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멈춰서서]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좋은 시를 읽으면 저절로 머릿속에 어떤 정경이 그려질 때가 있다. 창비의 '우리 시 그림책' 시리즈라든지, 최근 보림출판사에서 펴내기 시작한 시 그림책 시리즈 등은 좋은 시의 영감을 멋진 그림으로 붙잡고 싶었던 기획들이다. 동시나 어린이가 쓴 시를 텍스트로 한 책들도 좋지만, 어른들의 세계에서도 좋은 시로 사랑받는 작품들을 그림책으로 만든 것도 참 좋다. 쉬운 말로 씌어진 좋은 시에는 분명 사람의 상상력을 확장시키는 무언가가 있게 마련이니까...
로버트 프로스트는 <가지 않은 길>도 그렇고,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멈춰 서서>도 워낙 유명하다. 어렵지 않은 영어로 씌어 있어서, 욕심 나면 조곤조곤 외워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수잔 제퍼스가 그린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멈춰 서서>는 이미 1978년에 출간된 적이 있고, 2001년에 3 장면을 추가하고 채색도 새로이 해서 개정증보판이 나온 거라고 한다. (한국판 판권을 살펴보다가 판권 표시가 1978, 2001로 되어 있어서, 이력을 한번 추적해보았다 ^^ )
분명 차갑지만 포근포근하게 느껴지는 눈의 질감이 참 아름답게 표현된 책이다. 숲속에서 겨울을 나는 동물들의 모습(마치 숨은 그림 찾기처럼, 그림을 잘 들여다보면 어느 샌가 하나둘 눈에 띈다!) , 눈 쌓인 어려운 길을 나서는 어린 말, 아무도 업는 곳에서는 아이처럼 눈바닥에 누워 눈 천사를 만들며 노는 천진난만한 주인공 할아버지의 모습들이 모두 다 참 사랑스럽다.
나는 엉뚱하게도 이 책을 보며 백석의 시에 홍성찬 선생님이 그림을 그린 <여우난골족>이 떠올랐다. 북방의 겨울, 명절을 맞아 눈길을 뚫고 큰집으로 흥성흥성 모여드는 엄청난(!) 친척들이 등장하는 그림책.
고즈넉한 프로스트의 시와는 너무나 다른 분위기이지만, 지난 겨울을 추억하며 다시 한번 꺼내보고 싶은 그림책이다.
깊은 산골, 아늑히 자리잡은 마을.
아이는 신이 난다. 명절이고, 맛있는 냄새가 사방에서 나고, 친척들이 몰려들 것이므로.
한국의 눈 내린 숲속. 울긋불긋한 옷의 사람들.
<눈 내리는 저녁 ...>의 주인공 할아버지에게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었다. 마을을 찾아가 누군가를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아이들은 어린 말 주변에 몰려들어 반가움을 표시한다.
아마 이 장면 때문에 백석 그림책의 명절 장면이 생각난 것 같다. 흰 눈, 알록달록한 사람들, 기쁨에 겨워 나누는 인사... 이런 것 때문인가.
눈은 이제 흔적도 없다. 아마 땅속으로 스며들어 오랫동안 식물들의 젖줄이 되어 주겠지.
제주는 바람이 세지만, 이제 완연한 봄이다. 오늘은 낮기온이 21도까지 올라간다지... 성급한 벚나무는 벌써 꽃을 피우기도 했다. 길가를 지나다 보면 어디선가 달콤한 향내가 난다. 돌아보면 매화꽃이 만발하다.
겨울을 무사히 난 새들은 마당에 와서 무언가를 먹고 가고, 땅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풀과 꽃들이 솟아올라온다. 지난 겨울을 잘 견뎌낸 모든 것들에게 평화의 인사를 보내고 싶은 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