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한겨레)

내가 읽고 싶은 책을 내 입맛에 맞게 직접 만들어보면 어떨까. 출판인 중에는 이런 생각으로 직접 출판활동에 뛰어든 사람이 종종 있다. 일종의 딜레탕티즘이 출판에서 나타난 경우인데, 도서출판 책세상도 애초의 출발점은 이 고급한 취미활동에서 그리 멀지 않았다.

1986년 인쇄소를 운영하는 김직승(58) 사장이 소설가 조해일, 시인 호영송, 작고한 시조시인 전영대씨 등 문학하는 벗들과 의기투합해 출판사를 세웠다. 김 사장이 대표가 되고, 호 시인이 기획을 전담하는 주간을 맡고, 다른 문인들이 자문역을 맡았다. 문학이 좋아 모인 이들의 관심은 문학, 그 중에서도 한국문학과 프랑스문학이었다.

책세상의 성격이 크게 방향을 튼 것은 94년 김광식(42) 현 주간이 전임자로부터 주간 자리를 물려받으면서부터다. 김 주간은 책세상의 무게 중심을 문학에서 인문학쪽으로 성큼 이동시켰다. 출간 종수도 연 10권 미만에서 20여권으로 늘리고, 무엇보다 굵직굵직한 기획을 잇따라 발진시켰다. 딜레탕티즘에서 프로페셔널리즘으로 옮아간 것이다.

그 변모를 보여주는 첫 사례가 `카뮈 전집'이다. 호 주간 때인 87년 내기 시작한 카뮈 책을 김 주간은 아예 전집으로 틀을 바꿨다. 김화영 고려대 교수의 1인번역으로 1년에 한 권씩 출간돼온 `카뮈 전집'은 다음달 13권째가 나온다. `위대한 작가들'은 `카뮈 전집'에 이어 김 주간이 단독으로 기획한 전기 시리즈다. 97년 <릴케>를 내놓은 이래 <카뮈>까지 모두 9권이 나온 이 시리즈는 현존 전기 가운데 가장 질이 높다고 판단되는 것을 전공자에게 의뢰해 번역한다는 원칙 아래 만들어온 책세상의 `자존심'이다. 올해 안에 <제임스 조이스> <도스토예프스키>가 추가로 나올 예정이며, `작가들'이 끝나면 미술가, 음악가, 사상가로 시리즈 범위를 넓힌다는 계획이다.

그런가 하면 `밀리터리 클래식'은 책세상이 자랑하는 또다른 기획이다. 먼저 출간한 버나드 로 몽고메리의 <전쟁의 역사>가 독자의 호응을 얻은 데 힘입어, 독립된 기획을 구상한 끝에 나온 이 시리즈는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의 고전 <전쟁론>을 필두로 해 지난해 말 <제공권>까지 모두 10권으로 완간됐다. 전쟁론에 관한 한 국내에선 독보적인 시리즈라 할 것이다.

책세상의 기획력은 니체 사망 1백주기를 맞아 얼마 전 펴내기 시작한 `니체 전집'(전 23권)으로, 또 올해 시작해 연말까지 마감할 예정인 `릴케 전집'(전 13권)으로 벋어나가고 있다. 이 전집류는 완전한 번역본, 곧 정본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뛰어든, 돈을 생각하면 벌이기 힘든 일들이다.

책세상은 올 들어 또 하나의 새로운 기획을 탄생시켰다. 지난 5월 탁석산씨의 <한국의 정체성>으로 얼굴을 내밀어 지금까지 19종이 나온 `책세상문고·우리시대'가 그것이다. 하나의 주제를 짧지만 밀도 있게 펼치는 이 문고 시리즈는 30~40대 패기만만한 필자들이 논쟁적인 문제제기를 함으로써 토론문화를 활성화하겠다는 김 주간의 의지가 밴 작업이다. 당대의 쟁점에 적극적으로 참여함과 동시에 고전의 무게를 지닌 저작들을 우리말로 옮기는 것, 책세상의 듬직한 어깨가 스스로 진 짐이다.

고명섭 기자michae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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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6-07-16 1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져갑니다

sb 2006-07-16 12: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고명섭 기자님이 쓰신 글인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