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래도 좋을 그림》 에서 정은우 작가가 독일 펠리칸 4001 블루블랙 잉크를 소개하는 사진 속에 내가 인도 갔을 때 썼던 수첩이 보여서 반가웠다.
수첩엔 내가 여행 전 빽빽이 메모했던 그 나라 언어가 남아 있었다.

해(年)는 वर्ष [살]이라고 발음했다.
시간(時間)은 समय; [간타]라고 발음했다.
빨리빨리 जल्दीजल्दी [잘디잘디]는 시장이나 기차역에서 흔히 들을 수 있었다.

낯선 언어가 이해되는 걸 신기해 했을 뿐 현지에서 이 단어들을 실제 써 보진 못하고 돌아왔다. 내 것이 되지 않은 것들은 그렇게 쓰기가 어렵다. 그런데 타인을 어찌 다 이해할까.
가끔 그곳 꿈을 꿨다. 현실의 나는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들이 꿈속에서 음악처럼 울렸다. 꿈속의 나는 그곳에서 태어난 아이처럼 자연스럽게 말하며 뛰어가고 있었다.

만년필로 글을 쓰는 데는 큰 관심이 없었는데, 정은우 작가 그림의`블루 블랙` 색감은 만년필로 그려 보고 싶게 한다. 《문구의 모험》 표지도 블루 블랙 잉크 색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좋을 그림》이 보는 문구 이야기라면, 《문구의 모험》은 듣는 문구 이야기다. 정은우 작가의 만년필은 일상과 먼 나라 풍경을 그리고 있었다. 《문구의 모험》에서 어떤 만년필은ㅡ흑심이 부러지면 사고 위험이 있는 연필 대신ㅡ우주로 날아갔다.
우주 만년필은 지구 만년필과는 퍽 다른 이야기를 썼을 것이다. 모두가 다른 필체를 가지고 있듯이.

쓰지 않은 글, 태어나지 않은 이미지를 상상한다.
그리고 사라진, 사라질 것들을 떠올리기도 하며
오래된 동전을 꺼내 이리저리 살펴보면서,
2015년을 이렇게 끝내도 좋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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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12-31 08: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한해도 ..책으로 즐거운 시간이었습니다.
내년에도 책 소개 잘 부탁드립니다. ^^..

AgalmA 2015-12-31 19:26   좋아요 1 | URL
처음엔 제가 읽은 책에 대한 간단한 소감이라도 남기고 지나가자 싶었는데, 개인적 독서일기와 여기 리뷰를 동시에 쓰다보니 일이 점점 커져서 버겁고 부담스럽긴 합니다.
헌데 정말 좋은 책이다 싶으면 또 발동이 걸리고ㅎㅎ; 별점도 책 고를 사람 생각하다보니 제 취향으로만 별점을 주지 않게 되고 여러 모로 까다로운 일입니다. 여하간 좋은 책을 보는 것이 제일 중요하겠죠^^
내년 yureka01님 책 소개도 기대합니다/

초딩 2015-12-31 08: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인도 ~ 저도 예전에 출장으로 북쪽이랑 남쪽에 꽤 오랫동안 있었어요 ㅎㅎㅎ
노이다 갔을 때 힌두어 단어 재미삼아 배운 것도 기억나네요 ㅎㅎㅎㅎ

AgalmA 2015-12-31 19:22   좋아요 2 | URL
전 북쪽만 주로 가서 남쪽 고야 이런 델 못 가서 아쉬웠어요. 가서 실랑이를 하며 여행했던 게 너무 피곤했는데, 다시 가고 싶긴 해요ㅎㅎ

초딩 2015-12-31 08:26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아 그리고 블루 완전 매력적이에요 !!!

AgalmA 2015-12-31 19:23   좋아요 2 | URL
초딩님도 블루 블랙 잉크와 만년필을 구매하셔야 겠습니다ㅎ

북다이제스터 2015-12-31 19:4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올 한 해 감사합니다.
새해 더욱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

2015-12-31 19:5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31 20: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12-31 20:1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에이바 2016-01-01 00:1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블루블랙 오랜만이에요. 많은 생각이 떠오르네요. 아갈마님의 인도 덕에 알라딘에 자리잡을 수 있었어요 ㅎㅎ 고맙습니다. 새해에도 건강하시고 잘 부탁드려요. 복 많이 받으세요 ^^

AgalmA 2016-01-01 01:04   좋아요 1 | URL
에이~ 제가 뭐 한 게 있나요^^ 에이바님의 멋진 글과 열정 만날 수 있어서 영광이었습니다!
2016년 에이바님 글을 흥미롭게 볼 수 있어 복 받은ㅎㅎ
작년 한 해 감사했어요!

2016-01-01 01: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01 01: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6-01-21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문구의 모험이 길을 떠났다고 한다 ㅡ

AgalmA 2016-01-22 16:57   좋아요 0 | URL
부러웡~ 부러웡~
전 지금 세계사 공부 중ㅜㅜ...맨날 하고 나서 이 힘든 걸 왜 하나 나를 원망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