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하우스
스티븐 J. 굴드 지음, 이명희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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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제이 굴드는 초장(p49 참조)부터 창조론의 짜증스러운 논리들을 격파한다. 이브가 아담의 갈비뼈에서 나왔다면 왜 지금은 이브들이 더이상 안나타나는가. 물론 그것은 수많은 신화들처럼 상징·은유적 표현이다. 그것을 구축하는 인간의 논리와 헛점들이에 빤한데 종교를 가진 사람들과 대화를 할 때면 한숨이  나오고는 다. 성경의 많은 부분이 이전시대의 토착 신앙에 영향을 받은 것이라 말하나를 이상하게 바라보며 싸울 태세다. 그들에게 그런 것쯤은 중요하지도 않은 것 같다. 자신의 무지와 나약함을 이라는 창과 방패로 가리는 인간. 눈가리고 아웅식 믿음들. 천국 면죄부, 마녀사냥, 온갖 계파 싸움들을 보라. 마치 神을 칩으로 한 노름판 같다.

인간을 진보의 꼭짓점으로 두는 많은 이론들의 오만함. 자신의 유전자를 더많이 퍼트리는 것이 생물의 주요 목적인 점에서나 진화 우월론으로 본다면, 가장 오랜 기간, 가장 넓게, 더많은 수로, 생존하고 있는 박테리아/바이러스/어류군들이 더 우세한 게 아닐까? 박테리아가 두 다리로 일어서서 직립보행을 하지도 않고 달나라로 가 인증사진도 찍지 못하니 진보적 진화가 아님? 그들에겐 그런 게 필요하지 않는데?

 

ㅡAgal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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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9

  다윈은 링컨과 같은 날에 태어났고 1859년 『종의 기원』의 출판과 함께 혁명의 막을 <공식적>으로 열었다. 1959년 다윈 이론 발표 100주년 기념 행사에서 위대한 미국의 유전학자 멀러는 「다윈 이론에 대한 몰이해는 100년이면 충분하다」는 제목의 연설로 행사장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멀러는 다윈 혁명이 충분히 파급되지 못하게 된 원인을 극단적으로 다른 두 가지 측면에서 봤다. 하나는 창조론이 여전히 대중 문화를 장악하고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진화를 인정하는 지식인들 사이에서 자연선택에 대한 이해가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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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다이제스터 2015-08-16 2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리뷰도 쓰셨군요. 반갑습니다. ㅎㅎ 근데 이 책에 댓글도 좋아요도 없는 것에 더 놀랐습니다. ^^ 아무래도 예전 글이라. ㅎ 하여튼 한가지 궁금한 점은 왜 진화론에 그렇게 관심 많으세요? 저도 정말 진화론이 궁금한데 왜 인지 잘 몰라서요.

AgalmA 2015-08-17 03:19   좋아요 0 | URL
서재 초창기 서로 이웃도 별로 없을 시절 여러 글을 한꺼번에 올렸을 때라;; 여기 리뷰쓰기 메뉴얼도 모르던 때였고, 그렇다고 해도 치열한 리뷰쓰기도 아니잖아요ㅎ;
요즘은 그때가 좀 그립기도 해요. 수백명의 이웃 눈치가 보여서 내맘대로 툭툭 내뱉던 이런 글쓰기가 쉽지 않아서...가끔 내 서잰데 왜 이렇게 눈치를 봐야돼! 하고 툭 던지기도 합니다만....그랬다가 잘못 걸리면 욕 먹고...

요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고 있어요. 북다이제스터님도 잘 아시겠지만, 시대와 편견에 갇힌 역사가가 재단한 역사 기록, 필경 당연하기도 할 겁니다. 4차원에 갇힌 인간이 모든 걸 조망한다는 건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니 말입니다. 상대성이론을 안다고 해도 말이죠.
제가 ˝진화론˝에 관심을 가지는 것도 카의 논지와 비슷합니다. 서로 비슷하다고도 생각되고요. 카의 설명은 사회학적 진화론으로도 볼 수 있을테니. 여튼 저의 그런 관심은, 인간은 너무도 불완전하지만 역사가가 이 시대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과거 사실에 대해 노력해야하듯이 저도 한 인간으로서 인간의 삶을, 제 삶을 이해하고 개선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제가 생각해오던 걸 카가 어찌나 요목조목 잘 설명하는지! 좋은 선생님이더군요. 읽는 내내 힘을 내게 돼요. 이렇게 실의에 빠져 세상을 흐리게 보면 안돼!하고.

다윈의 <종의 기원>이 그당시 나왔을 때 ˝인간의 정신을 없애버렸다˝는 비난을 받았듯이, 꼼꼼히 따져보는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인간은 늘 오류투성이의 거부로 뒤죽박죽 세상을 흐트려버리죠. ˝진화심리학˝, ˝뇌과학˝, ˝자연과학˝, ˝우주과학˝, ˝철학˝, ˝종교˝ , ˝사회학˝ 등등을 접목해 훑어보면 훑어볼수록 인간의 사고방식과 행위들이 얼마나 비합리적인지 그리고 세계를 얼마나 비참하게 만들고 있는지 확인할 때마다 지속적으로 충격과 실의에 빠집니다. 그동안 이런 공부를 더 일찍 관심두지 못한 게 너무도 안타까워요!

˝진화론˝은 제게 확실히 ˝신(神)-절대자˝ 개념을 걷어준 서광이죠. 인간은 믿고 싶기 때문에 믿는 것이죠. 보고 싶지 않은 것은 회피하려는 것과 마찬가지로. 믿음의 창조자는 인간입니다. 신 때문이 아니라. 그리고 이 믿음이라는 성질은 모든 관계성에 적용되는 인간 심리이기도 하다는 게 지금 제 생각입니다. 마음과 뜻을 나눴다고 생각해서 믿게 되고 파를 가르고, 살고 싶기 때문에 사는 것과도 비슷할 테죠. 온갖 의미를 만들어 신과 국가를 떠받들듯이 삶 또한. 나 라는 자아에 대해서도.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 오스카 와일드 펭귄클래식 7
오스카 와일드 지음, 김진석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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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보다 명징하고 아름다운 서문도 드물다. 처음 읽을 때는 책(대상)에 매료되지만, 두번째 읽을 때는 세상의 추함을 더 강하게 느끼게 된다. 작품의 전개처럼. 그러나 세번째 읽을 때는 모든 게 슬프게 된다. 오스카 와일드 작품은 이상하게 그렇다.

예술에 대한 작품 개진이 발자크와 얼마나 다른가, 문득. 

 

헨리경과 도리언 그레이는 지킬과 하이드처럼 이성과 야만성을 함께 지닌 나라는 것을 우린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ㅡAgal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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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88

어쩌면 사람은 자신을 가장할 때가 가장 편안해 보이는지도 모른다.

 

(서문)

예술을 드러내고 예술가를 숨기는 것이 예술의 목표다.

(…중략…)

모든 예술은 무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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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앞에 없는 사람 문학과지성 시인선 397
심보선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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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 속에 어떤 치부를 마주하게 될 때 공감해야 할지 따져 물어야 할지 난감할 때가 있는데-그것이 나 때문인지 당신 때문인지 세상 때문인지 알 수 없어-그때 詩는 난공불락의 요새가 된다. 슬픔으로 빚어낸 예술 중 詩 만큼 인간적인 그릇은 없다. 슬픔의 갈증을 채우기 위해 그릇 속에 담긴 것을 벌컥벌컥 마신다. 눈물인지 술인지 기만인지 최면인지 가늠할 새도 없이.

결국에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인간이길 바랐지 않은가. 살아있는 순간의 비겁함이나 영원함 따위 뭐에 쓰란 말인가.

ㅡAgal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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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래할 책 모리스 블랑쇼 선집 3
모리스 블랑쇼 지음, 심세광 옮김 / 그린비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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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문학을 탄생시키기 위해 블랑쇼처럼 고뇌하기도 쉽지 않다. 인간 의식과 성찰을 통해 언어가 나오므로 그것을 토대로 재현하는 문학을 블랑쇼는 제일 합당한 그릇으로 본 것 같다. 그런데 최종적으로 무엇을 담으려 한 걸까?​ 그리고 우리에게 보이길 원했을까. 독자인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블랑쇼가 그릇이며 그가 담고 있던 것은 가려 졌다. 이 궁금증은 언제 풀리게 될까.

 

ㅡ Agal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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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능한 교환
장 보드리야르 지음, 배영달 옮김 / 울력 / 200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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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4 [자체의 삶을 지닌 불가능한 교환]을 눈여겨 볼만 한데, 한병철 『피로사회』와 비교된다.  장 보드리야르가 이 책을 밀레니엄을 앞둔 시기(1999)에 발표했기 때문인지 꽤나 종말론적 향기를 내뿜는다. 장 보드리야르가 궤변스러운 그러나 너무도 공감되는 철학적 진단(자기 부정)을 했다면, 한병철은 현실적 진단(자기 착취)에 대해 이야기한다.  

 

ㅡAgal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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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체의 삶을 지닌 불가능한 교환]

p53

현대의 개인은 위험 수위를 넘어섰는데, 이 위험 수위를 넘어선 종은 불리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ㅡ 자기 부정은 개인의식의 최종적인 단계가 되었기 때문이다(니체에 의하면 마치 원한이 도덕 계보학의 최종 단계이듯이 말이다). 바로 거기서 모든 해방의 역설과 타락 효과가 생겨난다. 그래서 죽음의 욕구와, 개체화와 성 이전의 상태에 대한 생물학적 향수를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이러한 자기 부정, 즉 이러한 치명적인 반감을 낳는 것은 우리의 현대적이고 역설적인 상황이다. 게다가 오늘날 죽음의 충동이든 아니든 간에, 우리는 개체의 복제 단계와 진화의 영도(degre zero)처럼 복제 인간의 차원에서 원생 동물의 불멸과 같은 것을 발견하게 된다.

             - 장 보드리야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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