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필적 맥베스
하야세 고 지음, 이희정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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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미필적맥베스

#하야세고

 

 

🔖​나는 화장실로 가는 모리카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 뒷모습은 '당신을 믿어도 괜찮을까요?'라고 묻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어째서일까? 그때 나는 고등학교 1학년 밸런타인데이에 육상부 트랙을 가로지르던 나베시마 후유카의 뒷모습을 떠올렸다. 물론 모리카와는 화장실까지 달려가지도 않았고 세일러복을 입지도 않았다. 어쩌면 그때 나베시마는 '너는 리본 달린 초콜릿에 속을만큼 단순하지 않지? 널 믿어도 되지?'라고 등으로 묻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열다섯 살이었던 나는 그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리본 달린 초콜릿을 선택해 나베시마의 꼭두각시 줄을 쥐고 있던 여학생을 여자 친구로 택하고 말았다. _16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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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이 마지막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아마도 나베시마 후유카가 바로 레이디 맥베스라는 것이다. 나는 마카오 타워를 등지고 번화가로 돌아가는 길을 걸으며 벚꽃색으로 칠해진 중학교를 올려다보았다. 사람은 누구나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을 20년씩 끌어안고 살아갈까. 그리고 그 사랑에 도착했을 때는 어떤 기분일까. 그것은 꼭 두세 페이지밖에 읽지 않은 책 같다. 이야기는 묻이 닫혀 있는 동안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어딘가에서 그 이야기의 마지막 페이지를 읽을 수 있다면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다. 이야기의 주인공이었던 내가 이미 죽었다 하더라도. _484~485p.

IT기업에서 동남아를 중심으로 교통카드 IC를 판매, 영업을 하는 나카이 유이치는 고교 동료인 반과 같은 회사에 근무하며 방콕에서의 큰 계약을 성사시킨 뒤 귀국하는 중 공항 문제로 인해 마카오에 머물게 된다. 카지노에서 가볍게 시작한 게임으로 큰돈을 손에 넣게 되고, 묘령의 여인에게 "당신은 왕으로서 여행을 계속해야 한다."는 예언 같은 말을 듣기도 한다.

그리고 얼마 뒤 유이치는 홍콩 자회사의 대표이사로 발령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는데, 카이저라는 남자의 접근으로 HK 프로토콜의 미공개주를 매입하게 되고, 본사와 자회사인 J프로토콜과의 관계를 알게 되면서 유이치와 반은 전임자들의 행적을 알게 되면서, 자신들이 어쩌면 헤어 나올 수 없는 함정에 빠진 건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온갖 도청장치가 된 사무실, 딱히 업무는 없고, 오로지 접대를 위해 먼저 체험하고 현지에서 얼굴을 익히는 게 업무라는 사무실 분위기, 유이치는 자신의 비서 모리카와도 믿어야 의심해야 하는 상황.

그러던 중 20년 전 고교 동창이었던 나베시마 후유카가 남긴 장문의 메세지를 받게 된 유이치는 그녀 역시 반과 자신처럼 같은 회사에 근무했었고 어떤 프로그램을 발명해 생명의 위협을 받다가 성형을 하고 신분세탁까지 한 후 잠적한 걸 알게 된다. 암호화 방식의 비밀키를 추측하는 방법이 있다는 말을 동료에게 흘렸는데... 이를 알게 된 회사에서 효율적인 해법을 내놓으라는 강요를 받게 되고, 급기야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된다. 어쩌면 유이치에게 닿길 바랐고, 그가 끝내주었으면 좋겠다는 메시지... 유이치를 돕는 사람들, 친구인 반, 입사 동기인 다카기 누구를 믿고 누굴 의심해야 하며 이들의 어떤 결말을 마주하게 될지... 나라와 나라를 넘나드는 비즈니스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유이치의 담대함, 의외의 복병들은 지금껏 읽어왔던 추리소설과는 결이 다르게 느껴졌달까? 경제소설이자 범죄소설이고, 연애는 없지만 애틋한 여운이 남는 연애소설, 맥베스에 대한 묘사가 꽤 자주 등장하는데 진작 맥베스를 읽고 읽었더라면 더 재미있게 읽지 않았을까? 했던 <미필적 맥베스> 페이지를 넘기기 시작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넘기게 될 것이다. 날샘주의!

🔖​만약 그날 밤 카지노에서 돈을 따지 않았다면 내 여행은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이전에 이미 여행이 시작되었다면 그날 밤 캐세이퍼시픽의 도착지를 변경할 수 있을 정도의 시나리오 작가가 어딘가에 숨어 있다는 뜻이다. _235p.

🔖​나는 뱅쿠오를 암살한 맥베스의 감정을 모르겠다. 실재 맥베스 왕에게는 부인이 데려온 아이가 있는데 희곡에서는 맥베스 부인이 "내게는 자식이 있습니다." 라는 대사만 나오고 부부의 왕위 계승자는 명시되어 있지 않다. 맥베스는 세 마녀에게 뱅쿠오가 왕이 되지 않는다는 예언을 들었지만 그에게는 핏줄이 없다. 그런 상황에서 전우인 뱅쿠오에게 암살자를 보내는 게 대체 얼마만큼의 가치가 있을까. 세 마녀의 예언을 듣고 암살자를 보낼 동기가 생기는 건 맥베스가 아니라 오히려 뱅쿠오여야 스토리의 아귀가 맞는다. 뱅쿠오는 자신의 자식을 위해 왕위에 앉는 맥베스를 죽일 이유가 있다. _408p.

#한수진 옮김 #소미미디어 #소미랑 #소미랑2기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일본소설 #소설추천 #추천소설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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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되찾다
오카자키 다쿠마 지음, 한수진 옮김 / ㈜소미미디어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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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여름을되찾다

#오카자키다쿠마

 

 

🔖​"우리들의 여름방학. 되찾고 싶지 않아?"

하야토의 말에 나머지 네 명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되찾는다니.....? 무슨 뜻이야?"

"이렇게 재미없는 여름방학인 채로 끝내버리는 거. 너희들은 정말 괜찮아? 즐거운 여름방학을 맛보고 싶지 않아?"

(···)

"사건을 일으키는 거야." _10p.

초등학교 4학년, 끝나가는 여름방학이 아쉬운 아이들은 엉뚱한 계획을 세우게 된다. "우리들의 여름방학, 되찾고 싶지 않아?" 학원에 다니느라 제대로 즐기지 못한 여름방학을 찾기 위한 밀실 상태의 실종사건, 그렇게 사라진 아이들 뒤론 모종의 메모가 남겨져 있고 이 아이들은 며칠 후 일상으로 돌아오고, 며칠 후 또 다른 아이가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이러한 지역사회 사건을 취재하기 위해 월간 우라가와의 사루와타리와 프리랜서 기자 사사키의 탐문이 시작되는데...

'기노하라 아파트 아동 연쇄 실종'이라는 기획기사로 다뤄질 내용을 취재하며 밀실 실종 사건의 트릭을 해결하기도 하고, 단순한 장난으로 인한 가출이 아닌 지역사회 가족과 지역사회의 문제가 이면에 드러나게 된다. 한 부모 가정, 학교폭력, 집단따돌림, 수련회 사고 등등 아이들의 익살스러운 사건이라고 생각하기엔 지금 우리 주변,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는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글이다.

 

여름방학이 끝나가는 게 아쉬워 아이들이 일으킨 잠깐의 소동이 파문을 일으키며 커져가고, 생각지 못한 반전과 아이들이 이야기하는 생각들은 단순한 탐정놀이가 아닌 우리 사회가 함께 생각해 봐야 할 이슈를 던져주는 글이기도 하다. 이후 성인이 된 5인방의 동창회 에필로그는 찡한 감동이!!! 귀여운 아이들의 밀실 트릭을 풀어보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던 <여름을 되찾다> 자녀들과 함께 읽어도, 또는 성인이 읽어도 즐거울 책으로 추천하고 싶다.

 

 

🔖​7년 전에 괴롭힘이 시작됐고, 약 6년 전부터 아파트 아이들이 사립 중학교에 가게 됐으며, 4년 전부터 운동회가 이 시기로 변경됐다. 도미노처럼 모든 것이 연결되어 있었다. --- 진짜 도미노와는 달리 불쾌한 도미노였다. _181p.

 

🔖​초등학교 4학년쯤 되면 '넌 어린애잖아' 하고 얕보면 안 될 정도로 깊은 생각을 하게 된다는 것을, 나는 실제 체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렇다면 연쇄 실종 사건을 일으키는 아이들에게, 그토록 복잡한 소동을 계속 일으키는 그들에게, 진지한 이유가 없다고 그 누가 단언할 수 있을까.

이 연쇄 실종에는 평범한 놀이와는 다른 목적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_203p.

 

 

#한수진 옮김 #소미미디어 #소미랑 #소미랑2기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일본소설 #소설추천 #추천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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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셀프 트래블 - 2023-2024 최신판 셀프 트래블 가이드북 Self Travel Guidebook
김미정.백진수 지음 / 상상출판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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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셀프트래블도쿄

#김미정 #백진수

누군가 내게 도쿄에 대한 감상을 묻는다면 오래되었지만 관리가 잘 된 집 같다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낡았지만 구석구석 세심한 주인의 손길이 닿아 정갈한 느낌을 주는, 조금은 깐깐한 주인의 성정이 배어 있는 그런 공간의 느낌을 주는 도시. _ 김미정

_

떠나기 전에는 걱정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처음 가는 도쿄인데... 용기 내어 혼자 가는 여행인데... 친구와 함께 가는 여행인데... 가족과 함께하는 여행인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지? <도쿄 셀프 트래블>은 같이 고민하고, 같이 찾아보고, 같이 걸어가는 마음으로 만들었습니다. _ 백진수

가까운 나라 일본, 여행하면 한 번쯤 가볼까?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나라기도 하다. 블로그를 뒤적이다 보니 일본 여행 다녀온 지 올해로 딱 10년, 와우!!! 2~3번 정도 다녀왔던 일본의 인상은 단정하고 친절한 기억으로 남아있는 곳이기도 하다. 먹거리 여행보단 걷고, 보고, 쇼핑하는 위주의 여행을 다녔던지라 다음에 일본을 다시 하게 되면 어떤 여행을 계획해 보면 좋을까? 라는 생각으로 슬쩍 넘겨보았던 가이드북.

Mission in Tokyo 도쿄에서 꼭 해봐야 할 모든 것

Enjoy Da Tokyo 도쿄를 즐기는 가장 완벽한 방법

Around Tokyo 도쿄 근교를 즐기는 가장 완벽한 방법

Step to Da Tokyo 쉽고 빠르게 끝내는 여행 준비

계획 없이 떠나는 여행도 좋지만, 개인적으론 조금 더 넘치게 준비해서 덜어내며 여행하는 사람이라, 가이드북, 블로그 등등 최대한 정보를 활용해서 여행 준비를 하기에, 가이드북은 필수!! 여행 준비를 하다 보면 정말~ 많은 가이드북들이 나와있지만 꽤 오랜 시간 나의 원탑은 셀프트래블 시리즈로 꼽는다. 보기 편한 구성, 테마별 일정과 베스트 장소 등 여행하면서 필수고 꼽는 곳들이 가득해 알차고, 정확하고 꼼꼼한 전문가의 친절한 꿀 팁까지!! 하늘길이 열리고 여행이 자유로워지면서 들썩이는 요즘 어디든 떠나고 싶어지네~ 요즘 여행 관련 유튜브 몇 편만 돌려봐도 여행 일정은 대충 짤 수 있지만 세세하고 완벽하게, 또는 너무 알려진 곳 말고 숨겨진 명소? 같은 곳을 여행해 보고픈이라면 추천하고 싶다.

#상상출판 #여행서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도쿄여행 #도쿄셀프트래블 #도쿄여행가이드북 #상상팸 #신주쿠 #시부야 #롯폰기 #긴자 #기치조지 #요코하마 #가와고에 #가마쿠라 #에노시마 #하코네 #일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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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마 인턴
나카야마 유지로 지음, 오승민 옮김 / 미래지향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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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협찬 #울지마인턴

#나카야마유지로

리리리링 리리리링.

모니터 알람 소리가 심야 병동에 울려 퍼졌다. 지금 이 층에만 서른 명 가까이 되는 환자가 잠을 자고 있다. 어떤 이는 수술 후의 통증을 견디면서 어떤 이는 수면제에 취한 채로 어떤 이는 소리 소문 없이 다가오는 죽음의 공포에 떨고 있다. 그리고 이시이는 지금 그 짧은 생을 마감하려 하고 있다.

그는 '이번' 생에서 세상에 무엇을 남기고, 그 영혼에 무엇을 새겼을까? 스테이션 좌우 양쪽으로 길게 뻗은 복도는 어두웠다. 그 어둠은 한도 끝도 없이 영원으로 이어져 있을 것만 같았다. _170p.

다섯 살의 류지는 같이 놀던 형이 돌연사를 목격했던 것이 트라우마로 남아 있었지만, 25살의 현재 병원에서 인턴으로 근무 중이다. 눈치껏 배워야 하는 외과 인턴, 처음으로 경험하는 일들은 너무도 많지만 차근차근 배우기란 쉽지 않다. 체력적으로 힘들지만 의료현장에서 구할 수 없는 생명을 마주할 때면 무력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데... 중상을 입고 혼수상태로 입원한 다섯 살 아이, 자신과 같은 나이의 말기암 환자, 기초생활수급자인 치매노인 등 다양한 환자들의 에피소드들을 겪으며 환자들과의 시간을 통해 내면적으로도 성장하는 시간을 통해 의사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의료 드라마이기도 하다. 25세 초보의사 류지의 고군분투 성장기는 마지막 장에 이르러 자신의 5살 시절, 외면했던 시간을 오롯이 마주하면서 한층 성장한 그의 내면을 보여준다.

현직 외과의사이기도 한 저자의 필력은 생생한 의료현장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에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생생하며, 의료현실과 생명의 경중을 과연 누가 정할 수 있는 것인가? 살리고 싶어도 살릴 수 없는 현실 앞에서 우리는 그저 인간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 글이기도 하다. 하지만 전혀 무겁지 않은 흐름으로, '슬기로운 의사 생활' 드라마를 일본판으로 읽은 느낌이랄까? 꽤나 흥미롭게 읽었던 소설로 감동 의학 소설을 읽어보고 싶은 분들께 추천! 하고 싶은 책.

외과 의사에게 있어서 환자의 인격은 그 치료행위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어디서 태어나 어떻게 자라고 무슨 생각을 하며 누구를 사랑하는지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다만 그의 일부인 피부, 근육, 장기, 혈관, 신경, 조직을 대면할 뿐이다. 이 '천 가리개'는 그런 용도에 딱 맞는 아주 훌륭한 발명품이었다. _25p.

도대체 뭐가 어쩔 수 없다는 걸까. 94세라는 나이, 치매, 가족이 없다.

그러니까 그의 생존은 종료되어도 된다? 의료비가 전액 무료인 기초 생활수급과 관련이 있는 걸까? (···) 단지 수명 연장하는 것만이 목적이라면 수술하는 게 맞다. 하지만 사회 전체로 본다면 어떨까. 수술을 해서 그의 생명이 연장될 경우 어떤 일이 발생할까. 사회 전체로 보면 부담만 증가할 뿐일까.... _65p

지난 몇 달간 인턴 생활을 하면서 류지 내면에는 주어진 일을 100% 지시대로 완벽하게 해내고 싶다는 마음을 넘어서 그 이상의 무언가를 해내고 싶다는 마음이 싹트기 시작했다.

이 대립하는 마음을 어떻게 절충해야 할지 막막했지만 그렇다고 모르는 척할 수도 없었다. 류지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고 한편으로는 아직도 혼자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에 조바심이 났다. 아무튼 하루라도 빨리 제대로 된 의사가 되어야 해. 그런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제대로 된 의사가 된다고 과연 이 마음속의 대립 해결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했다. _142p.

#미래지향 #오승민옮김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소설 #도서추천 #소설추천 #book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해당 도서만 제공받아 주관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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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계절
권여선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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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파 #각각의계절 #권여선

한 계절이 가고 새로운 계절이 왔다. 마리아의 말대로라면 새로운 힘이 필요할 때였다.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들지요._114p. #하늘높이아름답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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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세상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아. 눈에 안 띄고 싶어.

(···) 나를 지키고 싶어서 그래. 관심도 간섭도 다 폭력 같아. 모욕 같고. 그런 것들에 노출되지 않고 안전하게, 고요하게 사는 게 내 목표야. 마지막 자존심이고. 죽기 전까지 그렇게 살고 싶어. _75p. #실버들천만사

문동북클럽6기를 시작하고 2번째로 완독한 권여선 작가의 <각각의 계절>은 7편의 단편을 이야기하고 있다. 기억하고 살아가고, 살아가야 하는 우리에게 던지는 많은 질문들이 이 한 권에 담겨 있다고 해도 되지 않을까? 때론 너무 내 이야기 같아서 헤어 나오지 못했고, 어쩌면 머지않은 미래의 나 같아서 주춤거리기도 했다. 독파 챌린지를 하며 미션으로 주어지는 질문들을 적어보며 조금 더 깊은 책 읽기를 할 수 있었던 것 같고, 함께 읽는 다른 분들의 글과 발췌 문장들을 보며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들을 다시 보게 되기도 했다. 각각의 계절을 나려면, 각각의 힘이 든다는 문장... 읽으면 읽을수록 그 의미가 다른 빛깔로 느껴져서 더 좋았던 권여선 작가의 소설집. 읽기를 참 잘했던 5월을 마무리해본다.

삼십 년 전, 너는 왜 연극이 하고 싶어, 내가 물었을 때 정은은, 나는 왜든 연극이 하고 싶어,라고 말했다. 어쩌면 나는 사슴벌레식 문답에 대한 심오한 오해를 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어디로 들어와, 물으면 어디로든 들어와, 말하는 사슴벌레의 대답이 나는 상대에게 구구절절한 과정이나 절차를 해명하지 않아도 되는 의젓한 방어의 멘트인 줄 알았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그 문답 속에는 내가 읽어내지 못한 무서운 뉘앙스가 숨어 있었던 것 같다. (···) 어디로 들어와, 물으면 어디로든 들어와, 대답하는 사슴벌레의 말 속에는, 들어오면 들어오는 거지, 어디로든 들어왔다, 어쩔래? 하는 식의 무서운 강요와 칼 같은 차단이 숨어 있었다. 어떤 필연이든, 아무리 가슴 아픈 필연이라 할지라도 가차 없이 직면하고 수용하게 만드는 잔인한 간명이 '든'이라는 한 글자 속에 쐐기처럼 박혀 있었다. _28~29 #사슴벌레식문답

인간의 자기 합리화는 타인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경로로 끝없이 뻗어나가기 마련이므로, 결국 자기 합리화는 모순이다. 자기 합리화는 자기가 도저히 합리화될 수 없는 경우에만 작동하는 기제이니까. _36p. #사슴벌레식문답

반희는 채운이 자신을 닮는 게 싫었다. 둘 사이에 눈에 보이지 않는 닮음의 실이 이어져 있다면 그게 몇천 몇만 가닥이든 끊어내고 싶었다. 그래서 결국 둘 사이가 끊어진다 해도 반희는 채운이 자신과 다르게 살기를 바랐다. 그래서 너는 '너', 나는 '나' 여야 했다. _50p. #실버들천만사

나는 한참 눈을 꾹 누르고 있었다. 오래전 젊은 날에, 걸리는 족족 희망을 절망으로, 삶을 죽음으로 바꾸며 살아가던 잿빛 거미 같은 나를 읽고 이해해 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아니, 그런 사람을 나를 알아본 그 사람을 내 등을 두드리며 그러지 마, 그러지 마, 달래던 그 사람을 내가 마주 알아보고 인사하고 빙글 돌 수 있었다면. 그랬다면 그 사람은 나와 춤추면서 넌 거미가 아니라고, 너는 지금 스스로에게 덫을 치고 있는 거라고, 그렇게 작고 딱딱한 결정체로 만족하지 않아도 된다고, 너는 더 풍성하고 생동적인 삶을 욕망할 수 있다고. 이 그물에서 도망치라고 말해주었을까. _241p. #기억의왈츠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소설추천 #문동북클럽 #문동북클럽6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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