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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라디오 음악방송 게스트를 한 적 있는데요.
이웃이신 만병통치약님이 어제 소개하신 『세계사 연대기』(http://blog.aladin.co.kr/715105129/7362156)를 보고
어느 해, 제 프로젝트가 생각났어요. 음악으로 세상의 이야기들을 이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아래 글은 그때 제가 만든 일종의 방송대본?입니다.
아직 봄은 멀었지만, 언제나 우리는 봄을 바라지 않나요?
ㅡAgalma
1.
오늘은 여러분들을 좀 날아오르게 만들어 드리고 싶군요.
프랑스 철학자 가스통 바슐라르『공기와 꿈』 제목을 빌려와,
오늘의 [불가피한 슬랩스틱] 주제는 ‘공기와 꿈’ 되겠습니다.
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느끼기 위해 숲 속으로 떠나 볼까요?
▶ http://youtu.be/ZvaFc8I8wfc
피터 브룩은 오페라 <마술피리>(2012, LGArts 공연)에서 주 무대장치로 대나무들을 썼죠.
대나무들은 숲으로, 기둥으로, 새장으로, 무기로 다용도의 오브제로 재현되었습니다.
그처럼 여기 언어로, 새와 시간의 풍경과 그림을 완성한 자크 프레베르의 詩를 소개합니다.
<마술피리>의 새잡이 파파게노가 자크 프레베르의 이 시를 알았다면 새잡이를 그만뒀을지도 몰라요ㅎ
지금 소개하는 건 노래가 아니라 시 낭송인데요. "어느 새의 초상화를 그리려면" 이 詩는, <초콜릿 우체국>이라는 한국 영화에서 박해일 씨가 낭송했어요. 제가 영화는 보지 못했는데, OST는 정말 좋아요.
▶ http://youtu.be/rp7og9acCZQ
▼ 詩 전문 ▼
어느 새의 초상화를 그리려면
우선 문이 열린 새장을 하나 그리세요
그다음
뭔가 예쁜 것을
뭔가 단순한 것을
뭔가 쓸만한 것을 그리세요
새를 위해
그리고 나서 그 그림을
나무 위에 걸어놓으세요
정원에 있는
또는 산속에 있는
어느 나무 뒤에 숨겨 놓으세요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꼼짝도 하지 말고
때로는 새가 빨리 오기도 하지만
마음을 먹기까지에는
오랜 세월이 걸리기도 하지요
용기를 잃지 마세요
기다리세요
그래야 한다면 몇 년이라도 기다려야 해요
새가 빨리 오고 늦게 오는 건
그림이 잘 되는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답니다
새가 날아올 때엔
혹 새가 날아온다면
가장 깊은 침묵을 지켜야 해요
새가 새장 안에 들어가기를 기다리세요
그리고 새가 들어갔을 때
붓으로 살며시 그 문을 닫으세요
그다음
모든 창살을 하나씩 지우세요
새의 깃털 한끝도 다치지 않게 말이죠
그리고 나서
가장 아름다운 나뭇가지를 골라
나무의 모습을 그리세요
새를 위해
푸른 잎새와 싱그러운 바람과
햇빛의 반짝이는 금빛 부스러기까지도 그리세요
그리고 여름날 뜨거운 풀숲 벌레 소리를 그리세요
이젠 새가 마음먹고 노래하기를 기다리세요
만약 새가 노래하지 않는다면
그건 나쁜 징조예요
그 그림이 잘못되었다는 징조죠
새가 노래한다면
그건 좋은 징조예요
그러면 당신은 살며시 살며시
새의 깃털 하나를 뽑으세요
그리고 그림 한구석에
당신의 이름을 쓰세요
- 자크 프레베르 詩 / 박해일 낭송
(※ 이 시는 자크 프레베르 『축제는 계속된다』(솔 출판, 절판) 수록되어 있는데, 위 낭송과 번역 차이가 있습니다.)
▲ 펼친 부분 접기 ▲
2.
저는 봄, 하면 열기구를 떠올리게 돼요.
열기로 인해 서서히 하늘로 떠오르는 커다란 풍선을 상상해 보세요. 그 안에 타고 있는 상상은 더욱 설레게 하겠죠.
이 열기구 얘기를 하자면 1783년을 생각해야 해요.
1783년에는 무슨 일이 있었게요? 혹 당시 살았다가 환생하신 분 계시면 지금! 문자 주세요~
우리나라는 조선 정조 때였는데 22살의 다산 정약용 선생이 과거시험에 합격해 성균관에 들어가고,
오스트리아의 모차르트는 교향곡 36번 c장조 '린츠'를 작곡합니다.
12세의 베토벤은 그의 첫 작품〈드 레슬러의 행진곡 주제에 의한 변주곡 Variations on March by Dressler〉을 만하임에서 출판하죠.
괴테는 내각 주석 업무 중에도 틈틈이 글을 쓰고 있었지만 9년 전 쓴〈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능가하는 작품은 아직 쓰기 전이었어요.ㅎ
파리에서는 루이 14세와 마리 앙투아네트 그리고 파리 시민들이, 몽골피에 형제가 열기구를 띄워올리는 경이를 지켜보게 됩니다.
형인 조셉 몽골피에는 열기구 발명에 대해서, 불 옆에 널어놓은 부인의 속옷이 펄럭이는 것에서 착안했나다요?
하여간 몽골피에 형제들의 그 실험 이후로 너도 나도 열기구를 타고 날아오르려고 난리였죠.
당시 파리조약 체결을 위해 그곳에 머물고 있던 미국독립선언 기초위원 벤저민 프랭클린도 열기구 열풍을 보았는데요. 한 삐딱한 친구가 열기구가 무슨 쓸모가 있느냐고 비아냥거리자 "그럼 갓 태어난 아기는 무슨 쓸모가 있겠나?" 하고 되받아쳤죠.
이 장황한 이야기는 The Montgolfier Brothers이라는 뮤지션을 소개하기 위해서였는데요.
모리세이(Morrissey) 혹은 닉 드레이크(Nick Drake,1948~1974)를 연상시키는 Roger의 우수 어린 목소리와
영국의 다중 악기주자 Mark Trammer가 영화의 한 장면처럼 그려내는 서정적인 사운드의 어울림은,
정말 열기구를 탄 기분을 느끼게 해 줍니다.
몽골피에 형제가 본 그때의 하늘은 가을의 새벽 6시였지만, 지금의 우린 봄의 한밤을 느끼며 들어보죠.
The Montgolfier Brothers - Time Spent Passing ▶ http://youtu.be/FijgygV85pI
The Montgolfier Brothers - Une Chanson Du Crepuscule(황혼의 노래) ▶ http://youtu.be/TUtkviwiQCE
3.
그거 아세요?
18세기 때 열기구는 한동안 줄을 매어놓고 타야 한다는 규정을 두었는데,
왕명에 의해 사형수만 면죄의 조건으로 줄없이 날 수 있었대요.
죽음과 자유의 공존, 재밌죠? 그건 그렇고, 풍선 타고 있다가 금방 내려오기 싫으시죠?
이제 여러분을 태워 드릴 것은 연입니다.
헌데 연도 하늘에서 멋지게 유영하는 것은 잠깐이고, 결국 지상에 내려와야 하죠.
지금 소개드릴 곡은 그와 같은 우리네 인생에 대해 노래하고 있습니다.
Benjamin Biolay - Les Cerfs Volants (연)
▶ http://youtu.be/rzcUn6AzT7Q
▼ 가사 전문 보기 (불어->영어 번역)▼
Benjamin Biolay - Les Cerfs Volants (연)
As the hour passes by
I pass the hours and I sigh
For the wake up of the dawn
For those I love and those I mourn
For in silence and in vain
Through the days of heavy rain
For ones I left under the sun
Before the wonder years begun
And in the torrent of the fall
I will remember most of all
How the tunnel of the spring
Brought your lips upon my skin
How we walked along the park
In the hours of the dark
And in the torrent of the fall
I will remember most of all
As the hour passes by
I pass the hours and I sigh
For the wakeup of the dawn
For those I love and those I mourn
For in silence and in vain
Through the days of heavy rain
For ones I left under the sun
Before the wonder years begun
And in the torrent of the fall
I will remember most of all
How the tunnel of the spring
Brought your lips upon my skin
How we walked along the park
In the hours of the dark
And in the torrent of the fall
I will remember most of all
Kites along the coast
Lovers in winter coats
Walk side by side
Just as the flow
That flowed with the tide
A long time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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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바슐라르는『공기와 꿈』에서 묘한 말을 했는데요.
"공기의 삶은 현실적인 삶인 반면 대지(위)의 삶은 가공의 삶, 사라지기 쉽고 아스라한 삶인 것이다.
숲과 바위들은 어렴풋하며 사라져 버리기 쉽고 진부한 대상들이다.
삶의 진정한 고향은 푸른 하늘이며, 세계의 "자양분"은 바람결과 향기들이다."
오늘 공기 속 유영을 마감하는 곡으로 [Another Late Night] 컨셉 시리즈 앨범에서
Groove Armada의 Fly Me to the Moon을 가져와 봤습니다.
런던 출신의 일렉트로닉 듀오 밴드 Groove Armada는
미국 드라마 <섹스 앤더 시티> 오프닝 테마곡을 기억하신다면,
그리 생소한 뮤지션은 아닐 거예요.
그럼 이제, Good Night, Good day/
▶ http://youtu.be/-1BAxySK7OM?list=RD-1BAxySK7OM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