 당직자가 64억원을 차입금으로 잡아놨더라. 뒤늦게 이 사실을 안 문 대표가 특별당비 등으로 20억원을 포기해서 그나마 44억원이 남은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표는 지난 대통령 선거 때 사재를 털었다고 해서 화제가 됐고, 이를 선거전에 적극 활용하기도 했다.

문 대표는 지난 11일 “243개 전 지역구에 후보를 내겠다”고 말했지만, 현재 동원할 수 있는 자원은 20~30명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표는 최근 비례대표 의석을 많이 얻기 위해선 전 당직자가 지역구에 출마해야 한다는 뜻을 밝히면서 당의 재정 지원은 없다고 선언했다. 전재경 최고위원은 “중앙당의 형편상 홍보물·인터넷 홈페이지 등의 표준 매뉴얼 제작 말고는 도와줄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일부에서는 문 대표의 ‘비례대표 2번 출마설’까지 흘러나온다. 이에 대해 전 최고위원은 “문 대표 본인이 그런 언급을 한 적은 없고, 제가 한 말을 (듣는 사람들이) 유추해서 하는 말 같다”고 했다. 검토는 하고 있다는 뜻이다. 한 전직 당직자는 “당직자들은 ‘총알’도 없이 사지로 내몰고, 자기들은 성 안에 있겠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대통합민주신당과 통합 논의에 대해서도 문 대표는 알레르기에 가까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는 지난 18일 최고위원회의를 시작하자마자 “다른 당과 통합을 얘기하는 사람하고는 함께 갈 수 없다. 당을 나가달라”고 발언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범구 전 의원은 “정치는 여러가지 가능성을 열어놓고 해야 하는데, 문 대표는 자기와 다른 의견은 잘 받아들이지를 않는다”며 “공당을 하자고 당을 만들었는데, 여전히 ‘문국현 사당’을 못벗어나고 있다”고 비판했다.

강희철 기자 hck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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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

요즘 정치를 읽는 열쇳말은 뭐니뭐니해도 ‘프레임’이다. 그것은 간단히 말해 특정한 관점으로 정치의 ‘판’을 짜는 것이다. 프레임의 정치가 역사적으로 새로운 일도 아니다. 프레임의 힘을 보여주는 고전적인 사례인 셰익스피어의 <줄리어스 시저>를 보자. 시저가 살해된 뒤 브루투스는 시저의 권력욕을 고발하면서 ‘시저를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했기 때문에’ 거사를 일으켰다는 연설을 한다. 군중도 그의 말에 수긍한다. 그러나 뒤를 이어 연단에 오른 앤터니는 브루투스가 명예를 아는 분이라고 입에 발린 칭찬을 하면서 시저의 위대한 점을 열거하기 시작한다. 시저는 충직하고 공정한 벗이었고, 수많은 포로를 잡아와 로마 경제를 살렸으며, 서민이 울 때 함께 울었고, 세 번이나 왕위를 제의받았어도 매번 거부했던 인물이 아닌가? 우리 모두 그를 사랑하지 않았던가? 앤터니는 시저가 죽게 된 핵심적 이유인 권력욕에 대해선 즉답을 피하면서 시저가 시민들의 좋은 친구였다는 주장만을 되풀이한 것이다. 앤터니의 감성적인 호소 앞에서 조금 전까지 시저의 권력욕을 욕하던 군중이 어느새 ‘반역자를 한 놈도 살려두지 말자’라고 합창하기에 이른다. 한쪽에선 부패권력 프레임을 말하는데, 다른 쪽에선 우의와 회상의 프레임을 들이댐으로써 사태를 역전시키는 데 성공한 것이다.

정치 프레임이 이처럼 강력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선거 국면에서는 특히 그러하다. 그러나 프레임으로 세상을 보는 것은 결정적인 결함을 지닌다.
첫째, 프레임은 객관적인 사실과 주관적인 주장을 교묘하게 섞어서 특정한 방식으로 세상을 해석하도록 유도하는 인지적 장치다. 그러니 프레임이 현실정치에서 아무리 쓸모가 있다 하더라도 엄밀히 말해 진실과는 거리가 있다.

둘째, 정치 프레임은 피상적 현상과 근본적 이유를 구분하지 못하도록 사람들을 현혹하기 쉽다. 예컨대 이번 대선의 최대 이슈라고들 하는 ‘경제’는 겉으로 드러나는 표층 프레임에 불과하다. 정권을 바꿔보고 싶다는 막연한 변화지향 욕구가 더 깊은 차원의 심층 프레임으로 자리잡고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경제 프레임은 그러한 심정을 정당화하는 논리로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셋째, 선거의 프레임이 단순명료할수록 현실의 복합성은 무시되기 쉽고 소외계층, 주변부, 소수자, 약자의 목소리는 가차없이 묻혀버린다. 프레임의 전쟁터만큼 우승열패의 원리가 신봉되는 곳도 없다. 이런 점에서 프레임은 흥미롭긴 하지만 대단히 위험한 게임의 논리라 할 수 있다.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무조건 열광하기에 앞서 비판적으로 보아야 할 대상인 것이다.

흔히 선거철이 되면 푸대접 받는 사회의제들이 있다. 인권, 환경, 세금과 같은 이슈가 그 대표적인 피해자다. 홍수와 같은 정치 프레임의 물결 뒤에서 불청객 취급을 받기 일쑤다. 이런 일은 다른 나라에서도 종종 일어난다. 하지만 특히 이번 한국 대선처럼 단 하나의 프레임이 다른 모든 의제를 압도해 버린 경우엔 그 폐해가 극심하다. 그러나 선거가 있든 없든, 그 결과가 어떻든 간에 인간의 기본권, 환경정의와 같은 이슈는 우리에게 극히 중요한 문제로 계속 남아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분신하는 노점상이 있고, 시한폭탄과 같은 전지구적 에너지·환경 문제가 재깍거리고 있음을 똑바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인간화된 사회를 염원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잊지 말아야 할 문제영역은 바로 이런 것이어야 한다. 정치인들이 설정한 프레임 또는 역프레임에 대해 민주시민으로서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을 넘어 시민들 나름의 대안적 가치를 분명히 견지하고 주창할 때에만 민주주의의 진정한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

조효제/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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