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날, 김연아 선수 경기 전에 사원 vs 사장 내기를 걸었다. 210점 넘어서 금메달을 따느냐, 210점 못 넘기느냐 를 가지고 사장님이 내민 카드는 금요일 오후 제끼기 + 3월 2일까지 내처 휴무. 210점 넘어 금메달 딴다에 걸었던 사원들은 연아 덕에 오늘까지 논다. (정말로 사장님은 오늘 혼자 나와서 일하고 계시다고 함 ;; )
생각지도 않았던 평일 하루 휴무. 별다른 계획은 없었으므로, 청소와 정리정돈을 하며 보내고 있다. 올해 나의 지상과제는 정리정돈과 짐 줄이기라서, 틈만 나면 여기저기 조금씩 정리중이다. 책도 그렇고, 옷도 그렇고, 1월부터 지금까지 정리한 게 꽤 되는 것 같은데 별로 티는 안 난다 ;; 그래도 계속 하다 보면 연말에는 눈에 띄는 성과가 있겠지!

(청소하기 싫을 때는 이 책을 들여다본다. 조금은 자극이 된다 ^^ 이런 저런 걸 다 떠나, 몸 쓰는 일을 하는 게 스트레스 푸는 데는 최고인 것 같다. 운동이나 청소를 하는 게 가장 간단하게 기분전환할 수 있는 일인 듯.)
어제는 양재동 화훼공판장에 꽃구경을 갔다가 수선화 만원 어치, 오렌지 자스민, 이름을 까먹은 커다란 관엽식물 들을 사와서 분갈이를 하고 (페트병을 잘라 만든) 화병에 꽂아놓았다. 이렇게 해야 봄이 반갑게 들어올 것 같아서. 그리고 오늘 한 일은, 미루고 미루었던 헌 의자 버리기(2천원 내고 스티커 사와서 붙여야 하는데 이게 귀찮아서...), 완전 까먹고 있었던 깨진 액자 유리 교체, 도서관에 책 반납하기, 채소가게 들러 찬거리 사기, 빈민사목위원회 재활용 가게로 보낼 의류 포장, 가스렌지와 그 주변 청소 같은 것들.
액자 가게, 슈퍼마켓, 도서관 등등을 쭉 돌자면 왕복 4km 정도 걸어야 하는데, 이런 평일날 동네를 걸어다니면 기분이 참 좋다. 사실 나도 옆집에 사는 분들과 인사도 잘 하지 않고 지내는데, 그래도 나에게 '동네'가 있다고 생각하면 뭔가 안심이 된다. 단골 과일가게 아저씨와 단골 채소가게 할머니가 권하는 걸 사먹으면 항상 맛있고, 집앞 정육점의 예쁜 아가씨가 슥슥 썰어주는 돼지고기 앞다리살은 3천원 어치만 사놓으면 일주일은 마음 든든하다. 도서관 사서 선생님들은 오늘 처음 책을 빌리러 온 초등학생에게 꼼꼼히 대출 요령을 강의(!)하고 계셨고, 꼬마는 진지하게 듣고 있는 풍경이 참 보기 좋았다. 오늘 처음 들러본 액자 가게는 지저분하기가 이루 말할 수가 없었지만(망한 집인 줄 알았다...), 순식간에 반짝반짝하는 유리를 갈아끼워 새 액자로 만들어준 주인 아저씨는 단돈 5천원만 받으셔서 황송할 지경이었다. <지붕 뚫고 하이킥>의 촬영지인 우리 동네 공원 주변에는 촬영 차량이 잔뜩 늘어서 있었는데, 아쉽게도 배우들 모습은 하나도 보이지가 않았다. (그러고 보니 하이킥 끝날 날이 얼마 안 남았다... 그날이 올까봐 나는 두렵다 ㅠㅠ )
액자 가게 아저씨와 그 앞 철물점 아저씨의 "술 한잔 하자"는 대화, '명품 가방 수선집'에서 부지런히 재봉틀을 놀리는 아주머니들, 조그만 가게에서 홈패션을 수강중인 사람들, 간간이 들려오는 초등학생들의 활기찬 목소리... 한시간 남짓 걷는 동안, 신도시에 아파트 단지만 있는 게 아님을 느끼며 조금은 행복했다. 별로 크게 한 일은 없지만,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은 하루.

수선화는 하루 사이에 활짝 다 피어버렸다. 보름간은 꽃 볼 수 있을 거라고 했는데, 제발 오래 갔으면 좋겠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