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드 대 맥월드
벤자민 바버 지음, 박의경 옮김 / 문화디자인 / 200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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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미국의 정치학자 벤자민 바버는 맥도널드·MTV·매킨토시·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의 다국적 기업들이 만들어놓은 세계를 ‘맥월드’라 부른다. 맥월드는 현재 세계가 도달해 있다고 믿는 테크노피아를 풍자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그가 1995년 펴낸 ‘지하드 맥월드’는 미국 중심의 세계질서와 그것이 초래할 역풍을 조명하고 있는 책이다.  

 

 

9·11 테러 이전에 출간된 책이지만 이 책의 내용은 오히려 그 이후 상황에 더 잘 들어맞는다. 저자인 바버는 메릴랜드대 교수로서 시민운동에 이론적 자양분을 제공해온 미국의 대표적인 민주주의 사상가. 새뮤얼 헌팅턴의 ‘문명충돌론’이나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말’처럼 세계적 질서의 양상을 분석하는 책이지만, 그 두 책이 가진 미국중심의 시각에서 훌쩍 벗어나 있다.  

 

 

바버가 ‘맥월드’라는 개념을 창안한 것은 그와 대척점에서, 필연적으로 등장하게 마련인 ‘지하드’와의 상호관계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지하드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슬람교도들이 자신들의 종교를 전파하기 위해 감행하는 ‘성전’(聖戰)을 의미한다. 오늘날에는 언론에 의해 미국 패권주의에 저항하는 이슬람교도들의 투쟁을 지칭하는 용어로 자주 쓰이곤 한다. 맥월드가 공공선을 무시하고 광포하게 이윤을 추구하면서 지하드는 테러와 같은 극단적 투쟁을 선택하게 된다.  

 

 

당초 지하드는 “정치적 정체성, 문화적 다양성을 회복하기 위한 순수한 목적의 사회운동”에서 시작됐지만, “산업현대화가 가져온 획일성과 식민주의 문화에 대한 저항”으로 확대되고 급기야는 테러로 귀결된다. 바버는 맥월드와 지하드를 각각 “할리우드 카우보이와 국제적 무법자”라 부른다. 맥월드가 ‘동물적 탐욕의 세계’라면, 지하드는 ‘본능적 두려움의 세계’다. 그런 점에서 두 세계는 서로의 존립을 위해 상대를 필요로 하는 ‘적대적 상호의존’ 관계에 놓여 있는 셈이다.  

 

 

테러는 지하드와 맥월드의 ‘기생적 변증법’에서 독버섯처럼 자란다. 바버는 “지하드와 맥월드 모두에 대한 민주주의 투쟁만이 지구를 구해낼 수 있다”고 말한다. 그가 제시하는 대안은 전세계적인 시민운동의 활성화다. 맥월드의 시장논리는 민주주의와 양립하기 어렵고, 지하드의 원리주의도 타자를 배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역시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그의 비관적인 현실 진단에 비해 대안은 다소 진부해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과연 다른 출구가 존재할 수 있을까. 바버의 제안은 우원(迂遠)하고 답답하나마 세계를 인간화시키기 위해 인류가 선택할 수 있는 가능한 방법일 것이다. 이성적 질서를 지상에 실현할 수 있다고 믿었던 헤겔처럼 바버는 민주주의가 세계를 구원한다는 견고한 신념 아래 유토피아를 향한 ‘희망의 원리’를 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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