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조건
안재성 지음 / 한길사 / 1991년 2월
평점 :
품절


- 한동안의 외도를 마감하고, 다시 계획을 세워 책을 읽으려고 합니다. 외도의 이유는 지금의 진창에서 벗어나는 것이었지만, 외도를 마감하는 이유 역시도 같습니다.
일제 치하에서 사회주의자들의 활약상을 그렸던 <경성트로이카>의 작가이자, 서문에서 자신의 과거 활동을 회의하는 것으로 인상에 남았던 안재성씨의 소설 <사랑의 조건>을 끝으로 외도를 마치려고 합니다.

- <사랑의 조건>은 80년대 한국을 시대적 배경으로 합니다. 흔하지 않은 소재이며, 그래서 ‘노동소설’이라 따로 묶여있는 운동권들의 이야기이자, 동시에 가장 흔한 소재인 사랑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80년대 운동가 개인의 역사가 시작되는 1980년 5월 광주 민중항쟁을 비롯해서 김대중내란음모사건, 82년 미 문화원 방화사건, 강제징집과 녹화사업, 83~84년 학생 출신 운동가들의 대규모 공장 이전, 85년 구로 동맹파업, 87년 6월 항쟁과 노동자 대투쟁, 87년 대통령 선거와 89년 천안문 사태와 소련(소비에트연합)의 해체, 91년 현대중공업 골리앗 투쟁까지 굵직한 역사적 사건들을 배경으로, 그 속에서 살아가고자 투쟁하고자 했던 운동가들의 고민과 갈등을 옅볼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랑’이라는, 더구나 하나의 사랑 풍경이 아니라 일반적인 사랑의 조건이라는 쉽지 않은 이야기들이, 어두운 시대와 무거운 정치적 사건들 사이에 기묘하게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죠.
주인공인 ‘나’와 김진숙이라는 여성의 인연은, 주인공이 80년 5월 광주의 소식에 분개하여 서울 복판에서의 시위를 계획하고 준비하는, 소설의 시작에서 함께 시작합니다. 다만, 독서후기의 편리를 위해, 분리해서 적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 가발제조업체였던 YH무역의 여성노동자들이 회사의 일방적인 폐업에 대항해 야당이었던 신민당 당사를 점거하고 투쟁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정부가 야당 당사에 경찰병력을 투입하면서 무차별적으로 폭력을 행사하게 됩니다. 이 사건으로 김경숙 노조 위원장이 사망하고, 김영삼 당시 신민당 총재가 의원직에서 제명되게 되죠.
이 사건은 단지 특정 노조의 생존권 투쟁을 넘어서, 한 노동자의 죽음과 정치적 싸움으로까지 번져나갔습니다. 동시에 박정희 정부 말기의 사회상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구요.

- 이런 사회상은 그 해를 넘기지 못했습니다. 10.26 이라는 정치 테러가 발생하고, 전두환을 필두로 한 새로운 군부집단이 10.26 사건을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정치권에 진출하게 됩니다. 그리고, 군정의 연장을 원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권력의 일시적 공백기를 겨냥해 숨죽였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잠시. 권력의 실세로 떠오른 군부집단은 비상계엄령의 전국 확대, 국회 해산, 대학 휴교령, 등으로 다시금 야당 정치인을 비롯해 대학생들과 국민들의 열망을 통제하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80년 5월 광주민중항쟁의 배경이 되는 것이죠.

- 70년대 말부터 권력의 공백기 동안 민주화를 주장하며 거리를 누볐던 이들은, 5.17 조치로 인해 높아진 현실의 폭력 앞에서 선택을 강요당하게 됩니다. 동시에, 끔찍한 폭력을 자행하며 정부를 장악한 군부정치의 연장은 기존 운동과 새로운 운동 사이의 갈등을 만들어냅니다. 그것을 편의적으로 분류하자면, 70년대 학번과 80년대 학번이라는 세대의 갈등으로, ‘민주화’와 ‘노동계급의 정치세력화’라는 정치 슬로건의 갈등으로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주인공인 ‘나’와 1980년에 포고령 위반으로 대학에서 제적당한 작가의 이력 또한 후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 새로운 운동은 83~84년경 학생 출신 운동가들의 대규모 노동현장 이전으로 표현됩니다. 어떤 이가 “트럭으로 사람들을 실어오는 것 같았다.” 라고 표현할 정도로, 기존 운동 방식의 전환은 거대했습니다. 세계 역사에도 유례가 없는 일이라고 하니까요. (19세기 러시아의 나로드니즘 운동에서도 많은 학생 출신 운동가들이 농촌으로 이전했지만) 주인공인 ‘나’가 강제징집과 전역 이후에 노동현장을 막연히 동경하며 노동일을 시작하는 것이 여기에 있습니다.

- 하지만, 학생 출신 운동가들의 대규모 노동현장 이전이, 단순히 70년대 운동방식에 대한 회의나 이유없는 열풍일 수는 없습니다. 당시 한국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던 <무엇을 할 것인가> <레닌주의의 기초>와 같은 마르크스-레닌주의 사상이 배경이 되었던 것입니다. 난생 처음 해보는 노동일 속에서 그가 재회하고 학습을 받게되는 후배 박인주의 존재가 그것을 의미합니다. 운동가들의 노동현장 이전은 노동자들의 사회적 불만과 맞물리면서 85년 구로 동맹파업을 비롯한 파업투쟁과 서노련, 인노련, 인민노련, 등을 비롯한 노동자 조직의 탄생으로 이어집니다. (일제시대와 해방을 전후로 해서 많은 조선의 사회주의자들이 러시아 중국의 공산당과 교류를 했고, 소위 ‘본토’에서 직접 교육을 받은 이들도 여럿 있었습니다. 80년대 초중반의 이런 사회상은, 한국 사회주의 운동의 전통이 6.25 전쟁과 이후 몇차례의 정부를 거치며 거의 완전하게 단절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 노동현장으로 이전해 노동조합을 비롯해 학습소모임과 노동자 조직을 구성하기에 여념이 없었던 이들이 있었던 반면, 대학 내에서는 여전히 이제 막 유입되기 시작한 마르크스-레닌주의를 바탕으로 한국 사회의 문제에 대한 연구와 논쟁이 본격화되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내용과 활동방식이 비슷했던 70년대 학생운동의 유형을 변화시킵니다. 소위 ‘사회구성체 논쟁’을 통해서, 학생운동은 뚜렷한 내용의 차이와 그에 따른 활동방식의 차이를 가지는 각각의 세력으로 분화하게 됩니다. 분화는 여러 방식을 통해 이루어졌을 겁니다. 기존의 인적 전통을 통해 이루어지기도 했을 것이고, 인적 전통을 무시하면서 사상을 좇아 이루어지기도 했을 것이며, NL-CA 라는 큰 조직 구도 속에서 선택을 내리지 못하거나, 않고 있는 이들도 있었을 것이구요.

- 대학과 노동현장 모두에서 새로운 운동이 이루어지는 사이, 87년 6월 항쟁과 7~9월 노동자 대투쟁이 터져나오게 됩니다. 수많은 노동현장에서 어용 집행부가 교체되거나, 신규 노조가 결성되었습니다. 전국적으로 500여만명이 참여했던 6월 항쟁의 의미는 말할 것도 없겠지만, 7월부터 9월까지 계속되었던 노동자 대투쟁 역시 노동운동의 대중화를 의미했습니다. 그동안 학생 출신 운동가들과 소규모 학습 소모임에서 비롯된 운동이 비로소 그 주인에게로 자리매김하는 역사적인 순간이었죠.

- 하지만, 노동자 대투쟁은 80년대 초반 노동현장으로 이전한 운동가들에게 다시 한번 갈등을 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노동자 대투쟁은 하나의 큰 물줄기였다기 보다는 수많은 작은 물줄기였고, 이제 겨우 5년 정도 되었을 뿐인 노동현장의 운동가들은 물줄기들을 하나로 모아내지 못했던 것이죠. 대중적인 투쟁의 위력을 제대로 발휘시키지 못한데 대한 고민이 다시 한번 사상논쟁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리고, 거대한 투쟁의 물결은 그 해 12월의 대통령 선거를 맞이하여 가라앉게 됩니다.

- 노동자 대투쟁을 거친 후, 88년에도 노동자 투쟁은 비약적인 발전을 하게됩니다. ‘수많은 작은 물줄기를 어떻게 하나의 거대한 물줄기로 모아낼 것인가’ 하는 질문은 운동가들 내에서 뿐만 아니라 노동운동 내에서도 이루어졌고, 그 성과가 90년 출범하는 전노협이라는 노동조합 전국조직으로 모아지게 됩니다.

- 노동자 대투쟁을 겪은 운동가들의 갈등이 채 아물기도 전에, 또 한번의 갈등이 찾아오게 됩니다. 중국에서 천안문 사건이 일어나고, 소비에트 연합이 해체한 것이죠. 이제 막 형성되기 시작했으나 대중투쟁 속에서 자리매김하지 못했던 사회주의 운동세력들은, 계속되는 갈등과 혼란 속에서 뿔뿔이 흩어지게 됩니다. 막연했던 정치적 전망이 사라지면서 활동을 중단하는 이들도 많았고, 70년대 학번을 비롯한 일부는 제도권 정치로, 일부는 기존의 정치적 전망을 한없이 낮춘 채 대중운동 속으로 뛰어들었습니다. 물론, 주인공인 ‘나’와 같이 “달라진 것은 없다” 며 기존의 활동 – 전국적인 전위정당의 조직 - 에 매진하는 이들도 있었구요.

- 이렇게 각자의 길을 선택하며 89년의 소용돌이가 어느정도 가라앉을 무렵인 91년, 현대중공업노조의 파업투쟁이 있었습니다. 전투경찰, 해군함정, 헬기를 비롯해 육해공 도합 5만명의 군사병력이 동원되고, 노동자들이 화염병과 쇠파이프, 새총과 민주박격포로 무장해, 마치 전쟁터를 불사했던 현대중공업노조의 거대한 투쟁은, 80년대를 관통했던 노동운동의 상승을 마감하는, 상징적인 사건으로 알려져있습니다.

- 주인공 ‘나’의 역정은 현대중공업노조의 투쟁을 마지막으로 끝이 납니다. 그 해 91년에 쓰여진 <사랑의 조건>은 이렇듯, 70년대 민주화 투쟁 80년 광주민중항쟁을 딛고 일어서 80년대를 풍미했고, 87년 노동자 대투쟁과 89년 소비에트연방의 해체를 맞아 91년 현대중공업노조 투쟁에 쉼표를 찍는, 운동가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습니다.
어느새 15년이 훌쩍 지났습니다. 90년의 전노협은 민주노총으로 전화했고, 군인 출신 대통령의 시대는 물론이요 3김의 정치가 막을 내렸으며, 진보정당을 표방하는 정당이 탄생하여 버젓이 공개활동을 하는 등, 그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주인공 ‘나’가 이루고자 했던 ‘전국적 전위정당’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소규모의 사회주의 조직들이 열심히 공개 비공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그 성과가 집약되고 있지는 못한 것이 현실입니다.

- 완전한 사회를 이루고자 했던 ‘나’, 완전한 사랑을 이루고자 했던 ‘나’는, 80년대 투쟁의 역사가 저물어가는 울산의 바다 앞에 서서 “사랑과 혁명은 영원히 완성될 수 없다. 미완의 시대 전부가 최고의 완결성을 가지는 것” 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변한 것은 완전한 사랑과 혁명에 대한 열망이 아니라, 그것에 이르는 방법이었습니다. 그는 더 이상 김진숙을 아내로 소유하려 하지 않고, 패배한 투쟁 앞에서 좌절하지 않습니다. 아내 김진숙과 완전한 사랑을 이루기 위해서 먼저 인간 김진숙을 사랑해야 했듯이, 혁명의 주체 노동계급과 완전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서는 먼저 착취받고 노동하며 살아내는 노동계급을 담담하게 사랑해야 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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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06-08-28 16: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현대중공업 노조도 이제 많이 변했죠. 투쟁않는다고 민노총에서 제명되고 거꾸로 비정규직에게 교묘히 떠넘기면서 과실을 회사와 공유하는 모델로 전환합니다. 오웰이 이야기한 것과 같이 노동자들은 평등하지 않습니다. 인간해방이라는 거대한 주제를 끌어안고 많은 사람들이 불을 살랐지만 어느새 그 열정이 식어가면서 보이는 현실은 점점 차가와집니다.

sb 2006-08-29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 엊그제는 12년 무쟁의라고, 한 전의경의 부모에게 감사편지를 받기도 했더군요. 정규직 노동자들은 쟁의 없이도 생존과 권리 보호가 이루어지는 모양입니다만, 이면에는 하청노동자들의 피와 땀이 배어있습니다. 민주노총에서 제명된 것은, 하청노동자 박일수씨가 분신했을 때, 현중노조 대의원들이 장례식장까지 난입해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가로막았던데에 있습니다.
저는 열정은 두번째라고 생각합니다. 열정에 앞서, 바로 이 시대가 노동자들을 싸우지 않을 수 없도록, 이기는 싸움을 위해서 단결하지 않을 수 없도록 만들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