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랭보, 알랭 바디우 <알랭바디우, 오늘의 포르노그래피>) 그래서 ˝사랑은 거듭 발명되어야 한다˝(랭보, 알랭 바디우 <사랑예찬>)고 말한 거라고 할 순 없겠지만, 한 개인이 쓰는 언어는 어떤 종합을 보여준다. 각자가 쓰는 언어 속에는 말하고 싶은 것과 말할 수 없는 것과 말하면 안 되는 것과 말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늘 뒤섞여 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말하고야 마는 욕망들이라고 해야 하나. 뱉고 나서 더 반성할 수 있다는 건 서글프다. 살지 않고 살았다고 할 수 없는 것과 비슷하려나. 그러나 허구 속에서, 환상 속에서, 허위 속에서, 부족함 속에서도 산다. 아아.
그 와중에 오늘 그림은 좀 맘에 든다. 이 속에 내가 겨우 존재하고 있다는 생각. 그래서 창작은 에토스이자 토포스이자 파토스.
내게 겨우와 전부는 아주 가까운 어휘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