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 지성사(이하 문지) 책을 찾아 사진을 찍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사진을 찍고 나니 저기 또 한 권이 발견되고, 돌아보면 여기 또 한 권이 있고. 추려보니 80여 권 정도 되었다. 중고로 판 책도 많고, 도서관에서 빌려 읽은 책도 많으니 문지 책을 적게 봤다고는 할 수 없다. 지금 내가 하는 말은 어쩌면 이벤트 성격에 맞지 않는 쓴소리가 될지 모르겠다. 내 애정을 알아주길 바랄 뿐. 문지 책이라고 생각했던 책이 다른 출판사 책일 때가 많았다. 왜 그랬을까.
모인 책들을 보며 나를 돌아보기보다 문지 특징을 더 생각하게 됐다. 문지의 주력 분야는 시집일 것이다. 그간 독보적인 시인들이 문지를 통해 많이 소개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는 요즘 문지보다 다른 출판사 시집을 더 많이 본다. 그 변별점으로 이런 문장을 떠올렸다. 새로운 수혈이 되고 있는가? 어려운 시인들의 입지를 보조해주는 역할은 칭찬받을 일이지만 구축한 색깔 속에서 정체된 인상이라면? 문지 시집을 통해 인상적으로 만난 시인들을 잊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도 그래 주길 바란다.
문지 소설 분야에서는 독특한 작가를 찾아내 소개하는 뛰어남에 감사할 때가 많았다. 내 책장에는 없지만 한유주 작가 책을 처음 읽게 되었을 때 머리를 때리는 얼음물 한 잔을 마신 듯했다. 박상륭, 파스칼 키냐르, 조리스-카를 위스망스, 로버트 M. 피어시그, 프랑수아 라블레, 로렌스 스턴 같은 무시무시한 작가들의 책 소개는 또 어떻고! 2001년 시작된 대산 세계문학 총서에 관심이 많았는데 최근 출간되는 책들을 보면 기대에 못 미친다. 지성을 지키고 가꾸는 노력도 좋지만 그들만의 리그로 보이지 않으려면 더 많은 독자가 관심을 가질 책들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반영해야 하리라고 본다. 독자에게 책을 사달라 하소연만 할 일이 아니다.
다니엘 페나크 《몸의 일기》는 집중해서 다 읽을 수 있을 때 꺼내려고 때묻을까봐 비닐에 싸서 곱게 보관하고 있다ㅎ;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는 작지만 알찬 책들이라 사라지지 않았으면 싶은 시리즈다. 이 시리즈에서 나온 볼프강 보르헤르트 《이별없는 세대》, 마르그리트 뒤라스 《모데라토 칸타빌레》, 토마스 베른하르트 《모자》, 오노레 드 발자크 《사라진느》 등 소품이지만 기억할만한 작품들이 많다. 이성복 시인의 원래 시집들보다 나는 이 시리즈에서 나온 《정든 유곽에서》 편집본을 더 좋아할 정도ㅎ 절판된 게 많아 아쉽지만 이 시리즈는 도서관을 이용해서라도 틈틈이 챙겨서 보고 싶어진다.
이름 때문일까.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도 있지만 문학과 지성사의 스펙트럼은 문학과 인문의 자장 안에서만 머문다는 느낌이 많다. 다양한 학문과 기술이 치열하게 교류하고 엮이는 지금 시점에서 문지가 매우 고심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출판 시장이 어려워진 만큼 그래서 더 고민할 지점이다.
근래 문지에서 나온 책 중에 김현경 《사람, 장소, 환대》와 《셰익스피어 전집》이 가장 내 관심 책인데, 전자는 읽으려는 내 노력이 더 필요할 거 같고(책 소개를 하도 많이 받다보니 흥미가 좀 떨어져서..) 후자는 내 비용 투자가 더 필요할 거 같다(넘 비싸!)ㅎ;;
이제는 직접 사서 읽어야 할 때라고 생각하는 책도 있다. 아도르노와 메를로-퐁티. 어렵지만 깨달음의 순간을 전해주는 문장들을 나는 늘 잊지 못했다. 오래 걸리는 건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조차도 결국 잃을 것이지 않은가.
문학과 지성사에 대한 내 관심은 앞으로도 꺼지지 않을 것이다. 살아 있으라, 어디든!*
* 살아 있으라 누구든 살아 있으라 (기형도 詩 '비가 2' 중에서 변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