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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했더라면

만일 ○○하지 않았더라면

 

인생에 '가정법'이 통하지 않는 것을 알지만, 저는 자꾸자꾸 되돌이표를 가지고 되새김질할 때가 많습니다. 그것의 효용을 따지지 않는... 저만의 성찰법이기도 하고, 추억은 오래오래 기억하는 사람의 소유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틀 전 마왕 신해철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만일 그가 우리 곁에 오래 머물렀다면, 우리와 함께 늙어갔다면, 우리는 그의 변화무쌍한 모습 속에서 영생의 메타포를 발견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그와 사적인 만남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드러내놓고 펜도 아니었습니다. 미소년 엘리트 청년으로 첫 선을 보인 대학가요제를 시작으로 세상일에 돌직구를 던지는 소셜엔터테이너, 철학을 전하는 음악가, 어느새 위 아래 모르는꽤 귀여운 아저씨로, 그는 우리 곁에 늘 함께했습니다. 그의 음악에 위로받고, 그의 말에 카타르시스를 느꼈던 시간이 이십 여 년인지라 그의 죽음은 우리에게 남의 일이 아닙니다. 유재하, 김현식, 김광석, 그리고 신해철이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대형기획사의 인스턴트 음악만을 듣고 자라는 요즘 십대 아이들에 비하면 우리는 진짜 대중가요를 음악답게, 공들여서 구하여 들었던 마지막 세대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월을 공유한다는 것은 그냥 그런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신해철의 영면을 통해서 다시한번 경험합니다.

 

언제부터인지... 알라딘은 저에게 책을 파는 인터넷 서점이 아닙니다. 정규교육과정이 끝나고 허한 마음에 시작한 신간평가단은 나와 같은 간서치(!!)가 가득한 코뮤니티였습니다. 각자가 처한 시공간의 객관적인 조건은 모두 다를 테지만, 한 가지 공통분모, (책 안에서가 아니라) 책을 통해서 세상의 이면을 읽고자 노력하는 책벌레라는 점입니다. 만일 제가 알라딘 신간평가단을 하지 않았더라면, ‘인생, 하찮고 별볼일 없다는 믿음을 버리지 못했을 것 같습니다. 함께하는 이 공간이 참 소중합니다.

 

14기 신간평가단을 마무리하면서, 저에게 bets 5는 제가 추천했고, 선정되었던 책들입니다. 추천이 부끄럽지 않은 좋은 책들이었음을 다시한번 말씀 드립니다.^^* 알라딘 신간평가단 담당 선생님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1. 철학자와 하녀 -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마이너리티의 철학

고병권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45

*** 이 책은 정말... 좋은 책이어서 다섯권을 더 사서 주변 지인에게 선물했던 책입니다.

 

2. 문학의 아토포스

진은영 지음 / 그린비 / 20148

 

3. 다산 정약용 평전 - 조선 후기 민족 최고의 실천적 학자

박석무 지음 / 민음사 / 20144

 

4. 뉴스의 시대 - 뉴스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

알랭 드 보통 지음, 최민우 옮김 / 문학동네 / 20147

 

5.  독신의 오후-남자, 나이듦에 대하여

우에노 지즈코 지음, 오경순 옮김 / 현실문화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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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의 아토포스
진은영 지음 / 그린비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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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나가는 소나기에 자책하는 시인의 문학의 아토포스

 

진은영 지음, 그린비, 2014. 8.

 

시가 아름답기만 한 날들이다. 시는 아름다워야만 했다. 서향으로 빨리 사라지는 오후 햇빛 탓이고, 일찍 세상 밖으로 얼굴을 내미는 달빛 때문이다. 사념에 젖는 시간을 충분히 누릴 수 있는 만추가 다가오고 있다. 10월 가을, 볕은 더 없이 따뜻하고 숲 그늘은 머리를 맑게 할 만큼 서늘하다. 시인의 자작시평, 시의 배경이 된 에피소드를 읽는 소소한 일상이 가미된 에세이를 기대했던가? 이 책은 기대를 배반한다. 문학의 아토포스는 묵직했다. 10편의 소논문에는 시인 진은영이 바라본 지난 수년 동안의 한국의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갈 수 없고, 말할 수 없는 존재를 전제한 현실을 전면으로 부정하고, “어디로든 가고, 무엇이든 되고, 무언가를 말함으로써 우리가 가고 존재하고 말할 수 있는 존재임을 계시”(6)한다.

 

 

지난 주 일요일, 토론대회 심사에 참여했다. 고등학생의 “9시 등교 찬반 토론은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상식을 넘어서지 못했다. 9시 등교가 등장하기 전후의 한국 사회 상황, 그것을 제기한 집단과 문제를 제기하는 집단이 내세우는 논거를 충분히 살리지 못한 채, 중언부언 답변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입론, 교차조사, 반박의 토론 절차도 무시한 채, 자기가 준비한 자료를 과시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십대 아이들을 보면서, 우리가 같은 언어를 사용하면서도 제대로 된 의사전달에 어려움이 자주 발견되는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토론은 절대 상대를 굴복시키기 위한 수단이 될 수 없음을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토론으로 상대를 승복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은 과도한 욕심이다. 토론의 과정에서 내 주장의 논거를 좀 더 튼튼히 세우는 것이 토론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성과일 것이다. 또한 상대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태도를 기를 수 있다는 점 또한 간과할 수 없다. 사람은 말(또는 글)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 아니다. 괴테의 말처럼 오직 사랑하는 사람을 통해서만 우리는 배울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진은영의 글은 힘이 있다. 책상에서 펜으로 완성된 관념의 글이 아니고, 사랑을 품은 글이기 때문이다. 한 시인의 진지한 고민과 고뇌가 정치, 예술, 삶을 하나로 아우르게 만든다.

 

 

감성의 분할, 감성적 분배

     

이 책을 읽는 내내 고귀한시인, 진은영은 독자로 하여금 열패감을 느끼게 한다. 시인, 철학자, 실천가가 이루어내는 트라이앵글의 한 중심에 그녀가 있다. 문학과 정치를 어떻게 관계 지을 것인가에 대한 시인의 고민의 성과가 한권에 오롯이 담겼다. 참여시를 쓰는 것과 사회 참여 사이에서 시인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일까? 문학의 아토포스- 그녀가 발견한 보물 쪽지 - 자크 랑시에르의 감성의 분할을 어떻게 읽어나갈 것인지에 대한 출발점이 되었다. 정치적인 것은 감각적인 것을 분배하는 활동, 감성적 혁명을 가져오는 활동이라는 랑시에르의 정의에 따르면, 낡은 분배를 바꾸려고 노력하는 예술은 정치가 된다. 시인에게 정치는 감성적 혁명’(311)이다. 이러한 정의와 분석에서 예술과 정치는 이분법으로 나눠지지 않는다.

 

 

공간의 트랜스포머

 

어떤 방식으로든 정치는 자신의 미학이 있고 미학은 자신의 정치가 있다.”(29)

 

삶을 미학적으로 가꾸는 것에 대한 고민은 그리스 이후 오래된 철학적 고민이다. 모든 사람의 삶의 목적이 자신과 인생을 미학적으로 가꾸는 일이라고 한다면, 감수성 남다른 시인의 삶은 어떠하겠는가? 시인은 서정시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시대에 서정시를 쓸 줄 알아야 한다. “시인은 지나가는 소나기를 바라보며 자책한다.”(32) 진은영은 시를 쓰는 지게꾼의 전범인 박노해, 백무산, 김수영과 다른 방식의 혁명의 방식을 발견한다. 이 책의 제목이 언급하듯 문학의 아토포스(비장소성)은 문학이 특정한 공간에 해당하지 않음을 그대로 보여준다.

 

 

문학적 기투는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아토포스라고 불렀던 것을 닮아 있다. 아토포스(atopos)는 장소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토포스에서 유래한 단어이다. 여기에 ‘a'는 부정과 결여의 접두사로서, 아토포스는 비장소성으로 번역될 수 있다. 이 단어는 어떤 장소에도 고정될 수 없어서 그 정체를 알 수 없다는 의미로 소크라테스의 대화자들이 그에게 붙여준 것이라고 한다.

 

 

문학은 문학이 이루어지는 특정한 공간이 따로 없다고 했을 때, 시인은 거리에서, 토론장에서, 시위에 참여하여 시를 쓴다. 공간이 변하면서 시는 온전히 시인 혼자서 쓰는 작업이 아닐 수 있다. 함께 쓰고, 단어를 선물하여 쓰고, 지인의 시로 트랜스하면서 변형할 수 있다. 주어진 공간의 경계에 틈을 만들고, 허무는 과정에서 미학은 예술의 영역을 벗어나 정치 그 자신이 될 수 있다. 때문에 문학은 시간에 고정되지도 않는다. 비공간성은 비시간성과 연결된다. 공간가 시간이 허물어지면서 일과 놀이의 구분이 사라진다면 사회적 지위와 역할의 경계 또한 서서히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사회적인 연대를 통해서만 이루어낼 수 있다.

 

 

오래 전, 대학 1학년, ○○ 전자 파업 노동자들의 투쟁에 참여했었다. 오랜 시간 체납된 월급으로 고생하고 있을 내 또래 여공들을 응원하는 시간은 쁘띠적 성향을 가진 나에겐 여러 가지로 힘든 시간이었다. 목숨을 걸고 싸울 것을 기대했지만, 여공들은 멋진(??) 대학생 오빠들과 유사 연애에 빠져 있었다. 당장 먹을 라면이 없다던 그녀들은 항상 꽃단장에 여념이 없었다. 그녀들의 모습이 천박하다고 느꼈다. 아주 오래전 이 기억이 이 책을 읽는 동안 내내 떠올랐다. 투쟁에서는 투쟁만 해야 아름다운가에 대한 성찰이 일었다. 투쟁의 장소에서 연애도 하고, 공부도 하고, 청춘을 가꾸는 일이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한 나의 왜곡된 결벽증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예술은 천상의 것인가? 지상에 울려 퍼지는 노래인가? 진은영 시인을 통해서 다시 한번 가능성이라는 아름다운 말을 최선을 다해서 음미하는 일(321)을 경험한다. 손 안에 있음에서 눈 앞에 있음으로, 도구적 존재에서 현전하는 존재로 관계 맺는 것은 관념에서만 가능한 추상적인 일은 아니다.

 

 

다시한번 건드려지는 사족 같은 질문 하나.

 

가난은 왜 과거가 될 때 아름다운가? 가난은 왜 선택이 될 때 아름다운가? 가난하지 않아도 되는 시인의 가난은 아름답다. 가난하고 가벼운 시인의 글을 펼쳐 보니, 내 삶은 더욱 더 비곤해지고, 무거워진다. 할 수 있고, 가질 수 있으나 선택하지 않는 고고함을 원하는 나의 허영이다. 가난할 수밖에 없어 가난한 내 영혼을 꼭 안아주고 싶은 열패감이다.

 

그렇게 냉소하고 돌아설 예측이나 한 것처럼 신형철의 발문은 다시 발등을 꾹꾹 찌르는 압정이 된다. 그의 글은 핀으로 내 발등을 꾹꾹 누르며 원점으로 선회하게 한다. 세상을 다 삼켜버린 것 같은 검은 바다에서 남파선에 깜박깜박 신호를 보내는 그들의 등대를 발견하기 때문이다. 다시한번 나에게 묻는다. (반복되는 가방끈 긴 사람들의) 랑시에르 참조였다고 생각하는지, 나의 무의식에 묻고 또 묻는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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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시대 - 뉴스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
알랭 드 보통 지음, 최민우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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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어준의 팟캐스트를 들으며, 알랭 드 보통의 책을 읽다.

뉴스의 시대-뉴스에 대해 우리가 알아야 할 모든 것』알랭 드 보통, 2014. 7.


 

바야흐로 뉴스의 시대다.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상호작용하는 관계도 아니지만, 뉴스의 중심에 있는 셀리브리티는 더 이상 우리 삶과 무관한 외부자가 아니다. 나의 주변에서 일상을 주고받는 지인처럼, 때론 지인보다 더한 심정적 근접 지점에서 우리와 함께한다.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뉴스가 되어 우리에게 살아있는 'real'이 된다. 하루에도 무수한 사건이 일어나지만, 뉴스에 세팅된 아젠다만이 실제가 될 수 있다.

 

 

손석희 앵커가 진행하는 방송을 들으며 세계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알게 되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쟁점을 분석한다. 그가 보여주는 세계가 내 시선의 프레임을 형성한지 십 수 년이다. MBC 시선집중을 13년 듣는 동안, 그는 몇 번의 휴가도 떠나지 않았던 ‘성실한’ 앵커였다. 그가 며칠 휴가를 떠났을 때 방송을 들으며 느꼈던 어마어마한 존재감이라니. 나의 삶과 무관한 ‘샐리브리티’인 그의 부재가 미치는 영향이 상당했다. 그가 종편을 선택했던 시기는 공중파 3사의 문제점이 정점을 찍을 즈음이었다. 어떤 상황에서든, 누가 나오든 혹시 실수로라도 종편 채널이 열리면 화들짝 놀라며 다른 채널로 zapping하던 나는 한동안 방황의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헤어진 연인을 찾아가듯 슬그머니 JTBC를 시청하기 시작했다. 자본이 빚어낸 종편에 승선하는 내 모습이 부끄러웠다. 수치심을 감내해야 했을 만큼 세상을 보고 들을 수 있는 채널이 없다는 것은 견디기 힘들었다. 혹 손석희씨가 ‘시선집중’을 떠나면서 말했듯, 그의 선택은 ‘훗날’ 평가될 것인지도 모르겠다. JTBC 만큼 세월 호 보도에 시간과 노력을 기울인 종편과 언론 매체가 없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그가 하는 말이 허투루 내뱉은 말은 아닐 것이다.

 

 

직업 특성 상 나는 뉴스를 보지 않을 수 없는 위치다. 만일 ‘뉴스’를 알지 않아도 되는 업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해서, 뉴스를 멀리할 수 있을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스마트 월드의 스마트 기기는 시공간의 제약 없이 뉴스를 수집할 수 있게 만들었다. 십 년 전만 해도 한 달 내외의 배낭여행을 마치고, 비행기에 오를 때 접하던 신문 냄새를 잊을 수 없다. 모국어로 쓰인, 내 나라의 기사를 읽다 보면, 그제서야 안도감이 찾아왔다. 보통의 표현에 따르자면, 어느새 나에게 ‘뉴스’가 종교 자리를 차지한 것일까? 아침과 저녁 기도가 이루어질 시간, 나는 뉴스를 읽는다.

 

 

영국 사람은 외출할 때 세 가지를 챙겨가지고 나간다고 한다. 아파트 키, 지갑, 책 한권. 그렇게 간단한 소지품을 가지고 노팅힐의 어느 카페에서 마주칠 것 같은 잉글리쉬맨이 알랭 드 보통이다. 스위스에서 태어나 영국에서 수학(修學)했다고 하더라도, 나에겐 모두 유럽인일 뿐이다.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인종적 분류에 어려움이 있는 아시안이기 때문에.) 나도 주 이상을 보통의 책을 손에 들고 다녔다. 처음부터 끝까지 탐독해야 할 이유가 없다. 어디를 펼쳐도 첫 페이지가 되고,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된다. 보통은 자신과 뉴스와 마주치는 순간(17쪽)을 모았다. 소소한 사적 경험에 따른 단상이 모여서 한권의 책을 이루고, 하나의 철학을 완성한다. 일상에 대한 성찰이 이룩한 산물, 그것인 보통의 책이다. 뉴스에 대한 단상을 모아보는 것도 의미 있을 듯하다. 뉴스는 독자에 의해서 다시 한번 가공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 지점이다.

 

 

뉴스는 ‘정상성’을 가정하고, 중립적인 ‘사실’ 보도를 강조한다. 뉴스가 다루고 있는 것은 정상성 좌우에 있는 비정상을 다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의 삶과 이질적인 것일수록 메인 뉴스가 될 수 있다. 정상성이 하나의 가정에 불과하듯, 객관적인 보도 또한 하나의 허구에 불과하다. 편향에 대해서 좀 더 관대해져야 한다는 보통의 주장은 하워드 진의 “달리는 기차에서 중립은 없다.”는 은유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뉴스는 두려움과 공포를 양산한다. 재난, 질병, 저출산 고령화 사회에 관한 보도는 나의 미래를 두려움과 공포로 만들어 버린다. 끔직하고 잔인할수록 뉴스의 가치는 높아진다. 강력 범죄에 내성이 생기기 때문에, 보도는 더욱 자극적이 될 수밖에 없다. 정치적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서 잔혹한 범죄가 이루어진 과정을 여과 없이 보도하는 것을 보면, 뉴스가 추구하는 본질이 무엇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을 때가 많다.

 

 

보통이 예견한대로 대중의 수만큼 다양한 뉴스 채널의 세계(278쪽)를 기대해도 되는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자신의 취향이 고려된 맞춤형 방송이 세팅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에는 동의한다. 나 또한 손석희의 방송을 통해서 정보를 얻고, 김어준의 파파이스, 뉴스타파 등의 팟캐스트를 통해서 깊이 있는 분석과 통찰을 제공받고 있다. 종편 JTBC는 이번 주부터 ‘뉴스룸’으로 개편하면서 8시부터 9시30분까지 30분 연장 방송을 시작했다. 하루에 1시간 30분 동안 보도할 뉴스거리가 있을지에 대한 염려는 첫 방송에서 해결되었다. 뉴스라고 하기엔 깊이 있는 정보 분석까지 곁들여졌다. 다만 보통의 말대로 각자가 필요한 뉴스,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의 조화를 이룰 수 있는 인격을 ‘대중’ 이 갖출 수 있을지에 대한 회의가 든다. 지난 수년 동안 나타난 언론의 행태와 대중의 정치적 선택을 보면, 공적 영역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는 대중의 진화가 쉽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뉴스의 수명은 짧다. 많은 사람들은 매번 새로운 뉴스를 원한다. 세월호를 지겨워하는 사람들의 증가는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세월호에 대한 우리 각자의 책임은 시간이 지나면서 희석되었고, 사람들에게 세월호는 뉴스 이상의 의미가 아니었을지 모르겠다. 이 지점에서 방문 내내 세월호 유가족과 함께하며 세월호를 현재의 시점으로 호명한 프란체스코 교황께 감사할 뿐이다. 제도화된 기억상실증(288쪽)은 우리에게 도덕 불감증을 가져다준다. 보통의 주장처럼 뉴스 의존증에서 벗어나서, 상상 속에서만 연결되어 있는 타자와 실제 연결망을 형성하는 것이 우리 삶을 더욱 독창적으로 만들 것이다. 결국 자신의 윤리와 가치 속에서 각자의 삶을 구성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일상에 관한 단상이 모이면, 우리 역시 각자가 추구하는 각자의 가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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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치킨전 - 백숙에서 치킨으로, 한국을 지배한 닭 이야기 따비 음식학 1
정은정 지음 / 따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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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억을 호출하는 대한민국 치킨 정은정, 따비, 2014. 7.

 

지난 봄, 아는 지인이 키우던 닭을 조류독감으로 모두 매장했을 때도, 우리 집 닭장 속의 암탉들은 살아남았다. 아는 분에게 분양받은 오골계 병아리 열 댓 마리 중 몇 마리는 마당에서 개에게 잡혀 먹었지만, 나머지는 부모님의 보살핌에서 무럭무럭 잘 자라서 유정 란을 매일매일 생산했다. 그중 몇 마리는 지난여름 복날을 피해가지 못했다. 그리고 현재 다섯 마리가 닭장을 지키고 있다. 일 년 동안 우리 집 마당에 가축 냄새가 진동하고 있지만, 한울타리에 여러 생명체가 함께 지내면서, 농촌에서 산다는 것에 대해서 알게 모르게 배우는 바가 컸다.

 

 

대한민국 치킨 을 읽는 시간은 유쾌했다. 수준 높은 지식이 주는 무게와 앎의 통찰 때문에 마음 살을 앓기 보다는 맞아, 맞아의 공감을 던지며 함께 수다 떠는 기분으로 책에 붙어 읽었다. (사실 나이를 먹으면, 무지에 대한 통찰, 다름에 대한 각성 보다는 맞장구치며 공감하고 싶은 때가 훨씬 더 많기는 하다.) 번역체도 아니고, 낯선 이야기는 더더욱 아니며, ‘별에서 온 그대의 연인 천송이가 사랑한 치킨의 미시사였으니 몰입은 기본이었고, 간간히 웃을 수 있는 포인트도 가득했다. (가령 저자가 다루고 있는 것은 프라이드 치킨이 아니라, ‘후라이드 치킨이라는 것 등등) 한동안 거리의 치킨집이 눈에 들어왔고, 엘리베이터의 치킨 냄새가 예사롭지 않게 느껴졌다.

 

 

나는 6학년이 될 때까지 면단위 시골에서 살았다. 이후 부모님의 교육열 덕분에 도청소재지인 전주로 전학을 갔다. 자녀 셋을 자취방(집이 아니라, 방이라고 밖에 달리 표현할 수가 없다.)에 두고, 시골로 내려가시는 부모님은 가장 큰 서점인 홍지서림에서 책을 사주셨다. (‘이 귀한 물건이던 그 시절에는 서점 자체도 하나의 브랜드인지라, 서점 마크가 곳곳에 찍혀있는 포장지로 책표지를 싸주는 것이 서점의 기본적인 서비스였다. 책을 다 읽고 나서 낡아버린 포장지를 버릴 때, 책은 온전히 나의 것이 될 수 있었다. 이런 기억을 공유하고 있다면, 이제 당신은 중년이다.) 정신의 일용할 양식 옆 가게는 몸을 살찌우는 영양 식당, ‘영진 통닭꼬꾜 통닭이 있었다. 전기 그릴에서 회전하며 기름을 뚝뚝 떨어뜨리는 닭에서 풍기는 고소한 냄새는 촌년이 지금까지 맡아보지 못한 냄새였다. 미끄러운 촉감이 싫어 벗겨먹던 껍질조차 바삭거렸던 그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부모님은 둘 중 더 유명한 꼬꾜 통닭에서 닭을 사주시려고 했으나, 나는 끝까지 영진 통닭을 고집했다. (촌년의 눈에는 꼬꾜도꾜로 읽혔던 게다. 일본인이 하거나, 일본을 좋아하는 가게라고 추측했으니, 민족주의의 강한 신념을 가진 열 세 살의 선택은 확고했다.) 이후에 서점을 드나들며 내가 상호를 잘못 읽었다는 것을 깨닫고는 수년 동안 꼬꾜 통닭은 우리 가족의 만남의 장소였다. 엄마는 아빠가 어디에서 월 30만원만 벌어 와도 너희랑 살고 싶다고 했다. (지나고 보니, 그 당시 30만원은 제조업 노동자의 한 달 월급이었다.^^) 한 달 동안 만나지 못한 엄마와 치킨과 칼국수를 먹고 난 후, 터미널에서 헤어지는 시간은, 지금 떠올려 봐도 명치끝이 저릿하다.

 

 

이 책은 이렇게 나의 치킨에 얽힌 무수한 추억을 끝없이 호명한다. 또한 먹기가 함축하는 의미와 문화에 대해서도 성찰하게 한다. “음식을 먹는 것은 문화를 소비하는 일이다.-45) 살아서 무엇을 입에 넣어야 하는 것이 치욕이라고 느꼈던 경험도 떠올리게 한다. (대구 지하철 폭발로 고등학교 아들을 잃었던 어느 엄마가 인터뷰한 기사를 읽었던 적이 있다. 아들이 죽은 것도 슬펐지만, 자식이 죽었는데도 밥을 먹는 자신이 더 견딜 수 없었다고 한다. 시장에서 반찬거리를 사면, 뒤에서 누군가 수군거리는 것만 같았다고 한다. 그래도 살겠다고 밥을 먹는 자신이 벌레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니 김영오씨를 비롯한 세월 호 가족의 단식은 (단식이 정치인들 때문에 많이 퇴색되었긴 하지만) 억울함을 호소하는 최후의 순수한 수단일 것이다.

 

 

OECD 국가 중에서 자영업 비율이 지나치게 높은 나라, 미국 자영업자 한 사람이 버는 영역에서 네 명이 치열하게 돈을 벌어야 하는 나라, 군인 수만큼의 미용사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살고 있는 나라가 한국이다. 적은 퇴직금으로 몸뚱이 하나로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의 생존 장이 치킨가게다. 대한민국 치킨 은 치킨의 성분, 역사, 한국인의 취향, 산업 구조까지 전방위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에 이 리뷰에서 그것을 언급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치킨과 연관한 콩기름, 콘기름, 맥주까지 분석의 대상이다. 저자의 이야기를 천천히 따라가다 보면 왜 소비를 이념으로 해야하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렇다고 이 책에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차기 연구와 연구자를 위한 참조로써 훌륭한 자료집이라는 생각과 함께, 조금 더 일관된 문제의식이 필요했다고 본다. 뒷장으로 넘어갈수록 동어 반복의 느낌이 읽기의 맥을 떨어뜨린다. 치맥이 떡볶이와 튀김, 라면과 단무지처럼 환상적인 음식 궁합 속에 숨겨져 있는 자본의 논리에 집중했어도 기막한 이야기가 구성되었을 것이다. 완전 독점의 맥주와 완전 경쟁의 치킨이 만난 절묘한 결합 속에서 드러나는 자본주의의 생리를 부록으로 처리하기엔 할 이야기가 많은 듯하다.

  

사족 하나. 김수영의 시와 비평서를 읽었음에도, 그가 양계를 통해 생계를 꾸렸다는 사실은 미처 알지 못했다. 글밭 일구어 글로 밥 만드는 삶을 꿈꾸는 대부분의 예비 문학가들에게 글쓰기의 권력에서 자유롭기 위해서 다른 생계수단을 찾았다는 사실에서 여러 생각들이 오간다. 어쩌면 서평과 영화평을 쓰는 우리의 유희가 그에 기인하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읽고, 쓰고, 그것이 삶과 결합하는 과정에서 호모쿵푸스가 되는 것, 이 책은 덤으로 그것까지 재고(再考)하게 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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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하게 4일 만에 컴퓨터를 마주하고, 늦어도 한참 늦게 신간을 추천합니다.

휴가 전에 모든 일을 마무리 지었다고 생각했는데, 서랍 안의 잊혀진 원고처럼,

신간추천 파일이 컴퓨터에서 잠자고 있었습니다.

절기를 잊지 않고, 도처에 ‘가을’이 가득합니다.

17층 창문에 비친 올해 두 번째 super moon을 바라보며,

소박한 꿈 몇 개를 걸어 두었습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아도 좋은 짧은 인생.

오늘도 부디 아프지만은 않은 추억으로 기록되길 기대합니다.

‘가을 방학’ 같은 5일간의 휴식이 연말까지 살아갈 자양분이 되었기를...

 

 

 

 

 

 

 

 

 

 

 

 

 

 

『욕망 자본론』신승철 지음, 알렙, 2014. 8.

 

‘글쓰기’는 세계와 인간에 대한 이해가 먼저라고 설득하는 ‘어른’들 덕분에 나는 사회과학을 전공 삼아 아이에서 어른이 되었다. 나의 독서는 그야말로 편협하다. 나의 취향과 가치관을 벗어나서 ‘두루두루’ 섭렵해도 좋을 것을. 스무 살의 독서가 이후의 삶을 지배한다. 필요욕구 이외에 인정하지 않았던 Marx의 ‘자본론’과 세상을 풍요롭게 만드는 소수자의 ‘욕망’의 결합은 우리에게 어떤 깨달음을 줄 수 있을까? 혹시 이 책에서 언급하는 욕망은 Foucault의 ‘자기배려’에 가까이 가 있는 지점은 아닐까? 몹시 궁금하다.

 

 

 

 

 

 

 

 

 

 

 

 

 

 

 

『국가 없는 사회- 카페에서 만난 어느 아나키스트와의 대화』, 에리코 말라테스타 지음, 하승우 옮김, 포도밭출판사, 2014. 8.

 

21세기 초, 우리 교과서는 국가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확언했다. 왜? 국가는 힘과 권력을 가진 강한 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사회에서 안전망 없이 살아가는 사회소수자들이 존재하는 한 국가는 존재해야 한다. 국가의 필요는 하나의 당위였다. 그리고 10여년 세월이 흐르고, 우리의 무의식은 ‘국가 없는 사회’를 체감하며 살아간다. 국가는 분명 존재한다. 단 국가에 대한 절대적 신념은 붕괴하고 있다. 국가 없는 사회는 어떤 사회일지에 대하 고민의 단초가 될 것으로 기대되는 책이다.

 

 

 

 

 

 

 

 

 

 

 

 

 

 

『대통령을 위한 에너지 강의』, 리처드 뮬러 지음, 장종훈 옮김, 허은녕 감수, 살림, 2014. 8.

 

‘기후변화법’을 제정해야한다는 캠페인을 겸한 환경콘서트에 다녀 온지 얼마 되지 않았다. 세계는 전쟁보다 ‘핵’ 발전이 가장 큰 재앙이 될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중국서해에 밀집해 있는 핵발전소와 일본이 한반도를 핵으로 둘러싸고 있다. 거기에 한국은 국토면적에 비례하여 핵발전소 밀집도가 세계 1위다. 과연 내가 알고 있는 에너지에 대한 상식은 어느 정도일까? 책 제목의 ‘대통령’을 에너지에 대한 깊이 있는 지식을 갖지 못한 시민으로 받아들여서, 무지를 깨치기 위해 일독해보고 싶다.

 

 

 

 

 

 

 

 

 

 

 

 

 

 

『문학의 아토포스』진은영 지음, 그린비 지음, 2014. 8.

 

진은영의 시 ‘나의 아름다운 세탁소’에는 그 시대를 함께 앓았던 사람들의 상처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위선과 위악으로 범벅이 되어 - 악의 없이도 나쁠 수 있는 - 우리를 뜨겁게 다리미질 한다. 진은영 시인은 시인으로도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지만, 철학자 ‘진은영’ 또한 시인 진은영과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다. 사회참여와 미학적 완성이 함께 완성 점을 향해 나가기 위해서 필요한 이질적인 것의 접합에 대해서 함께 고민하게 될 듯하다. 무엇보다도 진은영의 시에서 깨침과 위안을 찾는 독자인 나는 그녀의 문학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귀중한 자료와 만나게 될 기대를 갖게 된다.

 

 

 

 

 

 

 

 

 

 

 

 

 

 

『일일공부- 하루 한 편 삶을 바꾸는 고전 수업』장유승 지음, 민음사, 2014. 8.

 

오래된 지인. 띄엄띄엄 만나도 늘 애틋한 마음이 전해지는 그녀의 글은 시가 아니어도 시를 읽는 듯하다. 십수년 고전 공부를 꾸준히 해온 덕분이리라. 상황과 상관없이 의연하게 받아들이는 지혜 또한 고전 읽기와 무관하지 않았으리라 감히 짐작해본다. 영화든 책이든 시간을 먼저 읽어야 직성이 풀리는 ‘지적 허영’ 가득한 나는 감히 따라갈 수 없는 내공이다. 고전과 현재 사이에 다리를 놓는 젊은 학자 장유승의 글이 우리의 가을을 깊게 할 것이다. 읽고 새기다 보면 내 인격도 조금은 선한 방향으로 각을 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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