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의학의 권력 -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1973~74년
미셸 푸코 지음, 오트르망 옮김 / 난장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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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셸 푸코의 1973-74년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이다. 푸코의 강의록은 이번에 처음 봤다. 이보다 유명한 강의록들, 특히 신자유주의와 관련된 강의록들을 먼저 볼까 하다가, 그나마 친숙한 『감시와 처벌』의 탄생에 직접적으로 기여했을 이 책 『정신의학의 권력』을 택했다. 사실 나는 정신의학에는 별 관심이 없다. 따라서 권력을 다루는 부분들은 치밀하게 읽고, 나머지 부분들은 빠른 속도로 읽어내려갔다. 『감시와 처벌』의 내용과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3, 4강이 제일 흥미로웠고, 『광기의 역사』로부터 『감시와 처벌』로의 주제와 방법론의 이행 과정을 잘 보여주는 1, 2강도 흥미로웠다. 나머지 5강부터 12강까지는 다음에 이 책을 참고할 일이 있어도 다시 볼 것 같지는 않다. 푸코가 쓴 강의 요지중에서는 삼중의 권력을 정리하는 부분이 흥미로웠다. 맨 뒤에 실린 옮긴이 해제도 길지만, 매우 충실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읽고, 리뷰를 쓰기 위해 목차를 다시 보니, 각 강의의 핵심들이 정리되어 있는데 유용하다.

 

2. 『광기의 역사』로부터 『감시와 처벌』로의 이행

그 동안 막연하게 푸코는 「니체, 계보학, 역사」(1971) 이후 고고학적 방법론에서 계보학으로 이동하였고, 1970년대 계보학 시기의 정점에서 『감시와 처벌』(1975)과 『성의 역사 1: 앎의 의지』(1976)가 출판되었다고 알고 있었다. 1, 2강을 읽으면서 이것을 좀더 구체적으로 알 수 있었다. 푸코는 『광기의 역사』에서 자신이 시도한 작업이 도달했거나 중단된 지점이 곧 새로운 출발점이라고 밝히며, 이전까지의 고고학적 작업들에 대한 자기 정정을 시도한다(33-39). 이제 그의 연구는 (1) ‘표상(representation)’ – 광기의 이미지, 광기가 불러일으킨 공포, 광기와 관련된 지식 등 이 아니라, “담론적 실천을 야기하는 심급으로서의 권력장치를 분석의 대상이자, 출발점으로 삼게 된다. (2) 그 전에는 권력을 폭력과 연관시켜서 생각하였으나, 중요한 것은, 폭력적 형태를 띠든 아니면 합리적으로 계측되고 관리되는형태를 띠든, 권력의 적용 지점은 언제나 신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폭력의 수반 여부는 그의 연구에서 주변화된다. 마지막으로, (3) 규칙성을 체현하고 있는 제도에 대한 강조는 그 제도 안팎에서 작동하고 있는 힘의 관계를 제대로 분석하지 못하게 하므로, 중요한 것은 제도의 분석이 아니라, “권력의 불균형”, 제도들을 가로지르는 전술적 배치에서 어떤 힘의 관계가 작동하고 있는지를 분석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37, 64, 69-71, 372, 510, 559). 고고학이 담론의 불연속적인 역사를 다루었다면, 계보학은 권력을 다룬다고 이전에 막연하게 알고 있던 것의 세부적 사항들을 좀더 잘 알게 되었다. 곧 표상, 폭력, 제도는 이제 주변화되고, (1)장치, (2)신체, (3)서로 대결하는 힘 속에서 활용되는 전술과 이들 간의 불균형 혹은 비대칭에 대한 주목, 곧 권력의 미시물리학이 그의 권력 분석의 핵심부에 포진하게 된 것이다.

 

푸코는 역사적 장면의 무대(scene) 위에서 자신의 이론을 연출하는 것에 탁월하다. 다미앵의 신체형, 파리 소년감화원의 시간표, 페스트 도시, 죄수 호송차, 마지막 쇠사슬 행렬, 라스내르, 비독, 베아스의 일화들이 『감시와 처벌』에서 제시되었던 것처럼, 정신의학적 치유와 규율의 여러 장면들이 제시된다. 2강은 비세트르에서 정신이상자들을 쇠사슬에서 풀어준 것으로 유명한 피넬의 텍스트에 등장하는 미친 왕 조지3세의 치료 장면으로 시작한다. 이는 주권권력과 규율권력의 대립 장면이자, 전자의 거시물리학으로부터 후자의 미시물리학으로의 이행을 대변한다. 비대칭적인 힘을 지닌 서로 다른 의지의 대결, 이 과정에서 등장하는 규칙의 집요함을 통해 작동하는 은밀하고 분산된 규율권력, 그 귀결로서 한 의지에 대한 다른 의지의 지속적 순종이 그 무대 위에서 상연된다.

 

3. 규율권력과 권력 장치들

3강의 앞 부분은 마치 연극이 상연된 후 진행되는 연출자와 관객 간의 대화 같다. 미친 왕 조지 3세의 치료 장면에서 제시된 주권권력과 규율권력의 대비를 거론하면서, 푸코는 자신의 규율권력 가설을 제시한다. 규율권력은 중세의 수도사 공동체들에서 형성되어, 이후 평신도 공동체들로, 그리고 17-18세기에는 사회 속으로, 19세기에 이르러서는 더욱 일반화되어 개인의 신체와 맞닿은 최말단의 수준에서 모세관을 침투하여 뇌의 말랑말랑한 섬유를 관리하기에 이르는 권력과 신체의 시냅스적 접촉”(72) 같은 양태(modality)를 띠게 되었다고 한다. 규율권력 이전의 주권권력은 징발-지출로 매개되는 군주와 신민의 비대칭적 관계, ②권력관계의 토대가 되는 표식과 그것의 끊임없는 재현동화(reactualization), 그리고 부가적 폭력, ③비동위체적인 주권 장치들의 다발로 구성되어 있었다(75-80). 이에 비하여, 규율권력은 개인의 신체, 몸짓, 시간, 품행을 총체적으로 포획하며(↔생산품이나 용역의 징발), ②완전한 가시성 하에서 점진적이고 단계적 훈련을 통해 규율을 증대시키며, 문서기록을 통해 중앙집중화된 개별성을 구축(경찰적 개별화)하여 품행의 잠재성 자체를 규율하여 행위 자체 이전에 개입하려는 일망감시적 특징을 보이고, ③동위체적인(isotopic, 상이한 체계 간의 충돌이나 양립불가능성이 없고, 한 장치에서 다른 장치로의 이행이 용이하지만, ‘분류불가능한잔재들을 필연적으로 내포할 수밖에 없으므로 규율 권력의 여백을 갖고 있는) 규율장치로 특징지워진다(80-92). 주권 권력 하에서는 신체의 단일성에 결부되지 않았던 주체-기능이 신체를 포획하는 규율권력 하에서 신체의 단일성에 정확히 합치된다. 곧 규율권력은 예속된 신체를 생산하고, 개별화하고, 배열한다(94). “주체-기능, 신체의 단일성, 지속적인 시선, 문서기록, 세세한 형벌 메커니즘, 영혼의 투영, 정상과 비정상의 구분이 규율권력의 계열을 이루게 된 것이다(94). 이러한 관점에 입각하여, 푸코는 개인에 대한 독창적 시각을 제시한다. 통상적인 법률적 개인주의는 (계약으로 동의된 경우 외에는 어떤 권력도 제한할 수 없는 권리를 지닌) 개인을 자본주의 경제의 발전과 부르주아의 정치적 요구 속에서 등장한 것으로 이해한다. 이에 반하여, 푸코는 (감시의 체계에 둘러싸여 규범화의 절차에 따라야 하는 예속화된 신체로서) 개인을 (역사적 현실이자, 생산력의 요소이자, 정치력의 요소로서) 출현시킨 것은 규율테크놀로지라는 규율적 개인주의를 개진한다(96).

 

중세부터 18세기까지 주권적 관계의 일반적 플라즈마 내부에 작은 섬 같은 것으로서 존재하였던 규율장치들은 17-18세기를 경과하면서 점차 확장되어 전체 사회에 기생하게 됨으로써 규율사회를 구성하고 주권적 사회를 대체하였다(105-6). 이러한 규율장치의 기생적 침투는 학생, 식민지 주민들 뿐만 아니라, 방랑자·걸인·유랑자·비행자·창녀 등에 대한 내적인 예속지배, 곧 고전주의 시대의 구금, 종교 단체들, 군대, 노동계급의 작업장과 거주촌 등으로 확산 되어 사회 전체를 뒤덮어가기 시작하였다 (114). 규율장치의 확산은 바로 자본의 축적에 필요한 인간의 축적을 원활히 하는 것이었다.

 

3, 4강에서는 『감시와 처벌』의 소재들[칸토로비치의 『왕의 두 신체』 (79), 프리드리히 2세와 프로이센 군대(83), 고블랭 직물제조소의 직업훈련학교(84-86), 판옵티콘(117-126), 메트레 소년감화원(133) ]이 등장하는데, 『감시와 처벌』의 번역이 매우 이상한 관계로 해당 부분이 나올 때 참조하면 유용할 것이다.

 

4. 삼중의 권력  

정신의학의 등장을 본격적으로 다루는 5강 이후는 건너뛰고, 푸코는 강의요지에서 광기에 대한 비광기의 절대적 권리가 체현된 삼중의 권력을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490-1). ①(정신의학의) 전문지식, ②(환자의) 착오를 수정하는 양식, ③정상성. 이 과정에서 권력과 지식의 상호강화와 정상/비정상의 구분에 기반한 권력 행사가 전면에 부각된다. 이 삼중 권력 도식은 비단 광기를 다루는 정신의학에 국한되지 않고, 다른 소재로 푸코의 권력 논의를 이어갈 때에도 참조할 수 있을 것 같다.

 

5. 충실한 옮긴이 해제

옮긴이 해제 111쪽에 달할 정도로 길다. 처음에는 뭐 이렇게 긴가 하면서 투덜거렸는데, 푸코에 대해 잘 모르는 나 같은 독자에게는 매우 유용하였다. 그 전에는 푸코가 정신과 진료를 받았고, 정신병리학 학사학위를 받았는지도, 『광기의 역사』(1961) 이전에 『정신병과 인격』(1954)를 냈는지도, 이 저작을 『정신병과 심리학』(1962)으로 개작하면서 어떠한 수정을 가했는지도 전혀 몰랐다. 이 긴 옮긴이 해제는 푸코의 지적 여정 속에서 이 강의록이 갖는 의미를 충실히 설명하고 있고, 강의록 본문의 내용들을 요약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장황하지만 잘 정리하고 있다. 또 맨 끝에 나오는 경제적 세계화에 관한 리카르도 페트렐라의 이야기는 매우 흥미롭다(626-7).

 

6. 번역 실수?

전반적으로 훌륭한 번역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심쩍은 부분이 몇 개 있어 적어둔다. 아래에 적어둔 것들은 실수일 수도 있고, 영역판의 실수를 교정한 것일 수도 있다. 어떤 경우든, 문맥을 이해하는 데에는 별 지장이 없다.

 

- 133: 10: “아버지, 큰 형이라는→ “아버지, 할아버지라는” (father, or grandfather, 영문판, p. 85)

- 142: 19: “제 생각에 1838년의 법률에는 두 가지 근본적인 사항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 “다시 말해앞에 짧은 한 문장이 누락되었음. [I think the 1838 law consists in two fundamental things. The first is that confinement overrides interdiction. (첫째, 감금이 금치산에 비해 우위를 점하게 됩니다.) That is to say, in taking charge of the mad, the essential component is now confinement, interdiction only being added afterwards, …, 영문판, p. 95]

- 151: 20: “성무일과서를 옆구리에 끼고→ “성무일과서를 내팽개치고” → “puts aside his breviary, 영문판, p.100)

- 230: 6: “마지막으로 [네번째] 장치에 대해 …” 영문판 157쪽에는 “Finally, the [fifth] apparatus is …”로 되어 있는데, 몇 번을 세어보았는데, 이 부분은 국역본이 맞는 것 같다.

- 408: 1; 437: 8: “19세기의 2/3분기” → 대략 1800-1866년 동안의 시기에 (the first two thirds of the nineteenth century, 영문판, p. 284, 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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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체근대
지그문트 바우만 지음, 이일수 옮김 / 강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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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11일 조간신문을 통해 바우만이 영국 시간으로 9일 유명을 달리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기사를 오려서 읽다 만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에 고이 접어 넣었다. 그 날 오전에는 후배가 바우만이 죽었다는 소식을 보고 내 생각이 났다며 안부를 물었다. 자기 주변에는 바우만을 좋아했던 사람이 나밖에 없다며. 언제쯤 그 후배에게 무슨 맥락에서 그 말을 했는지 도통 감이 안 잡혔다. 바우만 책을 이전에 대여섯 권 정도 읽었다. 그의 주저라 할 수 있는 『현대성과 홀로코스트』와 『액체근대』를 한 번 읽어보고 싶었는데, 쏟아져 나오는 그의 저작들과 좀더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이 『액체근대』일 것 같아서 읽기 시작했다.

 

그에 대한 애도를 좀 제대로 해보고 싶어서였다.

 

 

바우만의 주요 테마

목차는 해방, 개인성, /공간, , 공동체를 다루는 다섯 개의 장과 사회학적 글쓰기에 관한 보유로 이루어져있다. 그러나 이 책뿐만 아니라 2000년대에 나온 거의 모든 저술에 등장하는 주요 개념들을 정리하는 방식부터 시작하는 것이 책 전체의 이해에 효과적인 것 같다.

 

(1) 액체 근대

안토니 기든스, 울리히 벡, 스캇 래쉬 등과 마찬가지로 바우만은 포스트모더니티 개념에 대해 회의적이다. 유튜브 강의 Liquid Modernity Revisited를 통해서 그는 이 이유를 두 가지로 밝힌다. 첫째, 그는 탈근대라는 시대 진단에 동의하지 않는다. 근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근대의 성격이 바뀌었을 뿐이다. 둘째, 포스트모더니티가 갖고 있는 개념적 부정성(negativity) 때문이다. 포스트모더니티는 모더니티 개념이 전제되어야 전개될 수 있는 논의이고, 그 자체로서 오늘날의 현실에 대해서 실정적으로(positively) 기술하지 않는다. 이러한 불만 때문에 기든스, , 래쉬 등은 2차 근대, 성찰적 근대, 위험사회 등의 개념을 사용하였고, 바우만은 액체성 (liquidity) 혹은 유동성 (fluidity)근대 역사에서 여러모로 새로운 단계인 오늘날의 속성을 파악하기에 적합한 은유이므로 액체 근대라는 개념을 사용한다(9, 55). 곧 오늘날은 근대 이후가 아니라, 무거운 고체적 근대 이후의 가벼운 액체적 근대로 볼 수 있다. “과거의 근대성은 (오늘날의가벼운근대성과 대조되는) ‘무거운것으로, (‘유동‘ ‘액체혹은용해와 구분되는) ‘고체의 특성을 지닌 (확산이나모세혈관식 분산과는 대조되는) 응축된 상태이고, 마지막으로 (그물망식 조직과 다르게) 체계적이다”(43).

무거운 고체적 근대에서 가벼운 액체적 근대의 단계로 이행함에 따라, 장기-지속성, 고착성, 상호의존성이 즉시성, 일시성, 이동성, 개인화로 대체되었다. 또 이는 역사적 과정이 하나의 목적을 지향하고 있다는 믿음과 인류, 민족, 혹은 어떤 집단이 고유의 과제와 책임이 있다는 믿음의 종말을 갖고 왔다. 이제 인류 전체의 이성이나 정의보다는 개인의 권리, 책임, 자질이 더 중요시된다(49). 또 고체 근대에서 사회학의 주제는 인간의 복종과 순응의 조건들이었지만, 액체 근대에서 사회학은 자유와 자율성의 촉진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한다(339).

 

(2) 개인화

울리히 벡에 의해서 정초되고 발전한 개념인 개인화가 바우만의 깊은 사색에 의해 독특하게 정의된다. 바우만은 엘리아스의 『개인들의 사회』를 인용하며, 개인이 사회와 대립되는 존재가 아니라, 사회의 구성단위로 자리매김된 것을 근대의 특성으로 파악한다. 근대는 사회와 개인을 양립가능하면서 상호의존적으로 상정하였다. 바우만에 따르면, “’개인화 [신분 같은] ‘주어진것으로서의 인간의 정체성이 아니라, 이를 하나의 과제로 삼아 그 과제를 수행할 책임과 결과에 대한 책임을 행위자에게 지우는 [계급 같은] 이다. 이는 실제적(de facto) 자율성의 확립과 상관없이 법적(de jure) 자율성이 확립되는 것이다(53). 근대성은 개인의 사회적 지위가 강제적이고 의무적으로 결정되던 것을 개인의 결단의 결과로 바꾸어 놓았다. 그러나 개인화는 각 국면에 따라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고체근대에서 개인화는 기존의 귀속적 신분을 해체하면서, 후천적 행위에 의해 구성원의 자격이 주어지는 계급으로 개인들을 합류시켰던 반면, 액체근대에서 개인화는 이전의 계급과 같은 새로운 집단성이라는 목적도 전망도 없이, 개인들은 일자리를 찾아 끊임없이 움직이게 된다. 불확실성은 사회로부터 발생되지만, 그 책임은 이제 개인이 져야 하는 것이다.

액체 근대에서 개인의 고충들은 유사할 수는 있지만, 더해질 수 없는 것이 된다(58). 이 정치적으로 도덕적으로 무관심한 개인은 시민의 적이다(59). 하버마스의 관찰과 정반대로, 이제 사적인 관심이 공적 공간을 식민화하고 있다(60, 64, 112, 219). 이제 생활세계를 체계의 식민화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해방을 위해서라도 공적 영역, 곧 정치를 강화해야 한다(82). 그리고 이 정치(Politics)의 임무는 법률상의 개인의 여건과 실제 개인이 될 수 있는 기회, 즉 자신의 운명에 대한 통제권을 쥐고 진정 바라는 선택을 할 수 있는 기회 사이의 엄청난 간극을 극복하는 것, 공적 공간을 정비하여 사람을 채워넣는 일인 것이다(63-64). 곧 공동의 대안적 삶은 생활정치(life politics)로 후퇴하여 자족하는 것이 아니라, 대문자 정치(Politics)를 활성화시키는 것이다(83). 액체 근대의 개인화된 사회에서 정치의 임무를 도출하는 바우만의 이러한 방식은 벡의 개인화와 하위정치(subpolitics)에 관한 논의보다 훨씬 진일보한 것으로 보인다. [더 자세한 것은 289쪽에서 스치듯 언급되는 In search of Politics(1999)를 봐야할 것 같다.]

 

(3) 소비자 사회

무거운 근대의 포드주의 하에서 자본과 노동은 견고하게 바닥에 고정되어 모두 쇠우리 안에 갇혀 있었다(92-96, 187, 232-236). 그러나 오늘날 자본의 이동성은 급증하였으나, 노동은 여전히 움직일 수 없다. 노동은 쇠우리 안에서 고용불안정에 시달리고 있지만, 자본은 쇠우리 바깥으로 나가 버렸다(194). 이러한 자본과 노동의 상호결속의 종말은 푸코의 규율사회가 기반하고 있는 원형감옥 모델의 종말이기도 하다. 규율하는 자와 규율당하는 자가 무거운 원형감옥 안에 가까이 존재했던 고체 근대와 달리, 액체 근대에서 규율하는 자의 편에 속하는 이들은 더 이상 피통치자들을 가까이서 감시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19-21, 195-6).

전체 경제에 있어서나, 개인의 정체성 형성 모두에서 이제 생산자의 역할보다는 소비자의 역할이 중요시된다(122-142, 195-198)). 이제 자본의 결속 대상은 노동자가 아니라 구매자/고객/소비자가 되었다(239-242). 고체 근대의 탄생을 특징 짓는 만족의 지연’, 곧 금욕적 노동윤리는 액체 근대로 넘어오면서 이제 최소한으로 줄일수록 좋은 희생이자 곤경으로 간주된다(251-5). 만족의 지연은 없을수록 좋고, 불가피하다면 최소화해야 하는 것이 되었다. 노동윤리가 소비의 미학으로 대체된다. 욕망이 소비를 통해 충족되고 끝나면, 또 다른 욕망을 자극하는 소비의 대상이 생기고 이를 또 소비하게 되는 과정이 무한히 지속되는 것이다(251-4).

 

바우만의 서술 스타일

『액체근대』는 읽는 데 시간이 꽤 걸렸다. 아무래도 사회과학적 글쓰기라고 하기에는 저자의 스타일이 돋보이기 때문인 것 같다. 바우만의 관심은 다방면에 걸쳐 있다. 그의 글은 스마트폰, SNS, 토크쇼, 인공지능, 첨단무기 등 오늘날의 테크놀로지가 이룬 변화들에 무척 민감하다. 또 쇼핑, 연애, 여가, 일시성 등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서술들도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그런데 그의 뛰어난 점은 이러한 사례들로부터 개인들이 느끼는 불안, 공포, 사랑, 불의 등에 관한 뛰어난 통찰을 보여주며, 이것이 독자들의 개인적 감정의 경험들과 공명한다는 것이다. 바우만의 매력은 바로 그가 사회적 현실의 변화와 독자들의 감정적 경험을 훌륭한 통찰로 매개한다는 점이다. 이는 고전과 현대의 文史哲을 포괄하는 광범위한 독서가 현인의 지혜를 통해 숙성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며

그러나 그의 탁월한 문제진단에 감탄하는 독자라 하더라도, 그의 책을 다 읽고 나면 뭔가 좀 허전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마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관한 부분, 곧 대안에 대한 아쉬움이다. 그는 세상에 어떠한 문제가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명확한 해법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이 문제적 상황에 대한 윤리적 개입의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다 함께 세상에 대한 대안을 계속 고민해보자고 하는 것 같다. 액체근대에서 또 다른 견고성을 가정하는 대안은 아마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완전한 대안이 다 준비된 다음에 하는 싸움이란 세상에 없다. 대안이란 것은 고쳐야할 현실이 지양된 이며, 액체근대의 가능한 대안이란 아마도 유동적인 liquid alternatives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현인 지그문트 바우만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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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나는 섬 - 1집 망원동로마니
신나는 섬 노래 / 망원동로마니 / 201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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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촛불집회에서 처음 알게 되어 구입했는데, 곡들이 그림 같음. 때론 신나고, 때론 슬프고... 듣다 보면 촛불 공연 때 수화하시던 분의 흥겨운 몸짓이 계속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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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 (Malo) 5집 - This Moment
말로 (Malo) 노래 / 유니버설(Universal)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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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숙한 곡들이지만, 말로가 부르니 색이 확 바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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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과 바다 - 칼 슈미트의 세계사적 고찰
칼 슈미트 지음, 김남시 옮김 / 꾸리에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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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칼 슈미트의 책은 이번에 처음 읽었다. Governing by Debt에서 라자라토는 슈미트가 정의한 노모스의 세 가지 뜻 – appropriation, distribution, and production – 에 주목하면서 자본주의의 국면이 어떻게 변화하였는지 밝혔는데, 그 논의가 흥미로워 슈미트의 국역서들을 찾아보았다. 1995년에 대우학술총서로 출간된 『대지의 노모스』(최재훈 역)는 라자라토가 인용하는 책 말미의 부록을 누락하고 있었다. 살짝 실망하여 다른 책들을 보다가 읽게 된 책이 바로 『땅과 바다: 칼 슈미트의 세계사적 고찰』(꾸리에)이다. 이 책의 초판은 1942년에 출판되었다.

  먼저 구어체로 쓰인 문체가 특이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슈미트가 딸에게 이야기해주는 형식을 한국말로 옮긴 것이었다. 20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각 장은 제목을 갖고 있지 않아서 목차만 보고는 무슨 이야기를 하는 지 짐작할 수 없다. 그러나 고대의 과학적 사상과 구약의 신화에서 추출된 개념들을 통해서 서양사를 직조하는 슈미트의 안목이 탁월하다.

 

1.

  “인간은 땅의 존재라는 말로 시작되는 책은 소크라테스 이전의 이오니아 자연철학 시대의 4원소 -, , 공기, 로부터 시작하여, 욥기(40-41)에 나오는 LeviathanBehemoth를 차용하면서 19세기 말까지의 세계사를 양자간의 투쟁, 곧 대양(권력)과 대륙(권력) 간의 투쟁으로 흥미진진하게 해석한다.

  1000년경부터 지중해를 지배했던 베네치아, 브로델이 말하는 장기 16세기에 해당되는 시기에 가장 앞선 조선기술과 고래잡이를 했던 네덜란드(6), 16세기 후반부터 사략선을 앞세워 가톨릭 세계권력인 스페인을 결국 격퇴하는 대양 주름잡이영국(7-9)까지 오늘날 세계체계 연구자들이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헤게모니라고 부르는 국가들의 등장이 바다의 제패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이 중에서 영국은 이전의 대양 권력들과는 달리 전지구적 차원에서 공간혁명, 곧 공간에 대한 인간의 관점과 척도, 준거뿐 아니라 공간 개념의 내용 자체를 변화시키는 혁명을 성취한다(10, 72). 그 이전의 알렉산더 대제의 정복, 1세기의 로마 제국 확장, 십자군 전쟁이 문화적 전환과 동반된 공간의 확장을 초래하였다면, “로마 제국의 멸망, 이슬람의 확산, 아랍과 터키의 침략은 수백 년 동안 지속된 유럽의 육지화와 공간의 수축을 야기했(11, 77).

  16-17세기의 신대륙 발견과 세계 일주는 진정한 의미에서 처음으로 완벽한 지구적 규모의 공간혁명을 발생시켰다. 이제 지구가 둥글며 태양을 공전하고, 우주는 별들이 무한한 공간 속에서 중력의 법칙 덕에 인력과 척력이 서로 균형을 유지하면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라는 추론이 확고부동한 경험이자 실체적 사실로 자리매김된다. 이로부터 이전까지는 낯선 관념이었던 비어있는 공간을 인식하고, 자신과 세계가 그 빈 공간 속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12, 81-3). 새로운 공간 개념의 등장은 중세 고딕 예술이 르네상스 회화의 원근법에 의해 대체되는 것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2.

  슈미트는 13장에서 모든 질서란 결국 공간의 질서라고 하면서, 근본적인 질서, 노모스를 각주에서 짧게 정의한다. 14장부터 그는 유럽이 신대륙을 (원주민으로부터 강제로) 취득하고, 나눠갖기 위해 서로 싸우는 과정 속에서 노모스의 세 가지 의미 취득, 분배, 생산과 소비 가 적극적으로 나타난 것으로 해석한다. 소위 신대륙의 발견 이후의 역사를 종교전쟁으로 폭발한 기독교 정복자들 간의 갈등, 가톨릭과 프로테스탄티즘 사이의 세계투쟁뿐만 아니라, 땅과 바다, 흙과 물이라는 원소의 대립과 연결시키는 그의 논의는 매우 흥미롭다. 그는 이러한 대립을 진정한 동지-적의 대립이라는 정치적인 것에 관한 그의 대표적 논의와 연결시킨다.

  16-18장은 홉스봄이 19세기 3부작을 통해서 다룬 영국 헤게모니의 등장과 성숙 과정의 핵심을 압축적이면서 속도감 있게 서술한다. 영국의 대양 취득, 이에 기반한 자유무역 제국주의, 그리고 산업혁명이 다뤄지는데, 이 과정에서 땅과 바다의 원소적 관계도 새로운 단계에 접어들게 된다.

 

왜인지 아니? 거대한 물고기였던 리바이어던이 이제 기계로 변신했기 때문이야. … 기계는 바다와 인간 사이의 관계를 변화시켰지. 대양 권력의 위대함을 불러내던 대담무쌍한 인간의 힘이 이전까지의 의미를 잃어버렸지” (119-120).

 

그리고 그는 이 산업혁명이 영국 세계권력의 비밀이었던 진정한 해상적 실존의 핵심을 타격하였다고 한다.

  19-20장은 미국과 독일 같은 후발 산업화 국가의 추격 과정, 2차 산업혁명과 제1차 세계대전을 다루는데, 이 때 등장한 공군력은 땅과 바다에 이어 새로운 차원을 점령한다. 무기, 교통수단, 척도, 규범 등에서 또 한 번의 공간혁명이 진행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 시기는 흙과 물에 이어 공기 혹은 불이라는 새로운 원소의 등장으로, 혹은 리바이어던과 베헤모스에 이어 세 번째 거대한 새가 등장했다고 특징지울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확실한 것은 두 가지이다. 첫째, 16-17세기에 진행된 공간혁명만큼 혹은 그보다 더 파급력이 큰 공간혁명이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둘째, 영국의 바다 취득의 토대가 사라지고, 당시까지의 대지의 노모스 역시 사라지고, 인간 실존의 변화된 척도와 관계들이 새로운 노모스를 강제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어떤 이들은 이를 세계의 종말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이는 노모스 자체의 종말이 아니라, 낡은 노모스의 사멸과 새로운 노모스의 등장이라는 것이다.

 

3.

1981년에 쓰여진 후기에서 슈미트는 가족의 삶이 경작지인 땅을 필요로 하듯, 산업은 외부로 부흥하기 위해 바다를 필요로 한다는 헤겔의 『법철학 요강』 247절을 인용하면서, 눈 밝은 독자들은 243-246절이 맑스주의를 통해 전개되었던 것과 유사한 방식으로 자신의 이 책이 247절을 전개시키려 했다는 것을 발견하리라고 이야기하는데, 무슨 소리인지 몰라서 헤겔의 『법철학』을 찾아보았다. 『법철학』은 1820년에 출판되었고, 360절로 되어 있는데, 본론은 법/권리, 도덕, 인륜의 3부로 구성되어 있고, 그 중 3부 인륜은 가족, 시민사회, 국가로 이루어져 있다. 슈미트가 언급하고 있는 부분은 32장 시민사회의 뒷부분에 해당된다. 243절은 시민사회에서의 부의 축적과 노동자 계층의 소외, 예속, 궁핍을, 244절은 노동자계급의 자존감 상실과 천민으로의 전락, 그리고 반대편의 부의 집중을, 245절은 빈곤 구제를 위한 공적 개입과 자율적 시민사회의 원리 간의 대립, 그리고 생산물의 과잉과 소비의 부족, 곧 맑스가 『공산당선언』에서 이야기한 상업공황에 관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이후의 절은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확장과 식민지의 건설로 이어진다.

  오래 전 읽은 「헤겔 법철학 비판 서문」의 내용은 이제 사실 기억도 잘 나지 않는데, 『법철학』 자체가 매우 흥미롭게 다가왔다. 내 생각에, 슈미트는 『법철학』의 243-246절이 맑스의 정치경제학 비판을 예비하고 있다면, 247절은 맑스가 『자본』 저술 전에 계획했지만 실현되지 않았던 세계시장과 식민지에 관한 저술 계획을 예비한다고 보는 것 같다. 슈미트는 맑스가 계획만 했던 이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역사를 리바이어던이 물고기에서 기계로 바뀌는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전지구적 공간혁명과 노모스의 교체로 서술한 것이다.

 

4.

  당분간 슈미트나 헤겔을 읽을 여유는 없을 것 같다. 『땅과 바다』를 읽은 성과라면, 슈미트가 이해하는 노모스의 세 가지 의미를 좀더 분명하게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와중에 appropriation을 『땅과 바다』와 이전에 번역된 『대지의 노모스』 두 권 모두에서 취득으로 번역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Appropriation은 보통 전유라는 일상에서는 잘 안 쓰는 말로 번역하는데, “취득이라는 말이 더 쉽게 다가오지만, appropriation에 함축되어 있는 강제성의 측면이 별로 부각되지 않는다는 점이 다소 아쉽다. 『땅과 바다』는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하지만 또 아는 만큼 보이는 책인 것 같다. 그래서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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