웨인 C. 부스 <소설의 수사학>보다 훨씬 쉽고 실용적이다. 완결된 단편(한국 기준 200자 원고지 70장 ~ 80장) 10편 이상 써 본 중급자라도 자신의 안 풀리는 머릿속과 문제점과 관련해 점검해 볼 내용이 많다. 제임스 조이스 <율리시즈> 같은 소설을 쓰자면 어쩐지 <소설의 수사학> 정도는 너끈히 읽어치워야 될 거 같지만 그건 의학 공부하면 모두가 산부인과 수술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는 것과 비슷하다. 이론과 실전은 다르고 달라야 한다. 일정한 수입이 있음 원하는 바를 안정적으로 할 수 있을 거 같았지만 돈 버느라 허송 세월 하느라 꿈을 놓친 수많은 사람들이 생생히 걸어 다니고 있지 않은가. 몸에 상황 전광판이 없어 사방에 안 알려줘서 다행일 지경이지.
이 책과 비슷한 시기에 나온 <그럼에도 작가로 살겠다면> 같은 아포리즘 책은 인용할 게 많아 에세이스트나 비평가, 리뷰어들에게나 유용하지 적어도 소설 창작자에는 큰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잘 될 거야, 잘 될 거야‘ 아편 같은 주문으로 플라시보 효과만 보고 실제 치료할 부분은 내버려 두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난 잘 할 수 있어!‘, ‘당신도 할 수 있다‘ 긍정과 A4 용지를 가득 채우는 실행은 분명 다른 문제다. 긍정의 에너지가 삶을 더 낫게 만든다고 알려져 있지만 사실 딱 그렇지도 않다. KOREA 《SKEPTIC》 창간호 보면 캐럴 태브리스는 낙관주의자가 비관주의자보다 수명이 길다는 주장이 틀렸다는 연구결과와 낙관주의의 폐해를 알리고 있다. 문학은 오히려 오기와 부정의 에너지가 더 컸지 않나? 우리는 비극에서 더 많은 걸 배워왔다. 그것도 옛말인가. 운동하는 소설가들을 봐라! 운동도 습득과 연습의 행동력이라구! 머릿속에 천일야화 뺨치는 게 있어도 지상에 한 페이지도 없음 암 것도 아니다.
이 책은 자기 계발서로 소개해도 좋을 것 같다. 연습 사항들을 따라가다가 소설보다 도를 깨우치러 옆길로 샐지 모르지만(내가 종종...) 그렇다면 애초에 그 사람은 소설을 쓰려던 사람은 아녔다고 봐야지.
‘밖에 나가서 대상이 새롭게 보일 때까지 관찰하고 기록해 보라‘든지 ‘눈을 뜨고 있는 시점과 감고 있는 시점을 각각 써보라‘ 등등 이건 네루다의 우편배달부가 시를 터득해가는 과정과 마찬가지다ㅎ 그래서 시가 중요한 것. 시는 대상을 다르게 보는 관점을 가장 많이 배울 수 있는 분야다. 소설이 추적이라면 시는 투시에 가깝다고 할까. 시인이라는 뛰어난 선생들이 적은 시집 값에 많은 걸 가르쳐 준다. 생활은 궁핍한 자들이 구세군 역할을 하다니 아이러니지 아이러니야. 시를 안 읽는 사람들에게서 나는 공통적인 걸 느낀다. 그것은 뭐랄까. 이걸 소설로 쓰자구~ <시먼 자들의 도시> 비슷하게. 이렇게 고리타분한 생각 연계로는 11번 째 소설도 실패 보장합니다.
이 책 읽는 순간부터 마구 소설이 쓰고 싶어진다. 바라던 바다!
나는 어쩌자고 이러고 있는지 이건 뭐하자는 글인지 어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