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프레시안)



"68혁명의 재현인가?" 올해 4월 프랑스를 뜨겁게 달궜던 최초고용계약(CPE) 반대 투쟁을 지켜본 언론이 던진 질문이다. 물론 올해 4월의 투쟁은 '68혁명'과 전혀 다른 맥락을 갖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거리를 가득 메운 젊은이들의 물결에서 1968년 5월의 풍경을 떠올린 것이 아주 뜬금없는 짓은 아닐 게다. 사회적 요구를 내걸고 거리에 나선 젊은이들의 모습은 항상 새로운 사회적 변화를 알리는 신호와 같은 역할을 해 왔기 때문이다.
 
최초고용계약 반대 투쟁 이끈 쉬드 연대노조
 
프랑스 정부가 최초고용계약을 처음 들고 나왔을 때 이토록 큰 저항에 직면하게 되리라고 예상한 이는 많지 않았다. CFDT(프랑스 노동자 민주동맹, Confederation Francaise Democratique du Travail), CGT(노동총동맹, Confederation generale du travail) 등의 거대노조가 대체로 소극적인 태도를 취했기 때문이다. 소수의 젊은이들만의 투쟁으로 그칠 뻔 했던 최초고용계약 반대투쟁이 '제2의 68혁명'으로까지 평가받을 수 있게 된 데에는 CFDT에서 이탈한 활동가들이 결성한 쉬드(SUD) 연대노조의 역할이 컸다.
 
1981년 미테랑 사회당 정권의 출범은 프랑스 노동운동으로 하여금 중대한 기로에 서게 했다. CFDT, CGT 등으로 대표되는 노동조합 세력은 프랑스 사회당의 오랜 동반자였기 때문이다. 1988년 재집권에 성공한 사회당 정권이 추진한 우체국 민영화 정책이 결정적인 시험대 역할을 했다. 당시 우체국 민영화 정책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취한 CFDT 지도부에 반발하여 이탈한 활동가들이 쉬드 연대 노조를 결성했다. 쉬드(SUD)란 이들의 강령인 '연대, 단결, 민주(Solidaire, Unitaire, Democratique)'의 첫 글자를 딴 것이다.
 
'68혁명'에 참가한 고교생, 노동 현장으로
 
당시 쉬드 연대노조 결성을 주도한 것은 프랑스 체신부에 근무하는 여성 노동자 아닉 쿠페였다.
 
유럽의 많은 진보적 활동가들과 마찬가지로 아닉 쿠페도 1968년 5월 '68혁명'을 통해 사회 부조리에 눈을 떴다. 당시 15살이던 그는 자신이 다니던 고등학교를 점거하고 시위에 나서면서 '부조리와 폭력에 대한 분노'가 더 나은 세계를 건설하는 힘이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
 
대학에 진학한 뒤 마오주의자 그룹에 가입하여 활동하던 아닉 쿠페는 대학 2학년 때 학업을 중단하고 수퍼마켓 계산원으로 취업한다. 과거 많은 한국의 청년들이 대학을 떠나 노동 현장에 뛰어들었던 것과 마찬가지 이유에서였다. 아닉 쿠페는 당시를 회고하며 "그때까지 맑스의 저작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다. 논쟁은 나의 취향이 아니다. 나의 관심사는 실천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대학을 떠난 이후 다양한 정치 그룹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던 그는 1978년 현재의 직장인 체신부 재무팀에 입사했다. 오로지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서였다.
 
기존의 노동운동에 맞선 아닉 쿠페, 한국을 찾다
 
당시 체신부 노조는 CFDT 산하 우편 노조에 속했다. 그곳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던 아닉 쿠페는 조금씩 지쳐갔다. 미테랑 정권 출범 이후 노조 지도자들이 정부에 대해 타협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을 보면서였다. 그와 동료들은 CFDT 지도부의 각성을 요구했다. 노동조합이 사회당 정부의 '2중대'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목소리는 지도부에게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에게 돌아온 것은 CFDT에서 축출한다는 통고였다. 결국 아닉 쿠페와 동료들은 CFDT를 나와 새로운 조직을 건설했다. 1988년 11월 쉬드 연대노조는 이렇게 출범했다. 그 뒤 쉬드 연대노조는 1995년 프랑스 공공부문 총파업을 거치며 크게 성장했고, 올해 최초고용계약(CPE) 반대 투쟁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2001년 민주노총이 파견한 '김우중 체포조'가 파리에 도착했을 때 이들을 맞이하여 지원한 것도 쉬드 연대노조였다. 쉬드 연대노조는 이밖에도 '제3세계 빚 탕감' 캠페인, 여성을 위한 '유산과 피임권 연합' 창설 등을 적극적으로 추진한 바 있다.

쉬드 연대노조 건설을 주도한 아닉 쿠페가 7일 저녁 한국을 방문했다. 그는 당분간 한국에 머물며 노동운동 관계자들을 만날 계획이다. 아닉 쿠페를 8일 저녁 서울 철도노조 사무실에서 만났다.
 
"민주주의는 원래 시간 걸려"…내부 민주주의 강화 외엔 답이 없다
 
- 프레시안 : 지난해 한국에서는 강승규 전 민주노총 부위원장의 수뢰, 기아·현대자동차 노조의 사원 채용 비리 등 노동운동의 도덕성을 훼손하는 사건이 많이 터졌다. 이런 사건들을 거치며 엄혹한 탄압 속에서 성장한 한국 노동운동이 이제 자신을 되돌아 볼 때가 됐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기존 노조의 관료주의를 비판하며 시작한 쉬드 연대노조의 경험이 한국 노동운동에 시사하는 바가 클 것 같다.
 
= 아닉 쿠페 : 어느 사회에서나 노동운동의 전개 양상은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문제는 노동운동 조직 내부의 민주주의라고 본다. 내부 민주주의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을 경우 노동운동은 순식간에 건강성을 상실한다. 조직의 의사 결정 과정이 투명하게 공개되고 평범한 조합원 대중들이 지도부의 결정을 견제할 수 있게 되면 부패나 비리가 들어설 여지가 없다.
 
쉬드 연대노조의 경우도 기존 노동운동에 대한 반성에서 출발했다. 노동운동의 주류인 CFDT 지도부의 관료주의에 맞섰던 조합원들이 주축이 되어 건설했다. 그래서 우리의 가장 큰 고민은 관료주의와 부패가 발붙일 수 없도록 조직 내 민주주의를 철저하게 구현하는 것이었다.
 
이런 문제의식 때문에 쉬드 연대노조 소속 체신노조(SUD-PTT)는 규약에 전임자 임기를 10년으로 제한하고 있고, 쉬드 연대노조 소속 철도노조(SUD-Rail)는 6년 이상 전임을 못하도록 정하고 있다. 한번 노조 전임자가 되면 40년씩 근무하면서 물러나지 않는 게 프랑스 노동운동의 관행이다. 쉬드 연대노조는 이런 관행을 깼다.
 
또 위원장에게 권한이 집중된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중앙상임위원들이 상호 동등한 위치에서 집단지도체제로 운영하고 있다. 물론 위원장은 있다. 그러나 그것은 법적으로 신고하기 위한 형식적인 지위에 불과하다.
 
그리고 전국연합체인 쉬드 연대노조는 소속 노조들이 규모에 관계 없이 한 표씩 행사하도록 돼 있다. 규모가 큰 노조가 횡포를 부리는 것을 막기 위한 장치다. 예를 들어 1만7000명의 조합원이 있는 체신노조와 800명에 불과한 기상대 노조가 전국연합체 회의에서 동등한 한 표를 행사한다. 다수가 찬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수의 반대를 무시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단 하나의 지방노조에서라도 반대한다면 (최종 결정문에) 서명하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의 중요한 원칙이다.
 
또 기존의 노동조합들이 정부나 자본가와 협상한 내용을 대체로 비밀에 붙여 온 반면 우리는 협상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했다. 이렇게 하면 당연히 시간이 오래 지체된다. 또 여러 가지 낭비도 생긴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인정해야 한다. 민주주의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야만 구현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 프레시안 : 노동운동에 유화적인 입장을 취할 것으로 기대되는 정권이 들어설 경우 노동운동 진영 내부에서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있다. 정부와의 교섭으로 확보할 수 있는 몫이 늘어나리라는 '기대'와 결국 기업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는 정부의 들러리만 서다 끝나리라는 '불안'이 충돌하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김대중 정권 출범 이후 민주노총의 노사정 위원회 참여를 놓고 이런 갈등이 벌어졌다. 노동운동의 지지를 업고 출범한 사회당 정권 하에서 건설된 쉬드 연대노조가 이런 갈등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 아닉 쿠페 : 프랑스의 경우를 봐도 1981년 미테랑 사회당 정권이 출범한 후 노동운동이 '긴 휴가'에 들어갔던 경험이 있다. 노동조합이 투쟁을 자제하고 정부 정책에 참여하는 것을 통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실제로 1980년대를 지나는 동안 많은 노동조합 간부들이 정부관료로 변신했다.
 
하지만 나는 투쟁의 뒷받침이 있어야 정부와의 교섭도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물론 교섭과 타협이 나쁜 것은 아니다. 때로는 필요하다. 중요한 것은 누가 교섭과 타협을 결정하는지의 문제다. 노조 지도부의 독단적인 결정에 의한 교섭과 타협은 옳지 않다.
 
물론 지도부의 독단에 의한 교섭으로 좋은 결과를 낼 수도 있다. 거꾸로 조합원들 사이에서 충분한 토론을 거쳐 민주적으로 진행된 투쟁이나 교섭이 나쁜 결과를 낼 수도 있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체험을 통해 민주적 절차를 거친 나쁜 결과가 비민주적 결과를 통해 얻은 좋은 결과보다 낫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 사안 자체의 성격이 타협의 대상일 수 없는 게 있다. 노동자의 기본적인 생존과 인권에 관한 문제는 타협의 대상이 아니다.
 
노동자들 사이의 차이, 연대를 통해 극복해야
 
- 프레시안 : 몇 년 전부터 한국에서는 '귀족 노조'라는 표현이 종종 입에 오르내렸다. 일부 보수적인 언론이 노동운동 진영을 공격하기 위해 처음 사용한 표현이다.
 
그러나 이들 매체의 논조에 비판적인 이들 중에도 '귀족 노조'라는 비아냥에 담긴 함의에 대해 공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일부 대기업과 공공부문 노조가 전체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싸우기보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데 급급한 모습을 보이는 데 대한 반발 심리 때문이다. 1990년대 후반 이후 대기업과 중소기업, 공공부문과 민간부분 사이의 근무여건 및 고용 안정성의 차이가 확대되면서 이런 반발 심리도 더욱 확대됐다. 상대적으로 안정된 위치에 있는 대기업과 공공부분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질시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 정서를 등에 업고 대기업이나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어떤 투쟁을 진행하건 간에 '배부른 철밥통의 투정'으로 몰아붙이는 경향도 생겨났다. 프랑스의 노동운동은 이런 상황을 겪은 적이 없는지 궁금하다. 또 만약 이런 상황을 겪고 있다면 이를 극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도 묻고 싶다.
 
= 아닉 쿠페 : 당연히 프랑스도 그와 같은 문제를 겪고 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근무여건의 차이가 크다. 그리고 더 열악한 처지에 있는 중소기업 노동자들이 오히려 노동운동에서 소외되는 경향도 있다. 이를테면 대규모 파업이 실시될 때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쉽게 참여할 수 없다. 이런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프랑스 노동운동에서도 중요한 과제로 지적돼 왔다.
 
물론 쉬운 과제는 아니다. 또 구호를 통해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하지만 나는 이런 과제를 극복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다고 본다. 자신의 직장에서 파업을 할 수 없다면 하루 휴가를 내고 거리에 나와서 시위에 동참할 수도 있다. 실제로 우리 조합원들 중에는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
 
또 기존의 노동조합이 안정된 위치에 있는 노동자만 보호한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실천을 통해 반박할 여지가 많다. 이를테면 프랑스 우체국 노동자의 경우 40%가량은 공무원 신분이 아니다. 하지만 공무원 신분이 아닌 노동자들도 공무원 신분인 노동자들과 함께 노동조합 활동을 하고 있다. 이런 활동 속에서 노동자들 사이의 차이는 줄어들고 연대는 강화된다. 현재 쉬드 연대노조 소속 체신노조(SUD-PTT)의 경우 30% 가량의 조합원이 공무원이 아닌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공무원 신분의 노동자들과 동등한 위치에서 활동하고 있다. 쉬드 연대노조는 공무원 노동자와 공무원이 아닌 노동자의 차이를 없애는 데 더욱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 프레시안 : 한국의 노동운동은 지나치게 남성중심적인 문화를 갖고 있다는 비판을 종종 받고 있다. 쉬드 연대노조의 경우 당신과 같은 여성 활동가가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다는 게 인상적이다.
 
= 아닉 쿠페 : 노동운동의 가부장적 성격은 프랑스 역시 별로 다르지 않다. 노동운동뿐만이 아니다. 다른 사회운동에서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런 성격이 나타난다.
 
나는 마오주의 정치 그룹에서 활동하던 1978년 '조직의 남성 우위론자들의 관행을 거부하는 글'을 써서 발표하기도 했다. 노동운동을 시작한 뒤에도 남성 우위론자들과 부딪힌 것은 마찬가지였다.
 
프랑스 노동운동 역시 가부장적이고 마초적인 성격이 매우 강하다. 대체로 여성들은 노동운동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기가 어렵다. 많은 노동조합에서 여성 활동가는 회계 업무를 맡고 있다. 일종의 편견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새로운 조합원을 조직하는 노력도 남성을 향해 집중되는 경향이 있다. 여성 노동자들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위치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경향은 노동운동의 건강성을 해치는 결과를 낳으리라고 본다.
 
프랑스 노동운동에서 나는 매우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내 경우만 보고 프랑스 노동운동의 마초적인 성격을 간과하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란다.
 
FTA에 맞선 노동자, 농민…"자유무역에 대한 환상을 깨자"
 
- 프레시안 : 최근 한국에서는 한미FTA가 쟁점이 됐다. 많은 이들이 한미FTA가 체결되면 고용환경과 노동조건이 지금보다 더 열악해질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노동운동 진영에게 놓인 새로운 위협인 셈이다. 영미식 신자유주의가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이름으로 강제되고 있는 한 이런 위협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닐 듯하다. 한미FTA 반대 투쟁을 하고 있는 한국 노동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가?
 
= 아닉 쿠페 : 얼마 전에 세계사회포럼에 참석했을 때 아프리카에서 온 분들과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곳에서도 공공부문 민영화를 막기 위한 투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때까지 나는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문제는 주로 선진국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여겨 왔다. 제3세계 국가들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이라고 본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영미식 신자유주의를 강제하면서 발생하는 부작용은 이제 몇몇 국가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따라서 이에 맞서기 위한 노동자들의 국제적인 연대가 더욱 중요해졌다.
 
사실 한미FTA 협상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아마도 한국의 특수한 조건, 즉 남북한의 군사적 대치 상황과 미군의 한국 주둔을 빌미로 미국이 압력을 넣고 있으리라는 짐작을 하고 있을 뿐이다.
 
FTA의 진행과정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그것이 낳을 결과는 분명히 예측할 수 있다. FTA 추진론자들이 이상으로 삼고 있는 '자유무역'은 대체로 비슷한 결과를 낳아 왔다. 자유무역의 효과는 개별 국가의 역사와 조건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다. 그러나 대체로 두 가지 지점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하나는 노동의 불안정성이다. 자본의 국제적인 이동이 활발해지면서 개별 국가에 뿌리박고 살아가는 노동자들이 처한 조건은 더욱 악화됐다. 자유무역의 활성화는 개별 국가가 공공부문을 민영화하도록 강제한다. 그 결과 국가가 지원하는 공공부문의 존재로 인해 유지돼 온 노동자들의 삶의 조건은 크게 흔들린다.
 
나머지 하나는 농업의 몰락이다. 자유무역은 거의 대부분의 국가에서 토착 농업을 황폐화시킨다. 이는 소위 선진국이라 불리는 국가도 예외가 아니다. 오랜 농업의 역사를 갖고 있는 프랑스 역시 최근 농업인구가 빠른 속도로 줄고 있다. FTA는 이런 경향을 더욱 가속화할 것이다. 현재 프랑스의 조세 보베가 이끄는 농민운동이 반(反)세계화 운동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으로 설명할 수 있다.
 
한국의 노동자들이 한미FTA라는 도전에 제대로 대처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성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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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8-12 08: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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