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갈나무 투쟁기 - 새로운 숲의 주인공을 통해 본 식물이야기, 개정판
차윤정.전승훈 지음 / 지성사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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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새 나에게 책이란 게 아무 위로가 되지 않고 있다. 무슨 책을 읽어도 아무 감흥이 없다. (그래도 알라딘 플래티넘이 유지되는 것은 CD 를 대신 마구 사들이고 있기 때문 -_- ) 그런 와중에 오늘 아침 신문에서 충격적인 뉴스를 보았다.  

국토해양부는 14일 생태환경 전문가인 차윤정(44·사진) 경원대 교수를 4대강 추진본부 환경 부본부장 겸 홍보실장(전문계약직공무원 1급)으로 채용했다고 밝혔다.
차 부본부장은 서울대 임학과(현 산림자원학과) 출신으로, 지난 1999년 남편인 전승훈 경원대 교수(도시계획 조경학부)와 함께 신갈나무의 일대기를 의인체 소설 형식으로 쓴 <신갈나무 투쟁기>를 펴냈다.
  

이게 무슨 소리야...  

내가 눈물을 흘리며 읽었던 <신갈나무 투쟁기>의 저자가 4대강 홍보실장이라고? 나뭇가지로 한 대 얻어맞은 듯 멍... 하고 눈앞에 별들이 반짝이는 것 같이 어지러웠다. 

책장으로 달려가 <신갈나무 투쟁기>를 꺼냈다. 갈기갈기 찢었다. 신문지들 사이에 넣어서 다음주 수요일날 재활용품 버릴 때 내다 버릴 예정이다. 

정말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다. 

어제는 정호승 시인이 동아일보에 “적에게 기습 공격을 당해도 물증을 찾아야만 항의할 수 있는 시대에 사는 나는 우울하다.” 어쩌고 하는 초현실주의적(!) 칼럼을 실었다는 말에 어리둥절...했는데(네, 그렇게 우울하게 지내세요) 오늘 아침엔 이런 일이 다 있네. 

책 만드는 일로 밥 먹고 살지만, 책이란 게, 글이란 게, 이렇게 쓸데없이 느껴지는 날이 없었다. 세상에서 가장 정직하고 믿을 만한 것은, 그저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뿐인 것 같다. 가서 오이소박이나 마저 담가야겠다. 

올해는 책을 참 많이 정리해서 버리고 팔고 재활용가게에 기증하고 그랬는데, 차윤정이고 정호승이고는 그냥 다 찢어버려야겠다. 집에 마당이 있다면 불태워 버리면 딱 좋겠는데. 참 너무들한다. 미치지 않고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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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0-05-15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비참한 소식이에요..ㅜㅜ

또치 2010-05-15 22:18   좋아요 0 | URL
마노아 님, 잘 지내셨어요.
같이 울어주셔서 고마워요 ㅜㅜ 아으아으아...

saint236 2010-05-16 1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식인들이 자기 학문에 대한 신념과 지조를 지키지 못하네요. 일제시대 매판 지식인이라는 말이 다시 등장하는 것 같습니다.

또치 2010-05-17 11:33   좋아요 0 | URL
김지하, 황석영... 이런 양반들 보고는 그런가부다 했었는데
임학을 전공한 과학자가 이런 입장을 취하다니,
아무리 노력해봐도 정말 알 수가 없어요 @.@

穀雨(곡우) 2010-05-17 0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윤정씨의 수려한 글쓰기에 신갈나무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생각했는데...
우째 이런일이....ㅠ.ㅠ

또치 2010-05-17 11:34   좋아요 0 | URL
다들 울고 계시네요 ㅠㅠ

쟈니 2010-05-17 1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T T 이건 정말, 충격입니다. 저도 차윤정씨 책을 버려야 할지.. 아.. 화가납니다.

또치 2010-05-17 11:35   좋아요 0 | URL
책 찢어버리고 와서 마구 쓴 글인데...
생각해 보니 이렇게 '멀쩡한' 책을 갈기갈기 찢은 적은 처음인 것 같아요.
우째 이런 경험을 안겨준답니까 이놈의 시대는... ㅠㅠ

글샘 2010-05-17 13: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강은 아무리 파헤쳐도 된다. 자생력이 있기 때문이다. - 어느 임학자-
이런 명언이 나올 법하군요.
배중에 복원력이 가장 큰 군함이 뚝 부러지는 나란데... 이런 일 정도야 비일비재하겠죠.

달팽이처럼 2010-05-21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호승 시인한테 엄청 충격먹었었는데, 생각도 않던 사람한테 또 뒷통수를 맞고 말았습니다.또치님 말씀대로 정직하게 땀흘리고 몸을 움직여 얻은 지혜나 지식이 아니고는 다 소용이 없단 생각이 듭니다.지식인 나부랭이들의 위선적인 모습을 많이 보다보니 요즘은 책을 읽을때 더욱더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보게되는 좋은점은 있더군요.

나그네 2013-11-13 16: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신갈나무 투쟁기는 정치적 목적으로 쓴 책입니다. 2010년 당시 독서토론할 때 책을 바로 보아야 한다는 구성원들 생각이 납니다.
지나가는 길에 괜히 생각나 한 줄 적고 갑니다.
 

 내 요리 선생은 EBS TV 의 '최고의 요리비결'이다. 옛날 옛적, 김혜영씨가 진행할 때부터 보기 시작해서 황현정, 정지영, 김지호, 명세빈, 그리고 지금 박수홍에 이르기까지 진행자들을 거의 다 보아 왔으니, 이름난 요리 선생님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다 만난 셈이다. 특히나 이제 막 스스로 밥을 해먹기 시작하는 어른들에게 꼭 권하고픈 프로그램이다. 공중파의 요리 프로그램에서 음식을 얘기하면 늘 '어디 가서 맛있는 거 사먹나' 하는 얘기만 하는데, 유일하게 '최고의 요리비결'만은 '어떡하면 내 손으로 맛있고 좋은 음식을 해먹나' 하는 데 고민이 맞춰져 있고, 초보자는 초보자대로, 고수는 고수대로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도록 아기자기한 배려를 하면서 만드는 좋은 프로다. 박수홍씨는 2년 넘게 진행하고 있는데, 이미 한식조리사 자격증까지 땄다고 하는 데다 입담도 워낙 좋고, 귀엽다 ^^. 이 프로를 통해 수많은 요리 고수들을 만나왔으니 앞으로는 제이미 올리버처럼 자기만의 요리쇼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한다. 

<착한 밥상 이야기> <착한 요리 상식 사전>의 저자 윤혜신 선생도 얼마전에 이 프로그램에 등장해서 알게 됐다. 책을 읽고 나니 이분이 소개해준 요리를 해보고 싶어지기도 했지만, 당진에서 운영하고 있는 밥집 '미당'에 가서 밥 한끼 꼭 먹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일산 신도시에서 주부로 살다가 주변 사람들에게 요리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됐고, 그러다가 나이 마흔에 집안 땅이 있는 당진 합덕으로 내려가 사람들에게 이로운 음식을 만드는 밥집을 하게 되었다고. 어떡하면 땅에 죄를 덜 짓고 사나 고민하면서, 농사 짓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 같으니 이땅에서 나는 먹을거리들로 사람들에게 좋은 음식 만들어주는 일을 하면서 살자 결심했다 한다. 이런 마음으로 만들어 파는 음식을 꼭 먹어보고 싶었던 거다.

이 책 역시, 이제 요리를 막 시작하며 + 음식 만들기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구체적인 요리법에 대해 알려주기보다는 제철재료를 고르는 법, 음식 만들기의 기본 자세, 양념 쓰는 법 등에 대해 조곤조곤, 친절한 선생님의 자세로 얘기해주고 있어서 좋을 것이다. 읽기만 해도 왠지 몸이 건강해지는 느낌? ^^  

토요일, 황사가 오고 있다지만, 에이 몰라! 미당에서 점심을 먹기 위한 일정을 짰다. 태안 천리포수목원(10시 도착) --> 개심사(11시반 도착) --> 미당에서 점심(2시 10분전) --> 아산 공세리 성당 (3시반) --> 아산 스파비스(4시) --> 일산 집에 도착(8시40분). 

천리포수목원에는 아직 수선화조차 꽃이 피지 않았고, 천리포해수욕장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겨울처럼 차가웠다. 그래도 간간이 풍년화랑 노란 복수초가 약간 맘을 설레게 해주는 정도...?  

정말로 봄을 확 느낀 건, 개심사 앞에 도착해서였다. 몇 개 안되는 음식점마다 함지박에 봄나물을 그득그득 쌓아놓고 팔고 있었다!! 와, 꽃 본 거보다 봄나물 보는 게 훨씬 좋다~~ 달래, 냉이, 씀바귀, 취나물, 방풍나물, 봄동, 원추리, 쑥... 보는 것마다 다 먹어보고 싶어 추릅추릅 입맛을 다시다가, 취나물 한봉지 3천원 + 생표고버섯 1kg 만원 + 봄동 한봉지 3천원 + 씀바귀 2천원 + 냉이 한주먹 덤. 이렇게 샀다. 어유, 양손에 들기가 벅차다...  이러고서 미당으로 밥을 먹으러 갔다. 

미당의 밥은, 윤혜신 선생의 글처럼 아주 조신하면서도 얌전한 맛이라고 할까. 만오천원짜리 정식을 먹었는데, 특히나 고추장 된장이 너무 맛있어서, 고추장 멸치볶음이나 된장에 박은 깻잎장아찌, 우거지를 넣은 된장찌개 같은 그야말로 '집반찬'들이 가장 인상깊었다. 된장을 파신다면 사오고 싶었는데, 팔지는 않으신다고... 

맛있는 밥도 먹고, 양손에 산나물도 가득 들고, 아산 스파비스에서는 철푸덕 철푸덕 수영(?)도 해서 몸이 기분좋게 뻑적지근 하기도 하고... 황사 속이었지만 왠지 보람찼던 하루 여행. 집에 돌아오자마자 9시 뉴스를 들으며 나물들을 씻고 다듬었다. 이런 건 미뤄두면 안돼~!



첫번째로 채취한 나물이 가장 맛있게 마련. 취는 데쳐서 된장에 조물조물 무쳐놓았다. 나물로 먹을 거 남겨놓고, 한 주먹 덜어서 오늘 아침 취나물밥 해먹었다. 


밥 하는 데다가 된장에 무친 취나물 넣고 취사 버튼 누르면 된다. 물의 양은 평소보다 좀 적게, 쌀과 똑같이 맞추면 된다. 쌀 두컵이면 물 두컵. 


달래 송송 썰고서 간장 + 물 + 고춧가루 + 참기름 넣고 슴슴하게 달래 간장을 만들어서 취나물밥에 넣고 슬슬 비벼 먹으면 좋다. 꿀꺽~  


개심사 앞 노점 할머니한테서 사온 봄동. 그야말로 할머니가 밭에서 캐오신 거라, 흙이 장난 아니게 많았다. 어젯밤에 이거 씻으면서 약간 후회...도 했는데(괜히 샀어!), 툭툭 썰어서 까나리액젓 + 매실청 + 고춧가루 + 마늘 찧은 거만 넣고 슥슥 겉절이로 무쳤더니, 고생하며 씻은 보람이 충분히 있었다. 정말 고소하다. 


하지만 아직도 씀바귀가 한가득 남았고 (이건 돼지고기 먹을 때 초고추장에 살살 무쳐서 같이 먹으면 쌉싸레한 맛이 아주 기양 입맛을 돋운다)  


한주먹 얻어온 냉이도 풀어놓고 보니 양푼 한가득... (그래도 손질해 데쳐놓고 나면 얼마 안 되지만... 바지락 넣고 국 끓여먹어야지!) 


보기만 해도 입맛을 다시게 맛있어 보이는 통통한 표고버섯도 1kg 이나 있다. 양파랑 같이 볶아먹고, 쇠고기 사다가 버섯불고기도 좀 재워놔야겠다.  

어쨌거나, 봄이다! 우리 모두 봄나물 먹고 씩씩하게 잘 지내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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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0-03-21 18: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와와, 이거 또치님 살림 솜씨 여기서 기양 빛을 발하네요 또.
나물을 사려다가도, 또 냉장고 속에서 며칠 있다가 썩어내버리지 싶어 못 사는 1인. 흑.

또치 2010-03-21 21:42   좋아요 0 | URL
아아, 나물반찬이 필요한 사람은 자취생이 아니라 바로 치니님이군요!
반찬통 들고 놀러오세요!
안 그래도 쫌 우울한데, 하이킥까지 아주 우울하게 끝나 버려서 힘나는 거나 좀 먹어야지, 하는 참 기막힌 봄이에요.

웽스북스 2010-03-22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말로만 듣던 또치님의 풀밭위의 식사. 와. 군침돌아요.
저는 저 달래간장이랑 밥먹고싶어요. 진짜 반찬통 들고 가야될까봐요~

(달래간장에 고기반찬...응? ㅋㅋㅋㅋㅋ)

또치 2010-03-22 10:14   좋아요 0 | URL
추릅추릅~ 달래무침 + 삼겹살(혹은 보쌈)은 진리예요!
저도 고기 좋아한답니다~

마노아 2010-03-22 1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봄이 여기 한가득 내려앉았네요. 군침이 좌르륵이에요!

또치 2010-03-22 14:02   좋아요 0 | URL
겨울을 이기고 언땅 뚫고 나온 나물들, 봄에 꼭 먹어줘야 합니다!
아, 근데 밖은 아직도 오슬오슬 넘 추워요 >.< 따스한 봄볕 누리기 참 힘드네요;;

레와 2010-03-22 14: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몰래보고 나갈랬더니, 도저히..)
안녕하세요, 또치님!^^

봄이 어디갔나 했더니, 또치님 페이퍼에 있었군요!

또치 2010-03-22 16:45   좋아요 0 | URL
아, 레와 님, 반갑고 감사! ^^
흑, 근데 지금 밖에는 막 눈이 펄펄 날리네요. 이럴 수가... ;;

무해한모리군 2010-03-30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제가 한 김이 어설프게 묻은 냉이무침과는 참 다르네요 ^^;;

2010-05-07 20:3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09 2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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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아싸~ 눈독 들이고 있던 네비가 10만원 아래! 기다린 보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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웽스북스 2010-03-19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만 있다면 사고싶은 가격이네요. ㅋㅋ (또치님~ 드라이브 시켜주세요~)

또치 2010-03-19 11:40   좋아요 0 | URL
아, 웬디양님. 봄날 드라이브 좋죠 @.@ 샬랄라 치마 입고 꽃구경이라도 같이 가실랍니까?
근데 이 네비는, 사실은 회사 차에 달 거랍니다.
제 차 운전할 땐 웬만한 길은 걍 지도 찾아보고 막 가요 ;;
영 모를 거 같음 이거 살짜쿵 빌려 쓰죠 뭐!
액정이 크지 않은 아담한 사이즈라 맘에 들었답니다.
 

지난 금요일날, 김연아 선수 경기 전에 사원 vs 사장 내기를 걸었다.  210점 넘어서 금메달을 따느냐, 210점 못 넘기느냐 를 가지고 사장님이 내민 카드는 금요일 오후 제끼기 + 3월 2일까지 내처 휴무. 210점 넘어 금메달 딴다에 걸었던 사원들은 연아 덕에 오늘까지 논다. (정말로 사장님은 오늘 혼자 나와서 일하고 계시다고 함 ;; ) 

생각지도 않았던 평일 하루 휴무. 별다른 계획은 없었으므로, 청소와 정리정돈을 하며 보내고 있다. 올해 나의 지상과제는 정리정돈과 짐 줄이기라서, 틈만 나면 여기저기 조금씩 정리중이다. 책도 그렇고, 옷도 그렇고, 1월부터 지금까지 정리한 게 꽤 되는 것 같은데 별로 티는 안 난다 ;; 그래도 계속 하다 보면 연말에는 눈에 띄는 성과가 있겠지!  

 

 

 

     (청소하기 싫을 때는 이 책을 들여다본다. 조금은 자극이 된다 ^^ 이런 저런 걸 다 떠나, 몸 쓰는 일을 하는 게 스트레스 푸는 데는 최고인 것 같다. 운동이나 청소를 하는 게 가장 간단하게 기분전환할 수 있는 일인 듯.)

어제는 양재동 화훼공판장에 꽃구경을 갔다가 수선화 만원 어치, 오렌지 자스민, 이름을 까먹은 커다란 관엽식물 들을 사와서 분갈이를 하고 (페트병을 잘라 만든) 화병에 꽂아놓았다. 이렇게 해야 봄이 반갑게 들어올 것 같아서. 그리고 오늘 한 일은, 미루고 미루었던 헌 의자 버리기(2천원 내고 스티커 사와서 붙여야 하는데 이게 귀찮아서...), 완전 까먹고 있었던 깨진 액자 유리 교체, 도서관에 책 반납하기, 채소가게 들러 찬거리 사기, 빈민사목위원회 재활용 가게로 보낼 의류 포장, 가스렌지와 그 주변 청소 같은 것들.   

액자 가게, 슈퍼마켓, 도서관 등등을 쭉 돌자면 왕복 4km 정도 걸어야 하는데, 이런 평일날 동네를 걸어다니면 기분이 참 좋다. 사실 나도 옆집에 사는 분들과 인사도 잘 하지 않고 지내는데, 그래도 나에게 '동네'가 있다고 생각하면 뭔가 안심이 된다. 단골 과일가게 아저씨와 단골 채소가게 할머니가 권하는 걸 사먹으면 항상 맛있고, 집앞 정육점의 예쁜 아가씨가 슥슥 썰어주는 돼지고기 앞다리살은 3천원 어치만 사놓으면 일주일은 마음 든든하다. 도서관 사서 선생님들은 오늘 처음 책을 빌리러 온 초등학생에게 꼼꼼히 대출 요령을 강의(!)하고 계셨고, 꼬마는 진지하게 듣고 있는 풍경이 참 보기 좋았다. 오늘 처음 들러본 액자 가게는 지저분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지만(망한 집인 줄 알았다...), 순식간에 반짝반짝하는 유리를 갈아끼워 새 액자로 만들어준 주인 아저씨는 단돈 5천원만 받으셔서 황송할 지경이었다. <지붕 뚫고 하이킥>의 촬영지인 우리 동네 공원 주변에는 촬영 차량이 잔뜩 늘어서 있었는데, 아쉽게도 배우들 모습은 하나도 보이지가 않았다. (그러고 보니 하이킥 끝날 날이 얼마 안 남았다... 그날이 올까봐 나는 두렵다  ㅠㅠ )

액자 가게 아저씨와 그 앞 철물점 아저씨의 "술 한잔 하자"는 대화, '명품 가방 수선집'에서 부지런히 재봉틀을 놀리는 아주머니들, 조그만 가게에서 홈패션을 수강중인 사람들, 간간이 들려오는 초등학생들의 활기찬 목소리... 한시간 남짓 걷는 동안, 신도시에 아파트 단지만 있는 게 아님을 느끼며 조금은 행복했다. 별로 크게 한 일은 없지만,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은 하루.  




수선화는 하루 사이에 활짝 다 피어버렸다. 보름간은 꽃 볼 수 있을 거라고 했는데, 제발 오래 갔으면 좋겠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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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10-03-02 1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회사 어딥니까! 당장 저 좀 델고 가주세요, 사장님 완전 화끈하시다 ~ ^-^

오늘 날씨는 다시 꽃샘바람이 쌩쌩이었지만 여기 오니 봄이 버얼써 문턱 앞이네요. 또치님처럼 봄 준비 좀 해야할텐데, 우리집 커피콩은 언제 싹을 틔우려나.에효.

또치 2010-03-03 08:55   좋아요 0 | URL
울 회사 영업부에서 사람 구합니다 ^^ 패기있는 남녀노소 누구나 환영해요!
근데 커피콩을 심으셨어요? 오오, 가끔 커피집에서 커피나무 심어져 있는 거 본 적 있는데, 치니님도 키우고 계셨구나! 올봄엔 좋은 소식 있겠죠!

웽스북스 2010-03-03 02: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멋진 사장님이에요. 부러워라...
전 요즘 이사 준비한다고 로봇 청소기부터 시작해서 온갖 청소도구들을 사들이고 있어요. 도대체 얼마나 청소를 하고 살려고, 라고 하는 분들도 있지만, 실은 청소를 잘할 자신이 없어서에요. 저도 제일 처음 산 독립 물품이 로봇청소기인 제 자신을 어찌 받아들여야할지 잘 모르겠어요. 그나저나.

벌써 4년 전쯤 됐을 것 같아요. 꼭 지금같은 계절에, 저도 양재동 꽃시장에 갔다가 수선화 앞에서 한참 고민했었어요. 너무 사가고 싶은데, 죽일 게 뻔해서, 꽃한테 못할 짓 하는 것 같아서 결국 포기하고 잎 튼튼한 녀석으루다가 사왔는데 결국 걔들도 다 죽여버린. ;;; 암튼 수선화를 보니, 정말 봄느낌이 나네요.

또치 2010-03-03 08:57   좋아요 0 | URL
로봇 청소기! 나도 갖고 싶다아... 나 한번만 빌려줘요 ^^
새봄 + 독립 + 이사하는 웬디양님, 그야말로 입춘대길하세요!
 

날씨가 갑자기 따뜻해져서 어리둥절...하다. 이러다 왠지 3월에 눈이 한번은 펑펑 쏟아질 것 같다는 의구심이 드는 잊혀지지 않게 추운 겨울이었으니... 요새는 몸이 마치, 냉동되었다가 해동된 생선 같은 기분이다. (늙어서 그렇지 뭐.)  

오늘이 MB 취임 2주년이라는데, 그간 MB 일당이 내게 선물한 피로감은 백년쯤은 살아낸 것 같은 무게다. 에잇, 다른 좋은 거나 생각해봐야지. 아, 제주에는 성산에 유채꽃이 가득 피고 대정의 추사 적거지에는 수선화가 한창이겠지... 표선의 파아란 바다, 송당의 오름들과 그 주변의 검은 흙 가득한 밭이 보고 싶다. 태국의 에메랄드빛 바다에도 풍덩 빠지고 싶은데, 아아, 여섯 시간이나 비행기를 타야 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푹 꺾여 버리네...  

영 기운없는 몸과 마음을 달래기엔 그래도 노래 듣는 게 쵝오. 

페퍼톤스의 새 앨범에서 <공원여행>이 라디오에서 잘 나오는 것 같다. 나도 따라불러 본다. "하나 둘 셋 넷 씩씩하게!" 

 

 

 

 

 

요새 계속 잘 듣고 있는 옥상달빛. <하드코어 인생아>. 엄청 서정적인 멜로디인데, 가사는 처연하다.  슬프고 우울할 땐, 이런 노래 들으면서 눈물 흘려버리는 것도 괜찮은 것 같다.

뭐가 의미 있나 뭐가 중요하나 정해진 길로 가는데   

축 처진 내 어깨 위에 나의 눈물샘 위에  

그냥 살아야지 저냥 살아야지  

죽지 못해 사는 오늘  

뒷걸음질만 치다가 벌써 벼랑 끝으로  

어차피 인생은 굴러먹다 가는 뜬구름 같은  

질퍽대는 땅바닥 지렁이 같은 걸 ... 

불면증 때문에 지하실에 내려가 노래를 만들게 됐다는 1인 프로젝트 Owl City의 Fireflies 도  요새 애청곡. (이렇게 뿅뿅거리는 노래, 여전히 좋다.) 

근데 저 앨범 재킷은 맘에 안 든다. 왠지 두바이가 생각나잖아.  

 

 

 

그리고, 아, 얘네들 보면 기운이 쫌 나는 거 같아.  (우영이도 좋고 준수도 좋아요 >.<  )  나에게 이런 일이 다 생기다니... <기다리다 지친다>가 요새 나의 의외의 애청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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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0-02-25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택연이 ♡

또치 2010-02-25 13:01   좋아요 0 | URL
ㅋㅋ 찐하게 생긴, 근육질 남자를 좋아하는 우리 다락님!

마노아 2010-02-25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옥상달빛. <하드코어 인생아>. 이 노래가 참 좋아요. 근데 가사는 너무 서글퍼요.ㅠ.ㅠ
그치만 그래도 봄엔 행복해지자구요.^^

또치 2010-02-26 11:54   좋아요 0 | URL
네, 마노아님. 점점 짧아질 봄, 아쉽지 않게 맘껏 누려보자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