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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침, 불안하지도 않았던 꿈에서 깬 저는 이상한 목소리의 낯선 존재가 되어 있었습니다.

병명을 알 때까지 저는 어떤 괴물 상태였습니다.

불현듯 『변신』속 그레고르 잠자가 떠오르더군요.
수많은 날을 방 안에서 맴돌며 고민하던 그처럼,

저도 꾹 다문 입으로 생각을 했지요. 그리고 오늘의 불가피한 슬랩스틱이 완성되었습니다

 

 

 

[음악이 아픔과 카프카적으로 동행하는 방법]


1.  첫 번째, 동굴 속 웅얼거림같은 아픔에게 마이크를 가져가는 것

    스웨덴의 인디밴드  Wildbirds & Peacedrums  / Peeling Off The Layers 입니다.

 

Wildbirds & Peacedrums  [Rivers](2010) - 장르: Pop/Rock

 

 


 

 


2. 음악의 가장 큰 장점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즉각적으로 전달되고 이해되는 폭이 넓다는 걸 들 수 있을 겁니다.
    내가 이렇다 / 당신은 그렇구나 ... 때론 말과 글이 도움이 될 때도 있지만
    모든 개개인 속에는 섣불리 건드릴 수 없는, 말하기 어려운, 소통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 무엇이 있잖습니까.
    비트겐슈타인의 유명한 명언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선 말하지 말고'처럼 그런 것 말이죠.

 

   음악이 아픔과 카프카적으로 동행하는 방법 두 번째, 그저 말없이 같이 가는 것.
    지금 소개할 이 곡에서는 독일 태생의 피아니스트 막스 리히터가 연주하는 챔발로 소리가 그런 발걸음처럼 들리는데요.
    더불어 그레고르 잠자가 등에 썩은 사과가 박힌 채, 여동생의 바이얼린 연주를 숨어서 듣던 모습은 이런 울림이지 않았을까요?  

 

 

 

 

 

 

 

Max Richter [Memoryhouse](2009) - 장르:Classical , Electronic , Pop/Rock

Max Richter / Jan's Notebook   

 

 

 

 


3. 우리가 고정관념을 깨트리는 방편으로 유머를 쓰듯이,
   음악이 아픔과 카프카적으로 동행하는 방법 세 번째, 부끄럽지 않도록 리듬의 분장을 해주는 것. 
   Jamiroquai는 영국밴드로,  밴드명은 잼 세션[jam session:재즈 연주자들이 악보 없이 하는 즉흥적인 연주] Jam과 미국 원주민 이로쿼이족의 합성이라고 합니다.
   soul과 disco가 뭉친 acid  jazz풍에 힙합, 펑크, 팝 장르를 아우르는 혼종적 음악을 보여주는데,
   Jay Kay 자전적 작사인 이 곡은, 삶의 힘겨움과 좌절의 심경을, 상반되는 경쾌한 리듬 속에 읊조리고 있어 인상깊습니다
  

 

 

 

 

 

 

 

Jamiroquai [A Funk Odyssey](2001) - 장르: Pop/Rock, R&B 

Jamiroquai / Picture of My Life  

 

 

 

 

4. Jay Kay가 Picture of My Life의 마지막 가사에서, 
   " 치료약이 있다면 부디 내게 보내주시겠어요? 내 삶의 그림을, 정말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해 줄 수 있는 편지와 함께..." 라고 했지요.

   음악이 아픔과 카프카적으로 동행하는 방법 네 번째, 음악 의사가 권하는 치료약을 삼키는 것.

   그 소개곡으로 Luis Mariano - Maman La Plus Belle Du Monde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어머니)인데요.
   어머니... 혹 어머니의 빈자리, 아픈 자리만 가지고 있다 해도 누구나 모성의 '품', '품음'은 본능적으로 각인되어 있지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우리는 왜 끊임없이 '사랑'을 찾고 나누고자 했겠습니까.
   '어머니'라는 의미.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무너졌을 때 그 자리에 없더라도 어느 곳에서든
   어머니라는 존재는 가장 나를 돕고 싶어 했고 가여워했을 거라는 믿음이 있는 자리. 그 '품'
   어머니의 백발과 굽은 손을 보지 않더라도 어머니 앞에 우리 맘의 사나움은 숙연해집니다. 
   제 경우는 어머니 곁에만 있으면 늘 잠들어버리기 까지 합니다.
   그레고르 잠자의 비극성은 어머니, 가족, 사회적 지위, 음악을 누릴 자유, 그 모든 것들이 갑작스럽게 사라진다는 점인데요.

   오히려 죽음은 그 모든 것을 잃은 후에야 소리 없이 옵니다.
   자신을 희생하며 가족의 삶에 충실했던 그는 왜 벌레가 돼버려야 했을까요.  

 

 

 

 

 

 

 

Luis Mariano [Essentiel 2008](2013) - 장르 : International , Classical , French Pop

Luis Mariano / Maman La Plus Belle Du Monde

 

 

 

 

 

 

 

 

 

 

 

(※ 영화 <제 8요일>에서 인상적인 주제곡으로 쓰이기도 했죠)

 

 

 

 

 

   (가사)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엄마, 당신이에요
   세상 어떤 사람도 더 예쁘지 않아요
   당신은 나에게 고백했어요
   천국의 천사 얼굴을


   모든 여행지에서 난 풍경들을 봤어요
   하지만 어떤 것도 당신의 아름다운 백발만 한 건 없어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엄마, 당신이에요
   그리고 내 기쁨은 엄마, 당신의 품으로 날 안아줄 때죠.


   엄마,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워요.
   사랑이 넘치는 당신의 아름다운 눈길 때문이지요.
   당신에게는, 네, 난 내 나이에도 불구하고 한없이 어리광 부리는 아이지요.


   나는 꿈을 꿔요.
   누군가 끊임없이 날 사랑해주기를
   꿈은 끝이 있기 마련이지만 당신만은 내 곁에 남아 있어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은 엄마, 당신이에요.
   그리고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무너질 때 엄마, 당신만은 거기 있어요.

 

 

 

5. Múm ... 침묵이라고도 엄마라고도 읽히는 기묘한 이름의, 아이슬란드 출신의 익스페리멘탈 뮤지컬 그룹입니다.
   일렉트로닉 비트와 효과들, 여러 전통악기, 그리고 요정 같은 소프트한 보컬의 혼합이 신비롭습니다
   Kristin Anna Valtysdottir's 의 어린아이 같은 보컬이 독특한데요. 같은 아이슬란드 출신의 Bjork, Sigur Ros도 떠오르지요. 
   첫 곡이 어둡고 캄캄한 터널 속 힘겨움이었다면, 마지막으로 소개할 Múm의 Green Grass Of Tunnel은 내 안의 터널 속에도 기필코 존재할 초록 풀, 잊히지 않는 어린 시절의 천진함에 대해 속삭여줍니다. 
   터널 지나 또 터널이 나타날지라도, 그것이 다시 내 안으로 들어가는 한없는 여정일지라도,  
   눈 뒤에 오는 짧은 햇살의 따사로움, 향기, 나비, 엄마, 벗, 기쁨, 슬픔, 침묵, 음악 .... 그런 동행자들을 우린 잊지 않습니다.

   음악이 아픔과 카프카적으로 동행하는 방법 그 마지막, 이 모든 것과 함께 가는 것.

 

 

 

 

 

 

 

Múm [Finally We Are No One] (2011) - 장르: Electronic , Pop/Rock

Múm  / Green Grass Of Tunnel  

 

 



재밌는 제안 하나 할까요. 어느 아침, 눈을 뜨자마자 머리맡에 미리 준비해 둔 카프카의 『변신』을 읽어보세요.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 불안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로 시작하는 끝나지 않는 꿈을 읽고 나서 창가로 다가가 보세요.
봄 나무에는 초록잎이 조금 더 나 있을까요?
그럼, 다음 시간엔 프랑켄슈타인의 피조물이 돼서 오지 않도록 각별히 조심하며 여기서 안녕, 하고 인사드릴께요/)
모두 꿈길 조심하시고요. 

 

 

 

 

ㅡAgalma

 

 

 

 

 

ps)

하지만, 그다음 시간에도 목소리는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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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02-26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저 마마`` 이 노래 부른 사람 더스틴 호프만인 줄 알았습니다.
더스틴 호프만이 노래도 불렀네.. 이런 생각. 똑같이 생겼네요..

그나저나 아갈마 님 라디오 방송 작가하시면 잘하실 거 같습니다.

AgalmA 2015-02-26 20:56   좋아요 0 | URL
저런! 그런데 신기하지 않나요? 비슷한 시대를 산 사람들은 스타일 문제도 있겠지만 그 분위기와 생김도 비슷하다는 것이...먹거리와 발육환경 등 파고들면 또 꽤나 그럴싸한 진화론이...ㅎ
방송은 제가 하고 싶다고 되는 게 아니라 뭐 복잡한 게 많더라고요. 대단한 청취율이 아니고서는 내부 이권 싸움 문제에 끊임없이 휘둘리는...

만병통치약 2015-02-26 1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정도면 연재요청 들어오겠는데요 ^^

AgalmA 2015-02-26 19:17   좋아요 0 | URL
호응만 있고 수요는 없는ㅋ...제가 재밌어서 만들어보는 놀이로 즐기고 있어요ㅎ

만병통치약 2015-02-26 22:06   좋아요 1 | URL
호응만 있고 수요는 없다 ㅋㅋ 제가 아는 사람에세 YES24 파워블로거라고 하면 `와`하면서 돈 많이 버냐고 물어봐요. 생기는 것 없고 오히려 돈들어가는 파워 블로거 ㅎㅎㅎ

AgalmA 2015-02-26 22:42   좋아요 0 | URL
그냥 책도 아니고, 다 비싼 책들만 사시잖아요ㅎ;

양철나무꾼 2015-02-26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그럴때가 있어요.
음악도 그렇고, 글도 그렇고,
가끔 내 귀를, 내 눈을 비껴갈때가 있어요.
소통과 공감을 바라는듯 보이지만 되돌아오는건 어쩜 소외가 아닐까 하는 엉뚱한 생각까지요~--;
좋은 음악과 글, 모처럼 두루두루 호강이네요, 감솨~(__)

AgalmA 2015-02-26 20:59   좋아요 1 | URL
저도 그래요.
아마....공감은, 감정은 상대가 내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다가가는 것이 출발이고 만남이라 그런 게 아닐까요.
우리는 아마 더더 쓸쓸해질 거 같아요. 우리 이후 세대는 더더욱.

수이 2015-02-27 02: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팬 1호는 저인데 흑; (졸려서 여기까지만 쓰고 후다닥)

AgalmA 2015-02-27 02:36   좋아요 0 | URL
ㅋㅋ...분명 이 글 보고 좋아라 오실텐데 안오셔서 이사 때문에 엄청 바쁘시구나 했어요ㅎㅎ

에르고숨 2015-02-27 15: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녕하세요, 팬입니다3. 이 두 문장을 쓰려고 로그인했습니다.ㅎㅎ
들어온 김에 조금 더-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가...`를 눈 뜨자마자 읽고 싶어서 다시 침대로 기어들어가고 싶은, 아름다운 음악에피소드네요. 눈과 귀가 호강하는 멋진 페이퍼 고맙습니다, 아갈마 님.

AgalmA 2015-02-28 01:02   좋아요 0 | URL
로그인하는 게 생각보다 귀찮은 일임을 잘 아는 자로서, 특별한 발걸음 남겨주셔서 감사인사 드립니다! 거기다 팬까지 인증해주시니;....이런 글을 자주 올려달라는 압박같은ㅎ;;
이 기획을 할 때, 듣는 분들께 가장 드리고 싶었던 게 꿈처럼, 음악처럼 제 아이디어가 작은 행복으로 전달될 수 있었으면 했는데...저 혼자만의 만족이 되지 않은 것 같아 기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