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지난 화요일부터, 성인오락실에 대한 연재기사가 나갔습니다. 저는 16일부터, 부산에서 도원, 용주오빠가 쌓은 취재 노하우를 전수받아, 수도권의 성인오락실 실태를 취재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특별취재반에 합류했습니다. 기사에 그닥 큰 도움은 되지 못했지만, 나름대로 며칠간 취재하면서 배우고 느낀 것들이 어느 때보다도 많았기 때문에, ‘특별취재반’의 이름으로 나왔던 첫 기사가, 제 이름이 쌩으로 나갔던 이전의 어떤 기사들보다도 더욱 의미 있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그 의미를 다른 인턴과도 공유하고자, 그동안 취재하면서 겪은바, 느낀 바를 뒷담화로 올려봅니다. :D

#1.  “아빠 찾으러 왔는데요.”

수도권 취재 첫날, 비가 주륵주륵 내리던 날, 나와 도원오빠는 서울 동쪽에 성인오락실이 집중돼 있는 곳으로 향했다. 이미 부산에서 여러 오락실을 다녀봤던 도원오빠와 달리, 난생 처음 성인오락실이라는 곳에 가보는 터였던 나는, 지하철에서는 애써 웃고 있었지만, 긴장과 걱정으로 가득 찬 마음을 누를 길이 없었더랬다. 거기에다, 부산의 오락실들이 무슨 파 무슨 파 조폭과 연계가 됐니 어쨌니의 얘기를 잔뜩 들은 후인지라, 티는 안냈지만 사실 살짝 쫄았던게 사실이었다. 어쨌든 지하철은 한 정거장을 2분만에, 그렇게도 빨리 달려, 우리를 목적지에 내려주었다.

먼저 도원오빠가 임무(?)를 마친 후, 내가 오락실에 들어갈 차례가 됐다. 나는 처음이라 좀 작은 데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나와 함께 오락실을 물색하던 도원오빠는, 무심하게도 지하에 있는 대빵 커보이는 오락실을 보며 ‘저기 있다, 있다 연락해’하며 떠나버렸다. 밖에서만 봐도 오락기 100대는 있어 보이는 큰 오락실, 온통 가려져 있어 안을 들여다 볼 순 없었지만, 들려오는 기계소리만으로도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었다. 나는 숨을 크게 한 번 들이쉬고, 떨리는 마음으로 당차게 오락실 문을 와락! 열었다.

헉. 근데 이게 왠 일. 오락실이 내부수리중인지 뭔지, 암튼 그 큰 오락실에는 손님이 단 한명도 없었던 것이다. 순간, 그때따라 ‘쾅’ 하고 문을 열어 재낀 나에게로, 5명의 직원들의 눈길에 쏠렸다. 한 5초간 우린 아무 말 없이 서로를 쳐다봤다. 그 침묵을 깬 건, 그 중 가장 무서워 보이는 직원.

“아니, 뭔 일이십니까?”

순간 당황한 나.

“아.. 네.. 아.. 아빠 찾으러 왔는데요.”

그 말이 떨어지자 마자, 직원들 킥킥 웃기 시작하며,

“아, 그래. 아빠 이름이 뭐니?”

아니, 반말은 왜 반말이야. 나보다 끽해야 10살이나 많을까 말까해 보이는데. 그래도 꾹 참고.

“아, 김.. 이.. 뭐, 암튼 다른데 계시나봐요. 딴 데로 가볼께요. 안녕히 계세요.”

왜 그랬는지는 모르지만, 난 아빠 이름을 묻는 질문에, 순간 우리 일진 선배인 “임인택이요.”라는 말이 진심으로 목구멍까지 올라왔었다. 내가 선배를 아빠처럼 생각하고 있었나? 뭐, 한 두 번 정도, 선배한테 취재내용을 보고하고 보고하는 과정에서, 내가 ‘지지배배’ 우는 아기 제비고, 선배가 늠름한 아빠 제비같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사실 선배께서, 제비를 좀 닮으시기도 했다) 암튼, 나 살겠다고 선배의 신분을 노출시키면 안 된다는 생각에 퍼뜩! 떠올라, 임기응변으로 대충 얼버무리고 나왔다. 그 날 집에 가자마자, 전주에 계신 아빠한테 오랫만에 안부전화를 드렸다.

#2. “애들은 가라, 애들은 가”

내가 쪽팔려서, 같이 취재 갔던 도원오빠에게도 아직까지 말 못했던 일. 나는 바다이야기에서 무참하게 쫓겨난(?) 적이 있다. 사실, 성인오락실에 내 또래 애들, 특히 여자애들은 직원들 말고는 찾기 힘든 일이거니와, 내가 또 나이보다 더 어려보이는 취재 상 단점!이 작용해, 처음에는 취재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난 곧 요령을 파악하고, 이 점을 장점!으로 활용했다. 이 건 뒤에 계속...)

일단 내가 오락실에 들어가면, 순간 그 곳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나에게 쏠리는 것이다! 여기에는 어리 버리해 보이는 내 모습과, 속으로 잔뜩 긴장했지만 애써 아닌척하는 나의 어색한 표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더 많이 눈에 띄게 했을 것이다. 암튼 그 날 나는 긴장도 늦추고, 최대한 껄렁껄렁하게 보이기 위해, 풍선껌을 구입하여 최대한 오버스러운 동작으로 쫙쫙 껌을 씹고 풍선을 불며, 당당하게 오락실에 들어갔다.

들어가자 마자, 그 곳의 수석직원인듯한 사내의 눈길에 나에게 꽂히더니, 들어간 후 5분 동안 졸졸졸졸 나를 쫓아다니는 것이다. 사실, 나 또래 애들이 많지도 않거니와, 직원 눈에, 나같이 돈없어 보이는 인간이 5분간 단돈 만원도 안 쓰고, 게임만 구경하고 있는 모습이 아니꼬왔을 터였다. 나는 애써 자연스러운 척, 화려한 물고기들의 몸짓에 정신을 빼앗긴 척하며, 불법 행위를 잡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나를 쫓아다니던 수석직원, 드디어 입을 열었다.

“여기, 애들은 출입 안됩니다.”

헉. 애들? 내 참 ‘청소년’도 아니고, ‘학생’도 아니고, ‘애들’이라니. 순간 나는 취재고 뭐고 열이 받아 맞받아 치기를.

“애들이라뇨? 저 애기 아니예요...........”

“아무튼 안됩니다. 나가세요. 여기, 여기 내보내!”

순간 너무 열이 받은 나는, 내 본분을 잊고................

“뭔 소리예요. 저 19살 넘었어요. 저 게임할 돈도 많아요! 민증 까 민증까!”

하며 내 이름 송경화 석자와 주민등록 번호가 또렷이 박혀 있는 민증을 까고 말았다. 아뿔싸. 그 싸가지없는 직원 손에 내 민증이 들려있는 모습이 내 눈에 들어온 순간, 난 그때서야 제 정신이 들었다. 미쳤지. 우리는 기자임을 숨기고, 불법행위 여부를 관찰한 후, 적발시 경찰에 신고하는 일을 하고 있지 않았던가. 제 정신이 든 나는, 손에 있던 민증을 확 빼앗은 후,

“딴데 가면 되잖아!” 라고 외치고 뒤도 안돌아보고,  뛰어 나왔다.

#3. 카지노에 가보다!

다음날 도원오빠와 나는, 동네를 바꿔 다른 지역의 성인오락실 밀집지를 찾았다. 그날도 비가 많이 오던 날이었다. 이제 취재에 좀 익숙해진 나는, 더 이상 첫날처럼 ‘크게’는 긴장하지 않고, 좀 자연스럽게 오락실을 활보할 수 있었다. 저녁때쯤 찾은 한 오락실, 배에 찬 두둑한 복대 주머니가 인상적인 아주머니에게 접근해 물었다.

“여기, 좀 잘 돼요? 이 동네 오락실이 꽤 있던데...”

“여기? 여기 별로야. 이거 한 시간째 돈만 먹잖아.”

“그래요? 그럼 나도 딴 데로 가야겠네. 어디 좋은데 있어요?”

“좋은데? 데려다 줄까? 내 딸같아서 그런데.”

내 손목을 잡은 아주머니는 우산도 쓰지 않고, 5분정도 쉬지 않고 걸었다. 그리고 왠 간판도 없는 건물에 들어서서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서 내려서야 내 손목을 놓았다. 헉. 그런데 여기는 뭐야. 양복 입은 잘생긴 오빠들 4~5명이 서 있던 입구 안쪽에는 빨간 카페트가 깔린 카지노가 있었던 것이다! 여기는 간판도 없이 운영해, 아는 사람만 아는, 그런 곳인 모양이었다.

성인오락실과는 달리, 이곳의 분위기는 꽤 ‘젊었다!’ 오락실에서 보기 힘들었던 내 또래 애들, 30대 초반 여성들이 여럿 앉아 게임에 집중하고 있었다. 아주머니 나에게 묻기를,

“얼마 있어? 같이 해서 한 판 할래?”

나, 얼마 있다고 해야 할지 감 못잡고, 고민하다가...

“저, 20만원 있습니다. 한 판 할까요?”

사실 내 지갑에는 6천원이 있었다. 오락실 취재 갈 때 돈을 좀 두둑히 뽑아놨어야 하는데, 깜빡 하고 돌아다니던 터였다. 그래도 목에 힘 주고, 20만원이나 있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런데 아줌마의 답변.

“뭐? 야. 집에 가라 집에 가. 집에 가서 밥이나 먹어.”

헉. 뭐야. 난 나름 큰 돈 있다고 뻥친거였는데, 여기 판에서는 이 돈으로는 택도 없는 모양이었다. 나는 ‘2백만원 있다고 했어야 했나?’ 고개를 갸우뚱 하며, 난생 처음 가본 그 빨간 카지노장에서 빠져나왔다. 근데 생각해보니, 20만원 있다고 해서, 한 판 하게 됐으면 어쩔뻔 했어. 지갑에는 6천원 있는데!

#4. 이성 잃고 경찰과 싸우다.

그 다음날 우리는, 경기도의 또 다른 동네로 발길을 옮겼다. 취재가 길어져서, 밤 10시까지도 계속됐는데, 이쯤 되면 마무리 하고 집으로 돌아가면 됐을 터였다. 10시쯤, 오락실에 들어간지 5분도 안돼서, 나는 오락실의 불법행위를 포착할 수 있었다. 아, 이제 말하자면, 나는 나의 ‘어려보임’과 ‘어리버리해보임’을 단점에서 장점으로 발전(?)시켜, 취재에 활용했다. 기계에서 막 나오는 상품권을 그 순간 잡고, 일련번호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사전에 그 기계 손님과 친해져야 하는데, 대부분 손님들이 40~50대 아저씨인지라, 어리버리한 여학생이 와서 “이게 뭐예요? 오와 상품권이다!!!!! 한 번 봐도 돼요?” 식으로 물어보면 친절하게도 각종 설명을 서로! 해주시기 위해 나서는 것이었다. 또 자기 딸 또래 되는 애가 와서 게임 하겠다고 있으니까, 사뭇 진지하게, 자기가 여기서 돈 잃은 과정, 오락에서 이길 수 없지만 여기 있는 모습에 대한 후회 등을 얘기해 주시며, ‘넌 나처럼 빠지지 말고, 집에 돌아가’ 라고 충고해주는 분들도 많았다.

아무튼, 그 날도, 기프트 수치가 20000에 가까워진 기계에 접근, 손님과 미리 친해진 후에, 막 나오는 상품권들을 ‘제가 받을께요!’하고 쥔 후, 일련번호를 확인하고, 두 번 연속으로 나오는 상품권 8장의 일련번호가 엉망이어서, 경찰에 신고를 했다. 그런데 경찰차는 내가 있던 공중전화에 한 번 와서 둘러보더니, 오락실에는 들어가지 않고 그냥 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다시 신고를 했다. 그런데 경찰 왈.

“신고자가 확인되지 않으면 단속을 나갈 수 없습니다.”

“왜요?”

“신고자가 자기 신분 안 밝히는 것은, 경찰을 믿을 수 없다는 건데, 그런 사람 말을 경찰이 어떻게 믿고, 가서 단속까지 합니까.”

순간 머릿속이 뜨거워짐을 느낀 나는, 또 다시........... 취재의 본분을 잃고, 열에 받쳐 그 경찰과 서로 목소리를 높이며, 나와야 된다 안된다 싸우기 시작했다. 그렇게 전화로 싸우기를 30여분. 우리의 대화는 이렇게 끝났다.

“경찰관 얘기 잘 들었다. 내 그럼 그게 맞는지 확인해볼테니, 당신 말에 확신이 있으면 네 이름 알려줘라.”

“내 이름 알려줄 수 없다.”

“뭐냐. 넌 내 이름 안 알려줘서 나올 수 없다매. 역으로 적용해봐. 니가 니 성명 안알려주면, 난 네가 지금까지 한 말이 진짜라고 어떻게 확인하고 믿으라는 거지?”

“아가씨가 경찰을 믿든 말든 난 상관없다. 여기는 아가씨 논리 듣는 곳이 아니다. 어찌고 저찌고. 그럼 문광부나 정통부에 신고하든가.”

두둥. 전화를 끊고, 순간 오락실 안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을 도원오빠의 후들거리는 다리가 떠올라 정신을 차리고 오빠에게 나오라고 전화를 했다. 근데 괜히 눈물이 쏟아지고, 열이 가라앉혀지지 않았다. 아무튼 신고 후 30분 기다리고, 30분 경찰과 싸우고 해서 벌써 1시간이 지나있었다. 오후 11시. 그런데 그렇게 안보낸다고 싸워놓고서, 경찰차가 오락실 앞에 나타난 것이다. ‘뭐여, 그 아저씨...’ 하면서 다시 긴장을 잡고, 경찰들을 예의주시했다. 전화기로 친구와 전화하는 척 하면서, 경찰에 접근했는데, 경찰 둘은 10분 가량 자기들끼리 계속 대화하고 웃으며 있다가, 오락실에 들어간지 40여 초도 안돼서 나와버렸다. 답답하고 허탈한 하루였다.

나의 무모한 ‘이성 잃음’으로 시간이 지체 되어, 우리는 그 날 서울로 가는 막차를 놓치고 말았다. 피씨방에서 밤을 세고, 첫 차를 타고 서울로 돌아가는데, 그래도 전국의 일선현장에서 애쓰고 있는 수많은 경찰들의 모습을 떠올리려고 노력했다. 그들도 답답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과, 그들의 현재 모습 및 태도 하에서는, 그 답답함이 해소될 길은 요원해 보인다.

#5. 미친 척 하다!

다음 주가 되어, 나는 혼자 서울 북쪽의 또 다른 오락실 밀집지로 가게 됐다. 이곳은 다른 곳에 비하면 밀집지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서민들의 삶 속까지 파고든 성인오락실의 문제점들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곳이었다. 동네 성인피씨방과 오락실 개수와 위치를 지도에 그린 후, 분위기를 살피기 위해 오락실에 들어갔다. 근데, 그 전전날 나온 성인오락실 기사에 메인 사진이 흔들렸음이 못내 아쉬웠던 나는, ‘오늘은 내가 한 번 사진을 찍어볼까?’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사실, 오락실도 이제 수군데 들락날락한 후라, 여유도 생긴 후였다.

그런데, 대놓고 찍기에는 한계가 있는 상황. 고민하던 나는 무늬가 혼란스러운 쇼핑백을 사서, 카메라 렌즈 만하게 구멍을 뚫었다. 그리고 거기에 렌즈를 꽂고는, 한 손은 쇼핑백을 들고, 한 손은 백안에 넣어 촬영 버튼을 누르면서 사진을 찍었다. 그런데, 쉽지가 않았다. 각도도 엉망이고, 기계 머리만 찍히거나, 손님들 발만 찍히거나 하는 것이었다. 여러 번 시도 와중에, 깝깝질이 난 나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그냥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찰칵 착칵! 그때! 직원 중 한 명이 나를 발견했다.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 왜 찍어요????”

헉. 너무 놀란 나는, 어찌 할 바를 모르고 얼굴이 빨개졌으나, 이내 대답하기를.

“아.. 그.. 이게.. 너무 알록달록 예뻐서요. 헤헤. 제가 그림을 좋아해요. 헤헤.....

어? 저게 문어야 오징어야? 헤헤....”

하면서 상황을 넘겼다. 하지만 그 뒤로도 직원들의 눈은 나에게 쏠려 있었다. 나는 애써 자연스러운 척 하면서, 아까참에 친해졌던 60대 아저씨와 매실 음료수를 ‘원샷 해요 원샷!’ 하면서 벌컥벌컥 마시며, 계속해서 정신없는 척 ‘헤헤’ ‘흐흐’ 웃어댔다. 애써 웃고는 있었지만, 그때 내 가슴은 정말 쿵쾅쿵쾅 뛰어댔다. 그 뒤 얼굴에 경련이 일어남을 느끼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오락실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뒤도 안돌아보고, 정말 미친듯이 지하철역으로 뛰어들어갔다. 근데 그렇게 찍은 사진들, 역시 다 별로여서, 기사에 별 다른 도움이 되지 못했다!

# 성인오락실 취재가 내게 남긴 것은..

며칠간 성인오락실을 취재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배웠다. 특히, 같은 주제를 다룬 기사여도, 그 방법이나 깊이에 따라 기사가 어떻게 달라질 수 있는지를 볼 수 있었던 점이 인상 깊었다. (이미 성인오락실에 대한 기사는, 식상해지리만큼 많이 나온 후였기 때문)  또 현장에서 취재를 할 때, 특히 이번처럼 잠복취재(?)를 할 때 가져야 할 각종 노하우에 대해서도 터득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 취재가 내게 남긴 가장 큰 것은 ‘사람’이다.

오락기 앞에 하루고 이틀이고 쉬지 않고 계속 앉아 있는 아저씨, 아줌마들은, 그냥 ‘게임중독자’들이 아니다. 다들 가족이 있고, 생각이 있고, 삶의 애환이 있는 옆 집 아저씨, 친척 이모이다. 나는 취재 중에 몇 분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 사람들의 기대, 아쉬움, 괴로움, 손짓, 한숨 등을 지켜보면서, 이 취재의 중심에 ‘사람’이 있음을 취재 내내 느꼈다. 그 사람들이 왜 거기에 삶을 꼬라박고 있을까. 좀 더 ‘잘’ 살아보고 싶다는 희망, 기대가 왜곡돼, 오락실 안에 갖혀 있는것 아닌가. 또 심지어 오락실을 운영하는 업주들 역시, ‘사람’이다. 계중에는 조폭과 사채업자와 연계돼 대규모로 사업을 하는 사람도 있지만, 되는 사업도 없고, 먹고 살 길도 없고 한데, 요즘 이게 뜬다고 하니까, 있는 돈 다 부어 오락실을 차린 사람들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실제 창신동에서 봉제공장을 하다, 팔고 동네에 성인피씨방을 차린 사람도 있었다. 요컨대, 내가 취재한 성인오락실 안에는 상품권과 바다이야기 오락기 외에도, ‘사람’이 있었다.

정부가 상품권 제도를 합법화 시키는 등, 각종 도박 사업의 진흥정책을 펼친 이후, 그것들은 나비효과를 일으켜, 실제 곳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나비가 아니라 커다란 새의 날개짓이 되었다. 어떤 아줌마는 이혼을 했고, 어떤 아저씨는 3억원 전재산을 날렸다. 또 어떤 분은 사채까지 끌어다 써 빚더미에 앉아 막막해 하고, 어떤 분은 예전부터 자신의 꿈이었던 봉제공장을 내놓았다. 엊그제, 정부에서 상품권 제도를 없애고, 성인오락실을 규제할 수 있는 각종 정책들을 발표했다. 이것이 또 어떤 나비효과를 일으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지, 아직 알 수는 없다. 다만, 이미 뿌리깊게 박힌 사람들의 상처가, 이번 정책으로 말끔히 치유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해 보인다. 예전의 나비효과가 ‘커다란 새’의 날개짓으로 확장돼, 큰 상처를 남긴 만큼, 이번의 나비효과는 ‘작은 파리’의 날개짓에 불과할 것 같다.

나는 여기서, 이번 취재의 의미를 찾았다. 그리고 한겨레가 하고 있고 할 수 있는 일,  기자의 역할, 기사의 힘에 대해서, 예전보다 뚜렷한 생각을 가질 수 있게 됐다. 결국, ‘사람’인것 같다. 오늘 하루 종일, 이 ‘사람’이라는 두 글자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오늘은 커피도 안마셨는데, 잠이 안 온다. 그래도 내일을 위해, 이제 잠을 청해봐야겠다.

 에효. 쓰다보니 글이 억수록 길어졌다;; 24시팀 인턴들 외에는, 서로 겪은 바를 얘기하고 나눌 기회가 많지 않아 아쉬움이 컸었나 봅니다. :) 아무쪼록, 우리 모두 다음주부터 새로운 부서에서 또 다른 경험들을 하게 될텐데! 이번 달의 수많은 ‘어리버리함’, 그리고 그것에 의한 수많은 ‘어믄 짓’들을, 지난 한 달간의 ‘경험’으로 잘 메꿔, 다음 달에는 좀 더 빡시게! 멋지게! 활동했으면 참참참 좋겠어요. 헤헤헤 고롬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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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 2006-08-01 2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재미 있군요. 인턴 기자분 취재 경험 톡톡히 했네요. ^^

sb 2006-08-02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