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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 『어제의 세계』 - 잃어버릴 수 없는 고향을 찾고 있습니다

 

§ 어제의 세계』- 남겨질 권리

 

절박한 전쟁 상황에서 슈테판 츠바이크는 아무 자료 없이 기억에 의존해 500페이지가 넘는 어제의 세계를 썼다. 그가 全 생애에 걸쳐 경험한 '근·현대 유럽 세계사'라고 할 내용이다. 유대인이라는 약점 때문에 여러 나라를 떠돌 수밖에 없었던 츠바이크는 1·2차 세계 대전 전후해 그 시대상과 지식인들의 움직임을 상세히 회상하는데, 이러한 저작의 전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는 서문에서 이렇게 썼다.

 

 

왜냐하면 나는 우리의 기억이라는 것이 어떤 것은 그냥 우연히 보유하고 다른 것은 단지 우연히 상실하는 그런 것이라고 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의식하면서 정리하고 쓸데없는 것을 현명하게 줄이는 힘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사람이 자기의 인생에서 잊어버리는 것은 모두 원래 내면의 본능에 의해 훨씬 전에 잊혀지고 말게끔 정해져 있는 것이다. 오직 스스로 남으려고 하는 회상만이 다른 여러 가지 회상에 대신하여 남겨질 권리를 갖는다.

그런즉 이야기하라, 선택하라, 그대 회상들이여! 나의 회상 대신 말이다. 그리고 적어도 나의 인생이 어둠 속으로 가라앉기 전에 내 인생의 영상을 보여 다오!”

 

  

 

 

 

§§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과 슈베르트 호텔 - 기억의 계승

 

 슈테판 츠바이크 어제의 세계에서 영감을 받아 웨스 앤더슨 감독은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The Grand Budapest Hotel, 2014) 각본을 쓰고 영화를 만들었다. 영화의 도입이 왜 죽은 작가의 무덤 앞 애도와 그의 인터뷰에서 시작하는지, 영화가 왜 호텔을 차지하는 군상들의 삶처럼 액자식 구성인지, 왜 그렇게 유명한 출연진들을 많이 썼는지 어제의 세계를 읽으며 이해하게 되었다.

어제의 세계는 수많은 인물과 나라, 시대를 이야기한다. 그저 스쳐가는 뉴스가 아니다. 영화 진행만큼 사건들은 서로 긴밀하며 긴박하다. 뛰어난 작가가 아니었다면 그 모든 것을 폭넓고 깊이 있게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영화의 초호화판 캐스팅도 그저 이목을 끌기 위해서가 아니다. 슈테판 츠바이크 책 속에 나오는 수많은 지성인과 예술가들이 그들 삶의 목적 속에서 빛나듯 영화 속 인물들도 그들 개개의 스토리 속에서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어제의 세계를 읽으며, 모든 국적의 사람들이 묵었던 스위스 슈베르트호텔에서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을 가져왔으리라 감지됐다. 호텔 지배인 구스타브(랄프 파인즈)가 왜 그런 인물 설정인지도 알았다. ‘슈베르트호텔은 카사노바와 괴테가 머물렀던 곳이다. 향수를 뿌려대고 낭만시를 어디서든 읊어대는 구스타브는 카사노바와 괴테’를 조합해 창조한 게 분명하다. 젊은 작가 역으로 나왔던 주드 로는, 츠바이크가 이마가 조각처럼 반듯했던 작가로 회상하며 '슈베르트' 호텔에서 처음 만났던, 청년 제임스 조이스를 빗댄 걸로 보인다. <율리시즈>를 쓰기 전이었던 그는 츠바이크에게 한 부 뿐이었던 『젊은 예술가의 초상』 원고를 보여줬다. 오,『젊은 예술가의 초상』은 츠바이크가 그토록 염원한 예술의 자유이기도 하잖은가! 

난민이었던 호텔 로비보이 제로(토리 레볼로리)가 왜 호텔의 주인이 되었는지, 나이든 제로가 적자에도 불구하고 왜 호텔을 팔 지 못하는지도 짐작됐다. 엄청난 유산상속자였지만 평생 이방인이어야 했고, 장서와 예술품들을 수집하며 인간을 살피고 세상의 화해를 도모했지만 참담히 무너졌던, 슈테판 츠바이크를 대신해 그 심경을 대변하려 한 것이리라.

 

이런 식으로 구석구석 맞춰 볼 것이 많은데 지금은 이 이야기를 더 끌고 나가고 싶지 않다. 이 비교를 하고 싶었던 때가 지나버렸다.

 

 

기억이여, 너는 또 무슨 조합을 불러들이려는가. 

 

 

 

 

§§§  직관펌프 생각을 열다』- 기억의 태도

 직관펌프 생각을 열다에서 대니얼 대빗은 대상을 대하는 태도를 물리적 태도, 설계적 태도, 지향적 태도로 구분한다.

 

◆ ‘물리적 태도는 자연과학적 기본 방법이다. 손에서 돌멩이를 놓으면 땅바닥으로 돌이 떨어질 것을 의심하지 않고 예측하지만, 금붕어와 바람개비도 반드시 그럴 거라 장담할 수 없다.

 

 

◆ ‘설계적 태도는 자명종이 알람을 울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추론 태도다. 우리가 그 설계를 예측하고 있기 때문인데, 여기서 예측의 오류를 가정해 볼 수 있다.

1) 대상은 정말로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설계되었나?

2) 대상은 설계된 대로 작동할 것인가(, 오작동하지 않을 것인가).

 

 

설계적 태도가 허물어지는 것을 만화에서 자주 보게 된다. 톰과 제리의 톰이 가장 피해자라고 볼 수 있을 텐데, 제리를 붙잡기 위한 톰의 설계적 태도는 거듭 실패한다. 단순한 예측 속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 대니얼 데빗은 지향적 태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지향적 태도란 어떤 대상의사람이든, 동물이든, 인공물이든, 아니 무엇이든행동을 해석할 때 그 대상이 스스로의 믿음욕구고려하여 선택행위를 제어하는 합리적 행위자인 것처럼대하는 전략이다.”(p109)  쉽게 말해 지향적 태도는 정보 수집과 계산을 모조리 가져와 최선의 예측을 하는 것이다. 컴퓨터 프로그래밍 같은 합리성처럼 보이지만 인간의 뇌는 컴퓨터와 다른 구동방식이 있다. 과거의 모든 기억뿐만이 아닌 모든 경우의 수가 '무의식적으로' 시스템()에서 도출되며 우리는 그 프로그래밍의 몇 개를 '무의식적으로' 선택한다. 우리의 방식은 컴퓨터의 1:1 도출 방식이 아니며, 인간의 사고는 全 과정에 무의식이 개입하며 이 무의식은 우리도 모르게 패턴화되어 있다. 그런데 컴퓨터의 버그, 오류들까지 종합해 이와 비교해 본다면 인간 뇌가 컴퓨터와 유사하다는 가정은 신빙성있는 주장일지도 모른다.

 

 

 

 

 

 

 

 

§§§§  나를 진찰하다

결론적으로 나는 뭘 말하려는가.

우리는 추억과 기억 혹은 청춘의 판단 착오 등 낭만적인 방식으로 뇌와 행동의 역학을 축소해 보는 경향이 있다. 충동을 심리적인 문제로만 봐야 할까. 뇌과학보다 심리학을 사람들이 더 선호하고 호응하는 것은 의심스러운 구석이 많다. 치매, 기억력 감퇴, 나이 듦 등의 물리적 현상에 중점해 보는 것도 우려되는 바다.

작가, 예술가, 철학가의 문장, 사상, 행동, 작품을 엄청난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도 비판적으로 생각해 볼 문제다. 무의식적 천재성도 있겠지만 버그도 분명히 있을 테니 말이다.

전반에 적극적인 '지향적 태도'가 요구된다.

어쨌거나 나는 뇌를 '지킬과 하이드'로 보고 있다. 누군가는 '황금알을 낳는 오리'로 생각하고 있는지도....

 

 

 

ㅡAgal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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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6-15 22:1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6-16 01: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6-16 21: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6-16 2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sirdky 2015-06-15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같은 작가의 소설 `체스이야기`를 참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나네요. 흡입력 있는 문체와 내용에 감탄했었죠ㅎㅎ

AgalmA 2015-06-16 01:37   좋아요 0 | URL
<어제의 세계>에 이런 내용이 있었죠. 스포츠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던 츠바이크가 페르시아 왕의 말을 인용한 게 재밌죠. ˝나는 어떤 말은 다른 말보다 빨리 뛰는 것을 알고 있다. 어느 쪽 말이 더 빠른지는 나로서는 아무래도 좋다.˝ ㅎㅎ 저도 스포츠에 대해선 여기 전적으로 동감ㅎ!
체스는 정신적 긴장운동을 하게 해줘서 좋다고~

문장력 정말 좋죠. 이런 사람이 전기(傳記)와 번역에 그토록 투자한 게 아깝다고 해야 할 지, 그래서 좋은 문장력이 나왔다고 봐야 할 지 갸웃)))

AgalmA 2015-06-18 0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관펌프...>에 대해 내게 만족스러운 리뷰를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그런 사람이 리뷰를 쓰고 있진 않을 것이다. 뭐가 답답해서! 아주 시간이 많고 아주 명석한 사람이 아주 투쟁의식이 강해 애써 리뷰를 쓴다 해도 데빗식 표현을 쓰기 십상이니 이해도 공감도 참 얻기 어려울 것이다. 노력 가상상은 줄 지 모르지.
<괴델, 에셔, 바흐>를 만났을 때처럼 환상적인 思考 오로라를 보고 있는 기분이다. 인문적 사고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모든 문장이 재난 경보처럼 들릴 지도.....재밌으면서도 무서운 과학소설을 읽는 기분...굉장히 논리적이고 예언적이기도 해서...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하면서 스윽 넘어가게 되지 않는다는 것.

네오 2015-06-17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의 글들이 진화를 하니 제가 못따라잡아서 이해하는 데 한참걸리네요,,,,,,,어느 한편도 쉬운 글이 없네요^^ 그랜드부다페스호텔 괜찮았다는 말인가요??

AgalmA 2015-06-17 23:02   좋아요 0 | URL
제가 어렵게 말하는 걸까요-ㅁ-); 제가 이해한 만큼 전달한다고 생각하는데;_;)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그랜드부다페스트호텔 괜찮은 영화죠. 아, 그 색감부터! 영화를 케익처럼 만들어놓다니ㅎㅎ 장 주네 이후 이렇게 강렬한 케익 영화는 기억나지 않습니다ㅎ

북다이제스터 2015-06-18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 읽을 책으로 <직관 펌프> 잡았습니다. 많이 간장됩니다. ㅎㅎ 이렇게 읽으면 쉽고 재미있을 수 있다는 조언 부탁 드려도 될까요? 그런게 가능하다면....

AgalmA 2015-06-18 20:57   좋아요 0 | URL
그 맥락에 최대한 따라가는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저도 이렇게 사고하는 사람은 처음이라 신기하고 재밌고 당황스럽고 복잡하고 그래요ㅎㅎ; 1번 읽어서는 안될 거 같고 여러 번 읽어야 될 책^^

북다이제스터 2015-06-18 21:08   좋아요 1 | URL
조언 감사합니다. 근데 결국 제 읽기 나름이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ㅠㅠ 한 번 열심히 읽어 보겠습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