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음일기

 

이 책을 나는 떠나보낼 수 없을 거 같다. 내가 그장소에게 보낸 생일 선물이자 마지막 선물이었으니까. 사실
빨리 없애버리고픈 마음도 있었다. 이 책을 볼 때마다 그녀의 죽음이 떠올라 괴로웠으니까. 그녀가 죽은 지도 모르고 난 이 책을 읽고
있었지.


 

어려웠지만 무척 힘들었지만 도오루는 우물에서 탈출했고 구미코는 돌아왔잖아. 돌아와서 아프게 헤어진들
영영 사라지는 것보다는 낫잖아. 영영 모르게 된 그녀의 세계. 시간이 갈수록 더 아득히
멀어진다.


 

나야말로 그녀의 죽음이 '훨씬 더 치명적인 일'이
되었다.


 

"끝까지 그녀를 잘 모르는 채 나이를 먹고 또 죽어갈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 나의 인생은
대체 뭘까"


 

 


 

'그가 모르는 장소' 그녀의 닉네임처럼 정말 그렇게
되었어.


 

서러울 때 비가 와서 다행이었나.

 

 

 

 

 

 

 

 

 

 

 

 

 

 

 

 

 

 

 

 

 

 

 

 

 

● 식물일기

 

 

얘랑 산 지도 10년이 넘었다. 꽃봉오리가 생길 때부터 언제 피나 매일 살피는데 내가 깜빡한 날 녀석은 확 꽃망울을 터트려 해마다 결정적 순간을 놓친다. 아무래도 밤에 몰래 피는 거 같다. 내가 키워본 꽃 종류로는 가장 애태우는 녀석이다. 올해 가장 많은 꽃을 보았다. 기특한 녀석.

생명력이 강한 녀석이다.

 

 

 

 

 

슬픔처럼 땀 흘리는 육체

웃음은 어느 창고에 두고서

마음도 생각도 일상도 적당히 안 되는데

내가 있어도 당신이 없어도

오래된 산세베리아는 꽃을 피우려 하네

우리에게 주인이 없듯이

이 기쁨에도 이 슬픔에도 주인이 없다

한 것도 없이 해준 것도 없어

대상은 사라진 채 과도하게 슬퍼하고 그리워하고 있다

그런데 너는 살아있다

진실로 무서워진다

 

 

 

 

 

 

 

 

● 우울할 땐 철학

 

 

우울할 땐 마음을 다독여주는 시집이나 문학보다 철학책이 효과적일 때 있다.

철학 규명을 보면서 내 마음과 감정의 슬픈 상태에서 조금 떨어져 구조적으로 따져보게 된다. 일종의 객관화라고 해야 될까.  접근하기 쉬운 철학 인문서보다 좀 더 파고드는 철학책일수록 좋다. 니체나 비트겐슈타인 자주 읽었는데 이번에는 하이데거도 효과가 있었다.

 

 

📎

"하이데거는 #철학의과제 는 불명료한 것을 구명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자명한 것을 분석하는 것이라고 본다. 따라서 존재를 가장 자명한 개념으로 보면서 존재물음을 불필요한 것으로 보는 것은 철학이 자신의 임무를 태만히 하는 것이다."

 

 

 

 

이 책 여러 군데에서 언급하고 있지만, 위 문장만으로도 데카르트 "코기토 에르고 숨(Cogito, ergo sum,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의 비판점이 바로 보인다. '나'라는 존재를 규명하지 않은 채 존재 증명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하이데거는 인식 작용도 존재 관계라 보고 있다.

 

📎 물음

""모든 물음은 ‘물음의 대상이 되는 것’(das Gefragte)과 ‘궁극적으로 밝혀져야 할 것’(das Erfragte) 그리고 ‘물음이 걸리는 것’(das Befragte)을 갖는다. 예를 들어 내가 석굴암의 부처가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확인하기 위해서 석굴암으로 가는 길을 어떤 사람에게 물을 경우, ‘물음의 대상이 되는 것’(das Gefragte)은 석굴암으로 가는 길이며, ‘궁극적으로 밝혀져야 할 것’(das Erfragte)은 석굴암이 아름다운지 여부이고, ‘물음이 걸리는 것’(das Befragte)은 내가 석굴암으로 가는 길을 묻는 사람이다. 물음이 갖는 이러한 일반적인 구조에 따라서 하이데거는 존재물음에서 ‘물음의 대상이 되는 것’(das Gefragte)은 존재이며 ‘궁극적으로 밝혀져야 할 것’(das Erfragte)은 존재의 의미이고, ‘물음이 걸리는 것’(das Befragte)은 우리 인간인 현존재라고 말하고 있다."

📎 현상

"현상이라고 일컬어져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의 본질상 필연적으로 명시적인 제시의 주제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선 대부분의 경우 자신을 곧장 드러내지 않는 것, 즉 우선 대부분의 경우 자기를 드러내는 것에만 주목할 경우에는 숨겨져 있지만 동시에 그것에 본질적으로 속하면서 그것의 의미와 근거를 이루는 것이다 ."

 

 

좋은 질문에는 이미 답이 있다고 했던가. '물음', '현상' 등 개념을 하나하나 구조적으로 분석하며, 하이데거가 이 책을 쓴 궁극적 목적(인간이란 무엇인가)을 좇는 과정은 흥미롭다.

📎 실존

"하이데거는 감성이나 이성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현존재의 삶의 모습이 제대로 파악될 수 있다고 보지 않는다. 따라서 전통철학이 감성이나 이성에 대한 반성을 통해서 인간의 본질을 파악하려고 하는 반면에, 하이데거는 현존재가 살아가는 구체적인 삶의 모습을 분석함으로써 인간의 본질을 파악하려고 한다.

그런데 각각의 현존재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자기 자신이라는 말은 현존재가 이기적인 존재라는 말이 아니다. 이기적인 삶과 태도는 오히려 자기 자신을 망치는 것일 수 있다. 이타적인 사람에게도 가장 최대의 문제는 자신이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것이며 자신의 삶을 어떻게 형성해갈 것이냐 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삶을 자신이 긍정할 수 있는 삶으로 형성하고 싶다는 절박한 관심 때문에 온몸을 바쳐서 타인들에게 봉사할 수도 있으며 자신을 희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현존재가 갖는 이러한 성격, 즉 자신이 어떻게 살 것이냐를 문제 삼으면서 자신의 삶을 어떻게든 자신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으로 만들려는 근본적인 성격을 ‘실존’이라고 부르면서, ‘현존재의 본질은 실존에 있다’고 말하고 있다."

개념 이해가 쉽지 않지만 놀라운 통찰이라 한 문장 한 문장 골똘히 짚어보게 된다.

📎 인격

"하이데거는 실로 딜타이(Wilhelm Dilthey)의 생철학과 같은 것은 생을 생 그 자체로부터 파악할 것을 목표하면서 현존재의 존재를 그 자체로서 파악하는 것을 암암리에 지향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딜타이는 삶의 ‘체험들’을 그것들의 구조와 전개에 있어서 삶의 전체로부터 이해하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이데거는 딜타이도 아직은 현존재를 존재론적으로 문제 삼지 않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딜타이와 베르그송과 아울러 그들에 의해서 규정된 인격주의의 모든 방향들과 철학적 인간학의 모든 경향들이 이러한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예를 들어 후설과 셸러는 현존재의 존재를 인격성으로 파악하면서 사물적인 존재와 구별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들 역시 인격의 존재 자체를 문제 삼지는 않고 있다. 셸러에 따르면, 인격은 결코 사물이나 실체가 아니라 그때마다의 체험과 함께 직접적으로 체험되고 있는 체험의 통일성이다. 그것은 사물적이고 실체적인 존재가 아니며, 직접 체험되고 있는 의식작용들의 배후에 있는 것이 아니다. 더 나아가 인격의 존재는 칸트에게서 보는 것처럼 일정한 법칙성을 갖춘 이성작용의 주체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다. 후설에게서도 인격은 지향적 행동의 수행자로서 존재하며 결코 대상과 같은 것이 아니다. 따라서 인간의 행동을 자연적인 심리법칙에 따르는 것으로 객관화하는 것, 즉 행동을 심리적인 것으로서 파악하는 것은 그것을 비인격화하는 것이다. 인격은 지향적 행동의 수행자로서 존재하며 행동들은 자연적인 심리법칙이 아닌 하나의 통일적인 의미연관에 의해서 결합되어 있다. 그러나 후설은 행동을 수행한다는 것이 무엇이며 인격존재양식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파악하고 있지 않다. 이와 동일한 선상에서 하이데거는 셸러처럼 인간을 육체와 영혼 그리고 정신의 통일체로 보는 것도 비판하고 있다. 하이데거는 육체와 영혼과 정신을 주제적으로 분리해서 탐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의 존재는 육체와 영혼 그리고 정신을 합한 것으로 파악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육체와 영혼 그리고 정신에 대한 파악 이전에 인간의 존재가 먼저 파악되어야만 육체와 영혼 그리고 정신 각각에 대해서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 하이데거는 근대철학이 현존재의 존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원인을 그것이 근본적으로 고대 그리스와 그리스도교의 인간학에 근거하고 있다는 데서 찾고 있다. 하이데거는 그나마 자신의 현존재 분석에 근접하고 있는 셸러의 인격주의나 딜타이의 생철학도 이러한 인간학의 존재론적 기초가 불충분하다는 사실을 보지 못한 채 그러한 인간학에 근거하고 있다고 본다."

 

 

존재, 육체와 영혼 등 여러 철학적 개념이 근본적으로 고대 그리스와 그리스도교의 인간학에 기초를 두고 있어 오늘날까지 대혼란이 계속되고 있다. 반철학자 니체도 여기서 아주 벗어났다고도 볼 수 없을 거다.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이 1927년에 나왔는데 한국에서 하이데거에 대한 논문이 1932년에 최초로 나왔다하니 하이데거 철학에 매료되는 건 때와 장소가 문제가 아니었던 거 같다.

박찬국 교수는 하이데거 『존재와 시간』 번역본으로 국내 권위서로 소광희 교수와 이기상 교수 걸 추천하는데 소광희 교수의 원서 번역본은 현재 절판. 까치출판사에서 나온 이기상 교수 걸로 새로 사야 하나 싶다ㅠㅠ

박찬국 교수 이 책도 하이데거 개론서로 손꼽을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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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7-12 13: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AgalmA 2019-07-12 13:45   좋아요 1 | URL
가끔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북받쳐서 무척 괴로워요. 제가 생각하지 않으려는 노력도.
생각할수록 안타까운 사람입니다.

2019-07-12 14: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syo 2019-07-12 1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말인지 잘 못알아 듣겠어서 더 멋있는 것들 많잖아요. 그 중에서 알고 보면 못 알아듣는 것 말고는 아무런 효용도 없는 것으로 밝혀지는 것들도 많잖아요. 그런데 하이데거도 그런 것인지를 판단하려고 죽을 때까지 내공을 쌓아도 죽을 때까지 모르다가 죽을 것 같고 막, 그래서 더 멋있는 것 같아요 ㅋㅋㅋㅋ 어차피 못 알아듣는 입장에서 멋있을 수 있는 맥시멈이 그런 것 아닌가 하면서.....

AgalmA 2019-07-12 14:19   좋아요 0 | URL
우리는 각자의 인생에 따른 자기만의 언어 사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힙합의 랩이 두드러지듯이요.
알고 싶어서 도전하다가 어, 이거 뭔지 알 거 같아! 싶을 때의 희열 때문에 철학에 자꾸 들이대게 되는 거 같아요^^

cyrus 2019-07-12 15: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울할 땐 책을 안 읽어요. 그 대신에 만화를 봅니다. ^^

AgalmA 2019-07-12 15:37   좋아요 0 | URL
ㅎㅎ 저는 다 봅니다. 다 본 만화도 다시 보고 그래요ㅋ

겨울호랑이 2019-07-12 18: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우울할 땐 자야죠.ㅋㅋ 산세베리아 꽃봉오리를 AgalmA,님 덕분에 보게 됩니다^^:)

AgalmA 2019-07-13 03:47   좋아요 1 | URL
불면증이라 더 힘든ㅠㅠ;;; 꽃 핀 것도 예쁜데 그건 저혼자 감상ㅎㅎ; 금세 져버려서 참 아쉽더군요.

hnine 2019-07-13 04: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장소 닉네임의 뜻이 그가 없는 장소였군요.
아주 교류가 많았던 것은 아니지만 요 며칠 저도 그장소님 생각이 나더라고요.
산세베리아 꽃을 저는 처음 보았어요. 살다보면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 일어나기도 하고, 기대했던 일이 일어나지 않기도 하고, 그렇더군요.
Agalma님, 가끔씩만 우울하시면 좋겠어요. 너무 자주 말고.

AgalmA 2019-07-13 06:51   좋아요 0 | URL
신경숙 소설 <그가 모르는 장소>에서 가져 왔다고 들었어요. 그 소설 저는 안 읽은 거 같은데 이리 되니 이제 읽어볼 때가 된 거 같아요. 세상엔 알 수 없는 일 투성이고, 감당할 수 있을 거 같다고 생각하면서도 갑자기 무너질 때도 있고 그래요. 위 글에서 ‘인격‘을 설명하는 부분을 옮긴 것도 그래선데요. ˝직접 체험되고 있는 의식작용들의 배후에 있는˝ 실체적 인격이 있는 게 아니라 우리는 매순간 무너지고 일어서길 반복하는 존재로서 살아간다는...
그장소 참 정 많이 나누는 사람이었어서 생각이 자주 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