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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안해요 여긴 가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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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이면 언제나
이상하기도 하지, 나는
어느새 처음 보는 푸른 저녁을 걷고
있는 것이다. 검고 마른 나무들
아래로 제각기 다른 얼굴들을 한
사람들은 무엇엔가 열중하며
걸어오고 있는 것이다, 혹은 좁은 낭하를 지나
이상하기도 하지, 가벼운 구름들같이 서로를 통과해가는
기형도 「어느 푸른 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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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예감에 사로잡혀 걷는 날이 있다
이상하게 그런 날은 마주 오는 사람도 없이 나는 홀로 걷고 있다
막 도착한 神이 된다
흩어져 있지만 그들의 기하학적인 모양새를 나는 알아본다
제일 눈에 띈 색깔은 차라리 마침표에 가깝다
왜 모든 것이 기다리는 것처럼 보일까
나보다 더 그렇고 누구보다 더 그렇다
내 속의 기다림을 책망해야 하는가
어떠한 것도 증명되지 않았다
인간이 만든 사물들은 늘 궁리하는 모습이다
우리를 닮아 우리는 애착한다
모여 있고 흩어져 있다가 문득 탁 트인 펼쳐짐
여기 왜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 나도 그들도
이곳에 어떻게 도착할 수 있었는지도
두려움이 의문을 덮친다
어디로
또 어디로
나를 인도하시나이까
방심 속에는 심연이 서 있다
언제나 보아온 것이 심판대가 된다
지나갈 수 없어 한참을 서 있다
누군가 부를 것 같다
끌고 갈 것 같다
끌려 간다
뒤돌아봐도 소용없다
이럴 땐 언제나 혼자다
묵묵히 내 속의 심판대 마저 지나면
불빛이 나타난다
아!
헛것이다 아니다
헛것이었다 아니었다
기형도, 당신도 이걸 본 거지
모든 시인은 이걸 본 거지
세상은 속속들이 빛과 색으로 가득하고
이 아름다움은 성스럽다
푸른, 푸른, 푸른
성모 마리아의 옷이 푸른색으로 바뀐 순간처럼
오, 세상의 성수여
세상의 모든 풍경이 나를 구원하러 달려 나온 듯하다
나는 미친 것인가
낙엽과 보석의 차이는 얼마나 미약한가
색과 형태와 질감과 성분으로 구분하는 것은 얼마나 단편적인가
숲의 끝이 보인다
싫다
그러나 통과의례를 누가 거부할 수 있나
막는다
사방이 문으로 가득하다
울부짖는다
처음부터 그러지 않았으면 좋았잖아
저 窓은 이제 없다
재작년에 헐려서 사라졌다
저 날의 窓의 저녁은 나만 가지고 있었다
이제 당신에게도 나눈다
지상에서는 계속 우러른다
아주 조금씩, 아주 천천히 배워간다
그게 ……
지금은 여름이고 가을도 올 것이다
그리고 ……
ㅡAgalm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