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요리 선생은 EBS TV 의 '최고의 요리비결'이다. 옛날 옛적, 김혜영씨가 진행할 때부터 보기 시작해서 황현정, 정지영, 김지호, 명세빈, 그리고 지금 박수홍에 이르기까지 진행자들을 거의 다 보아 왔으니, 이름난 요리 선생님들은 이 프로그램을 통해 다 만난 셈이다. 특히나 이제 막 스스로 밥을 해먹기 시작하는 어른들에게 꼭 권하고픈 프로그램이다. 공중파의 요리 프로그램에서 음식을 얘기하면 늘 '어디 가서 맛있는 거 사먹나' 하는 얘기만 하는데, 유일하게 '최고의 요리비결'만은 '어떡하면 내 손으로 맛있고 좋은 음식을 해먹나' 하는 데 고민이 맞춰져 있고, 초보자는 초보자대로, 고수는 고수대로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도록 아기자기한 배려를 하면서 만드는 좋은 프로다. 박수홍씨는 2년 넘게 진행하고 있는데, 이미 한식조리사 자격증까지 땄다고 하는 데다 입담도 워낙 좋고, 귀엽다 ^^. 이 프로를 통해 수많은 요리 고수들을 만나왔으니 앞으로는 제이미 올리버처럼 자기만의 요리쇼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한다.
<착한 밥상 이야기> <착한 요리 상식 사전>의 저자 윤혜신 선생도 얼마전에 이 프로그램에 등장해서 알게 됐다. 책을 읽고 나니 이분이 소개해준 요리를 해보고 싶어지기도 했지만, 당진에서 운영하고 있는 밥집 '미당'에 가서 밥 한끼 꼭 먹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일산 신도시에서 주부로 살다가 주변 사람들에게 요리 가르치는 일을 하게 됐고, 그러다가 나이 마흔에 집안 땅이 있는 당진 합덕으로 내려가 사람들에게 이로운 음식을 만드는 밥집을 하게 되었다고. 어떡하면 땅에 죄를 덜 짓고 사나 고민하면서, 농사 짓는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 같으니 이땅에서 나는 먹을거리들로 사람들에게 좋은 음식 만들어주는 일을 하면서 살자 결심했다 한다. 이런 마음으로 만들어 파는 음식을 꼭 먹어보고 싶었던 거다.
이 책 역시, 이제 요리를 막 시작하며 + 음식 만들기에 관심있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다. 구체적인 요리법에 대해 알려주기보다는 제철재료를 고르는 법, 음식 만들기의 기본 자세, 양념 쓰는 법 등에 대해 조곤조곤, 친절한 선생님의 자세로 얘기해주고 있어서 좋을 것이다. 읽기만 해도 왠지 몸이 건강해지는 느낌? ^^
토요일, 황사가 오고 있다지만, 에이 몰라! 미당에서 점심을 먹기 위한 일정을 짰다. 태안 천리포수목원(10시 도착) --> 개심사(11시반 도착) --> 미당에서 점심(2시 10분전) --> 아산 공세리 성당 (3시반) --> 아산 스파비스(4시) --> 일산 집에 도착(8시40분).
천리포수목원에는 아직 수선화조차 꽃이 피지 않았고, 천리포해수욕장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겨울처럼 차가웠다. 그래도 간간이 풍년화랑 노란 복수초가 약간 맘을 설레게 해주는 정도...?
정말로 봄을 확 느낀 건, 개심사 앞에 도착해서였다. 몇 개 안되는 음식점마다 함지박에 봄나물을 그득그득 쌓아놓고 팔고 있었다!! 와, 꽃 본 거보다 봄나물 보는 게 훨씬 좋다~~ 달래, 냉이, 씀바귀, 취나물, 방풍나물, 봄동, 원추리, 쑥... 보는 것마다 다 먹어보고 싶어 추릅추릅 입맛을 다시다가, 취나물 한봉지 3천원 + 생표고버섯 1kg 만원 + 봄동 한봉지 3천원 + 씀바귀 2천원 + 냉이 한주먹 덤. 이렇게 샀다. 어유, 양손에 들기가 벅차다... 이러고서 미당으로 밥을 먹으러 갔다.
미당의 밥은, 윤혜신 선생의 글처럼 아주 조신하면서도 얌전한 맛이라고 할까. 만오천원짜리 정식을 먹었는데, 특히나 고추장 된장이 너무 맛있어서, 고추장 멸치볶음이나 된장에 박은 깻잎장아찌, 우거지를 넣은 된장찌개 같은 그야말로 '집반찬'들이 가장 인상깊었다. 된장을 파신다면 사오고 싶었는데, 팔지는 않으신다고...
맛있는 밥도 먹고, 양손에 산나물도 가득 들고, 아산 스파비스에서는 철푸덕 철푸덕 수영(?)도 해서 몸이 기분좋게 뻑적지근 하기도 하고... 황사 속이었지만 왠지 보람찼던 하루 여행. 집에 돌아오자마자 9시 뉴스를 들으며 나물들을 씻고 다듬었다. 이런 건 미뤄두면 안돼~!
첫번째로 채취한 나물이 가장 맛있게 마련. 취는 데쳐서 된장에 조물조물 무쳐놓았다. 나물로 먹을 거 남겨놓고, 한 주먹 덜어서 오늘 아침 취나물밥 해먹었다.
밥 하는 데다가 된장에 무친 취나물 넣고 취사 버튼 누르면 된다. 물의 양은 평소보다 좀 적게, 쌀과 똑같이 맞추면 된다. 쌀 두컵이면 물 두컵.
달래 송송 썰고서 간장 + 물 + 고춧가루 + 참기름 넣고 슴슴하게 달래 간장을 만들어서 취나물밥에 넣고 슬슬 비벼 먹으면 좋다. 꿀꺽~
개심사 앞 노점 할머니한테서 사온 봄동. 그야말로 할머니가 밭에서 캐오신 거라, 흙이 장난 아니게 많았다. 어젯밤에 이거 씻으면서 약간 후회...도 했는데(괜히 샀어!), 툭툭 썰어서 까나리액젓 + 매실청 + 고춧가루 + 마늘 찧은 거만 넣고 슥슥 겉절이로 무쳤더니, 고생하며 씻은 보람이 충분히 있었다. 정말 고소하다.
하지만 아직도 씀바귀가 한가득 남았고 (이건 돼지고기 먹을 때 초고추장에 살살 무쳐서 같이 먹으면 쌉싸레한 맛이 아주 기양 입맛을 돋운다)
한주먹 얻어온 냉이도 풀어놓고 보니 양푼 한가득... (그래도 손질해 데쳐놓고 나면 얼마 안 되지만... 바지락 넣고 국 끓여먹어야지!)
보기만 해도 입맛을 다시게 맛있어 보이는 통통한 표고버섯도 1kg 이나 있다. 양파랑 같이 볶아먹고, 쇠고기 사다가 버섯불고기도 좀 재워놔야겠다.
어쨌거나, 봄이다! 우리 모두 봄나물 먹고 씩씩하게 잘 지내보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