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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 게이고의 무한도전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양윤옥 옮김 / ㈜소미미디어 / 2025년 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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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가시노게이고의무한도전
#도서협찬
스노보드를 시작하기로 했다. 아니, 이미 시작해버렸다.
돌이켜보면 이 출발선에 서기까지의 여정이 참으로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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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프트에서 내려 드디어 본격적인 보드 타기 연습이 시작되었다. 그 내용을 일일이 적어봤자 아마 별 쓸모가 없을 것이다. 간단히 줄이자면 타기, 돌기, 멈춰 서기의 연습이었다. 나도 S 편집장도 수없이 넘어졌다. 타고 내려가려다 넘어지고, 커브를 돌다가 넘어지고, 멈춰 서려다가 넘어지고, 넘어지기도 전에 미리 넘어지는 판이었다. 하지만 이게 아주 재미가 있었다. 44세와 43세 아저씨 둘이 눈 범벅이 되어 콰당콰당 넘어지고 있으니 재미있지 않을 리가 없다.... (중략)... "엇, 엇, 엇, 탄다, 탄다, 엇, 엇, 돌았다, 돌았다, 엇, 엇, 또 돌았다, 돌았다, 잘 타네, 잘 타네, 보드가 쭉쭉 나가네, 쭉쭉 나가네, 아저씨가 스노보드 쭈욱쭉 잘 타네." 설마 그런 식으로 입 박에 내서 말한 것은 아니지만 마음속의 부르짖음은 대략 그런 느낌이었다. _14~16p. (2002년 3월)
이 글은 2002년~2004년 실업지일본사(実業之日本社)의 《월간 제이노블》, 그리고 《SPORTS Yeah!》에서 연재된 글을 엮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무한도전』은 불혹의 나이에 우연찮게 시작하게 된 스노보드를 시작으로 자타 공인 스노보드의 마니아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연애의 행방>, <눈보라 체이스>의 영감을 얻게 되었다고 한다. 스노보드를 타며 취미생활로 에세이도 쓰고, 소설 출간까지... 글 쓰는 게 업인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구나 싶다.
2002년 이후부터 국내에도 스노보더들이 늘어나기 시작하던 때라 슬로프에 올라서면 스키어들과 보더들의 묘한 신경전도 꽤 있었는데... 어떤 종목이든 그렇겠지만, 혼자 연습도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면 강사의 지도가 필요하고, 또 새로운 걸 찾게 된다. 시즌이 아닌 비시즌엔 인라인스케이트, 수상 스케이트를 타며 시즌을 기다리는 게 아마도 겨울 스포츠인 스키, 스노보드를 즐기는 이들의 비슷한 패턴이 아닐까 싶다. 이렇게 5~6년 정도? 겨울을 미친 듯이 즐겼던 것 같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스노보드에 빠져드는 과정은 과거, 나의 어느 한 시절을 보는 것 같아 두근거리는 마음에 책장을 넘기는 손에 즐거움이 묻어나기도 했다. 그의 글을 읽으며 어느 한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는 이들도 꽤 될 것 같다는 생각도.... 이렇게나 겨울스포츠를 즐기면서도 작품도 꾸준히 집필했다니 자기 관리가 철저한 사람이라고 해야 할까? '설산 시리즈'의 시초라 할만한 단편 소설 3편이 수록되어 있어, 그가 푹 빠진 스노보드와 설산의 여운을 잠시나마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거의 23년 전의 글이라 시간차는 꽤 있지만, 히가시노 게이고가 눈 깜짝할 사이에 푹 빠져버린 '아저씨 스노보더'의 글은 읽는 이의 마음을 하얀 설산 앞으로 슬금슬금 데려다 놓는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엉덩이가 들썩들썩... 겨울 스포츠 다시 시작해 볼까?라는 마음이 들지도~ 어쩌면 당신을 하얀 설산 앞으로 데려다 놓을 에세이!
본격적으로 스노보드를 즐기는 인물을 맨 처음 본 것은 스크린에서였다. <007 뷰 투 어 킬>이라는 영화다. 이 영화의 앞부분에 저 유명한 제임스 본드가 스노모빌을 타고 적의 추격을 따돌리며 도주하는 장면이 있다. 중간에 공격을 받아 스노모빌이 파괴되자 제임스 본드는 바닥에 떨어진 모빌 한쪽을 썰매에 얹고 눈 위를 마치 서핑이라도 하듯이 휘익휘익 타면서 도망치는 것이다. 배경음악으로는 더 비치 보이스의 커버 곡이 흘렀다. 그때의 스턴트맨은 말할 것도 없이 프로 스노보더였을 것이다. 나는 충격을 받았다. 세상에 저런 대단한 일을 해내는 사람이 있구나, 하고 감탄했다._7p. (2002년 3월)
"네, 잘 봤습니다. 잘못된 습관도 없고, 아주 좋아요. 다만 몸이 좀 앞으로 숙여지는군요. 턴의 후반에는 중심을 뒤쪽으로 옮기도록 해보세요." 스피드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중심을 앞쪽에 둔 것인데 계속 그 자세만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인 모양이다. 혼자 연습해서는 결코 알지 못할 결점이다. 그것만으로도 이번 레슨을 받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밖에도 잘못된 부분을 이것저것 지적해 주었다. 거기에 새로운 테크닉도 배웠다.
"네, 좋아요, 그렇게 하시면 됩니다. 잘 타시네요."
마쓰무라 씨의 말에 마음이 턱 놓였다. 책이나 비디오로 배워서는 내가 과연 제대로 타는지 어떤지 알 수 없다. 독자들 중에 만일 스노보드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은 분이 있다면 꼭 정식으로 강사에게 배울 것을 추천한다. _103p. (2003년 2월)
"뭐야, 그 정도면 나도 할 수 있겠는데?"
그렇게 생각하신 중년 아저씨 여러분, 맞습니다, 당신도 할 수 있습니다. _241p. (2004년 2월)
#소미미디어 #솜독자3기 #히가시노게이고 #에세이 #까망머리앤의작은서재 #book
본 서평은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아 개인적인 감상으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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