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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자본주의의 축적체제 변화 (1987-2003) -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사회과학연구총 26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엮음 / 한울(한울아카데미) / 2006년 12월
평점 :
꾸준하게 한국경제에 대한 좌파적 실증분석을 펴내고 있는 경상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이 2006년에 펴낸 책이다. 편집서들이 대개 그렇지만, 이 책 역시 각각의 논문 저자들이 공통의 주제를 다룬다고 하더라도 매 사안에 대해 동일한 의견을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 책에 실린 다른 이와의 입장 차이를 자신의 글에서 부각시키는 이도 없다. 이 책의 총론 격인 1장에서 정성진은 97년 경제위기 이후 진보진영 내에서 회자되고 있는 “새로운 통념” - 곧 경제위기 이후 신자유주의가 노골화됨에 따라 “금융주도 축적체제” 혹은 “금융화”가 진행되었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케인즈주의적 정책수단을 도입하여 “나쁜 자본주의”를 “좋은 자본주의”로 대체해야 한다는 생각 –을 비판한다. 그러나 뒤에 실려있는(남한 사회에서 금융화 추이를 고찰하는) 김의동이나 (케인즈주의적 단계를 생략한 남한 사회에 케인즈주의적 정책을 도입할 것을 주장하는) 장상환의 글은 정성진이 비판해 마지않는 그 “새로운 통념”을 잘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캘리니코스는 신자유주의나 금융주도 축적체제를 하나의 자립적 축적체제로 볼 수 없다는 견해를 제시하는 데 반하여, 장상환은 “신자유주의적 축적체제”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또, 장상환은 발전국가를 자유주의 국가로 규정(105)하는 데 반하여, 김의동은 1970-80년대의 국가정책을 케인스주의적인 것으로 본다 (164). 이처럼 주장들이 제각각이어서, 책 전체를 관통하는 뚜렷한 주장을 정리해내는 것이 쉽지 않다. 그러나 오히려 이처럼 대립되는 주장들 덕분에, 특히 금융화에 관한 부문은, 어떤 주장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기 이전에 기존의 논쟁 구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제일 흥미있게 읽었던 논문은 한국 경제의 장기침체 원인을 다루고 있는 김창근의 5장이었다. 김창근은 한국 경제에 관한 네 개의 구분되는 입장들 (신자유주의, 제도학파, 포스트케인시언, 마르크스주의)을 잘 요약하고, 실증 연구로 자신의 마르크스주의적 입장을 옹호한다. 그는 1997년 경제 위기 이후 “금융에 의한 산업 지배”가 한국에서 나타났다는 금융화론의 주장을 일축하며, “경제 위기 이후에 산업자본의 자율성이 더욱 증대하고 있다”(218)는 흥미진진한 주장을 개진한다. 그는 경제위기 이후 산업자본의 부채비율이 급격히 낮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들어, 산업자본이 국가 뿐만 아니라 금융자본으로부터도 자율성을 획득해가고 있는 과정으로 해석한다. 대자본(재벌)만 두고 보면, 맞는 말일 듯 싶다.
응집성과 일관성은 다소 떨어지지만, 여러가지 중요한 쟁점들을 잘 제시하고 있는데, 이 귀중한 연구성과들이 메아리 없는 외침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금융화론자든 신자유주의자든 이 책에서 비판적으로 검토되는 작업들의 저자들과의 진지한 논쟁으로 이어질 수 있기를 바란다.
사족으로 한 마디 덧붙이면, 나쁜 자본주의를 좋은 자본주의로 대체하는 것은 대안이 아니므로, 진보진영은 반자본주의, 반제국주의 운동과 연대해야 한다는 식의 결론은 다소 맥이 빠진다. 사람들이 나쁜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자본주의를 개량하는 것을 대안으로 사고하는 이유는 단지 자본주의가 나쁘다는 것을 몰라서뿐 아니라, 운동의 전망과 대안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고, 과연 그 운동의 전망과 대안이 존재하는 지에 대해 회의적이기 때문 아닌가? 오래전 보았던 영화 [동정 없는 세상]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주인공이 신문을 팔던 노인에게 묻는다. “뭐 새로운 일 있나요?” 노인은 대답한다. “세상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아. 새로운 게 뭐 있겠어? 자본가는 노동자를 착취하고, 이윤율은 떨어지고….” 이 책을 읽으면서 새로운 일 없는 세상에 ‘新’聞을 팔던 노인이 생각났다고 하면, 지나친 비아냥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