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와 독자의 접점을 찾아서, 시공사 편집자 윤영천
# 편집자 profie
중학교 시절부터 추리소설을 읽어 온 이래, 사람이 죽지 않는 책은 잘 읽지 못하는 황폐한 인간으로, 1999년부터 나우누리 추리문학동호회 시삽을 5년간 역임했다. 이후 지나친 독재로 시삽에서 축출된 후 howmystery.com이라는 사이트를 운영중이다. 독자로서 기획한 도서로는 <셜록 홈스 걸작선> <브라운 신부 시리즈> <레이몬드 챈들러 전집> 등이 있으며 다양한 매체에 추리소설 관련 글을 기고했다. 현재는 시공사에서 장르 쪽 소설을 담당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추리소설 시장에 번역된 ‘고전’을 채워넣으려고 고심하고 있는 중.
Q. 시공사에서 출간하고 있는 추리소설을 간단히 소개해주셔요. 이후 출간 방향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세요.
A. 90년대 시공사에서는 상당히 많은 추리소설을 출간했습니다. 엘러리 퀸의 작품을 위시한 시그마북스라든가 마이클 코넬리, 제임스 엘로이, 데이비드 밸더시(아마 설마? 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을 겁니다), 퍼트리샤 하이스미스 등의 책도 발간됐었죠. 현재 절판 상태라 아쉬울 따름이지요. 현재 추리소설은 존 그리샴의 작품군과 요코미조 세이시의 <옥문도>, 코넬 울리치의 <밤 그리고 두려움>, 니키 에츠코의 <고양이는 알고 있다> 등이 있습니다.
차후 출간 방향의 경우 제가 확정할 부분이 아니니 조심스럽습니다만, 개인적인 바람이라면 사적의의가 있는 작가나 고전 쪽에 치중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국내에 추리소설이 번안, 소개되는 과정에 상당히 큰 공백이 있거든요.
Q. 추리소설 사이트 운영을 오랫동안 해오셨는데요. 추리소설 팬으로서의 자신과 편집자로서의 자신을 비교해본다면?
A. 사실, 저는 독자에 가깝습니다. 98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추리소설 사이트(www.howmystery.com)를 운영해오고 있으니까요. 개인적인 즐거움이 일로 연결돼 행복한 부분도 있긴 하지만, 괴리감에 괴로워할 때도 있었습니다. 독자로서 저는 자유롭고 투덜대기도 하고 또 바라기도 하지만, 책을 만드는 편집자고 그 시스템에 놓여있으니 많은 부분에 제약이 있죠. 원하는 대로 할 수 없는 노릇이고 또 한정된 독자만을 염두에 두고 책을 만들 수도 없습니다. 그 접점을 찾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달까요. 뭐 그래도 독자가 훨씬 좋습니다.
Q. 추리소설 편집자로 일하며 가장 즐거울 때는 어떤 때인가요?
A, 아무래도 제가 기획할 수 있다는 점이겠죠. 어떤 책을 국내 팬에게 소개시켜주고 싶다, 라는 바람을 이룰 수 있으니까요.
Q. 독서 취향이 궁금합니다. 입사 이전에도, 또 평소에도 추리소설을 즐겨 읽으시나요?
A. 네, 저는 중학교 이후로 거의 추리소설만 읽었습니다. 그 외 읽은 책은 아마 100여 권 정도일겁니다.
Q. 지금까지 자신이 펴낸 책 중 개인적으로 가장 애착이 가는 책이 있다면? 또는 작업한 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다면?
A. 역시 <옥문도>입니다. 독자로서도 가장 읽고 싶었고 다행히 소개하게 됐으니까요. 게다가 편집자로서도 경험이 많지 않았던 데다가(지금도 마찬가지지만) 해설을 쓴다고 나댔으니 그 말 못할 괴로움은;;
하지만, 사적 의의와 즐거움이 갖춰진 정말 좋은 작품이었고(독자로서 베스트에 꼽습니다) 요코미조 세이시의 자제분에게 책을 잘 만들어줘 고맙다는 말도 들었을 때(직접 들은 건 아니지만;;)는 정말 행복했답니다.
Q. 국내 추리소설 시장에 대한 의견이 궁금합니다.
A. 현재 국내의 추리소설 시장은 매우 생기가 넘친다고 생각합니다. 3, 4년 전과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이지요. 책이 나오지 않는다고 한탄하던 독자들이 이제 돈이 없다고 한탄할 정도가 될 정도가 되었습니다. 대중소설이라는 궤를 같이하며 일본의 현대 작가들이 다양하게 소개되는 것도 무척 이채롭지요.
차후 더 발전하고 다양한 장르 중 가장 가능성 있는 시장이라고 생각하지만 몇 가지 걱정이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일단 소개되는 작품 자체를 사적으로 배열해보면 셜록 홈스, 애거서 크리스티 이후가 텅텅 비어있다는 점이죠. 2차 대전을 전후한 걸작들은 사실 거의 소개되지 않았습니다(일본은 말할 것도 없고 유럽권은 더 심하죠). 기본적으로 미스터리라는 장르 자체가 많이 희석된 채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마니아 입장에서 다소 안타깝습니다(다양성을 거부하거나 한 장르를 고집하는 의미는 아니구요). 또 국내 창작이 거의 없다는 것도 큰 문제죠. 사실 미스터리 요소는 어떤 매체든 빠지는 법이 없는데, 창작물들이 거의 소비되지 않는 것은 무척 가슴 아픈 일입니다.
요약하자면 국내 추리소설 시장은 반짝하는 아이템들은 있으나 대부분 번역물이고 저변이 튼튼하지만은 않은 시장이라고 생각됩니다. 향후 10년 정도 기간 동안 꾸준히 추리물이 출간되고 다양한 가능성과 시도들이 어우러져 보다 더 단단한 시장이 되길 바랍니다.
Q. 올 여름 추천하는 추리소설은?
A, 음 뭐; 당연히 또는 어쩔 수없이 <팔묘촌>입니다. 자세한 자랑은 아래 질문에 적지요. 타출판사의 기대작이라면 뭐라 정의할 수 없는 인간의 인식을 벗어난 듯한 교코쿠도 시리즈 제3작 <광골의 꿈>입니다.
Q. 다음 출간 예정작을 독자 여러분께 자랑해 주셔요.
A. 얏츠하카무라. <팔묘촌>이 7월 말 즈음에 출간될 예정입니다. 이 작품은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중 <옥문도>와 앞뒤를 다투는 명작입니다. 긴다이치 코스케 시리즈 중 가장 많이 영상화된 작품으로 3번의 영화 그리고 6번 드라마로 제작됐습니다. 50년대 초반 작품이지만 그 명성 때문인지 지금까지 일본 추리소설 관련 미디어에 걸쳐 패러디되고 있죠(드라마 '트릭'에는 육묘촌이 나옵니다;).
간단한 줄거리를 소개하자면.
: 전국시대, 8명의 패주무사들이 보화를 가득 싣고 한 마을로 몸을 숨긴다. 처음은 환영하던 마을 사람이었지만 황금에 눈이 멀어 8명의 무사들을 몰살하고... 무사들의 우두머리는 마을을 저주하며 숨을 거둔다. 그 후 마을에서는 괴이한 사건이 발생하고 마을 사람들은 무사들의 시체를 극진히 매장하고 마을의 수호신으로 숭앙했는데, 그 이후 그 마을은 ‘팔묘촌’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세월이 흐른 후 다이쇼 시대 이 마을의 세가였던 한 사람이 미쳐서 마을 사람 32명을 참살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리고 26년 후 1948년. 팔묘촌에서는 다시 수수께끼 같은 연속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마을 사람들은 공포에 싸인다. 이 이야기는 이 사건을 겪은 ‘나’의 경험담으로 진행되며 탐정 긴다이치 코스케는 주변 인물로 설정돼 사건을 해결하는 형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