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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계절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평점 :
품절
#독파 #각각의계절 #권여선
한 계절이 가고 새로운 계절이 왔다. 마리아의 말대로라면 새로운 힘이 필요할 때였다.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들지요._114p. #하늘높이아름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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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세상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아. 눈에 안 띄고 싶어.
(···) 나를 지키고 싶어서 그래. 관심도 간섭도 다 폭력 같아. 모욕 같고. 그런 것들에 노출되지 않고 안전하게, 고요하게 사는 게 내 목표야. 마지막 자존심이고. 죽기 전까지 그렇게 살고 싶어. _75p. #실버들천만사
문동북클럽6기를 시작하고 2번째로 완독한 권여선 작가의 <각각의 계절>은 7편의 단편을 이야기하고 있다. 기억하고 살아가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던지는 많은 질문들이 이 한 권에 담겨 있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때론 너무 내 이야기 같아서 헤어 나오지 못했고, 어쩌면 머지않은 미래의 나 같아서 주춤거리기도 했다. 독파 챌린지를 하며 미션으로 주어지는 질문들을 적어보며 조금 더 깊은 책 읽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고, 함께 읽는 다른 분들의 글과 발췌 문장들을 보며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들을 다시 보게 되기도 했다.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든다는 문장... 읽으면 읽을수록 그 의미가 다른 빛깔로 느껴져서 더 좋았던 권여선 작가의 소설집. 읽기를 참 잘했던 5월을 마무리해본다.
삼십 년 전, 너는 왜 연극이 하고 싶어, 내가 물었을 때 정은은, 나는 왜든 연극이 하고 싶어,라고 말했다. 어쩌면 나는 사슴벌레식 문답에 대한 심오한 오해를 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어디로 들어와, 물으면 어디로든 들어와, 말하는 사슴벌레의 대답이 나는 상대에게 구구절절한 과정이나 절차를 해명하지 않아도 되는 의젓한 방어의 멘트인 줄 알았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그 문답 속에는 내가 읽어내지 못한 무서운 뉘앙스가 숨어 있었던 것 같다. (···) 어디로 들어와, 물으면 어디로든 들어와, 대답하는 사슴벌레의 말 속에는, 들어오면 들어오는 거지, 어디로든 들어왔다, 어쩔래? 하는 식의 무서운 강요와 칼 같은 차단이 숨어 있었다. 어떤 필연이든, 아무리 가슴 아픈 필연이라 할지라도 가차 없이 직면하고 수용하게 만드는 잔인한 간명이 '든'이라는 한 글자 속에 쐐기처럼 박혀 있었다. _28~29 #사슴벌레식문답
인간의 자기 합리화는 타인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경로로 끝없이 뻗어나가기 마련이므로, 결국 자기 합리화는 모순이다. 자기 합리화는 자기가 도저히 합리화될 수 없는 경우에만 작동하는 기제이니까. _36p. #사슴벌레식문답
반희는 채운이 자신을 닮는 게 싫었다. 둘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닮음의 실이 이어져 있다면 그게 몇천 몇만 가닥이든 끊어내고 싶었다. 그래서 결국 둘 사이가 끊어진다 해도 반희는 채운이 자신과 다르게 살기를 바랐다. 그래서 너는 '너', 나는 '나' 여야 했다. _50p. #실버들천만사
나는 한참 눈을 꾹 누르고 있었다. 오래전 젊은 날에, 걸리는 족족 희망을 절망으로, 삶을 죽음으로 바꾸며 살아가던 잿빛 거미 같은 나를 읽고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아니, 그런 사람을 나를 알아본 그 사람을 내 등을 두드리며 그러지 마, 그러지 마, 달래던 그 사람을 내가 마주 알아보고 인사하고 빙글 돌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그 사람은 나와 춤추면서 넌 거미가 아니라고, 너는 지금 스스로에게 덫을 치고 있는 거라고, 그렇게 작고 딱딱한 결정체로 만족하지 않아도 된다고, 너는 더 풍성하고 생동적인 삶을 욕망할 수 있다고. 이 그물에서 도망치라고 말해주었을까. _241p. #기억의왈츠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소설추천 #문동북클럽 #문동북클럽6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