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책모임을 시작했다. 정확히는 참가하기 시작했다. 온라인 속에서의 대화는 어쩐지 제자릿말이나 혼잣말 같은 한계 때문이었다. 마지막 책모임에서 5~6년쯤 되었나. 한여름 정독도서관에서 모였던 게 왜 가장 기억에 남는지 생각해봤다. 사람보다 그 장소 때문인 것 같다. 종로가 터가 좋긴 한가보다. 같이 책 얘기 하던 이들의 각종 화려한 등단, 책 출간, 수상 소식을 간간이 들었다. 그들 책에 대해 나는 객관적일 수 없어 함묵했다.

학문에 대해, 책에 대해 나는 스토너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스토너. 자신의 책을 유일하게 한 권 낸 사람. 그것도 불완전한 채. 그야말로 인생 자체인가.

그가 그토록 중요시했던 문법. 글의 방식, 삶을 말하는 방식.

셰익스피어 소네트에서 영문학에 눈 뜬 후부터 그의 관심은 오로지 한 길이었다.

말년에 셰익스피어의 일부 희곡에 살아남은 고전 시대와 중세 시대 라틴 전통에 대한 강의를 하려 한 것만 봐도.

그것은 열정이었고, 고집이었고, 뿌리에 대한 탐구였고, 서로가 이어져 있는 삶이었다.

우리가 오로지 라는 정체성으로만 이뤄진 게 아니듯.

 

E.H. 카 역사란 무엇인가엔 이런 문장이 있다.

사회와 개인은 분리될 수 없다; 그것들은 서로에게 필수적이고 보완적인 것이지 대립적인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도 그 자신만으로 전체가 되는 섬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대륙의 한 부분이며, 본토의 일부이다라는 것은 던(1573~1631, 영국 시인)의 유명한 말이다.”(p47)

E. H. 카는 실재로서, 스토너는 허구로서 양차 세계대전 속에서 산 인물이다.

스토너가 여러 상황과 관계 속에 결국 큰 성과 없이 삶에 실패한 것으로 생각하는 건 이 책을 너무 '주체-개인'에 치중해 보는 거라고 할 수 있다. 아처 슬론과 스토너가 닮았고 홀리스 로맥스와 찰리 워커가 닮았고 이디스와 그레이스가 닮은 것은, 개인들과 사회환경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결과로서 보인다. 그들이 전형적이고 시시한 인물들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작가의 작위성 때문이라고도 볼 수 없다. 세상은 서로가 영향을 주고 받는 겹침의 유사성이 모이는 곳이며 우리가 살피기에 그것은 드러난다. 우리가 지금 여기에 모여 있고 이 세계를 살피듯 말이다. 스토너가 끝없이 문헌을 살폈듯 우리는 모두 삶의 해석자다.

 

스토너가 늦깎이로 만난 영문학과 캐서린을 통해 “공부와 욕망의 유사함,사람”과 "자기"를 깊이 이해하게 되듯이 우리는 아주 느리고 혹독하게 하나씩 배워나간다. 만나기 전엔 알 수 없으며 안다는 것은 순간이 아니라 아주 긴 시간의 여정이 필요하다. 스토너는 그걸 보여줬다.

스토너는 이디스와의 관계에선 끓어오르는 감성에서 출발해 이성(理性)으로 바라보게 되었다면, 캐서린과의 관계에서는 이성(理性)적인 차분함에서 애절한 감성으로 나아가게 된다. 사람은, 삶은, 같은 질료와 성질들이라도 얼마나 많고 다른 경로를 만들어 가는가. 나와 당신이 정독도서관을 경험한 것은 분명 다르다. 우리는 우리 자체의 개별성이 아니라 이런 무수한 경험의 개별성으로 각자의 독자성을 가진다. 그리고 관계와 경험 속에서 우리는 자신을 볼 수 있는 시점을 얻는다. 이것은 분명 행운이다.

 

스토너에서 모든 인물은 도피자였는지 모른다.

거친 농사일과 가업보다 학문을 택한 스토너, 억압적인 가정에서 탈출하기 위해 스토너와 결혼한 이디스, 그런 이디스와 다른 이의 인생에 개입하지 않으려 하는 스토너를 떠나기 위해 임신을 하고 결혼한 그레이스(얼떨결에 좋아하지도 않은 그레이스와 결혼했던 청년도 전쟁으로 도피한 것인지도 모른다), 인간 관계는 외면한 채 자신의 신체적 불구를 학문적 성취로 채워 보려 했던 로맥스와 워커, 똑똑했지만 삶의 의미에 회의적이어서 전쟁에 무모하게 뛰어들어 전사한 매스터스, 자신이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적당히 챙겨 삶을 꾸린 핀치, 처음부터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하고 사랑을 시작했고 결국 떠날 수밖에 없었던 캐서린....

그런데 우리는 얼마나 다른지? 우리는 타인의 삶에 대해 독자나 관객일 수는 있지만 판결자는 아니다. 내 인생에 대한 평가는 죽음 앞에서 홀로 명징하게 이뤄져야 할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삶은 개개의 자격을 얻으며, 그 죽음도 개개의 것이 된다.

 

삶에서 한 가지를 고집스레 고수했던 두 주인공 필경사 바틀비와 영문학 교수 스토너를 생각해 보며, "안 하고 싶습니다"로 불가능으로 밀어붙인 바틀비와 한도 내에서 끈질기게 해보려 했던 스토너가 과연 다른 방식이었을까.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는 동화나 할리우드 로맨스 영화의 결말이다.

소설에서도 현실에서도 우리는 자신이 처한 삶 앞에 힘겹게 살며 힘겹게 죽는다.

나는 그걸 가슴 깊이 이해하고, 쓰고, 죽고 싶다. 그것은 나만을 이해하고 죽는 건 아닐 것이다.

책 속에서 삶을 읽고 삶 속에서 책의 지혜를 펼치는 치열함, 나는 이것이 진정 상호적인 삶의 미덕이라고 생각한다.

 

 

 

 


댓글(30) 먼댓글(0) 좋아요(3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6-01-24 18: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4 18: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4 18:0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4 18:4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4 18: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4 18: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4 19: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4 20: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4 20: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24 20:4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비로그인 2016-01-24 18: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 모임, 성과를 기원합니다.
스토너, 역사적 무게감이 살아 있는 작품인 듯 합니다.

AgalmA 2016-01-24 19:30   좋아요 1 | URL
새해 들어 몸도 정신도 새롭게 움직여보려 하는데, 제 자신이 가장 문제이죠^^
<스토너>는 소설로서만 보면 전형적이랄 수도 있지만, 누구든 어느 시점에서든 각각의 인물과 상황에 자신을 대입해보며 생각해 볼 지점을 주는 좋은 작품입니다.

만병통치약 2016-01-24 19: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책모임은 항상 로망이지만 노망부릴까봐 참여를 못하겠습니다. 듣기이해능력이 떨어지고 남의 의견을 담아두지 못하는 저로서는 독서모임의 최악의 참여자요...... 내 의견이 진리고 남의 의견은 헛소리 ㅋㅋㅋㅋㅋ

AgalmA 2016-01-24 19:28   좋아요 1 | URL
로망, 노망ㅋㅋㅋ 만병통치약님 라임맞추기 팬입니다..크크
오프라인으로 보면 남의 의견 대놓고 헛소리라고 할 수 없게 되죠ㅎ;; 더 직접적으로 부딪히고 진지하게 듣게 되어서 장단점이 있는 듯^^

[그장소] 2016-01-24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상당히 이전과는 다른 느낌의 글예요!^^
스토너의 힘인가?
오늘 스토너를 다른곳에서 읽고 왔는데..
한 쪽은 원문판을 올려놓은것
한쪽은 읽은 것을 나름 정리한 것 ㅡ
스토너의 날이군요...
ㅎㅎㅎㅎ
어제는 셰익스피어의 어떤 작품 을 가장 좋아하는지를 들었는데...이 건 무슨 계시 같아요..(뭐라?!)
스토너를 읽어..읽으라고..하는 ..푸흣~

AgalmA 2016-01-24 19:38   좋아요 1 | URL
모험 두 배 시키지 말고 <스토너> 보낼 걸ㅎ! 당연히 읽으셨겠지 싶어서^^
셰익스피어야 해와 달이 뜨듯 책세상 만물보존의 법칙 아니겠나요ㅋ;;

글 느낌은....정식 리뷰라 재미 위주는 빼서 그런가봐요:)

[그장소] 2016-01-24 19:48   좋아요 0 | URL
푸흣~ 너무 인기가 좋아서 살짝 흥~ 그랬거든요!
오베라도 그렇고...베스트 셀러라고 올라오는건
어쩐지 뭔가 개입한것 같아서 ( 이 심술 )
얼른 선택을 안하게 되버려요...고질병...ㅎㅎㅎ
직접 서점을 갔다면 아마 달랐을건데..그쵸?

요즘은 천천히 한번 더 읽을 때가 되어간다고
셰익스피어 ㅡ뭐 ㅡ그런 생각을 하는 중예요.
내년 쯤...?

재미위주를 빼도 신선해 ㅡㅎㅎㅎ 이건 일반적이고도 평범 한 보통사람들 형식의 리뷰인데 ㅡ
이걸 쓴게 당신이란게 ㅡ놀랍다는거... 역시 나
쉬운글도 쓰는 구나...ㅎㅎㅎ ( 아..이글이 쉽다는게 아니라 ㅡ리뷰도 쉽다는건 아님 ㅡ평소 논문같은 당신의 글을 생각해보라 ㅡ)
암튼 ㅡ갖 짜낸 오렌지 즙 같아..신선 하다....^^

AgalmA 2016-01-24 20:10   좋아요 1 | URL
맞아요, 우리 책 뒷북 한가닥 하는 사람들이잖아요ㅋㅋ 저도 미루고 있다가 책모임 때문에 부랴부랴 책 사서 본 거ㅎ;;
나이 들어 죽기 전에 마지막 장면은 꼭 다시 볼 거 같아요.
˝너는 뭘 기대했나˝ 그 문장과 죽음을 만나는 그 순간....

셰익스피어 저도 다시 읽어보려 책도 다시 사고 했는데 그것참...거참,,으흑참...

제가 제멋대로 방식이 좀 많았죠^^a 책모임 대화를 하면서 곁가지들을 많이 쳐내고 오롯이 남은 것만 올린 거라 그럴 지도.
<스토너>가 아주 정중한 작품이라 그 영향일 수도 있겠고요^^

[그장소] 2016-01-24 21:19   좋아요 1 | URL
스페셜 토너 ㅡ라...그래 ^^
(말이야 빵꾸야~!)
책 뒷북 ㅡ한가닥 에 동감~!!

`너는 뭘 기대 했나` 죽기전 ㅡ어제 한해숙 작가님 과 글대화에서 주고 받은게 죽을때도
아..이 다음 장을 ㅡ였는데...
!!!

셰익스피어 ㅡㅋㅎ 거봐 ㅡ뭐래...이번 생은 어쩔수 없으니 거부하지 말라니깐~!^^
(아, 나의 승리 ?! ^^) ㅋㅋㅋ

AgalmA 2016-01-24 21:20   좋아요 1 | URL
토너 바닥 나면 클 나겠어요. ˝얘, 김군아-ㄷ)˝
언제 제가 승리나 했습니까ㅎㅎ

[그장소] 2016-01-24 21:43   좋아요 1 | URL
아~싸!^^ (그렇지만 ~ 애정의 줄다리기는 계속 밀당모드라능) ㅎㅎㅎㅎ
바닥나면 김군이
˝ㅅ~ 토너....또?! ˝ 이럼서 궁시렁 궁시렁
하겠지....

AgalmA 2016-01-24 21:51   좋아요 1 | URL
그 김군은 아마 또 나겠지(_ _).... 하필 그장소 포로가 돼서 유머도 배워야되고 할 일이 많아...
ㅎㅎ;;

물고기자리 2016-01-24 21:33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책모임 경험이 저도 있는데 언제 떠올려봐도 좋아요. 갈 때마다 가슴이 두근두근했었던^^ 저 같은 성향의 사람들에겐 온라인상의 대화는 그 미묘함을 다 전달하기 힘들어 지레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실제 만남에선 유연하게 합주하고 변주할 수 있어서 참 좋더라고요. 특히나 합이 좋은 구성원들과 함께하면 완전 행복하죠ㅎ

Agalma 님은 온라인상에서도 훌륭한 대화의 상대였으니 현장에도 멋지게 활약하실 것 같아요^^ 단정 짓거나 설득하려기보단 좋은 질문들이 있는 Agalma 님의 리뷰처럼 말이죠ㅎ

[그장소] 2016-01-24 21:46   좋아요 2 | URL
오 ㅡ^^ 잘 아시는 군요?
드림캐쳐죠...? 나쁜 꿈을 걸러 준다는 ㅡ
예쁘네요...그걸로 물고기 잡는건 아니죠?
(얘가...또 딴데로 샌다...ㅎㅎ;)
좋은 저녁 되세요!^^

물고기자리 2016-01-24 21:53   좋아요 2 | URL
넹~ 맞아요^^ (제가 낚시를 제법 하니까 또 모르죠ㅋ)

역시 그장소님은 A 님의 영혼의 커플답게 주인장 보다 먼저 맞아주시는군요!!ㅎ

AgalmA 2016-01-24 22:03   좋아요 2 | URL
물고기자리님 프로필 이미지 좋다, 좋다 안 그래도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장소님이 제 복화술 대신 해줌ㅋㅋ 우리 다 낚임ㅎㅎ

그쵸. 두근두근 그 설렘이 오랜만이라 사람 첨 본 사람처럼 엄청 떠들어서 좀 미안하기도;;; 물론 다 하고 나서 -_-a;;;

물고기자리님과 언제 오프라인에서 꼭 얘기를 나눌 수 있었음 좋겠어요. 시합을 하자는 건 아니고요ㅋ;;; 늘 제게 드림캐쳐 같은 말씀을 주시는 분이죠. 물고기자리님은. 다른 많은 분들도 그렇게 느끼실 거라 생각하고요.

다른 서재 가면 그장소님이랑 저랑 무슨 만담 콤비가 자주 되어서 요즘은 제가 좀 자제하고 있죠;;; 서로의 서재 가서 마당 쓸고 가재 잡고 하는 정도로;

물고기자리 2016-01-24 22:07   좋아요 2 | URL
드림캐처 같은 말씀이라니!! ㅋ 무슨 사이비 종교 같아요ㅎ

두 분 만담이야말로 드림캐처급이죠^^

Agalma 님과 만나서 이야기하려면 일주일쯤은 시간을 빼야 할 것 같은데요. 이야기를 끊지 못 할 것 같은 느낌 같은 느낌이요ㅋ

AgalmA 2016-01-24 22:19   좋아요 2 | URL
물고기자리님 프로필 이미지가 프리메이슨 만큼이나 홀릭적이구만요, 뭘ㅎ

그장소님 계시면 우린 대화 합숙해야 할 지도ㅋㅋ 사이비종교집단 맞나;;; 슬랩스틱만 잔뜩 배우는...;;

[그장소] 2016-01-24 22:17   좋아요 2 | URL
어라랏~ 이 분들 보통이 아니신데?
이거 이거..은근 디스전? 우와~~~!^^
고도의 심리전이넹~^^ 멋지시구료 !^^
ㅋㅋㅋㅋ컬쳐 쇼크 ! 뚜앙~~~!^^
심벌즈 !
신세계교향곡 ㅡ필요해...!!!

[그장소] 2016-01-24 21: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핫 ㅡ^^
있을때 ~잘해 ~그러던데~^^퍼플즈 노래..ㅎㅎㅎ
나이 들어 등에 손 안닿으면 어쩌려구..
ㅎㅊㅃ !^^
ㅋㅋㅋㅋ
물고기 자리님께 ㅡ바톤 터치 ㅡ하고 ㅡ솥뚜껑 운전하러 갑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