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일의 신 택리지 : 살고 싶은 곳 - 두 발로 쓴 대한민국 국토 교과서 신정일의 신 택리지 1
신정일 지음 / 타임북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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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어떤 책을 읽어볼까 하고 살펴보고 있으면 가끔 '이 책만은 반드시 읽고 소장하고 싶다'라는 책을 발견하게 된다. 나에게 있어서는 바로 이 책이 꼭 읽고 싶은 책이었다. 그 이유는 박원순 희망제작소 소장과 김지하 시인의 추천사 뿐만 아니라 이중환의 [택리지]를 '지금의 택리지'로 다시 쓰고자 하는 글쓴이의 태도와 노력을 환영하기 때문이었다. 마치 이는 정약전의 [현산어보]를 다시 '오늘날의 현산어보'로 다시 쓴 이태원 선생님의 역작 [현산어보를 찾아서]와 같았다.

 

 흔히 우리는 정약전의 현산어보나 이중환의 택리지에 대해 '시대에 뒤쳐져 졌다'고 생각한다. 정약전이 현산어보를 썼을 때나 이중환이 택리지를 썼을 당시와 비교하여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환경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오늘날 그 의미가 많이 퇴색한 것도 사실이다. 누가 오늘날 [현산어보]나 [택지리]를 읽고 있겠는가? 그런 점에서 오늘날 변화된 환경에 맞게 우리의 고전을 재해색하고 다시 찾아 내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이처럼 이 책의 글쓴이는 20년간 우리 나라 산하를 두 발로 뛰어 다니며 이중환의 [택리지]를 현대적 관점에서 다시 쓰는데 성공하였다. 바로 이런 글쓴이의 노력과 옛 것을 현대적 관점에서 해석하여 후손에게 물려주고자 하는 글쓴이의 태도를 나는 환영하는 것이다.

 

 이 책은 총 10권으로 예정된 책 중에서 첫번째 것으로 일종의 <총론>에 해당하는바 글쓴이는 이중헌의 [택리지]에서 이중헌이 말한 사람이 살 만한 곳에 대한 일반론을 소개해주고 있다.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지명을 오늘날 지명에 맞추어 소개해 주고 있는 점과 그 지역의 역사와 살았던 인물, 그리고 인문, 풍수지리학적 관점에서 풍부하게 배경지식을 설명해 주고 있어 [택리지] 그 이상의 오늘날의 [택리지]를 쓰는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글쓴이가 이야기하는 <풍수지리>에 대해서는 글쓴이의 생각과 다르다. 나는 자연과학 교육을 받았고 실증주의를 추종하기 때문에 과학적 근거가 빈약한 풍수지리에 대해서는 반대하고 있다. 지금은 덜하지만 과거에는 이른바 음덕(陰德)이라고 하여 부모의 묏자리에 대한 풍수지리를 많이 따졌기 때문에 폐단이 심하여 정약용을 비롯한 많은 지식인들이 이에 대한 비판을 하였었다. 나 역시 과학적 근거가 빈약한 풍수지리설에 대해서는 이른바 <유사 과학>으로 일견 과학적으로 보이나 실제로는 비과학적인 학설이라고 여기고 있다. 글쓴이의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이나 국토의 무분멸한 개발에 대한 반대는 나 역시 동감하는 바이나 풍수지리에 대한 글쓴이의 입장에는 찬동할 수 없다.

 

 또한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지도를 같이 첨부해줬으면 하는 점이다. 서울을 벗어나기가 힘든 대다수 독자에게는 이 책에서 나오는 수 많은 지명은 일종의 암호에 불과하다. 지도에 그 위치를 표시하여 독자의 편의를 고려해 주는 것은 어땠을까? 하나 덧 붙이자면 글쓴이가 2004년에 출판된 [다시 쓰는 택리지]와 과연 무엇이 다른지도 궁금하다. 단순히 제목만 바뀌어서 낸 책이 아니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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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스키 수첩 - 내 취향에 딱 맞는 125가지 위스키 구르메 수첩 6
성중용 지음 / 우듬지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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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우리 나라의 위스키 음주 문화는 뭔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되어 있다. '즐기기 위한 술'이 아니라 '취하기 위한 술'을 마시는 우리 나라에서는 알콜 도수가 40% 이상 되는 위스키는 취하기에 매우 좋은 술로서 우리 나라에서 사랑을 받고 있다. 특히 이른바 '폭탄주' 만드는데 많이 사용되고 있는데 이는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상황이 아닌가 싶다. 이는 나 역시도 마찬가지인데 알콜도수 20% 이상의 독주는 거의 마시지 못하는 나로서는 위스키 같은 독한 술을 왜 마시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나마 와인의 경우에는 심장병 예방에 도움이 되지만 위스키 같은 증류주의 경우에는 그런 효과를 얻을 수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간질환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그러나 위스키는 '비싼 술'이라는 선입견이 있어 누구를 접대할 때 필수적으로 포함되는 술이기는 하나 취하기 위한 술로서 고급술임에도 불구하고 와인 같은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나 역시 최초로 위스키를 마셔본 것은 대학교 1학년 시절 [조니 워커 블랙라벨]이었는데 선배가 가져온 것을 그냥 길거리에서 호기심에 한 모금 마셔본 것에 불과하였다. 당시에 든 생각은 이렇게 독한 술을 왜 마시는 거지라는 생각이었는데 역시 술 역시 아는 만큼 즐길 수 있다는 사실은 명확해 보인다.

 

 이 책에서는 본격적으로 위스키에 대해 설명하기에 앞서 위스키에 대한 역사 및 간략한 설명을 하고 있다. 위스키는 보리를 증류한 것으로 위스키 특유의 거칠고 연기 냄새가 나는 듯한 맛과 향은 이른바 피트(Peat)를 이용하여 보리를 증류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피트라 함은 우리 나라 말로 이탄인데 석탄의 일종인 이탄을 이용하여 증류하기 때문에 위스키 특유의 향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약 40여 종의 위스키를 설명하고 있는데 주로 우리 나라 사람들은 스카치 위스키를 가장 잘 알고 있는 듯 하다. 현재 가장 많은 생산량을 자랑하는 곳이 스코틀랜드인데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스코틀랜드가 가장 먼저 위스키를 제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피트가 풍부하여 위스키 제조에 좋은 지리적 요건을 가지고 있으므로 오늘날 최고의 위스키로 스카치 위스키를 꼽는다. 그 중에서도 <발렌타인 30년 산>을 가장 높게 치는데 블렌디드 위스키로 현재 최고의 위스키로 꼽히고 있다. 다만 일본에서도 좋은 위스키가 생산된다는 점이 놀랍고 한 때 우리 나라에서도 위스키를 제조하려고 하였으나 오랜 숙성 기간에 따른 재정 압박 때문에 현재 우리 나라에서는 위스키를 제조하지 않고 스코틀랜드에서 제조된 위스키를 블렌디드하여 수입하는 것만 이루어 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윈저><임페리얼>이 이렇게 생산되 위스키이다.

 

 그러나 이 책에서 각 위스키 마다 구체적인 별점을 매기던지 혹은 가격을 표시해 주었으면 좀 더 유용한 책이 될 수 있었다는 점은 아쉬운 점이다. 그래도 이렇게 '취하기 위한 술'로 대접받는 위스키를 좀 더 잘 알아갈 수 있는 얇고도 충실한 책임에는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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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사람의 길을 열다 (반양장) 주니어 클래식 3
사계절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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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이른바 [고전]'누구나 잘 알고 있지만, 누구도 읽지 않는 책'이라고 비야냥을 받는다. 분명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고전이 전해지는 것은 시대의 흐름을 초월하여 오늘날에도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당시 시대에 맞는 구체성보다는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으로 쓰인 책이 이른바 고전으로 전해지게 되어 오늘날 이렇게 고전은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라고 비야냥을 받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사계절 출판사의 [주니어 클래식]은 이런 고전을 청소년을 대상으로 쉽게 접할 수 있도록 어느 정도 고전에 '칼집'을 넣은 책이다. 사실 되도록 원전을 읽는 것이 가장 좋은 길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아무도 고전을 찾지 않는 상황에서 이런 '칼집'은 필요악이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씁씁함을 감출 수 없다. 또한 그나마 제대로 '칼집'이 된 책을 찾는 것 역시 쉬운 일이 아니다. 오늘날 청소년 용으로 나오는 책들은 이리 저리 난잡한 '칼집'으로 본래의 뜻을 찾기는 요원한 일이 되었다. 그러나 사계절 출판사의 [주니어 클래식] 만큼은 제대로 '칼집'을 넣은 책으로 고전에 담긴 의미는 잘 살리면서도 청소년이 이해하기 쉽게 잘 버무려 놓았다. 하지만 원전을 읽지 않는다면 수박 겉 햝기에 불과하므로 다음에 [논어] 원전을 찾아 읽는 일이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대형 서점에서 동양 철학의 [논어]를 찾으면 너무도 많은 책이 있어 놀라게 된다. 서양 철학과 달리 동양 철학의 경우 원문 보다는 이를 해설한 '주석'이 중요한데 사람마다 논어 원문을 해설하는 주석이 각기 다르기 때문에 책이 범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이른바 정통적인 논어를 찾기가 쉽지 않다. 여러 고민 끝에 나는 배병삼의 [한글 세대가 본 논어]김학주의 [논어], 유교경전번역총서 편찬위원회의 [논어], 도올 김용옥의 [논어한글역주세트]가 좋은 논어 책이라고 생각된다. 배병삼 교수의 [한글 세대가 본 논어]는 한글 세대를 위해 쉬운 우리말로 풀다보니 의역이 좀 심한 느낌이 있지만 쉬운 우리말로 풀어 쓰면서도 원문에 비교적 충실하였고 김학주의 [논어]는 딱딱하긴 하지만 원문에 충실한 직역이 돋보이며 유교경전번역총서 편찬위원회의 [논어]는 성균관대학교에서 번역한 것으로 가장 정통적인 논어 번역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도올의 [논어한글역주세트]는 도올 김용옥의 엄청난 노력이 담긴 역작으로 평가할 수 있다.

 

 각설하고 이제 이 책 내용을 살펴볼까 한다. 3번째 챕터인 문명을 숨을 쉰다는 소제목을 달고 있는 팔일 편에서는 글쓴이는 공자는 사회를 버리고 자기 몸의 안전만 취하는 이기주의와 국가가 개인을 위협하는 폭력인 전체주의 사이에서 이른바 중용을 지키고자 노력했다고 말한다.(p.71) 일단 [논어] 속에서 개인주의를 넘어선 이기주의에 대한 공자의 부정적 시각은 쉽게 알 수 있지만 글쓴이가 지적하는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까지 찾기는 힘든 일 같다. 공자의 비판은 전체주의에 대한 것보다는 민생과 상관없이 자신의 사욕을 채우기 위한 전쟁을 거듭하는 잘못된 정치에 대한 비판이지 이를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보는 것은 '전체주의'란 단어에 대해 글쓴이가 잘못 알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리고 '자공'이라는 제자-공야장 편에서는 [논어] 9장 12편의 아래 내용을 단순히 돈에 밝은 자공의 재능과 그를 둘러싼 상업적 환경을 보여주는 것으로만 이해하고 있는데(p.86) 이렇게 단순히 볼 것이 아니라 공자는 자신의 재능을 썩힐 것이 아니라 세상에 나가 뜻을 펼쳐야 한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좀 더 옳은 해설이라고 보인다. 이런 해석이 은둔자와 이기주의에 대한 공자의 일관된 부정적 시각에 알맞는 해설로 보여진다.

 

 자공이 여주었다. "아름다운 구슬이 여기 있다고 합시다. 궤짝 속에다 감춰 두어야 할까요, 아니면 좋은 값에 팔아야 할까요?"

 공자 말씀하시다. "팔아야지. 팔아야 하고 말고! 다만 난 제값에 팔리길 기다릴 뿐이다."(p.80)

 

 이어서 '부모에 대한 효도'와 '국가에 대한 충성' 사이에 등호를 그리는 이른바 충효 사상은 [논어]와 상관없는 후대 천하통일 시대의 논리라는 지적은 놀랍다. 즉, [논어]에서의 충(忠)은 스스로의 행위에 대한 '성실성'을 뜻하는 말인데 비해 이것이 임금에 대한 충성의 뜻으로 쓰인 것은 전국 시대의 [순자]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p.110) 나는 국민 의례나 애국가 제창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경기장에서 국민 의례 할 때도 그냥 제자리에 앉아 있고 애국자 제창할 때도 그냥 가만히 있곤 한다. 이렇게 국가에 대해 충성심은 이런 요식행위에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나 개인을 위해줄때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나라는 국민을 위하기 보다는 오히려 국민을 억압하려고 하는데 어떻게 국가에 대한 충성심을 요구할 수 있을까?

 

 이어서 공자 당대에도 공자의 가르침이 먹고 사는 현실적 문제와 무슨 관련이 있느냐는 비판이 있었다는 점도 흥미롭다.(p.206) [논어] 13장 4절에서는 번지가 농사 기술에 대해 공자에 대해 질문하자 공자는 자신은 농사 기술에 대해 잘 모른다고 대답하면서 번지 보고 소인배라고 하는데 이는 당시 시대 정신이 요구하는 바는 농사 기술이 아니라 농사 기술을 제대로 발휘할 수 있는 정치/사회적 환경을 마련해 주는데 있다는 점을 공자는 지적한 것이다. 이는 문제의 본질을 정확히 파악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흔히 공자의 사상을 탁상공론에 불과하다고 비판하곤 하는데 당시 공자가 살았던 시대에는 이런 전문 기술보다는 전문 기술이 싹을 틔울 수 있는 토대가 되는 정치/사회적 안정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다만 곳곳에서 글쓴이의 현 시대에 대한 비판이 담겨져 있는데 글쓴이는 이와 같이 비판한다. "결국 바른 색깔을 흩트리는 간색(間色), 노래 중에서도 대중가요가 클래식을 어지럽히는 사태, 그리고 겉치레 말로 여론을 오도하여 끝내 공동체를 망치는 언어와 실천 간의 괴를 증오한다는 것이다."(p.256) 여기서 앞에서 말하는 간색(間色)은 비유니까 그렇다 쳐도 두번째 구절인 대중가요가 클래식을 어지럽힌다는 것에 대해서는 동의할 수 없다. 이런 글쓴이의 주장 속에는 클래식이 대중가요보다 우월하다는 의식이 숨겨져 있다. 클래식이 최고의 음악이라고 믿는가? 새로운 해석을 전혀 용납하지 않는 악보 중심주의, 관객과 연주자를 완전히 분리시켜 자유로운 소통을 막는 클래식 음악회의 풍경, 어느 누구도 길 가며 MP3를 통해 클래식을 듣지 않아 대중에서 외면받고 새로운 클래식 작곡가가 더 이상 나오지 않은 클래식은 이미 '죽은' 음악이자 박제된 음악이다. 그런데 대중가요가 클래식을 어지렵힌다니…. 글쓴이의 클래식 중심주의, 좀 더 나아가 서양중심주의에는 쓴웃음이 나올 뿐이다. 이른바 동양 철학을 했다는 분이 오리엔탈리즘에 빠져 있는 모습이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어쨌든 이 책은 [논어]라는 고전에 잘 '칼집'을 내어 청소년이 먹기 좋게 만들어 놓은 책이다. 이 책을 통해 [논어]를 접하고 이후 원전을 통해 논어를 이해하는 것에 그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 인(仁)을 추구하여 군자(君子)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서양 철학과 달리 동양 철학은 철학보다는 윤리 혹은 사상으로 보아야 하는바 [논어]를 읽어도 이를 실천할 수 없다면 [논어]를 읽지 않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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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뒷세이아 - 그리스어 원전 번역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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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디어 호메로스의 양대 서사시인 <일리아스><오뒷세이아>를 다 읽게 되었다. 왠만하면 앞서  <일리아스> 서평에 썼었던 중복된 내용을 피하려고 한다. 그래도 혹시라도 수많은 <오뒷세이아> 혹은 <오딧세이아> 번역본 중에서 어떤 책을 골라야 할지 고민하는 사람을 위해 우리나라 번역 현실에 대한 설명을 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번역본의 가장 큰 명제는 언제나 가장 좋은 번역본은 해당 언어에 능통하면서 해당 분야에 전문가적 식견을 가진 사람이 직접 번역하는 책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그런 책을 찾아보기는 쉽지 않다.

 

 그나마 인문/사회 분야 책은 많은 옮긴이의 노력 끝에 좋은 번역서가 점점 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대표적으로 나는 김만수 교수가 번역한 <전쟁론>의 번역본을 보고 이건 사줘야 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감동했었다. 최초로 독일어→한국어로 번역한 완역본인데다가 거의 책의 1/3을 차지하는 옮긴이의 주석은 옮긴이의 정성을 느끼게 해주었다. 물론 너무 많은 주석에 대한 호불호는 갈리긴 한다.)

 

 하지만 자연과학 책의 번역 현실은 굉장히 취약하다. 대표적으로 내가 지금까지 읽어 본 책 중 최악의 번역본으로 꼽는 책이 바로 도올 김용옥의 형님인 김용준 선생이 번역한 <부분과 전체>이다. 이건 진짜 번역도 책도 아니다!! 대체 왜 사람들이 이 책에 대해 별점을 높게 주는지 이해할 수 없다. 물론 김용준 교수의 다른 '한글' 책들은 굉장히 좋은 책이라는 것은 인정한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한 챕터는 구어체를 쓰고 다른 챕터는 문어체를 쓰는 등 딱 봐도 각 챕터마다 대학원생들에게 나눠줘서 번역한 것이 눈에 띄는데 왜 사람들은 별점을 높게 주는 것일까? 아마도 사람들은 이 책을 읽어도 이해할 수 없는데 이 책이 <서울대 100권 추천 도서>에 포함된 것을 보고 내가 멍청해서 이해 못 했나 보다라고 생각하고 높은 평점을 준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꾸준히 좋은 번역본과 옮긴이에 대한 관심을 환기시키는 것이 올바른 번역을 우리나라에 뿌리 내리기 위한 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감히 나는 그리스/라틴 고전 번역에 있어서 현존하는 가장 좋은 옮긴이는 <천병희> 교수라고 생각한다. 대다수의 사람들 역시 천병희 교수의 번역이 가장 깔끔하다는데 동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여기서 YES24에 올라온 천병희 교수의 번역관을 아래 그대로 옮겨 왔다.

 

"다른 고전들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리스 라틴 고전들도 원전으로 읽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작가 또는 저자의 뜻을 가장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정확히 알아야 우리 것으로 소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원전을 읽을 수 있을 만큼 고대 그리스어나 라틴어를 배우자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요즘처럼 입학하자마자 취업 경쟁에 내몰리는 상황에서는 학생들이 고대 그리스어나 라틴어를 계속해서 배우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 라틴 고전을 편역하는 수준을 넘어 원전에 최대한 충실하게 번역하고 주석을 다는 것이 차선책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로서는 잘된 우리말 번역이 잘된 영역이나 독역보다 훨씬 더 빠르고 정확하게 원전을 이해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일어를 배운 지가 벌써 50년이 훨씬 넘었고 번역할 때면 영역 몇 가지와 독역 몇 가지를 참고하니까 계속해서 독일어와 함께하는데도,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영역은 말할 것도 없고 아무리 잘된 독역이라도 읽어 보면 알쏭달쏭한 대목이 한두 군데가 아닙니다. 빗대어 말하자면, 외국어 번역을 읽는 것이 달밤에 밤길을 걷는 것과 같다면, 우리말 번역을 읽는 것은 대낮에 길을 걷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제대로 된 우리말 번역일 경우 말입니다."

 

 결국 가장 좋은 길은 해당 언어를 배워 원전을 읽는 것이고 차선책으로는 한글 완역본을 읽는 것이고 그조차 안 되면 영역본이나 중역본을 읽으라는 말이다. 그 만큼 자신의 번역본에 대한 자신감을 피력하지만 이 책에서도 <일리아스>와 마찬가지로 2006년에 주석을 첨가하면서 증가된 주석 번호를 그대로 두어 잘못된 주석을 찾아가게 하는 잘못은 여전하다. 또한 왠만하면 지도 하나 정도는 첨부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단순히 어떤 지명이 어디에 있다고 주석에서 설명하면 그냥 읽고 넘어가지만 지도가 같이 있다면 좀 더 독자의 이해를 도울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어쨌든 <일리아스>와 비교해보면 좀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오뒷세이아>는 일종의 모험담에 가까워서 단순히 영웅담에 그쳤던 <일리아스> 보다는 재미있는 부분이 많았다. 다만 나는 이 두 개의 서사시가 같은 인물이 썼다는 점에서는 조금 회의적이다. 많은 사람이 이미 지적했고 이 책 뒷편에 있는 [호메로스의 작품과 세계]라는 글에서도 말하듯이 이상화된 자연이 있는 <일리아스>와 달리 <오뒷세이아>에서는 자연의 힘 앞에 주인공은 무력하며 비유 역시 <오뒷세이아>에서 훨씬 적게 사용되고 있다. 또한 <일리아스>에서는 사납고 자제력 없고 굽힐 줄 모르고 오직 불멸의 명성만을 추구하는 아킬레우스가 이상적 인물로 그려져 있는 데 반해 <오뒷세이아>에서는 참을성 많고 임기응변에 능하고 유연한 사고를 가진 오뒷세우스가 이상적 인물로 그려져 있다. 이는 <일리아스>가 쓰여질 당시에는 용감한 군인이 필요했던 사회적 배경에 비해 <오뒷세이아>가 쓰여질 당시에는 참을성과 임기응변에 능하고 모험심이 강한 바다 사나이가 필요했던 사회적 요구가 있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리고 여기서 우리가 흔히 말하는 멘토(Mentor)가 오뒷세우스가 트로이아로 떠나며 자기의 재산을 관리해 줄 것을 부탁한 친구로 후에 오뒷세우스의 아들 텔레마코스에게 훌륭한 조언도 해준 맨토르(Mentor)에서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만큼 호메로스의 서사시가 미치는 영향이 오늘날에도 그대로 남아 있다. 한 번 <일리아스>, <오뒷세이아>와 함께 호메로스가 안내하는 세계로 탐험해 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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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리아스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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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스/라틴 고전을 읽으려고 큰 서점에 가서 살펴보면 수많은 번역본이 존재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하지만 어떤 번역본이 가장 좋은 번역본인지 알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그리스/라틴 고전 중에서 어떤 것이 가장 좋은 번역본인지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번역자가 <천병희> 선생님인 것을 찾는 것이다. 현재 단국대학교 인문학부 교수로 있으면서 끊임없이 그리스/라틴 원전을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하고 계시는데 그 분의 번역이 가장 깔끔하다는 것에 대다수가 동의하고 있다.

 

 여기서도 깔끔한 번역과 편집은 빛을 발한다. 특히 행을 표시하고 우리나라와 원문 사이의 행을 최대한 맞출려고 노력한 점이나 현존하는 그리스 문헌이 아티케 방언을 따르고 있으므로 번역본에서도 아티케 방언을 사용한 점이나 자음이 중복되는 경우 둘 다 읽어주는 것은 최대한 원어와 비슷하게 음절 표기를 하려는 노력이 보여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즉 오디세이아→오뒷세이아 이렇게 표시하여 낯설게 느껴지지만 라틴어어 그리스어는 모든 자음을 있는 그대로 발음하기 때문이다.) 다만 2006년에 개정판을 내놓으면서 주석을 추가한 것 같은데 제 19권의 4번째 주석은 제 8권의 9번 주석을 참고해야 하는데 제 8권의 8번 주석을 참고하라고 적혀 있어 추가한 주석 증가를 반영하고 있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무리 깔끔하게 번역이 잘 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이렇게 자그마한 오탈자나 잘못된 표시가 있는 경우 그 책에 대한 인상이 바뀌기 쉽다. 개정판에서는 이를 수정하기를 바란다.

 

 각설하고 먼저 글쓴이인 호메로스(Homeros)에 대해 살펴보면 이른바 <호메로스 문제>를 만나게 된다. 이른바 호메로스가 과연 한 명이냐 다수냐 하는 문제인데 처음에는 다수라는 의견이 힘을 받다가 근래 한 명이라는 의견이 대두되어 현재는 일치된 견해가 없다. 어찌되었건 다수의 학자는 호메로스가 기원전 8세기 말경에 활동하였으며 활동 장소는 이오니아 지방이라는데 의견이 일치되고 있다. 그가 남긴 서사시 두 편이 바로 <일리아스><오뒷세이아>이다. 그런데 이 두 편은 이른바 [트로이아 서사시권]에 속해있다. 즉, 우리가 아는 '가장 예쁜 여신에게'라고 쓰여진 황금 사과로부터 트로이 전쟁, 그리고 오뒷세우스의 여행 등이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를 포함하는 총 8개의 서사시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래서 맨 처음 <일리아스>를 읽을 때 황당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여신 테티스와 펠레우스의 결혼부터 이야기 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트로이 전쟁에서 아가멤논과 아킬레우스의 불화부터 <일리아스>는 시작되어 헥토르의 장례로 끝나는 것이다. 미리 신화나 트로이 전쟁에 대해 알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면 난감해 할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트로이의 별명인 'Ilios'부터 유래된 <Ilias>는 15000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라틴 문학을 거쳐 유럽 문학에 큰 영향을 미쳐 호메로스는 최고(最古)의 시인으로 숭상 받고 있는 것이다.

 

 내용으로 들어가면 비판한 점도 있지만… 이 서사시가 대략 기원전 8세기 전 것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플롯이나 구성 등에 대한 비판은 부적절해 보인다. 게다가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는 우연히 물리적으로 보존된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꾸준히 인용되고 읽혀서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서사시이다. 현재 우리 나라 글 중에 기원전 8세기의 것이 남아 있는가? 이렇게 오랜 기간 동안 남아 있는 고전은 뭔가 특별한 것이 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단점보다는 장점에 중심을 두고 읽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비록 철학자 플라톤은 비교육적이라고 호메로스를 비판했지만 <일리아스>가 주는 교훈에 집중해서 읽는다면 기존 문학과 다른 서사시가 주는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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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0-10-10 22: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처음으로 암향부동님의 서재에 와서 모든 글을 읽지는 않았지만
부동님이 읽으신 책들 중에 고전 몇 권 보이네요ㅎㅎ
저도 사실 고전을 좋아하거든요^^ 부동님의 <일리아드> 리뷰를 읽으니깐
천병희 교수가 번역한 그리스 로마 고전들을 읽고 싶어지네요ㅎㅎ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ㅋ

암향부동 2010-10-12 14:14   좋아요 0 | URL
아무도 읽지 않는 것이 고전이라고 어떤 철학자는 이야기했지만 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고전이라면 시대를 초월하는 무언가가 담겨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고전을 좋아해서 꾸준히 읽고 사 모으고 있습니다만… 대학생인지라 돈의 한계에 부딪히게 되네요. 특히 천병희 선생님의 책은 출판 후 1년 6개월이 지나도 급격히 가격이 하락하지 않는 책인지라 부담이 좀 되더군요.
그래도 그리스/로마 고전 번역은 천병희 선생님이 첫 손가락에 꼽히시는 만큼 꾸준히 책을 읽고 모아갈 생각입니다.^^ Cyrus님의 서재에서도 천병희 선생님이 번역하신 <명상록>에 대한 서평이 있더군요.

cyrus 2010-10-12 2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일리아드와 오디세우스 두 권을 예전에 천병희 교수의 저작 할인 이벤트 때 지를려라다가,,, 적지 않은 가격 때문에 잠시 접었답니다^^;;ㅎㅎ
하지만 여유만 된다면 한 권씩 사두려고 합니다. 그만큼 오래 읽을 수 있는 고전이고,
소장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니까요.