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지능을 깨우는가 - 유전자를 뛰어넘는 지능 결정의 비밀
리처드 니스벳 지음, 설선혜 옮김, 최인철 감수 / 김영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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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에서 ˝행복한 가정은 엇비슷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제 나름의 이유로 불행하다˝로 시작하는 첫 문장은, 지능이 유전적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환경 가변성과 더 밀접하다는 설명과도 잘 어울려서 역시 명문장이다.
우선 유전에 대한 이해부터 하자. ˝유전율이란 개인의 어떤 속성이 유전되는 정도가 아니라, 조사 집단 내에서 어떤 속성이 유전되는 정도˝를 말한다.
일반 지능은 크게 유동 지능결정 지능으로 나뉜다. 유동 지능은 새롭고 추상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추론 능력으로, 실행 기능(작업 기억, 주의 조절, 억제 조절 능력)이라고 불리는 정신 작용을 통해 발휘된다. 결정 지능은 ˝학습에 의해 축적된 것으로, 세상의 법칙이나 그 법칙을 알아내기 위해 필요한 절차에 관한 정보˝를 말한다. 유동 지능은 동작성 지능, 결정 지능은 언어성 지능(상식, 어휘, 이해, 공통성, 산수)으로 보고 이를 합친 것이 전체 지능이다. 저자는 ˝IQ가 유전되는 정도는 IQ가 변화 가능한 정도에 아무런 제약은 가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역사적으로 인류는 오랫동안 지능의 결정적 차이를 강조해 왔는데, 지금은 좀 나아진 걸까. 아니니까 저자가 이런 책을 쓴 것이겠지~

 

˝사람들이 흑인과 백인의 지능에 선천적 차이가 있는지 궁금해하기 시작한 것은 1000년도 더 된 일로, 무어족이 유럽을 침략했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어족은 유럽 사람들이 추상적 사고 능력 없이 태어난다고 생각했다! 사실 1000년 전에는 남부 유럽 사람들도 북부 유럽 사람들에 대해 이 같은 의심을 품었다. 키케로는 영국인들을 가르치기란 너무 힘든 일이어서 로마인들은 영국인 노예를 쓰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율리우스 시저는 ˝그래도 험한 일을 시킬 값어치는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19세기에 이르자 이제는 거꾸로 대부분의 유럽인은 자신들이 아프리카인보다 타고난 지적 능력이 더 우수하다고 믿게 되었다. ˝


가정, 드라마에서 ˝너는 아빠 or 엄마 닮아서 머리가 나쁘다˝고 구박하는 걸 종종 본다. 혈액형 성격 유형설과 비슷한 상황인데 인종, 사회계층, 성별, 유전이 지능을 좌우한다고 보는 건 편견이다. IQ 차이를 낳는 모든 요인(유전자, 태아기, 주산기, 출산 직후의 생물학적 요인, 사는 동네, 학교, 양육 방식을 포함한 계층과 관련된 모든 사회적 요인)이 고려되어야 한다. 입양아 연구는 출산 후의 환경 요인이 유전 요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걸 보여줬다.
어릴 때의 정서적 외상은 뇌의 전전두피질을 손상시키는데, 이 영역은 유동 지능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SES(사회 경제적 지위)가 낮은 가정의 양육 방식 때문에 발생하는 스트레스와 하위 계층이기 때문에 겪는 스트레스가 함께 작용하여 전전두피질의 손상을 유발할 수도 있다.
미국의 소득 불균형으로 인한 계층 간 학업 성취도 차이는 개발도상국 수준인데 문해력, 수학, 과학 능력에서 두드러진다. 한국도 경제적 완충 장치들을 꾸준히 보완하지 않는다면 안심할 수 없다. ‘2002년 흑인의 가계소득은 백인의 67퍼센트였고, 흑인 가구의 재산은 백인 가구의 12퍼센트에 불과했다. 백인 미혼모 비율이 24퍼센트인데 비해서 흑인 미혼모의 비율은 72퍼센트였다‘. 중죄를 지은 전과가 있는 백인 지원자가 흠잡을 것 없는 흑인 지원자보다 높은 평가를 받는 현상은 육아 문제를 비롯 성적 특성을 차이로 두며 여성보다 남성을 더 선호하는 경향과도 유사하게 보인다.
또 백인의 경우 남성과 여성 간에는 평균 IQ 차이가 없지만 IQ 분포 최상위에 남성들이 더 많은 만큼 최하위에도 남성이 더 많아 남녀의 평균이 같아진다. 1980년 경 미국에선, IQ가 120 이상인 흑인 여성의 숫자가 흑인 남성의 두 배에 달했다.

교육에 대해 이 책은 많은 조사를 참조해 논의했다.
신임 교사보다 경험 많은 교사가 훨씬 뛰어난 건 모두 수긍할 것이다. 저학년일 때 특히 중요한데 모든 아이들이 경험 많은 교사에게 가르침을 받을 수 없다. 저자는 갈등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한에서 성공적인 교사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안으로 여건이 더 나아지게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수학과 과학 과목에서 컴퓨터를 이용한 교육, 학생들끼리의 협동 학습 기법이 효과적이라는 결과도 주목해야 한다.
마크 레퍼의 개인교습 원칙은 부모들에게도 유용하다. 사소한 오류 지적을 삼가고 아이가 통제권을 갖도록 도와주고, 도전해보도록 자극하고, 자신감을 불어넣고, 소크라테스식 문답법을 이용하며 호기심을 길러주고, 학습 과제를 실생활이나 영화, TV와 관련시켜 맥락화해주는 것. 문제는 이러한 교육 자세가 SES가 높은 가정에서 이뤄진다는 점. SES가 낮은 부모들은 질문보다 잘 복종하고 착하게 행동하는 법을 가르쳐서 평범한 노동자를 길러내는 경향이 있다. 1980년 대 연구 당시 ‘전문직 부모는 아이에게 시간당 약 2000단어를 말했지만, 노동자 계층 부모는 약 1,300단어를 말했다. 하지만 생활보호 혜택을 받는 흑인 가정 아동 경우는 하루에 겨우 600단어를 들었다‘, ‘전문직 부모 아이는 꾸중 한 번에 칭찬을 여섯 번, 노동 계층 부모 아이는 꾸중 한 번에 칭찬은 두 번, 생활 보호 대상자인 흑인 가정 아이들은 칭찬 한 번에 꾸중을 두 번 들었다. 이러한 차이는 인지 발달에 매우 중요한 차이를 가져온다‘.
이 책에는 여러 가지 ‘개입 프로그램‘들이 설명되고 있다. 취학 전 조기 교육은 한국에서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있지만, 빈곤층을 비롯한 소외 계층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국가적으로 지원하면 유의미할 거 같다. 보육비 보조보다 훨씬 나을 것이다. 취학 후에는 학습력이 떨어지는 방학 때 학업 성취도를 높여줄 프로그램도 갖춘다면 더욱 좋겠다. 지금의 보충학습과는 달라야 한다. 이것은 교육 효과만이 아니라 대인관계까지 향상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더 중요하다. 국가적으로는 범죄율과 복지 의존율 감소를 얻게 된다. 물론 개입 프로그램이 모두 성공적이진 않았지만, ‘KIPP(Knowledge Is Power Program)‘ 프로그램의 성과를 볼 때 장기적으로 실행해 볼 가치가 있다. 가장 나은 방법은 소득 격차를 줄이는 것이겠지만.

문화적 차이에 따른 특이점을 짚은 내용이 가장 흥미로웠다.
동양과 서양의 사고방식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다를까 늘 궁금했다. 저자의 다른 책 《생각의 지도》에서도 거론된 내용인데, 이 책에서도 짚고 있다.



유대인의 우수성에 대한 추론들도 재밌었다. 유대인의 IQ와 지적 성취 요인으로 박해의 영향, 바빌론 유수로 신바빌로니아 왕 네브카드네자르 왕이 우수한 유대인을 끌고 간 영향, 상인이나 사업가의 딸이 학식이 뛰어난 학자나 랍비와 결혼을 많이 했다는 설, <탈무드>를 이해할 정도로 똑똑하니 성공했다는 설 등은 신빙성 없는 추측이고, 저자는 19세기부터 기록에 등장한 아슈케나지 유대인의 직업적 특수성을 주목한다. 기독교인들에게 금지된 대부업과 무역, 조세 징수업, 부동산업으로 그들이 부를 축적하고 자손에게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준 것이 유대인 전체 지능을 향상시킨 요인이라고 본다. 신경신호 전달과 신경 분기를 촉진하는 ˝스핑고지질˝이 문제인 고셰병 환자에 아슈케나지 유대인이 많다는 것도 흥미롭다.

저자는 아시아인과 유대인의 높은 학업성취도에 있어 서양의 개인 독립성과 구별되는 전통적인 가족 간 결속이라는 공통점을 발견한다. 아시아인과 유대인의 중요한 차이는 동양과 서양의 차이점이기도 한 점인데, ˝일본과 한국이 속한 유대 전통에서는 지식이 지식 그 자체로 가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반면 ˝유대인은 지능, 지적인 삶, 성취에 가치를 둔다는 사실˝. 서양인들이 실용적, 공리적 측면을 더 추구한다고 생각하던 내 인상과는 다른 견해였는데, 자세한 비교를 보니 그럴 듯했다. 내가 아시아인이라서 그럴듯하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겠다ㅎ; 동양과 서양 차이, 이를테면 자신이 잘하는 것에서 인정받고 싶어 하는 능력 성취형 서양인, 자신의 부족함을 노력으로 극복하려는 동양인 그런 구분이 저자의 사례 비교로 증명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의 제기가 발생할 소지도 보인다.

책 말미에 지능 향상법이 한 챕터로 정리되어 있다. 모차르트 음악이 지능을 향상시킨다는 증거가 없다는 건 재밌었다. 극단적인 환경에 가둔 쥐에게 음악은 새로운 자극이었을 뿐 그러한 동물 연구로 지능 향상법 반열에 오를 수 없다는 것. 그래도 태교 음악은 팔리겠지...

나는 내 IQ를 모른다. 이 책을 보고 나니 더 궁금하지 않아졌다. 호기심이 꺼지지 않도록 내가 내 좋은 선생이 되어야겠다 싶으며 끝. 

 

 

※지능에 대해 이상한 소리하는 사이비 책이면 어쩌지... 걱정했는데, 논리, 조사 등이 충실하니 결정론적인 것만 가려 읽는다면 읽어볼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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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7-04-17 17: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요즘 제가 머리 나쁘다는걸 확인하고 있는 순간들입니다.ㅎㅎㅎㅎ(나이탓도 있고..원래 지능도 딸리는 것의 합집합이 된 기분이랄까요..ㄷㄷㄷ)

AgalmA 2017-04-17 17:30   좋아요 1 | URL
아, 깜빡하고 언급을 못했는데 나이와 관련있기도 합니다. 아이 때는 유동지능이 활발한데 나이들수록 결정지능이 더 강화됩니다. 결정론적인 사고를 많이 하게 되니 꼰대나 보수가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게 뇌과학적으로 그렇다는^^;; 다행히 yureka01님은 보수나 꼰대가 아니시니 엄청 긍정적인 상태 아닌가요!

북다이제스터 2017-04-17 2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생각의 지도> 저자네요.
예전 워낙 잼 있게 읽은 책입니다.
영어를 사용하는 영국인이 추상성이 떨어진다는 말이 좀 의외입니다. <플루언트> 이론과 다르네요.
하긴 모든 이론은 주장일뿐이니깐요. ^^

AgalmA 2017-04-17 21:40   좋아요 1 | URL
이 책을 통해 ˝다중회귀˝라는 걸 알게 되었는데요. 여러 독립변인 또는 예측변인과 어떤 목표변인 또는 결과변인의 상관을 동시에 구하는 방법이라고 하죠. 저자는 인과 관계를 밝히는 실험 연구가 다중회귀를 사용한 연구보다 더 좋은 방법이라고 합니다. 연구자가 아무리 객관성을 확보하려 해도 자기선택적 속성을 완벽히 배제할 수 없을 겁니다. 마치 불확정성의 원리처럼... 결국 어떤 주장을 펼치든 확고한 증명이 나오지 않는 이상 신빙성의 싸움이라고나 할까...^^;

영어와 추상성의 관계가 깊나요?
저는 대륙적 차이를 생각하게 됩니다. 흔히 영미권 철학을 분석 철학, 독일과 프랑스권 철학을 대륙 철학으로 크게 나눠 보잖아요.
영국 베이컨의 경험주의 철학과 프랑스 데카르트 주지주의 철학의 차이처럼. 깊이 공부하지 않은 저로선 논리적으로 설명하긴 어렵고 확실히 다르긴 한 거 같거든요. 프랑스 철학은 도대체 뭘 말하는지 모르겠다! 투덜대는 사람들의 느낌을 알 것도 같고ㅎㅎ
이 책에서 동양인 사고방식 평 읽고 나니 뜨끔하기도 해서 좀더 분석적이고 논리적으로 공부해주겠써 오기 발동!ㅎㅎ

북다이제스터 2017-04-17 22:4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다중회귀 말씀에 일단 AgalmaA님 전공은 사회과학 계통은 아니신 듯....ㅎㅎ 제가 그림과 철학을 잘 모르 듯이요. ^^
영어가 추상성이 높단 말은 우리나라 말과 비교해서 그렇고 말씀처럼 서양권 내에선 큰 차이가 없는 듯도 합니다. ^^

AgalmA 2017-04-17 22:07   좋아요 1 | URL
제가 사회과학쪽이면 지금보다 똘똘하게 말하고 더 잘 살았을 듯ㅎㅎ 아, 이럼 문과 비하가 되나....흐음.

북다이제스터 2017-04-17 22:55   좋아요 1 | URL
제 짧고 서툰 농담에도 항상 넓은 마음으로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

cyrus 2017-04-17 22: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모차르트 효과‘를 검색해보면, 재미있는 결과를 확인할 수 있어요. 효과를 입증했다는 실험 결과를 인용한 사람이 있는 반면에 무효함을 입증한 실험 결과를 인용한 사람이 있어요. 저는 후자에 동의합니다.

AgalmA 2017-04-17 23:04   좋아요 0 | URL
‘모차르트 효과‘는 ‘물은 알고 있다‘와 비슷하게 여겨집니다. 실험들을 보면 음악만 듣고 그런 결과가 나왔다고 볼 수 없어요. 중간변수가 상당히 있거든요. 시간차, 실험에 대한 기대부응(피실험자의 자기 선택), 아이 경우 뇌발달이 이미 진행되는 상황 등등.
비슷한 예로 흑인이 음악 재능이 뛰어나다 여겨지지만, 이 책에서는 여러 환경적 어려움 때문에 엔터테인먼트로 재능을 발달시킨 거라는 견해^^

페크pek0501 2017-04-18 22:2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전자냐 환경이냐. 인간은 어떤 것에 더 지배를 받는가. 궁금한 점입니다.
범죄를 저지른 적이 있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가 커서 범죄를 저지를 확률이 많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해도
꼭 유전자 때문이라고 볼 수 없겠지요. 범죄를 저지르는 부모 밑에서 자랐다는 환경(나쁜 교육 환경, 가난한 환경 등)이라는 변수가 있으니 말이에요.

같은 환경에서 자랐는데도 많이 다른 우리 두 아이를 키우면서 유전자의 힘은 세다, 라고 느낍니다.
한 아이는 아빠를 닮아서이고 한 아이는 나를 닮아서라고 느껴질 때 그래요.
사실 같은 환경이랄 수는 없겠지요. 맏이와 둘째, 라는 자리가 다르고 또 학교에서의 환경도, 경험도 각각 다를 테니까요.
모든 걸 종합한, 완벽한 분석은 어려울 듯싶어요.

님의 글을 읽으니 흥미로워서 댓글을 길게 쓰게 되네요. ㅋ

AgalmA 2017-04-18 23:51   좋아요 0 | URL
pek0501님은 인간 심리에 관심이 많으시니 이런 논의에 당연히 흥미를 느끼시리라 생각합니다.
위에 언급한 ‘개입프로그램‘이 유의미한 결과를 보여줍니다. 가정 상황(물질적, 정신적)이 좋지 않은 아이들을 대학 때까지 꾸준히 살피는 표본 조사도 있는데 지능향상만이 아니라 진취적으로 살아가는 동기부여를 많이 얻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저체중으로 태어나는 것만으로도 지능에 영향을 미치니 변수가 참 많습니다.
같이 생활하다 보니 아빠나 엄마를 닮는 것이지 태어날 때부터 성격적인 걸 유전받는다는 것에 저는 동의할 수 없겠습니다^^
신체상의 장애나 질병 유전으로 인한 영향은 고려되어야 겠지만요.

요즘 인공지능 얘기도 대두되니 더 흥미로운 얘기가 많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