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과학사 이야기 세트 - 전3권 한국 과학사 이야기
신동원 지음, 임익종 그림 / 책과함께어린이 / 2012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살림지식총서의 <묵자-사랑과 평화의 철학>을 읽다가 조지프 니덤 책까지 알게 되었다.

그러다가 생각난 책이 우리나라 과학사를 소개한 『한국과학사이야기』1-3 세트인데 예전에 써두었던 독후감이 있어서 옮겨온다.

 

#

초등생한테 맞게 나온 과학사 책이라고 하는데, 내용도 꽤 깊이가 있어서 청소년이나 어른이 보기에도 좋다.

 

각 권의 내용 구성을 살펴보자.

먼저 1권과 2권부터 보자(3권은 뒤에 나와서 독후감도 나중에 썼다).

 

먼저 1권에서 <하늘>과 <땅>을 주제로 천문학과 여러 가지 측량과학, 수학, 풍수지리와 지도, 광물지식, 파발과 봉화 등을 얘기하고 있고,

2권에선 <생명>과 <몸>을 주제로 옛날 동물과 식물, 곤충에 관한 주제와 우리나라 의학의 발달사를 다루고 있다.  

 

이렇게 간단히 말하면 무척 딱딱하고 지루하고 어려운 책일 듯한데, 읽어 보면 매우 재미있다.

물론 정보가 많이 담긴 책이라 한꺼번에 독파하기는 버겁겠지만 군데군데 재미난 이야기와 삽화가 있고, 문헌자료와 고미술품 같은 시각자료도 많이 담고 있어서 책 보는 즐거움이 있다.

좋은 어린이 책을 쓰기 위해 상당히 노력했음을 알 수 있겠더라. 다만 이런 거 찾아 읽는 애들은 별로 없다는 게 문제긴 하다.

 

글은 선생님이 쉬운 말로 가르쳐주는 형태로 썼고,

어려운 한자말이나 문헌제목들은 따로 풀이를 보여주면서 학생들이 쉽게 이해하도록 했다. 

각 장 끝에는 참고한 책이나 글들을 제시해서 좋았고, 문헌에 나오는 중요한 구절이나 옛이야기들도 많이 소개하고 있다.

 

이를테면 당시 동아시아 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의 역법이었던 <칠정산> 내외편에 대한 문헌자료는 이렇게 인용하고 있다.

 

1432년 세종은 정인지에게 말씀하셨다.

'고려 때 원나라 수시력을 가지고 들어와 그걸로 예측했다. 조선을 세우고도 일식, 월식, 오성의 궤적을 계산하지 못해서 중국의 수시력을 그대로 썼다. 수학에 밝은 그대가 정초와 더불어 고전을 연구하고, 관측기구를 제작하여 이 문제를 풀도록 하라. 우리가 중국 문명의 수준에 도달했는데, 유독 하늘을 관찰하는 공부와 기구가 부족하구나. 한양에서 본 북극을 기준으로 해서 새 역법을 만들라.'

명령을 받들어 정초, 정흠지, 정인지가 고전을 공부하여 수시력의 수학적 이치를 깨달았다. 또 이천으로 하여금 각종 관측기구를 제작토록 했고, 장영실로 하여금 자격루와 옥루를 제작토록 했다.

마지막으로 이순지, 김담이 명나라에서 새로 들어온 역법과 아라비아 역법을 더 연구하여 마침내 1442년 우리의 역법 <칠정산> 내편과 외편을 만들어 냈다.

이윽고 예측을 했더니 딱 들어맞았다.

  

역법이란 건 결국 달력을 만드는 기술이라고 하겠는데, 달력이 없다면 농사일이고 뭐고 얼마나 불편했겠나.

근데 이 달력을 만들려면 별자리의 이동을 알아야 하고 그것을 정확하게 계산할 수 있는 수학도 발달해야 한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그런 학문은 아니다. 그래서 역법과 수학을 제왕학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해마다 중국에서 주는 달력을 받아서 쓰다가 <칠정산> 이후에는 조선만의 고유하고 더욱 정확한 달력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밖에도

고인돌이나 고구려 고분벽화의 천문 지식, 첨성대 이야기, 고려와 조선의 천재지변 기록, 자격루와 혼천시계, 한국 수학의 역사 따위 이야기들이 첫 번째 책 1부 <하늘>편에 실려 있다.

2부 <땅>편은 풍수지리부터 소개되었는데, 풍수지리는 아주 간략하게만 나오고 있고 대부분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같은 지도 이야기로 채웠다.

 

2권 1부 <생명>편에서는 암각화에서 시작해서 우리 역사에 보이는 동물과 식물에 대한 연구사를 소개하고 있다.

쌀과 채소, 김치 이야기와 감자 고구마 같은 구황작물 이야기, 인삼과 후추, 담배, 차 등 식물 분야와 매, 말과 소, 물고기와 곤충학, 옷감의 역사 따위를 소개하였고,

2부 <몸>편에는 삼국시대부터 시작한 우리나라 의학의 역사에 대해 소개한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이르면 중국과 달리 우리만의 '향약'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고, 이런 전통이 결국 <향약집성방>과 <의방유취>를 거쳐 <동의보감>을 탄생케 했다고 한다.

잘 몰랐었는데 <의방유취>는 15세기 세계 최대의 의학 백과사전이었고, <동의보감>도 17세기 동아시아 의학을 집대성한 책으로서 한글 약 이름까지 쓰여져서 민중들한테까지 널리 의학을 보급할 수 있었던 저술이었단다.

의녀 이야기와 약방 이야기도 재미있었다.

 

책을 읽다 보니 "시치미 뗀다", "산통 깬다", "학을 뗀다"라는 말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나만 몰랐던 건지도 모른다. 인터넷 검색하면 다 나온다. 

  

하여튼 두 권 다 유익하고 재미있는 책이다.

학생들에게 조금씩 읽어주면서 역사 지식을 알려주기에도 좋겠다.

초등 고학년이 읽거나 읽어주기 알맞겠고(단 '정액', '성병'이란 낱말이 나오니까 참고), 중학생이나 고등학생들도 충분히 볼 수 있을 만큼 내용이 충실했다.

 

다음으로 3권을 살펴보자.

 

1부에선 우리나라 문화재에 담긴 과학을 잘 설명하고 있다.

성덕대왕신종, 석굴암, 금속활자, 청자, 한지, 수원 화성, 석빙고, 훈민정음 등이 나온다.

과학적 측면에서 문화재를 설명해 주니까 재미있었다.  

2부는 우리나라 근현대 과학 100년 역사를 다루고 있다.

언뜻 보니까 과학의 업적만 칭송한 게 아니라 통일벼 심기의 어두운 면이나 산업화 시대에 전태일 등 노동자들의 희생도 비중있게 다루고 있어서 꽤 균형잡힌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

 

1부에서 석빙고를 소개할 때 한겨울에 얼음 캐는 빙역으로 고생한 백성들 얘기도 나온다. 

노찾사의 <사계> 가사(미싱은 잘도 도네 돌아가네...)도 소개되어 있더라.

산업화 시대의 우리 과학사를 다룬 8장 마지막 단락은 이렇게 끝난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산업화는 과학 기술계의 노력과 발전만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야. 어려운 환경 속에서 일했던 노동자들과 우리 국민들의 눈물과 피땀 어린 노력이 더불어 이루어진 거란다. (344)

 

또 2부 2장 우리 나라 개항과 개화기 시대 과학 기술에 대한 평가를 한 프랑스 학자의 글을 인용하여 평가한 부분도 눈여겨 볼만 하다.

 

지금까지 살펴본 개항과 개화기 시대의 과학 기술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1888년에서 1889년 조선의 내륙 지방을 여행한 프랑스 지리학자이자 민속학자인 바라의 말로 끝을 맺자꾸나. 바라는 다른 서양인 여행자와 달리 자신이 매우 식견 높은 여행자라고 자처한 사람이야. 조선인의 불결과 게으름, 무지와 무능을 비난한 서양인 여행자와 사뭇 다른 견해를 내놓았지. 보통 한양이나 금강산만 보고 떠나는 여행자와 달리 최초로 한양에서 부산으로 여행길을 택한 인물이기도 해. 조선의 내면을 보려는 의도였어. 그는 『조선기행』에 여행 중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이 교육열이라고 썼단다.

 

나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글을 쓸 줄 아는 이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교육이 얼마나 중요시되고 있으며, 만약 우리 유럽의 새로운 문물이 제대로 유입되기만 한다면 조선인들이 얼마나 급속도로 발전하게 될지 짐작할 수 있었다.

 

또 그는 대구에서 부산으로 이르는 여정에서 전봇대를 본 자신의 감상을 이렇게 표현했어.

 

바야흐로 우리는 한양에서 부산에 이르는 직통 행로로 접어든 셈이었는데, 놀랍게도 가도에는 일본이나 중국처럼 최근 설치된 것으로 보이는 전봇대들도 몇 개 세워져 있었다. 왠지 이 조선이라는 나라는 그 발전 도상에서 머지않아 자신들의 이웃 국가를 따라잡게 될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역사적으로 자신들이 가르쳐왔던 일본인들에게 비록 지금은 산업적으로나 예술적으로 뒤져 있는 조선인들이지만, 윤리적인 우월함 덕분에 가까운 미래에 반드시 그들을 따라잡고 결국엔 저만치 따돌릴 수 있을 것이다. 조선인 특유의 가족 제도와 강한 연대성, 그로 인한 끈질긴 노동력과 지난 몇 년 동안 이룩한 놀랄 만한 발전상을 감안하면 나의 이런 생각은 충분히 설득력을 가지리라. 저 가도에 늘어선 전봇대들이 말해 주듯, 문명의 연결선들이 조선이라는 나라의 땅덩어리 방방곡곡으로 퍼져 나갈 그날이 그리 멀지많은 않은 것이다.

 

바라는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의 문화적 자존심과 교육열, 가족애와 끈질긴 노동력에 매우 후한 점수를 줬어. 갓 가설된 전봇대를 보면서 말이야.

바라의 글을 보면, 근현대에 벌어진 우리 과학사의 놀라운 발전이 꼭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어. 다만 늦게 시작했을 뿐, 과학 기술의 급진적인 발전을 일으킬 만한 조선인 고유의 정신적 힘을 지니고 있었다는 거지. (211-213쪽)

 

2부 4장은 일제에 의해 우리나라 산업과 기술이 발달했다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고, 5장에서 7장까지는 일제강점기에서 해방 이후 우리 과학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렇듯 과학의 역사를 통해 우리 근현대사를 되짚어 볼 수 있어서 초등 고학년이나 청소년들이 보기에 괜찮을 거 같고 어른들이 읽기에도 재미있다.

각 장마다 끝부분에 더 읽을거리와 참고문헌도 소개하고 있어서 유용한 책이다.

 

위 3권에서 애써 책 속의 구절들을 인용한 이유는

1. 한국인들이 지나치게 자기비하에 빠지고 별다른 근거도 없이 스스로 한심한 족속이라고 평가절하하는 경우와

2.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과 산업화의 성공을 마치 몇몇 얼토당토 않은 인물과 재벌 덕분이라고 주장하는 꼴이 보기 싫어서이다.


왜 어르신들은 스스로 피땀 흘려 일궈낸 성과를 인정하지 않고 박통과 새마을 운동과 재벌 타령만 하는 걸까.
교육열만 봐도 그렇다. 나라에서 교육정책을 제대로 이끌어 준 적이 과연 있기나 한가 말이다.

우리들의 이 '대단한' 교육열은 어찌 보면 조선시대부터 면면히 이어져 오는 전통인지도 모른다.

 

교육열 하면 떠오르는 김홍도 그림 하나 덧붙인다.

 

 

<자리짜기>, 김홍도,《단원풍속도첩》, 국립중앙박물관

 

 

 


댓글(2)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만병통치약 2015-02-08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조지프 니덤 책은 침만 흘리고 있고 그림으로 보는 중국 과학사만 쟁여 놓고 있습니다. ^^ 한국 과학사도 찔끔식 접하는데 이 책도 마음에 드는군요.

돌궐 2015-02-08 22:58   좋아요 0 | URL
니덤 책이 지금도 시리즈로 나오고 있다지요. 묵자한테 뻑가서 중국과학사를 연구했다는 얘기가 신선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