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난 종신형 가족제도를 불신한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끊임없는 형성과 대립, 재구성의 운동 과정으로 바라보는 변증법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이제는 솔직한 누구나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만큼 현재진행형의 대립이 너무나 확연하다.

오늘날 행복한 가족이 많은가 불행한 가족이 많은가, 이 질문에 답하는 것 만으로도 충분하다는 것이다.

- 집안일이나 회사일에 녹초가 된 부부들의 불행, 교육의 부담을 짊어진 부모들의 불행, 부모의 자랑거리가 되어야 하는 아이들의 불행, 경제 취향 종교로 인한 불화에서 오는 불행이 가족제도를 지키기 위한 불행이라면,

부모에게 버림받은 자식들의 불행, 편부모 자식들의 불행, 결혼하지 못하는 동성애자들의 불행은 가족제도를 선택하기 위해 감수하는 불행이다.

- 그럼, 이거 사서 고생인가. 쓰지도 버리지도 못하는 불량 가전제품 처럼, 사회에게 강매당한 가족제도 속에서 곯치를 썩고 있는 것일까. 결론은 단순하지 않다.

가족제도를 선택하지 않았더라도, 회사일과 집안일은 자신을 괴롭힐 것이고, 교육비는 무거울 것이며,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삶은, 동성애자들에 대한 따가운 시선은 여전히 불행할 것이다. 부모의 경제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은 여전히 길거리쉼터와 PC방을 전전긍긍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고통들은 가족제도의 선택 여부와 상관없이 존재한다.

단, 가족제도를 선택했을 때, 이중삼중의 고통으로 다가올 뿐이다. 나의 불행이 나의 가족의 불행이기 때문이 아니다. 나의 불행은 가족의 불행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다만, 가족간의 관계가 그렇다고 느끼게 만들 뿐이다. 행복도 마찬가지이다.

- 그렇다면, 행복도 관계수 만큼 배가 되고, 불행도 관계수 만큼 배가 된다면 적어도 손해는 아닌가? 그렇다. 손해는 아니다.

다만, 진짜 문제가 거기에 있지 않다. 진짜 문제는 행복과 불행의 선순환이 일어나지 않을 때 발생하기 때문이다. 나의 행복이 가족의 불행이고, 가족의 불행이 나의 행복일 경우 말이다. 나의 선택으로 인해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두 명이고, 불행을 느끼는 사람이 세 명이 될 수도 있다.

이 경우, 관계는 관계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선택이나 행동에 다시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어떤 선택을 하든, 완전히 행복하지도 완전히 불행하지도 않다. 쉽게 선택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해결되지 않는, 아니 해결할 수 없는 갈등이 시작된다.

- 어차피 가족제도가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는 사회 속에서 수많은 관계를 맺고 살아가며, 관계로 인한 행복이나 고통, 행복도 고통도 아닌 갈등은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손을 놓아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갈등을 해결하는 방식에는 여전히 차이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사회에서의 갈등 해결 보다, 가족제도 내에서의 갈등 해결은 훨씬 비민주적이다.

사회와 달리 가족제도 내에서 이루어지는 관계는, 종신계약이기 때문이다. '검은 머리 파뿌리 되도록', 한 번 이루어지면 영원히 유지되어야 하는 종신계약.

- 사람들은 영원하지 않으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가족제도 뿐만 아니라, 사랑, 신념, 취향, 등 영원할 수록 더 가치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영원하지 않아도 가치가 있다. 사람의 생각과 취향, 애정은 수차례 바뀔 수 있다. 누구나 인정하는 상식적인 얘기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계를 맺을 때 이 상식을 잊는다.

계약, 그것이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것이라 하더라도, 자신을 충분히 돌아보고 그에 맞는 계약을 맺어야 한다. 일년이면 일년, 십년이면 십년, 종신이면 종신. 왜 천편일률 적으로 지키지 못할 종신계약을 맺는가.

- 이혼이나 가족의 해체와 같은 계약파기 행위가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당연지사. 누군가가 물질적 정신적 대가를 치루면서 갈등이 수습해가야 한다.

하지만, 이들이 전적으로 파렴치한은 아니다. '무료'라는 말만 듣고 덜컥 가입한 서비스에 된통 요금을 치르는 휴대폰 사용자 처럼, 이들은 분명 자신의 약속(계약의 준수)을 지키지 못했고 그 대가를 치루어야겠지만, 이들이 계약의 주체가 되지 못한 불공평한 계약 과정도 참작되어야 한다.

- 적어도 나만은 종신형 가족제도를 선택하지 않겠다는 소박한 바람이 이루어질까. 내가 이것을 선택하는 것 역시도, 미약하지만 늙어가는 부모님께는 불행이고, 갈등의 소지가 다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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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울 2007-07-28 14: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족, 만만치 않죠. 국가, 자본만큼 제도라는 것이 말입니다. 없는 사람들의 가족이란 것이 말예요. 가족이란 틀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단란함, 사랑..등등도 말입니다. 공적영역을 사적영역과 분리해내고, 사적영역에 지나치게 관심갖게 만든 틀도 가족이란 제도에서 파생된다고 하더군요. 당위의 문제는 아니겠죠. 그 가족제도라는 것이 몇백년은 더 흘러가는 것이고...아니 더 길 수도... 현실은 그렇지 않으면서도...또 선택해야한다면...어이쿠 복잡해지네요. 그냥, 가족제도란 문제제기에 공감하면서 흔적 남깁니다.

sb 2007-07-30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천편일률적인 것은 나쁘지만, 가족제도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겠지요. 스스로 선택하고 선택이 존중받았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